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9)
신마의선-49화(49/500)
신마의선 (49)
이의당의 당주, 소적산은 수하의 보고에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뭐? 다시 말해 봐. 놈들이 어쨌다고?”
“흑룡회 놈들이 포목점 왕 씨의 딸을 잡아 갔습니다.”
“그 사람 보름 전에 소리 소문 없이 실종된 사람 아니야? 아니 그 전에 딸은 왜 잡아 간 건데?”
“왕 씨의 빚 대신 끌려갔다고 합니다.”
“무슨 소리야? 그 사람이 흑룡회에 졌던 빚은 우리가 탕감해 줬잖아!”
“놈들이 왕 씨의 친필 수결이 적혀 있는 채무 확인서를 내밀었다고 합니다.”
“언제 작성한 건데?”
“나흘 전에 작성된 거라고 합니다.”
보름 전에 실종된 사람이 나흘 전에 돈을 빌렸다?
딱 봐도 수상한 냄새가 풍겼다.
“이 미친 새끼들이…….”
소적산은 흑룡회의 행태에 이를 갈았다.
놈들이 빚 대신 데려간 여자를 매음굴에 팔아넘긴다는 사실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무엇보다 왕 씨의 딸은 아직 세상 물정도 모르는 어린애였다.
“그걸 보고만 있었단 말이야?”
소적산의 질책에 보고하던 수하가 입술을 깨물었다.
“막으려 했으나 중과부적이었습니다. 만석이는 사경을 헤매고 있고, 다른 다섯 명도 부상이 가볍지 않습니다.”
“빌어먹을!”
소적산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회주였던 가휘섭이 사라진 데다, 무서운 기세로 세력을 확장하는 이의당에 밀려 입지가 좁아진 흑룡회였다.
이에 위기를 느낀 놈들은 먼 곳에 있는 가휘섭의 아우에게 연락해 이곳으로 불러들였다.
그런데 그 가휘건이라는 놈의 내력이 어마어마했다.
흑목애 일대에서 공포로 군림하고 있는 고목신승(古木神僧).
그 늙은 괴물에게 무공을 사사한 유일한 제자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놈이 새로운 흑룡회주로 추대된 이후 이의당이 애써 근절시켰던 매음굴과 염왕채가 다시 생겨나기 시작했다.
“남은 애들 모아라.”
일전을 각오한 소적산의 표정에 수하가 황급히 만류했다.
“지금은 참으셔야 합니다, 대당가!”
당시의 상황을 현장에서 직접 지켜본 그였다.
소적산의 무공이 자신들보다 뛰어난 건 사실이었지만 새로운 흑룡회주의 무공은 아예 차원을 달리했다.
그러나 소적산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이의당의 뜻이 뭐냐?”
머뭇거리는 수하를 향해 수적산이 일갈했다.
“우리 이의당의 기치가 뭐냐고!”
“형제들과 의리를 지키고 상인들과 의리를 지킨다입니다.”
소적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우리 이의당이다. 상인들이 없는 형편에 우리에게 보호비를 내는 이유고.”
비록 뒷골목의 무뢰배들이라도 지켜야 할 도리가 있는 법.
한번 신뢰를 잃은 순의방은 더 이상 그 자리를 지킬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대로라면 그분을 뵐 면목이 없다.’
아무리 놈이 악명 높은 고목신승의 전인이라 할지라도 범계위가 훨씬 더 무서웠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
그렇게 전의를 불태우고 있던 그때.
“그들이 데려갔다는 왕 씨의 딸이 몇 살인가?”
“……!”
소적산이 놀란 눈으로 소리가 들린 입구를 보았다.
언제부터였는지 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사십 대 중반쯤 되었을까.
날카로운 눈매와 달리 어딘가 해탈한 듯,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닌 사내였다.
경계하며 무기를 잡아 가는 소적산의 모습에 사내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긴장할 것 없네. 나를 보내신 것은 그분이시니.”
“그분?”
잠시 의아해하던 소적산이 이내 황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감히 몰라뵙고.”
“괜찮네. 하던 이야기나 계속하지. 그 아이가 몇 살이라고?”
소적산이 사무심을 힐끔거렸다.
비록 무공은 그저 그랬지만 사람 보는 눈만큼은 누구보다 뛰어나다 자부하는 그였다.
그런 그가 보기에도 상대는 확실히 범상치 않은 느낌이 있었다.
“열서너 살 정도 되었을 겁니다.”
소적산의 대답에 사무심의 얼굴에서 미소가 걷혔다.
그 순간 소적산은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서늘한 기운이 등줄기를 훑고 갈 정도로 강렬한 살기를 마주한 것이다.
“그자들에게 안내해 주게.”
소적산이 즉시 사무심을 한 장소로 이끌었다.
마을 외곽에 위치한 장원이었다.
낙향한 관리가 머물렀던 장원이었으나 지금은 놈들의 소굴이 되어 있는 곳이었다.
“이곳입니다.”
소적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사무심이 장원의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곤 그대로 대문을 걷어찼다.
꽈앙!
두꺼운 대문이 경첩 채 뜯겨나갔다.
사무심은 부서진 대문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마치 산책을 나온 것처럼 여유로운 태도였다.
놀라서 뛰쳐나온 흑룡회의 떨거지들 뒤쪽으로 남다른 존재감을 지닌 청년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사백안.
거기에 기괴하게 느껴질 만큼 비쩍 마르고 창백한 얼굴을 지닌 청년이었다.
소적산을 발견한 가휘건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렇지 않아도 찾고 있었는데, 귀찮은 일을 덜어 주어 고맙군.”
그리곤 사무심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이 정도 고수를 어떻게 초빙했지?”
소적산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그의 시선은 사무심에게 고정된 채 날카롭게 번뜩이고 있었다.
반면 사무심은 사무심대로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예상을 넘어선 가휘건의 기도 때문이었다.
무위 뒷골목을 지배하는 일개 흑도 방파에는 어울리지 않는 무공 수준이었다.
신승을 자처하는 흑목애의 늙은 귀신이 제자 하나는 공들여 키운 모양이었다.
사무심이 조용히 웃었다.
그런데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무엇인지 아나?”
“……?”
“바로 아이를 건드리는 짓이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무심이 신형을 날렸다.
그 속도와 기세에 놀란 가휘건이 황급히 뒷짐을 지고 있던 손을 풀었다.
그러자 길게 늘어트린 그의 양손 끝에 시퍼런 예기를 머금은 강조(强爪)가 모습을 드러냈다.
카앙!
새파란 불꽃이 튀어 오르며 두 사람이 정확히 세 걸음씩 물러섰다.
상대의 기량을 가늠한 사무심이 눈살을 찌푸렸다.
나이에 비해 놈의 성취가 대단했기 때문이다.
당장 백대고수 안에 포함시켜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단악선을 만나기 전이었다면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을 터.
반면 가휘건은 그 나름대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뒤늦게 사무심의 손에 들린 무기를 파악한 것이다.
두 자 길이의 시커먼 철척(鐵尺)을 성명병기로 쓰는 사람은 강호에 흔치 않았다.
“수전귀야! 네놈이 그 돈 귀신이구나!”
가휘건은 당황했다.
사무심의 무위가 그가 알던 바와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무심은 상대가 흔들린 틈을 놓치지 않았다.
상대는 입을 여느라 호흡과 호흡의 경계가 다소 느슨해진 상태.
재차 거리를 좁힌 사무심의 철척이 그 틈을 단숨에 비집고 들어갔다.
동시에 감추고 있던 기파를 한꺼번에 개방했다.
서억.
섬뜩한 소리와 함께 가휘섭의 강조가 손가락과 같이 한꺼번에 잘려 나갔다.
“……!”
경악에 휩싸인 가휘섭과 더욱 바짝 거리를 좁힌 사무심이 손을 뻗어 그대로 가휘건의 목덜미를 틀어쥐었다.
“커헉!”
“왕 씨는 살아 있나?”
가휘건은 일순 말문이 막혔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기가 막혀 방금 사무심이 언급한 사람이 누구인지 떠올리지 못한 것이다.
그 순간 겨드랑이 부근이 서늘해졌다.
뒤늦게 어깨 아래로 파고든 철척을 발견한 가휘건이 입을 열려는 순간.
쓰컥.
자욱한 피 보라와 함께 가휘건의 팔이 잘려 나갔다.
주인을 잃고 나뒹구는 팔을 멍하니 바라보던 가휘건이 뒤늦게 비명을 질렀다.
“끄아악! 네놈이! 감히 네놈 따위가……!”
“그건 내가 원한 대답이 아니다.”
반대쪽 겨드랑이를 파고든 철척의 한기에 가휘건이 황급히 외쳤다.
“그 계집! 그자의 딸은 아직 살아 있다!”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명백했다.
왕 씨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사무심은 조용히 웃었다.
“자, 잠깐!”
서컥!
“으아악!”
남아 있던 다른 한 팔마저 잃은 가휘건이 피를 뿌리며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서늘한 사무심의 눈빛은 무심하기만 했다.
점차 목을 졸라 오는 손아귀에 가뜩이나 창백하던 가휘건의 낯빛이 백지장처럼 변해 갔다.
“커컥! 돈! 돈을 주마!”
강호에 떠도는 소문대로라면 결코 거절하지 못할 터.
그러나 가휘건의 생각은 빗나갔다.
일말의 흔들림도 없는 살의가 온몸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가 들어 알고 있던 수전귀야가 아니었다.
“감히……. 이런 짓을 하고도 네놈이 무사할 줄 아느냐?”
가휘섭의 협박에 사무심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흑목애의 노괴가 아무리 무섭다고 하나 초악량과 범계위, 한설화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무심이 손아귀에 힘을 넣었다.
“끄어…….”
길게 혀를 빼문 가휘건의 눈에서 생명의 기운이 사라졌다.
그렇게 가휘건은 선 채로 목이 졸려 죽었다.
그가 지닌 배경과 신분에 비해 너무도 허무한 죽음이었다.
사색이 된 흑룡회 놈들을 둘러보며 사무심이 말했다.
“혹시 이 중에 다음 흑룡회주로 내정된 자가 있나? 있다면 나서게. 다시 방문하는 건 번거로우니 이 자리서 해결하지.”
고수인 가휘건이 맥없이 죽어 버린 이상 흑룡회의 떨거지들은 겁을 집어먹고 우왕좌왕했다.
난데없이 들이닥친 재앙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을 향해 사무심이 선언했다.
“다음 흑룡회주도 내 손에 죽을 것이네. 그다음 회주도 마찬가지고.”
사무심의 눈치를 보던 흑룡회의 잔당들이 슬금슬금 물러섰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다.
“제안할 것이 있네.”
단둘이 남게 되자 사무심이 소적산을 향해 부드럽게 웃었다.
그러나 소적산은 한시도 방심할 수 없었다.
가휘건을 끔찍하게 죽였을 때도 저렇게 해탈한 듯 웃었기 때문이다.
뒷산의 호랑이나 눈앞의 이리나, 무서운 건 마찬가지.
범계위도 무서웠지만 이자도 그에 못지않은 괴물이었다.
“무슨 명령이든 듣겠습니다.”
“명령이 아니니 싫으면 거절해도 좋네. 다른 사람을 찾아볼 것이니.”
사무심이 소적산을 찾아온 진짜 이유를 언급했다.
“서방 무역을 하는 상단을 만들려고 하네. 자네들이 원한다면 그 일을 맡기고 싶군.”
“상단…… 말입니까?”
“보아하니 자네는 제법 신뢰를 아는 사람 같더군. 시간을 줄 터이니 잘 생각해 보게.”
* * *
그날 오후.
단악선과 한설화, 범계위가 초악량의 모옥에 모였다.
초악량은 침상에 가부좌를 튼 채 눈을 감고 있었고, 그 맞은편에 단악선이 자리를 잡았는데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치료가 큰 고비를 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위화요법을 전개하는 범계위와 한설화 역시 마찬가지.
그 어느 때보다 진기의 조절에 집중하며 단악선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단악선이 입을 열었다.
“이제 진기를 거두세요.”
초악량의 맥문을 나누어 쥐고 있던 범계위가 한설화가 손을 놓고 물러섰다. 단악선이 초악량의 아랫배, 기해혈 부근의 침을 조심스럽게 뽑았다.
그러자 초악량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 순간 그의 두 눈에서 강렬한 안광이 폭사되며 전신에서는 안개 같은 서기가 뭉클거리며 흘러내렸다.
초악량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 보는 진기의 파도였다.
온몸의 기맥을 따라 힘차게 내달리던 진기가 이내 단전에 자리 잡는 것을 확인한 초악량이 격동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고생하셨어요.”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친 단악선이 초악량을 향해 미소를 건넸다.
“이제 위험한 고비는 넘겼어요.”
“이제 전처럼 내공을 써도 된다는 뜻이냐?”
초악량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흐트러졌던 기맥은 모두 제자리를 찾았어요.”
“고맙구나.”
초악량이 감격 어린 눈으로 단악선을 보았다.
그리고 한설화와 범계위에게도 감사의 눈빛을 보냈다.
툴툴대면서도 자신을 위해 한껏 애를 써 준 그들의 노고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초악량이 눈을 감고 짧게 진기를 운용해 단전 안에 자리 잡은 내공 수위를 확인했다.
그리고 이내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겨우 삼 할에 불과한데 이렇게나 든든하다니!’
잃고 나서야 진정 소중한 것을 깨닫는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비록 전성기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내공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초악량은 세상을 전부 다 얻은 것만 같았다. 운공을 통해 아직 녹여 내지 못한 영약의 기운을 흡수한다면 빠르게 예전 내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초악량이 모옥을 나섰다.
내공을 회복했으니 무공도 확인하고 싶어진 것이다.
신마곡 중앙으로 걸어간 초악량이 천천히 진기를 끌어 올렸다.
그렇게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그가 힘껏 진각을 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