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90)
신마의선-490화(490/500)
신마의선 (490)
“운동 신경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풍부혈(风府穴)도 간과할 수는 없겠죠. 다만 양백혈(陽百穴)과 동시에 자극할 방법이 있다면 더 좋겠는데…….”
탁여상이 말끝을 흐리자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담경(膽經)에 속하고 양유맥(陽維脈)과 만나는 회혈(會穴)이니까 침으로 충분히 보완할 수 있어요.”
“그 전에 아직은 내기가 약하니 기경팔맥을 섬세하게 받쳐 줄 필요가 있어요. 예를 들어 이곳 혈 자리에 뜸을 뜨는 방식으로요.”
“열기를 이용해 진기의 흐름을 도와주는 방식인가요?”
“고전적인 방법이지만 그래도 일장일단이 있죠. 효율 면에서 보자면 효과가 다소 더딜지 모르나 그만큼 안정적이니까요.”
탁여상의 제안에 잠시 곰곰이 생각을 거듭하던 단악선이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네요. 다만 어린아이는 심장이 빠르게 뛰니 내기의 흐름을 그 속도에 맞춰 운용할 필요가 있겠어요.”
“외부에서의 보조 수단으로 진법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어요.”
“상당히 재미있는 발상이네요.”
의술은 기본적으로 오행의 흐름에 기반하기 때문에 아주 허무맹랑한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단악선이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탁여상을 바라봤다.
귀수의 진전을 이은 그녀는 확실히 뛰어난 의원이었다.
같은 치료법이라 해도 그녀만이 지닌 독특한 비전과 해석 방식은 새로운 시점을 제공하는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그래서 단악선은 이 시간이 무척이나 즐거웠다.
의술이라는 한 가지 주제를 놓고 이렇게 많은 대화를 이어 갈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지의 기록에 따르면…….”
단악선이 한참 동안 설명을 이어 가고.
“아! 저희 조사님께서는 그 부분에 대해 이런 식으로 해석하셨어요.”
그 말을 다시 탁여상이 받았다.
그렇게 쉬지 않고 이야기를 주고받던 두 사람이 숨을 돌린 것은 반 시진이 지나고 나서였다.
그사이 범려화는 기다리다 지쳤는지 따듯한 볕 아래서 어느새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단악선이 범려화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새근새근 잠든 아이의 평화로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길 잠시.
그런 단악선에게 초악량과 한설화가 다가왔다.
“이야기는 마무리 지은 것이냐?”
“네. 대략적인 방향과 가닥은 잡혔어요.”
두 사람이 몇 날 며칠 머리를 맞대고 연구를 거듭한 결과였다.
단악선의 설명을 들은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단순한 벌모세수가 아니라는 거구나?”
“진법을 통해 오행의 기운과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몸이 기억하도록 하는 거죠. 연구한 대로라면 개정대법 자체의 효과를 훨씬 뛰어넘을 거예요.”
단악선과 탁여상이 매진한 연구는 바로 범려화를 위한 벌모세수 때문이었다.
제갈세가의 가주인 제갈산.
그의 아들에게도 해 줬는데 범려화도 당연히 그 대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다만 문제라면…….”
단악선이 잠시 말끝을 흐렸다.
아무리 연구가 성공적이라 해도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
실제로 시연해 검증을 거친 것이 아니기에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쟤로 연습해 보면 되겠네.”
한설화의 시선이 향한 곳으로 고개를 돌린 초악량이 슬쩍 웃음을 머금었다.
마침 적당한 인물이 어슬렁거리며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응? 뭘 연습해?”
의아해하던 범계위가 초악량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자기 자식 일인데 아비가 나 몰라라 해서 되나. 기꺼이 그 한 몸 희생해라.”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니까?”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어차피 범 아저씨 수준의 고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니까요.”
그때였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다 그 이야기를 들은 사무심이 선뜻 자원하고 나섰다.
“그럼 제가 해 보겠습니다.”
“괜찮으시겠어요?”
“안 괜찮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저는 곡주님을 믿습니다.”
사실 그렇게 큰 위험이나 부작용을 동반하지 않는 일이기에 단악선은 사무심의 호의를 선뜻 받아들였다.
잠시 후.
사무심 주변으로 천의가 진법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벌모세수를 목적으로 단악선과 상의해 고안한 특별한 진법이었다.
한 시진에 걸쳐 모든 준비를 마치고 사무심이 그 안에 들어섰다.
“오! 이곳 신마곡의 진법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뭔가 다른 느낌이군요.”
주변의 달라진 환경에 사무심이 탄성을 흘리며 신기한 듯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길어도 반 시진 남짓일 테니까요.”
고개를 끄덕인 사무심이 진법 중앙에 좌정하자 단악선이 등 쪽 풍문혈에 손바닥을 갖다 대고 위화신공을 끌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탁여상은 사무심의 몇몇 혈 자리에 침을 놓고 뜸을 올렸다.
그러기를 잠시.
“어?”
사무심의 혈도에 침을 놓던 탁여상이 깜짝 놀라 단악선을 바라봤다.
“뭐죠? 이 말도 안 되는 잠력(潛力)은?”
사무심의 단전 깊이 갈무리되어 있는 내력.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내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던 탁여상은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다시 한 번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오래전에 복용했던 공청석유의 영향일 거예요.”
“방금 공청석유라고 했나요?”
하늘이 허락하지 않고서는 접할 수 없다는 천고의 영약.
탁여상조차 말로만 들어 과연 실재하는지 의심할 정도로 귀한 영약이었다.
그러나 단악선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에는 육신이 그 공능을 미처 담아 내지 못했기에 일부만 치료에 사용되고 나머지는 단전 깊이 잠들어 있었던 모양이에요.”
단악선이 사무심을 향해 미소를 건넸다.
“잘됐네요. 이 기회에 공청석유의 나머지 기운도 온전히 사 총관님의 내공으로 녹여 내도록 하죠.”
사무심은 무한한 신뢰가 담긴 눈빛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윽고 단악선이 본격적으로 운공을 시작했다.
위화신공의 상서로운 기운이 일대를 집어삼킨 건 그 직후였다.
사무심 역시 어느덧 눈을 감은 채 몸 안을 내달리는 진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후.”
가볍게 숨을 내뱉으며 단악선이 물러났다.
그리고 사무심이 천천히 눈을 떴다.
“어때요?”
단악선의 물음에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한 사무심이 가만히 앞으로 손을 뻗었다.
쩡.
오십 장 밖에 위치해 있던 바위에 선명한 장인(掌印)이 새겨졌다.
이후 사무심은 옆구리에 매고 있던 철척을 꺼내 진기를 주입했다.
우우웅.
철적이 진동하며 나직한 울음을 토하더니 그 위로 강기에 버금가는 선명한 검기가 너울거리며 그 위력을 드러냈다.
“축하해요. 대공을 이루셨네요.”
단악선이 건넨 축하에 사무심이 감격 어린 눈빛으로 고개를 숙였다.
“모든 것이 곡주님의 은혜입니다.”
사무심은 탁여상에게도 예의를 갖췄다.
“탁 의원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미소를 지으며 다가선 탁여상이 사무심을 진맥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달리 특별한 부작용도 없어요. 성공이에요.”
목소리며 표정이 어딘가 상당히 들떠 있는 그녀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단악선과 합심해 처음으로 이뤄 낸 쾌거였기 때문이다.
“그럼 이걸로 모든 준비가 끝났군요.”
단악선이 고개를 돌려 범계위의 손을 잡은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범려화와 시선을 마주했다.
“이젠 우리 려화 차례구나.”
이미 한참 전에 잠에서 깬 범려화는 앞서 진행된 벌모세수 과정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서 단악선은 내심 걱정이 살짝 앞섰다.
아무리 부모님이 무공 고수라 해도 범려화는 어디까지나 어린아이.
벌모세수 과정 자체를 두려워할 가능성도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외로 범려화는 환호성을 터트리며 재빨리 진법 안으로 뛰어들었다.
“것 봐요, 엄마. 제 말이 맞죠?”
“응?”
영문 모를 말에 의아해하던 것도 잠시.
이어진 딸의 말에 벽화령이 웃음을 터트렸다.
“제가 그랬죠? 태어나길 정말 잘했다고.”
반 시진에 걸친 벌모세수를 마친 범려화는 꽤나 지쳤는지 순식간에 다시 잠에 빠졌다.
딸을 품에 안은 범계위가 조심스럽게 범려화의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환하게 웃었다.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것을 분명하게 느낀 것이다.
“단 의원! 고마워!”
“고맙긴요. 우린 가족인데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에요.”
고개를 끄덕인 범계위가 이번에는 탁여상을 향해 씨익 웃었다.
“천의도 고마워. 그동안 속으로 욕해서 미안해.”
“그러셨어요?”
머쓱하게 웃는 범계위를 향해 탁여상도 마주 미소를 건넸다.
“지은 죄가 있으니 그 업도 당연히 감내해야죠. 인사는 감사히 받을게요.”
“힘내, 천의. 이젠 나도 응원할게.”
“응원이요? 대체 뭘…….”
고개를 갸웃하던 탁여상이 이내 무언가를 깨닫곤 얼굴이 화악 붉어졌다.
그런 그녀를 향해 의미심장하게 웃던 범계위가 문득 생각난 듯 단악선을 불렀다.
“아, 참! 단 의원!”
“네?”
“우리 둘째도 똑같이 해 줄 거야?”
단악선이 깜짝 놀라 벽화령에게 물었다.
“둘째가 생기신 건가요?”
벽화령이 어이없단 눈빛을 흘리더니 범계위를 지그시 쏘아봤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죠.”
“……?”
“그동안 저이가 좀 바빴어요?”
“아!”
단악선이 어색하게 웃었다.
“뭐가 문제야? 지금부터 노력하면 되지! 안 그래?”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가 아니라 셋째, 아니 열 명이라도 해 드려야죠.”
“흐흐, 고마워 단 의원. 그래서 말인데…….”
“……?”
“독계산 남는 거 좀 있어?”
짜악.
범계위의 등짝에 불이 났다.
벽화령의 손바닥이 작렬한 것이다.
“가가!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욧!”
“아니, 내 여자. 그렇잖아? 별을 따려면 일단 하늘을 봐야 하고, 하늘을 보려면 독계산이…….”
“그게 지금 남들 앞에서 할 소리예요?”
옥신각신하는 그들 부부를 뒤로한 채 단악선이 초악량과 한설화를 바라봤다.
“두 분도 마찬가지예요.”
“응? 뭐가 말이냐?”
무심코 반문하던 초악량이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무안한 듯 헛기침을 터트렸다.
“두 분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난다면 그 아이도 제가 책임질게요.”
“커험. 그 무슨…….”
당황한 나머지 그답지 않게 얼굴까지 붉히던 초악량은 빤히 자신을 응시하는 한설화의 눈빛에 재차 당혹감을 드러냈다.
“한 누이?”
한설화가 단악선을 손짓해 부르더니 조용히 속삭였다.
“남는 것이 있다면 내게도 좀 주겠니?”
척하면 척.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그 바람에 민망해진 초악량은 두 사람의 대화를 애써 못 들은 척, 먼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그날 저녁.
한설화는 오랜만에 단악선의 진맥을 받았다.
“이제 더 이상 제가 달리 치료할 건 없네요.”
“고맙구나. 그동안 애썼다.”
미소 짓던 한설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단악선이 조용히 웃었다.
“새치네요?”
한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근래에 한두 가닥씩 생기기 시작하더구나.”
“역시 마음의 문제였네요.”
“……?”
“오래전에 몸은 분명히 완치되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머니의 몸은 세월의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았죠.”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한설화도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얼어 있던 마음이 녹으니 멈췄던 시간도 다시 흐르기 시작했어요. 역시 의술로는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나 봐요.”
단악선이 손을 뻗어 한설화의 손을 맞잡았다.
“두 분이 행복해지셔서 정말 다행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