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92)
신마의선-492화(492/500)
신마의선 (492)
능소밀과 동창 사이의 불협화음은 일찍이 예견된 것.
그래서 당연히 동집사창을 먼저 털 줄 알았는데 금의위로 칼을 돌린 것은 확실히 예상 밖이었다.
대비를 못 한 금의위 지휘사는 지금쯤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 터.
황제의 눈치를 살피던 근시 환관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과연 능 도어사의 수완은 실로 남다른 곳이 있사옵니다.”
“그리 보이더냐?”
황제의 어두운 표정에 근시환관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황제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게 그만한 권한을 쥐여 준 결정이 과연 잘한 일인지 모르겠구나.”
깊어지는 황제의 시름.
이를 헤아리지 못한 주위의 신하들은 그저 당황한 시선을 주고받을 뿐이었다.
* * *
같은 시각.
금의위는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다.
난데없이 들이닥친 능소밀과 도찰원 소속 관원들이 기밀로 분류한 서류를 포함해 그들이 보관하고 있던 모든 자료를 낱낱이 꺼내 확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동창과 더불어 황실 내에서 가장 큰 무력 집단인 그들이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금의위의 제기들이 서슬 퍼런 살기를 흘리며 도찰원 소속 관원들의 제압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일대를 쩌렁하게 뒤흔든 능소밀의 외침에 안색이 파랗게 변해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황제 폐하의 칙명(勅命)이다!”
“……!”
“감히 폐하의 권위에 도전해 역도를 자처하는 자 누구인가? 너냐? 아니면 너?”
황제의 어인이 찍힌 금패로 누군가를 가리킬 때마다 상대는 움찔하며 물러서기 급급했다.
아무리 금의위의 위세가 대단하다 한들 결국 그 권력은 황제에게서 비롯된 것.
결국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하고 금의위가 보관하고 있던 문서들을 모조리 내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호랑이와 같은 안광을 흘리며 한 사람이 장내로 들어섰다.
타고난 무관답게 태산 같은 기도를 지닌 노장군.
금의위의 수장인 지휘사직을 도맡고 있던 표기장군(驃騎將軍)이 바로 그였다.
“능 도어사! 대체 이게 무슨 횡포란 말이오?”
창노한 음성에 고개를 돌린 능소밀이 불길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을 마주하며 씨익 웃었다.
“횡포라니요. 지엄하신 폐하의 명을 좇아 공무를 수행할 뿐입니다. 그러니 부디 지휘사께서도 언행에 좀 더 신중을 기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뭐라?”
“물론 저야 오해하지 않습니다만, 다만 뭇 사람들의 눈에는 지휘사께서 품계로 저를 찍어 누르는 것처럼 비칠 소지가 다분하지 않겠습니까?”
겁도 없이 되레 경고를 날리는 능소밀의 당돌한 태도에 노장군은 기가 차 헛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금의위를 비롯한 어림친위, 이곳 수도의 모든 병권을 거머쥔 그가 언제 이런 모욕을 받아 봤던가.
능소밀에게 다가선 그가 목소리를 낮췄다.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북풍한설처럼 싸늘하게 얼어붙은 음성에도 능소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털어서 먼지가 나오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을 터인데, 대체 뭐가 그리 두려워 그조차도 못하게 방해하는 것입니까?”
“감히…….”
비록 나이가 들었다 하나 오랜 세월 전장을 떠돈 무장의 눈빛엔 그 기세만으로도 절로 오금이 저릴 만큼 섬뜩한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애초에 이에 굴복할 능소밀이 아니었다.
황제와 줄다리기를 할 때부터 이미 목숨을 내던지고 시작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장관 대인! 이것을……!”
한 뭉치의 서류를 껴안고 허겁지겁 달려오던 도찰원 소속의 관원 한 명이 금의위장의 눈빛에 흠칫하며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능소밀이 그가 들고 있던 서류를 낚아채 그 안의 내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어이쿠?”
능소밀의 얼굴에 떠오른 묘한 미소.
그가 확인하는 서류를 힐끔 살피던 금의위장의 낯빛은 반대로 급격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하던 일 계속하게.”
능소밀의 지시에 관원이 서둘러 자리를 떴다.
다시 둘만 남게 되자 능소밀이 여유로운 눈빛으로 손안의 서류들을 흔들었다.
“그래도 저만큼은 지휘사 어르신을 끝까지 믿고 있었거늘…….”
묘하게 말꼬리를 흐린 능소밀이 짐짓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데 세상에, 이게 다 뭐랍니까? 이런 엄청난 비밀을 그토록 오래 은닉하고 계셨다니, 제가 다 안타깝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그래?”
턱.
능소밀이 주변의 탁자를 끌어와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 황제의 어인이 찍힌 금패를 떡하니 올려놓았다.
“…….”
금의위장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로써 저 서류를 손댈 수 있는 사람은 황제와 능소밀밖에 없게 된 것이다.
“지금껏 금의위가 잡아들인 관리들 명단과 그들의 죄를 조사해 기록한 심문 기록들. 한데 그 내용이 어째 좀 이상하군요.”
“이, 이보시게. 능 도어사…….”
“히야. 역시 금의위가 무섭긴 무섭네요. 금의위의 조옥에 투옥되면 없던 죄도 만들어 낸다더니 이건 뭐, 악랄하기로는 동창 저리 가라인데요?”
능소밀의 목소리가 싸늘해졌다.
“당연히 이 보고는 폐하께도 상신되었을 테니, 거짓으로 폐하를 기망한 죄를 어찌 다스려야 할지 이 미력한 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금의위장이 이를 악물었다.
금의위는 어디까지나 황제를 위한 도구.
그만큼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았기에 자체적으로 감옥을 운영할 수 있었고, 동창과 마찬가지로 체포와 심문에 있어 삼사의 의결을 거치지 않아도 되었다.
무엇보다 의심스러운 자는 선(先)조치 후(後)보고가 허용되었다.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일단 감금과 심문을 진행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인 셈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잘못이 없는 자를 고문하였을 경우에도 황제에게 그다지 심각한 문책을 당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호람지옥으로 대표되는 신하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 때처럼 금의위는 실적을 부각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누군가를 음모에 빠트려 음해하고 각종 정보를 조작하거나 날조하는 기술은 기본이라 할 수도 있을 정도로 일상적이고 반복적으로 용인되어 왔던 것이다.
“물론 이 안에 적힌 명단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겠지요. 장군께서 직접 진두지휘하셨던 전 호부상서 양대인과 금령상단의 상단주 염진광 노대야의 건처럼 말이죠.”
“어떻게 그걸!”
능소밀이 언급한 이름을 듣는 순간 그토록 단단하던 금의위장의 눈빛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능 도어사, 부디 내 말을 들으시게. 그들이 얽힌 사건이 재차 수면으로 떠올라서는 절대 아니되네. 나나 다른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당장 자네 목부터 떨어질 게야!”
“에이, 그런 게 무서웠다면 이렇게 대놓고 금의위에 쳐들어왔겠습니까?”
태연하게 응수하는 능소밀의 표정.
그 안에 담겨 있는 광기에 금의위장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해 버렸다.
소문으로는 들어 왔지만 이자는 예상을 훨씬 웃도는 미친놈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기세가 한풀 꺾인 노장군이 신음을 흘렸다.
놈은 아직 가정을 꾸리지 않았으니 제 목 하나 떨어지면 그만이었지만 이쪽은 처자식을 비롯한 식솔들의 명운까지 달려 있는 일이었다.
“대체…… 원하는 것이 뭔가?”
능소밀이 고른 치아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제가 바라는 건 당연히 그저 이 조정의 기강이 바로 서는 것뿐이지요.”
“자네 끝까지 이럴 셈인가?”
발끈하던 노장군은 이어진 능소밀의 말에 부르르 어깨를 떨었다.
“물론 그냥은 못 넘어가 드립니다? 해당 사건 관련자들은 확실하게 우리 쪽에 내어 주시죠. 대신 저희도 선을 지켜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사안에 따라 파직과 유배, 혹은 뇌물과 연루된 부정 축재 환수 정도에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사실 본격적으로 능소밀이 해당 사건을 걸고넘어지면 그 정도로 끝날 리 만무했다.
핵심 관련 인사들은 참수 정도가 아닌, 삼족을 멸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심각한 사안인 것이다.
당연히 이 모든 일의 책임자인 자신은 말할 것도 없었다.
“장군께는 일 년 정도 시간을 드리지요.”
“일 년?”
“네.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모든 것을 전부 마무리 지으신 뒤 명예롭게 물러나십시오. 공식적으로는 수하들의 비리를 뒤늦게 인지했고, 수장으로서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용퇴하신다고 하시면 제법 보기 좋아 보일 겁니다.”
금의위장은 잠시 침묵했다.
그는 이것이 능소밀이 제안한 거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궁지에 몰되, 살아날 길은 열어 준다는 의미.
“명예로운 은퇴라…….”
파직과 은퇴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 대가로 내가 무엇을 내어 줘야 하는가?”
“동창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제게 넘겨주십시오.”
그제야 금의위장은 이 모든 사달이 오직 동창을 치기 위해 깔아 둔 포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허…….”
허탈하기 짝이 없었다.
정말이지 눈 뜨고 코 베인 기분이었다.
능소밀이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그동안 견원지간처럼 서로를 쭉 견제해 오셨지 않습니까? 분명 놈들을 찌를 한 수는 숨겨 두고 계시리라 봅니다만.”
“…….”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기엔 좀 그렇지만 좋게 생각하십시오.”
“이 상황을 어떻게 좋게 보란 말인가?”
“반대 입장이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이어진 능소밀의 반문에 금의위장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만약 제가 동창을 먼저 찾아갔다면 장군께서는 지금 이렇게 저와 화기애애한 대화조차 나누실 수 없었을 테니까요.”
금의위장은 현실을 받아들였다.
눈앞의 능소밀이 동창을 향해 얼마나 큰 적개심을 지니고 있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놈들은 나처럼 명예롭게 은퇴하진 못할 테지?”
“당연한 말씀을.”
비록 웃고는 있었지만 능소밀의 눈빛 너머로 일렁이는 기광을 목도한 금의위장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패자는 모든 것을 잃고, 승자가 모든 것을 거두어 가는 승자 독식의 도박판.
이미 자신도 능소밀이 만들어 놓은 판 위에 판돈으로 올려졌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비록 자신이 물러난다 해도 동창만 박살 낼 수 있다면 기꺼이 승부를 걸어 볼 만했다.
여생을 혹시 모를 놈들의 수작질에 놀아날까 걱정하고 지내는 것보다 차라리 무덤 속이 편할 테니까.
* * *
정오 무렵.
황제의 호출에 서둘러 달려온 사례태감은 황제의 어전 아래 부복했다.
이미 금의위가 능소밀에 의해 한바탕 크게 뒤집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난 뒤였다.
“놈이 이렇게 움직일 줄은 몰랐군.”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 황제는 잔뜩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송구하기 그지없으나, 빈직 또한 이는 예상하지 못하였나이다.”
황제가 더없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에게 할 말은 아니나, 만약 이대로 능소밀이 동창을 제대로 치지 못한다면 그 여파는 실로 어마어마할 게야. 황궁은 전례 없는 큰 혼란에 휩싸일 테지.”
오랫동안 서로를 견제하며 그나마 위태하게 균형을 맞춰 온 금의위와 동창이었다.
그런데 능소밀로 인해 금의위의 권위가 크게 실추한 상황에서 만에 하나 동창이 타격을 입지 않는다면 독주하는 그들을 견제할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
또한 황제 입장에서는 이는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터.
“처음부터 능 도어사는 이를 염두에 두고 일을 키운 듯싶습니다.”
그렇게 운을 뗀 사례태감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 갔다.
“기호지세. 이제는 싫어도 능 도어사와 도찰원을 응원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 되어 버렸나이다.”
“짐이 어찌하는 것이 좋겠나?”
황제는 짐짓 의견을 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달랐다.
누구보다 오랜 세월 황제의 곁을 지켜 온 그였기에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 또한 예상했던 것인가?’
동창의 혁신을 위해 능소밀을 추천했던 사례태감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출이반이(出爾反爾)의 의미를 되새길 수밖에 없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결국 자신에 의해 초래되는 법.
“흑과 백. 분명한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라 판단되옵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어찌할 생각인가?”
사례태감이 더욱 깊게 고개를 숙였다.
“늘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렇듯 제 선택은 오직 하나. 바로 황제 폐하이십니다.”
황제가 슬며시 입매를 말아 올렸다.
“짐 또한 그 말이 듣고 싶었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