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89)
신마의선-489화(489/500)
신마의선 (489)
태행산맥(太行山脈)과 여량산맥(呂梁山脈) 모두를 끼고 있는 산서성은 예로부터 험준한 지형으로 유명했다.
특히 오악(五岳) 중 북악이라 일컫는 항산(恆山)이 유명했는데, 실제로 이 지역에 가장 높은 산은 따로 있었다.
신비로운 풍광을 품고 있는 영산(靈山).
바로 오태산(五台山)이었다.
이곳은 오래전부터 문수보살이 현신했다 알려진 불문의 성지로, 청량산(清涼山)이라고도 불렸다.
도처에 자리 잡은 깊은 계곡과 절벽은 아직까지도 사람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태반이었다.
그런데 가뜩이나 지형이 사나워 웬만한 약초꾼도 학을 떼는 이곳을 힘겹게 오르는 이들이 있었다.
하나같이 죽립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열 명 남짓한 사내들이었다.
그들은 이따금 주위를 경계하듯 사위를 살피곤 했는데, 그때마다 죽립 아래로 드러나는 눈빛엔 삼엄하고 예리한 기세가 담겨 있었다.
일정 이상 수준의 무공을 지닌 무인이라는 증거였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험한 숲길을 아무렇지 않게 헤치며 나아갔다.
그러나 일행의 최후미에서 그들을 따르고 있는 마지막 인물의 상황은 그들과 달랐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비틀대는 그는 걸음을 떼는 것조차 몹시 버거워 보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헉. 헉.”
결국 얼마 못 가 사내가 멈춰 섰다.
연신 거친 숨을 몰아쉬던 그가 신경질적으로 죽립을 벗어 던졌다.
“대체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건가?”
선두에서 일행을 이끌고 있던 죽립인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봤다.
“이제 거의 다 왔소.”
“반 시진 전에도 그렇게 말했지. 사흘 전에도 그랬고.”
사종악의 눈빛은 잔뜩 악에 받쳐 있었다.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쉬지 않고 움직였지만 자신을 위해 안배했다는 장소는 도무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숨 쉴 때마다 폐부 깊숙한 곳에서 비릿한 피 내음이 느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된 내상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수준까지 이르렀다는 의미였다.
그런 사종악을 응시하던 좌자의 눈 위로 짜증 섞인 감정이 떠올랐다.
하지만 여전히 표정에서는 느긋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저 앞의 커다란 노송을 돌면 나타나는 협곡이 우리의 목적지요. 그곳에 도착하면 우리가 당신을 위해 준비한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오.”
좌자가 가리킨 노송.
그곳까지는 고작 백 장 남짓한 거리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제대로 준비해 두었어야 할 것이다. 만약 그 안배라는 것이 탐탁지 않을 경우, 나를 헛걸음하게 만든 죄를 물어 당신의 목부터 딸 것이니까.”
살기를 담아 으르렁대는 사종악의 협박에 좌자를 수행하던 사내들의 눈에서 새파란 한광이 튀어 올랐다.
그런 수하들을 제지하며 좌자가 피식 웃었다.
“그 몸으로?”
“네놈의 갸날픈 모가지 하나 꺾을 힘은 남아 있다.”
“그렇다면 그 힘으로 저곳까지 마저 오르시오. 그것만이 당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니까.”
자신만만한 좌자의 말에 사종악이 으스러져라 이를 악물었다.
분명 저토록 호언장담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무엇보다 이곳까지 와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결국 사종악은 다시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좌자 일행을 앞질러 노송 앞에 이르자 교묘하게 감추어진 협곡이 모습을 드러냈다.
입구가 비스듬히 교차된 데다 노송이 절묘하게 입구를 가리고 있어 가까이 접근하지 않고서는 존재 유무를 알 수조차 없는 비밀스러운 장소였다.
그 협곡에 몸을 던진 사종악은 지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오십 여장 정도 걸었을까.
협곡 끝에 위치한 분지 형태의 넓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놀랍게도 그 안에는 제법 잘 지어진 전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한데 정작 그보다 놀라운 건 따로 있었다.
“저자는?”
전각 중앙에 쇠사슬로 묶여 있는 한 사람.
그를 알아본 사종악의 눈에 기광이 번뜩였다.
어느새 사종악과 어깨를 나란히 한 좌자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곳 오태산은 중원 불문의 성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서장의 라마승들 역시 이곳을 자신들의 성지로 여기고 있소. 그만큼 오랜 세월 중원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었던 곳이기도 하고.”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사종악은 이내 그가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지역이 조정에 복속된 것은 대명이 건국되고 나서였소.”
이곳 섬서는 만리장성이 존재하는 지역인 만큼 북방의 경계 지역 중 하나였다.
춘추 전국 시대에는 진(晉)나라의 중심이 되는 지역이었고, 진나라가 무너진 이후에는 온갖 효웅들과 이민족이 활동하던 곳이었다.
“조정의 이목이 이곳까지 미치기 어려웠기에 녹림은 오래전부터 이곳을 자신들의 근거지로 삼아 왔었지.”
그때였다.
“크윽.”
사지가 구속되어 있던 사내가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커다란 쇠못에 의해 비파골(琵琶骨)이 뚫려 있었고, 손발을 비롯한 무릎에도 두꺼운 못이 박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도 사내가 히죽 웃었다.
“아니, 이게 누구신가? 신마의선에게 패배한 뒤 그대로 달아나 종적을 감췄다는 번강룡, 사 맹주 아니신가?”
“악호군…….”
놀랍게도 그는 한때 녹림을 이끌었던 총표파자, 악호군이었다.
산적과 수적.
나름 비슷한 동종 업계에 오래 종사했던 만큼 두 사람은 서로 안면이 있었다.
“꼴이 말이 아니로군?”
행색이 엉망인 사종악을 위아래로 살피던 악호군이 비릿한 웃음을 말아 올렸다.
“하긴 강물이 건방지게 용왕묘를 넘봤으니 당연한 결과지.”
“뭐?”
그 말이 거슬렸던 것일까.
눈썹을 꿈틀하는 사종악을 악호군이 한껏 비웃었다.
“몰랐나? 오래전부터 중원 무림은 한 사람의 손아귀에 떨어진 지 오래였다. 단지 본인만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뿐.”
사종악은 악호군이 언급한 한 사람이 누군지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그 생각은 빗나가지 않았다.
“단악선이라는 그 아이……. 아니, 이제는 아이라 부를 수도 없겠군.”
뭐가 그리 재밌는지 피식대던 악호군이 웃음을 거두며 사종악을 응시했다.
“어쨌든 신마의선의 한마디면 정도 무림을 지탱하던 구파일방이 너 나 할 것 없이 달려와 기꺼이 손을 보탠다. 무림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명숙들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야. 어디 그뿐인가? 능소밀이라는 자를 앞세워 황실마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지. 신마상단과 신마의가를 통해 중원의 상권과 행림을 장악한 건 말해 봐야 입만 아프고 말이야.”
“…….”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사파의 고수들도 마찬가지. 부끄럽지만 우리 녹림 또한 그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 심지어 장성 너머의 야만인들도 피를 나눈 형제처럼 그자를 따르지. 이 정도면 사실상 무림의 지배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나?”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씹어뱉듯 뇌까린 사종악의 말에 악호군이 키득거렸다.
“이제 와서 아무리 발버둥 쳐 봐야 소용없다는 뜻이다. 무슨 수를 써도 그는 네가 감당할 수 없는 상대야.”
“그건 네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과연 그럴까?”
말없이 악호군을 노려보던 사종악이 고개를 돌려 좌자를 바라봤다.
“당신이 준비한 안배, 마음에 드는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종악이 손을 뻗어 악호군의 머리를 덥석 움켜쥐었다.
사종악의 눈에서 섬뜩하기 짝이 없는 핏빛 안광이 떠오른 건 그 직후였다.
“크헉!”
악호군의 입에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의 얼굴 위로 순식간에 퍼런 핏줄이 불거졌다.
실핏줄이 터져 온통 붉어진 두 눈 역시 마찬가지.
한데 생명의 기운이 급격히 빠져나가는 와중에도 악호군은 웃고 있었다.
“크흐흐. 너를 보니 한 사람이 떠오르는구나.”
“그게 누구지?”
사종악의 반문에 악호군이 한 사람의 이름을 언급했다.
“노단양.”
“칠절마군?”
한때 악호군과 더불어 십대악인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마두.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도 악호군은 끝까지 사종악을 조롱했다.
“곧 만나게 될 거야. 우리 같은 놈들이 죽어 갈 곳은 뻔하니까. 나 역시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으마.”
사종악은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악호군으로부터 흡수한 진원진기를 바탕으로 뒤틀린 기맥을 바로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악호군이 비록 천하오절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나 그 역시 오랜 세월 녹림의 지배자로 군림하던 고수.
구파일방의 장문인에 견줄 만한 내공을 지니고 있었다.
이윽고 내상을 모두 다스린 사종악은 어느새 싸늘한 시신이 되어 버린 악호군을 무표정한 얼굴로 내려다보았다.
예전처럼 형형한 안광을 뿜어내는 사종악을 향해 좌자가 다가선 것도 그때였다.
“한동안 이곳에서 보중하는 것이 좋겠소.”
“무작정 기다리라는 것인가?”
좌자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오. 우리 또한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니까. 곧 다음 사냥감을 물색해 드리리다.”
앞서 그가 준비했던 제물이 흡족했던 것일까.
사종악이 희번덕거리는 눈빛을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기대하지.”
* * *
범계위 가족이 신마곡을 방문하고 며칠이 흘렀다.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범려화는 신마곡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늘 바다를 접하고 있던 해남도와는 확연히 다른 풍경.
그리고 이제껏 이야기로만 접했던 사람들과의 만남은 한참 피어오르는 어린 소녀의 감성에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선사한 것이었다.
그렇게 한껏 들떠 시간 가는 줄도 모른 채 즐거운 나날을 만끽하던 어느 날.
자신을 안고 머리를 땋아 주던 엄마 품에서 설핏 선잠에 빠져 있던 범려화가 갑자기 눈을 떴다.
그러곤 멍하니 폭포를 바라보다 불쑥 입을 열었다.
“엄마.”
“응?”
“나 태어나길 잘한 거 같아요.”
뜬금없는 말에 의아해하던 벽화령은 이어진 딸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그렇잖아요. 태어나고 보니 외할아버지는 해남검파의 문주님이고, 아빠는 천하에서 인정하는 고수인 망산초자래요. 게다가 엄마는 해남검파의 부문주님이고요.”
범려화가 말을 이어 갔다.
“그런데 거기서 끝난 게 아니더라고요. 알고 보니 백부님은 천하오절 중 한 분이신 혈수존자고, 백모님은 빙옥선자래요. 게다가 오라버니는 신마의선이고요. 아, 참! 그러고 보니 천의라는 분도 계시네요. 뭐, 우리 새언니가 될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요.”
뭐가 그리 신났는지 쉬지 않고 재잘대며 말을 쏟아 내는 딸의 모습에 벽화령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엄마도 그래.”
“네?”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너를 낳은 건 정말 탁월한 결정이었지. 엄마 인생에서 두 번째로 잘한 일이란다.”
“어? 왜 제가 두 번째예요? 그럼 첫 번째는요?”
“네 아빠를 엄마 걸로 만든 것이지.”
“피이.”
토라진 얼굴로 입술을 삐죽이던 것도 잠시.
범려화가 배시시 웃으며 벽화령의 얼굴에 뺨을 비벼 댔다.
“어쨌든 절 낳아 주셔서 감사해요.”
벽화령은 새삼 사랑스러운 딸을 세게 꼬옥 껴안았다.
“헤헤.”
그렇게 엄마의 품에서 온기를 만끽하던 범려화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오늘도 저 두 분은 여전하시네요.”
딸의 시선을 좇아 고개를 돌린 벽화령은 한창 토론에 열을 올리고 있는 단악선과 탁여상의 모습에 조용히 미소를 베어 물었다.
“방해하면 안 되겠지? 두 분은 우리 려화를 위해 애쓰고 계시는 중이니까.”
“저를 위해서요?”
호기심이 동했는지 범려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살짝 가서 무슨 말씀을 나누시는지 들어 봐도 되나요? 절대 방해는 하지 않을게요. 약속해요.”
벽화령이 고개를 끄덕이자 범려화가 신이 나 그쪽으로 달려갔다.
그러다 두 사람과 가까워지자 발소리를 죽여 사뿐사뿐 다가섰다.
그런 범려화를 발견한 단악선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탁여상과의 대화는 계속 이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