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94)
신마의선-494화(494/500)
신마의선 (494)
이른 새벽.
일찍부터 생업을 위해 거리로 나선 이들로 북경의 저자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반갑게 환담을 나누는 이들과 흥정을 위해 가격을 다투는 이들의 목소리가 왁자지껄 거리를 메웠다.
그런데 어느 한순간.
얼음물을 끼얹은 것처럼 저자에 일순 적막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이내 길 양쪽으로 분분히 물러서기 시작했다.
썰물처럼 갈라진 인파 사이로 한 사람이 들어선 것도 그때였다.
특유의 둥근 형태의 끈 달린 관모와 베적삼으로 만든 화려한 관복을 걸치고, 거기에 자신이 몸담은 기관을 상징하는 검은색 신발을 신은 사내였다.
그와 시선이 마주친 이들은 하나같이 화들짝 놀라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검은 신발의 주인은 관리와 백성들이 흉신악살보다 두려워하는 동창의 위사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금성의 동안문에 다다른 사내는 허리에 차고 있던 신분증인 요패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동안문을 지키고 있던 금의위 병사들이 서둘러 길을 텄다.
자신을 보고 깜짝 놀라는 그 모습에 사내가 피식 웃었다.
이것이 당금 황실 권력의 핵심인 동창의 힘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그가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평소 눈길을 두지 않았던 벽.
그곳에 붙어 있는 방문이 눈에 들어온 건 정말이지 찰나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벽보를 보는 순간.
동창의 이인자라 할 수 있는 장형천호(掌刑千戶) 유신은 그대로 그 자리에 굳어 버리고 말았다.
“이게 무슨…….”
아무리 거듭 확인해도 벽보에 그려져 있는 용모파기는 자신의 얼굴이 분명했다.
게다가…….
“불법 도당 결성에 내란 모의 혐의?”
용모파기 아래에는 죄목과 함께 현상금까지 적혀 있었다.
문제는 그 현상금을 내건 곳이 금의위라는 점이었다.
‘이 미친것들이?’
감히 동창의 첩형관(貼刑官)인 자신에게 얼토당토않은 누명을 씌운 것으로도 모자라 현상금까지 걸다니?
이런 꼴을 보자고 이른 새벽부터 일찍 입궐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 뒤늦게 곳곳에서 쏟아지는 시선이 느껴졌다.
금의위 위사들을 비롯해 거리를 오가던 일반 백성들도 하나같이 자신의 얼굴과 벽보에 붙은 용모파기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보니 저들은 자신이 두려워 피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거리를 두고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 물러선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유신의 얼굴이 노여움으로 물들었다.
‘누구의 짓인지 모르나 반드시 발본색원해 대가를 치르게 하리라!’
그렇게 다짐한 그가 곧장 잰걸음을 놀렸다.
한참을 걸어 그가 도착한 곳은 동창의 공식적인 공관이 아닌,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비밀 안가였다.
허름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이곳은 특별한 상황에만 이용할 수 있는, 철저하게 비밀이 지켜지는 독립 공간이었다.
“늦었군.”
안가에 들어선 그를 맞이한 사람은 노회한 눈빛의 환관이었다.
거세를 하고 궁에 들어온 순간부터 모셔 왔던 그의 상관이자 스승.
바로 십만 환관들 가운데 사례태감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권위와 권력을 지닌 당대 동창의 장인태감이 바로 그였다.
추상같은 그의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유신은 무언가 일이 잘못되어도 한참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 너에게 걸었던 기대가 너무나 컸던 모양이구나.”
흔들리는 유신의 눈빛을 응시하던 장인태감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어떤 그림을 그리든 그간 관여치 않으려 노력했다. 결국 모든 것이 폐하와 이 나라 조정을 위한 충의에서 발로했음을 내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건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느니.”
유신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기다려 주십시오, 공공!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속하가 어떻게든 바로잡을 것이니…….”
“같은 말을 반복하게 할 것이냐?”
“하오나!”
“본직은 이미 늦었다 했느니.”
“……!”
그렇게 유신의 말을 자른 장인태감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이건…….”
장인태감이 건넨 물건을 확인한 유신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켰다.
바로 한 자루의 비수와 실과 바늘이 담긴 목갑이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환관들은 죽을 때까지 항상 거세했던 양물이 담긴 향낭을 품에 지니고 다녔다.
죽을 때만큼은 같이 묻히기 위해서였다.
내세에서만큼은 고자로 태어나지 않길 바라는 염원이 담긴 그들만의 습관이고, 미신이었다.
실과 바늘은 무덤에 눕기 직전, 떨어져 나간 양물을 다시 붙이기 위한 것이다.
비수 역시 마찬가지.
그의 상관은 자신의 죽음을 종용하고 있었다.
하나 유신은 포기할 수 없었다.
“사종악을 이용해 능소밀을 견제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이유일 뿐, 놈으로부터 얻어 낼 북명신공은 향후 우리 동창에게 더없이 강대한 힘과 영광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장인태감의 눈이 한순간 싸늘한 빛을 뿜어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그자는 동창과 그 어떤 관련도 없노라.”
“공공!”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 장인태감의 눈 위로 찰나의 안쓰러운 감정이 떠올랐다.
“금의위가 이미 능 도어사의 편에 섰느니라.”
유신이 으스러져라 이를 악물었다.
협박이든 회유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문제는 금의위가 본격적으로 나서 동창을 적대했다는 점이었다.
그들 또한 체면이 있으니 이번 사태를 서로 간의 오해로 빚어진 촌극 정도로 마무리 짓는 건 불가능해진 것이다.
“사종악은 이제 폭약이다. 사방이 불바다인데 그자를 껴안는다? 그게 누구든 반드시 죽음을 피해 가지 못한다.”
“정녕 공공께서 원하시는 것은 오직 빈직의 목숨뿐입니까?”
묵묵히 자신을 응시하는 장인태감의 모습에 유신이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이로써 자신의 운명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조직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사로이 헛된 꿈을 품는 자는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지요.”
그렇게 운을 뗀 유신이 눈앞의 비수를 집어 들었다.
“마지막 명, 기쁘게 받들겠나이다. 하나 죽을 곳만큼은 빈직이 선택하게 해 주소서.”
“허한다.”
얼음장 같은 눈빛으로 장인태감이 말을 이어 갔다.
“내 너의 복수는 반드시 대신 하마. 능소밀 그자 역시 결코 곱게 죽지는 못하리라.”
유신이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더니 그 자리에 부복했다.
그러곤 실과 바늘이 든 상자와 비수를 품에 넣고 그 자리를 떠났다.
* * *
늦은 밤.
홀로 차를 마시고 있던 능소밀은 뜻밖의 손님을 맞이했다.
“흠차총독동창관교판사태감(欽差總督東廠官校辦事太監)께서 장관대인을 뵙길 청하셨습니다.”
“장인태감께서? 들라 이르……. 아니, 내 직접 나가지.”
그러나 능소밀이 채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이미 장인태감은 어느 순간 유령처럼 그 앞에 서 있었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심혼이 얼어붙을 것 같은 차가운 그의 눈빛에도 능소밀은 기죽지 않았다.
아니, 그것으로 모자라 슬쩍 웃더니 오히려 그의 심기를 살살 건드렸다.
“어떻게? 수배범의 신병은 확보하셨습니까?”
장인태감의 새하얀 눈썹이 꿈틀했다.
평소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의 눈 위로 자욱한 살기가 일렁인 것도 그때였다.
“태공공(太功公)을 움직인 건 역시 능 도어사셨구려.”
장인태감은 하루 전 자신을 따로 불러낸 사례태감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사종악을 넘기고, 관련자들은 내어 주도록. 마음에 드는 결과를 얻기 전까지 도찰원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능소밀이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저 같은 미관말직이 무슨 힘이 있어 사례감의 일인자를 뜻대로 움직이겠습니까? 그분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폐하를 향한 충정뿐이겠지요.”
“과연 능요능설(能要能說). 일개 강호인 출신이 폐하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이유를 내 이제야 제대로 알 것 같소이다. 참으로 위험한 능력이나 한편으론 몹시 부럽구려.”
“하하.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능력만큼은 저도 공공께 한 수 배워야 하겠습니다. 저는 아직 연륜이 짧아서인지 공공처럼 속내를 감추는 건 영 못하겠더군요.”
그렇게 칭찬과 웃음 속에 감춰진 살기를 주고받길 잠시.
능소밀이 갑자기 정색하며 불쑥 입을 열었다.
“일을 정말 복잡하게 만드시는군요. 사종악과 유신이라는 자를 넘기셨다면 저 또한 어느 정도는 양보를 해 드릴 의향이 있었는데 말입니다.”
“능 도어사께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빈직은 금시초문이구려. 앞서 공문을 통해 소명했다시피 어디까지나 개인의 어긋난 신념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일 뿐, 동창과는 관련이 없는 사안이외다.”
“예. 뭐 끝까지 그렇게 잡아떼신다니 더 이상은 저도 할 말이 없군요. 대신…….”
능소밀이 조용히 미소를 말아 올렸다.
“마음을 단단히 먹으셔야 할 겁니다.”
이어진 능소밀의 말에 장인태감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이제는 장형천호의 목 하나만으로 사태를 무마하기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었으니까요.”
“능 도어사!”
“누천년에 걸친 관무불가침의 불문율. 이를 깨는 것으로도 모자라, 무림을 어지럽히는 불온한 무리와 결탁하고 도당을 결성해 폐하의 성심을 어지럽힌 그 죄! 반드시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건방진! 우리야말로 폐하의 진정한 눈이고 귀이며, 또 칼이노라! 그것이 동창의 존재 이유며, 사내이기를 포기한 순간부터 부여받은 소명이니라! 어디 감히 본직 앞에서 그딴 망발을 지껄이는 것이냐?”
능소밀의 도발이 제대로 먹혔던지 장인태감은 좀처럼 드러내지 않던 일신의 기파를 완전히 개방했다.
능소밀은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마주한 것만으로도 소름 끼치는 무형의 기운은 마치 날카로운 칼처럼 피부를 파고들었다.
그 기운 앞에 기맥이 흔들리고, 눈앞이 아득해졌다.
하나 금방이라도 피를 토할 것처럼 속이 메스꺼운 와중에도 능소밀의 웃음은 더욱 짙어졌다.
“이러다 사람 잡겠습니다?”
“간혹 심기가 약한 이는 본직의 눈빛에 지레 겁먹고 앓아눕는 경우가 간혹 있지. 하나 어쩌겠나? 그런 여린 심신은 처음부터 이 바닥과 어울리지 않는 것을.”
살기를 베어 문 장인태감의 시선이 능소밀의 몸 곳곳을 누볐다.
설사 죽이지는 않더라도 반드시 어디 한 곳은 손봐 주겠다는 악의가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문제는 그가 실제로 그것이 가능한 경지의 고수라는 점이었다.
그때였다.
턱.
“……!”
소스라치게 놀란 장인태감이 뒤늦게 자신의 어깨에 팔을 두른 사내를 돌아봤다.
그 역시 작은 키는 아니었지만 상대는 어찌나 키가 큰지 자신의 머리가 그의 어깨에 겨우 미칠 정도였다.
쾌애액.
장인태감의 손이 본능적으로 허공을 찢었다.
콱.
하지만 상대는 가볍게 손을 뻗더니 전력을 실어 휘두른 그의 용조수를 너무 쉽게 움켜쥐어 버렸다.
장인태감이 경악해 말을 잇지 못하던 사이.
그의 손을 움켜쥔 범계위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부수면 안 된다고 해서 조용히 왔다.”
“가, 감사합니다.”
생각만 해도 능소밀은 소름이 쭉 끼쳤다.
혹시나 싶어 미리 앞서 몇 번이고 당부한 게 천만다행이었다
평소처럼 천장을 부수며 떨어져 내렸다가는 아마도 황궁 전체가 발칵 뒤집혔을 터.
그러나 정작 이 순간 누구보다 가장 놀란 사람은 따로 있었다.
바로 장인태감 본인이었다.
‘망산초자!’
그는 단번에 자신의 행사를 방해한 자가 누구인지 알아봤다.
그러나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아무리 인기척을 감추고 조용히 접근했다 하나 동창 내 제일 고수인 그가 그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니?
하지만 놀랄 일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폐하의 성지를 받드는 도찰원의 장관을 위협하다니, 아무리 동창의 수장이라 해도 그 죄가 가볍지 않을 텐데요?”
범계위의 거대한 체구.
그 너머에서 날아든 음성에 장인태감은 그만 아연실색했다.
설마 자신의 감각을 속이고 접근해 온 인물이 범계위 말고도 더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한 것이다.
뒤늦게 범계위 뒤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청년을 발견한 장인태감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