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85)
신마의선-485화(485/500)
신마의선 (485)
“죽음도 우릴 갈라놓지 못한다, 소상. 내가 결코 보내지 않을 테니까.”
“당신이 무슨 수로?”
사종악이 히죽 웃었다.
“듣자니 몰약(沒藥)이라는 것이 있다더군.”
집착으로 응집된 사종악의 광기.
이를 마주한 탁여상은 다시 한번 소름이 쭉 끼쳤다.
몰약에 절인 시신은 부패하지 않는다.
“정말 미쳤구나?”
“그렇게라도 내 곁에 묶어 둘 수 있다면 상관없다. 널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물론 가끔은 시끄럽게 짹짹대는 목소리가 그립겠지만 말이야.”
끔찍한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지껄이는 사종악의 눈빛에 탁여상은 기가 질려 버렸다.
죽어서까지 그에게 끌려다니며 모욕당할 것을 생각하니 그 자체만으로도 숨이 막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애써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 끔찍하고 지독한 악연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그 여느 때보다 차가운 정신을 유지해야 했다.
‘당신의 광기도 여기까지야.’
가슴 깊숙이 묻어 놓은 적의를 감추며 탁여상이 애써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당신이 지금 왜 여기에 있지? 한창 싸우던 중 아니었나?”
“아아, 쓸모없는 머저리들을 위해 내가 고생할 이유가 없어서.”
“이런 치졸한 자를 두목이랍시고 떠받들었던 저들이 가엾어지네.”
탁여상의 모욕에도 사종악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피식 웃었다.
“그러는 너야말로 주변에 아무도 남아 있지 않군.”
“치료가 끝난 환자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법이니까.”
“그래서 이렇게 당당한 건가? 약점이 될 인질이 없어서?”
물끄러미 탁여상을 응시하던 사종악이 안쓰러운 눈빛을 던졌다.
“아직도 모르겠나? 결국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들이다. 아무리 은혜를 베풀어도 제 목숨 챙기기에 급급하지. 인정해. 결국 마지막까지 네 곁에 남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헛소리.”
“그만 가자. 이렇게 실랑이할 시간이 없어.”
“가다니? 어디로?”
“새로 시작할 곳.”
사종악이 섬뜩하게 웃었다.
“난 천하제일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넌 내 옆에서 그걸 지켜봐야만 하고.”
“그런 말을 입에 담기에는 몰골이 엉망이네.”
자존심이 상한 사종악의 눈썹이 꿈틀했다.
한심한 듯 자신을 바라보는 탁여상의 눈빛에 아픈 상처가 더욱 쑤셔 오고 있었다.
탁여상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흘러나온 것도 그때였다.
“좋아. 이쪽으로 와.”
사종악의 눈 위로 의아함이 자리 잡았다.
“이번에는 또 무슨 앙큼한 짓을 꾸미고 있는 거지?”
“갈 때 가더라도 치료는 해야 할 거 아냐.”
무심코 탁여상을 향해 걸음을 내딛던 순간.
와직.
사종악의 발밑에 있던 석판이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 순간.
턱.
사종악의 어깨를 강하게 붙드는 손이 있었다.
좌자였다.
어느 순간 사종악의 뒤편에 나타난 사내를 발견한 탁여상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그의 등장으로 인해 의도했던 계획이 어그러지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함정입니다.”
“뭐?”
반문하던 사종악은 이어진 좌자의 말에 흠칫했다.
“일대의 기운이 심상치 않습니다. 아무래도 이곳에 절진이 설치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사종악이 놀란 눈으로 탁여상을 바라봤다.
“사실이냐?”
탁여상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종악을 유폐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던 계획.
그를 위리안치시킬 절진과는 불과 단 한 걸음만을 남겨 놓고 있었다.
애석하고 분했지만 그럼에도 탁여상은 환하게 웃었다.
“그래. 그 말대로야. 그러니 와서 데려가 봐.”
“너…….”
“그럴 용기가 있다면 말이야.”
망설이며 고민하는 사종악의 모습에 탁여상이 조롱 섞인 눈빛을 던졌다.
“뭐야, 당신도 마찬가지네.”
“뭐?”
“마지막까지 내 곁에 남는다며? 방금 전에 그렇게 호언장담했던 그 사람은 어디로 사라진 거지?”
탁여상의 도발에 사종악이 움찔했다.
“당신을 데려가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잠시 말끝을 흐린 탁여상이 사종악을 한껏 비웃었다.
“그래도 상관없어.”
그 말과 함께 탁여상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한순간 공간이 일렁이나 싶더니 그녀의 모습이 두 사람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사실 진법은 사종악이 석판을 밟는 순간부터 이미 발동해 있었던 것이다.
바로 눈앞에서 탁여상을 놓친 사종악의 눈에 당혹감이 자리 잡았다.
그런 그에게 한 줄기 낭랑한 음성이 날아든 것도 그때였다.
“당신 뜻대로 되지는 않을 테니까.”
진법 때문일까.
동굴 안에서 반향 된 소리처럼 기이한 울림을 지닌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음성의 주인은 탁여상이 분명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그녀의 음성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사종악이 으스러져라 이를 악물었다.
“감히!”
성큼 진법 안으로 들어서려는 사종악을 좌자가 재차 붙들었다.
“놔라!”
“잠시만 기다려 보십시오.”
애써 사종악을 만류한 좌자가 바닥에 구르는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러곤 힘껏 진법이 설치된 전각을 향해 던졌다.
그러자 어느 순간 돌멩이가 허공에 삼켜져 종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심지어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보시다시피 한번 들어서면 두 번 다시 나올 수 없는 진법입니다.”
소리조차 벗어나지 못하는 진법.
이토록 강력한 위력을 지닌 진법은 좌자 역시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저 안에는 생문이 일절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 진법을 부숴서라도…….”
“지금 그 상태로 말입니까?”
“……!”
“멀쩡한 상태였다 해도 어려운 일입니다. 하물며 지금처럼 엉망이라면 말할 것도 없겠지요.”
“나는 분명히 말했다. 그녀를 여기 두고 갈 수 없다고.”
으르렁거리듯 씹어 뱉는 사종악을 향해 좌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나중을 기약하지요. 일단은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꽈앙!
저 멀리, 수채의 정문이 있는 쪽에서 요란한 폭음이 들려온 것도 그때였다.
그 순간 사종악이 좌자의 손을 뿌리쳤다.
이내 전각 쪽을 향해 걸음을 내디디려 했다.
퍼퍼퍽.
난데없이 날아든 지풍이 사종악의 전신 요혈을 두드린 건 거의 동시였다.
“큽.”
신음을 터트리며 축 늘어지는 사종악을 좌자가 둘러업었다.
“쯧. 어리석기는…….”
더 이상 실랑이할 틈이 없었다.
점차 빠르게 가까워진 폭음은 어느새 지척에 이르러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종악의 마혈과 혼혈을 동시에 점한 좌자가 황급히 그곳을 벗어났다.
* * *
얼어붙은 강물에 옴짝달싹 못 하고 갇힌 수로연맹 소속의 수적들은 힘 한번 제대로 써 보지 못하고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콰드득!
사방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수로연맹 측 선박이 송두리째 박살 났다.
어지럽게 비산하는 나뭇조각과 비처럼 쏟아지는 얼음 덩어리.
그 사이로 태연히 걸어 나온 범계위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벌써 끝이야?”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이러면 너무 시시한데……. 사종악인가 뭔가 하는 그놈은 왜 끝까지 코빼기도 안 비치는 거야?”
반면 단악선은 일대의 상황을 파악한 뒤 나직하게 한숨을 흘렸다.
다행히 수로연맹 토벌전은 아군의 압도적인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그래도 사방에 즐비한 시신과 장내를 떠도는 혈향은 언제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저 멀리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는 수적들과 그 뒤를 추격하는 광정회 소속 무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남은 것은 한 가지.
단악선이 광성채 방향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어? 단 의원, 같이 가!”
황급히 단악선의 뒤를 따라붙던 범계위가 와락 얼굴을 구겼다.
어느새 양옆에서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달리는 초악량과 한설화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거참! 졸졸 따라다니지 좀 마쇼.”
“신경 쓰지 마라. 너 따라가는 거 아니니까.”
“마녀 너도 그래! 무리해서 힘을 썼으면 좀 쉬라고!”
“고작 이 정도로 무리는 무슨.”
한마디도지지 않고 받아치는 두 사람이 범계위는 내심 못마땅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두 사람이 한편을 먹은 이상 그에 버금가는 조력자를 얻기 전까지는 가급적 직접적인 충돌은 피해야 했다.
아무리 막무가내인 그여도 결과가 정해진 싸움에 자존심을 앞세울 만큼 어리석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고민에 휩싸였다.
자신들과 버금가는 고수를 대체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더구나 그들이 순순히 자신의 편에 서리라 장담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잠깐?’
그러고 보니 한 사람이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가장 가까운 곳에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고수가 있었는데도 이를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 의원만큼은 내 편을 들어 주겠지?’
그래도 셋 중에서 단악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은 자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범계위였다.
그때였다.
“이젠 따라잡는 것도 쉽지가 않군.”
옆에서 날아든 초악량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던 범계위가 이어진 한설화의 말에 그 의미를 깨달았다.
“단 의원도 그동안 허송세월한 게 아니니까.”
그제야 범계위는 저 멀리 앞서가는 단악선과 거리가 조금밖에 줄어들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역시 단 의원을 꼬셔야 돼!’
그래서 반드시 이 두 사람의 콧대를 꺾어 주리라!
그런 내심을 알 리 없는 초악량과 한설화는 혼자 히죽거리는 범계위를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사이 단악선은 광성채 앞에 도착했다.
철판을 덧씌운 두꺼운 목책으로 방비하고 있던 다른 수채와 다르게 이곳 광성채만큼은 유독 규모와 준비가 대단했다.
깊게 판 해자도 존재했고, 심지어 바위를 켜켜이 쌓아 회반죽을 채워 넣은 높은 벽은 마치 작은 성을 방불케 했다.
쉬쉬쉬쉭.
성벽 위에서 화살 비가 쏟아진 것도 그때였다.
그러나 그 화살은 일행 근처에 이르기 무섭게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 것처럼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다.
어느새 자연스럽게 발현한 호신강기 때문이었다.
단악선이 조용히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사종악, 그자만큼은 반드시 찾아내야 해요.”
이 모든 일의 원흉인 그가 살아 있는 이상 이번 토벌은 승리해도 끝난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가 익힌 북명신공 자체가 강호에는 더없이 큰 위험이었다.
쏟아지는 화살 비 속에서 단악선이 말을 이어 갔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심하세요.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던 만큼 곳곳에 암기와 기관이 매설되어 있을 확률이 높아요. 예상치 못한 고수가 어딘가에 매복해 있을 가능성도 있고요.”
단악선의 말에 범계위가 씨익 웃었다.
모처럼 단악선에게 잘 보일 기회를 마다할 그가 아니었다.
“걱정 말고 내 뒤만 따라와, 단 의원.”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범계위가 눈앞의 벽을 힘껏 걷어찼다.
꽈앙!
마치 수십 구의 화포를 동시에 발사한 것처럼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그토록 두껍던 성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 사이로 몸을 던진 범계위는 쏟아지는 잔해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한 사람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사종악 어디 있냐?”
대놓고 개방한 범계위의 살기를 제대로 받아 낼 수 있는 사람은 강호 전체를 통틀어도 손에 꼽았다.
당연히 그 수적은 사색이 되어 황급히 대답했다.
“처, 천의님의 거처로 갔습니다.”
“거기가 어딘데?”
수적이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키자 범계위가 그쪽을 향해 곧장 일직선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쾅!
요란한 폭음과 함께 범계위가 달려가는 경로상에 아무것도 남아나지 않았다.
손에 걸리는 족족 모든 것을 박살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우악스런 모습에 한설화가 아미를 찡그렸다.
“무식한 건 치료 못 하나?”
단악선이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그건 병이 아니잖아요.”
만약 가능하다 해도 굳이 고치고 싶지도 않았다.
그마저도 범계위의 매력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범계위 덕분에 그들은 수월하게 천의가 머물고 있다는 전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음?”
일대를 에워싼 묘한 기류.
이를 눈치챈 단악선이 황급히 앞서 달리던 범계위를 향해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