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95)
신마의선-495화(495/500)
신마의선 (495)
‘신마의선!’
당장 그 말고는 떠올릴 수 있는 인물이 없었다.
문득 얼굴에 와 닿는 따가운 시선을 느낀 것도 그때였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린 장인태감은 가만히 자신을 응시하던 범계위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범계위가 불쑥 입을 열었다.
“어이, 고자.”
“……!”
동창에 몸담은 이후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모욕적인 언사!
지금까지 느껴 본 적 없는 분노에 장인태감이 몸을 떨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범계위가 태연히 말을 이어 갔다.
“나도 한때는 비슷한 처지였던 적이 있어서 네 마음은 살짝 이해가 가거든? 왜 과부 마음은 홀아비가 안다잖아. 물론 난 지금은 고자도 아니고 홀아비도 아니지만 말이야.”
고자로도 모자라 졸지에 과부 처지가 된 장인태감은 어이없고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번 한 번은 특별히 봐줄게. 번강룡인가 뭔가 하는 그놈 어디 있어?”
그제야 장인태감은 능소밀이 이토록 여유 있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설마 이런 고수들을 매복시키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을 줄이야.
말없이 자신을 노려보는 장인태감의 눈빛에 능소밀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저기 계시는 신마의선께서는 폐하의 초빙에 응해 방문하신 것뿐이니까요. 당연히 호위가 필요해 범 선배님을 대동하신 것이고, 저는 지인인지라 두 분이 머무실 숙소를 제공했을 뿐입니다. 뭐, 공교롭게도 상황이 이리되었지만 말이지요.”
능소밀이 약 올리듯 말을 덧붙였다.
“보아하니 사종악이 어디에 있는지 공공께서도 모르는 눈치로군요. 아니면 일부러 보고를 듣지 않으신 걸까요?”
해쓱한 안색으로 서 있는 장인태감을 향해 능소밀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럼 오늘 대화는 여기까지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분명 내일부터는 공사가 다망하실 터. 그만 퇴청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응? 그냥 이대로 풀어 준다고?”
의아해하는 범계위를 향해 능소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내 주시죠. 지금도 저리 떨고 계시는데……. 안쓰럽잖습니까.”
“쳇.”
범계위가 아쉬운 표정으로 움켜쥐고 있던 장인태감의 손을 풀고 물러났다.
잠시 능소밀을 노려보던 그가 말없이 돌아섰다.
멀어지는 그를 향해 능소밀이 외쳤다.
“기회는 내일 아침까지입니다. 사종악이 있는 곳을 알게 된다면 제 칼이 어쩌면 좀 무뎌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시 멈칫했던 장인태감이 이내 세 사람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휴.”
이윽고 장인태감의 기척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자 비로소 능소밀이 식은땀과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두 분 덕분에 살았습니다.”
“그런 것치곤 의연하게 행동하시던데요?”
“두 분이 함께해 주셨기에 그런 배짱도 부릴 수 있었던 겁니다. 하하.”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이와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겠군요. 아무래도 능 아저씨 곁을 지킬 사람이 필요하겠어요.”
능소밀의 표정이 밝아졌다.
“저를 이토록 신경 써 주신다니,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그런데 누구를……?”
“일단 당분간은 제가 함께 지낼 거예요.”
“오오! 저는 대환영입니다. 그래 주신다면 저야 더할 나위 없지요.”
능소밀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하나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그의 얼굴이 삽시간에 창백해졌다.
“하지만 한시적이에요. 사종악 그자의 행방을 알아낸다면 그땐 제가 직접 움직여야 하니까요. 그래도 걱정 마세요. 그때는 저를 대신해 범 아저씨나 초 아저씨가 지켜 주실 테니까요.”
“저……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요?”
범계위와 시선이 마주친 능소밀이 황급히 변명을 이어 갔다.
“아니, 두 분은 이미 가정도 있으시고……. 저처럼 보잘것없는 놈을 위해 두 분 정도나 되는 고수가 호위를 하신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인력 낭비 아닙니까? 그야말로 소 잡는 칼로 닭 잡는 격이죠. 안 그렇습니까?”
곤란해하는 능소밀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범계위가 불쑥 입을 열었다.
“왜? 내가 옆에 있는 게 마음에 안 들어? 마음에 들게 만들어 줄까?”
화들짝 놀란 능소밀이 처연한 웃음을 지으며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아닙니다! 너무 좋습니다!”
“짜식. 좋으면서 튕기긴.”
슬쩍 고개를 돌린 능소밀이 울상을 지었다.
당금 황실을 떨어 울리게 만든 소문의 당사자.
일시적이라곤 하나 금의위를 굴복시키고, 거기서 더 나아가 대놓고 동창에게 싸움을 건 전례 없는 철담의 소유자가 바로 그였다.
하나 그런 그도 범계위 앞에서는 그저 한없이 불쌍한 존재일 뿐인 것이다.
* * *
곤녕궁 북쪽에 위치한 어화원(御花園).
황제의 부름을 받고 이곳을 방문한 단악선은 황제와 상당한 거리를 두고 경건하게 부복해 있었다.
황제가 친근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내 진맥을 부탁해도 되겠느냐?”
화들짝 놀란 어림친위의 책임자가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폐하, 신이 감히 고하옵건대…….”
그러나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황제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어차피 그가 짐을 해하려 마음먹는다면 이 자리의 누가 감당할 수 있단 말이냐?”
황궁에 있다 하나 강호의 상황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흑도의 지배자를 자처하던 사종악이 단악선에게 패배한 것 역시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어림친위 모두가 나선다면 어찌 될 지는 모르나, 개개인의 무공을 놓고 판단하자면 이 자리에서 가장 뛰어난 고수는 명백했다.
“모처럼 누리는 짐의 기쁨을 그대들은 방해하지 말라.”
그와 같은 황명이 떨어지자 어림친위들은 바짝 속이 타들어 갔다.
그런 그들을 안심시키듯 단악선이 온화한 미소를 머금었다.
“민초 단가 악선이 지엄하신 폐하의 명을 받들어 존체를 살피도록 하겠나이다.”
황제에게 다가선 단악선이 그의 손목에 검지와 중지를 모아 올린 뒤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렇게 묵묵히 진맥을 이어 가길 잠시.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심화상염(心火上炎)이 있으시군요.”
“심화상염?”
황제의 반문에 단악선이 쓰게 웃었다.
“소위 화병이라 불리는 병이옵니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고개를 끄덕이던 황제가 슬쩍 웃으며 단악선을 바라봤다.
“그래, 그 화병의 원인이 무엇 때문이라 생각하느냐?”
“보통은 과로와 수면 부족에 기반하나 종종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였을 때 발생하는 과도한 정신적 부담 역시 그 원인 중 하나로 사료되옵니다.”
“과연, 신의라 불리만 하도다. 짐의 상태를 정확히 짚어 내는군. 하면 짐이 느끼는 부담의 이유 역시 알고 있느냐?”
단악선이 머뭇거리자 황제가 인자한 표정으로 재차 입을 열었다.
“따지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나를 위해 그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것이니 능 도어사를 꾸짖을 수는 없지. 다만 그 방법이 너무 과격해 걱정이 되는 것뿐이다.”
“저는 폐하를 믿습니다.”
“나를? 능 도어사가 아니라?”
황제의 반문에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저보다도 더 오랜 시간 능 도어사를 곁에 두고 계셨잖아요. 당연히 저보다 폐하께서 더 잘 알고 계시겠죠.”
“흐음…….”
황제가 묘한 눈빛을 흘리며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의원의 관점에서 말씀을 드린다면, 고통을 수반한다 하더라도 썩은 환부는 반드시 도려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장의 고통을 외면하고자 때를 놓치면 결국 그보다 훨씬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니까요.”
“그런가? 참으로 의원다운 대답이로다. 하나 너무 많이 도려내면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지나친 출혈로 인해 오히려 치료를 안 하느니만 못한 상황이 된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의원의 실력에 달려 있겠죠.”
단악선이 덧붙였다.
“그런데 폐하께서 임명하신 그 의원은 아주 유능한 사람입니다. 최악의 경우, 후유증이 남을 수는 있으나 병이 재발하게 만들지는 않을 겁니다.”
황제가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확신이 필요해 물었던 것일 뿐, 현 상황에 대해 간섭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늘 지금까지 기대한 것 이상의 성과를 내 왔던 능소밀이었기에 이번엔 어떤 결과로 자신을 놀라게 할 것인지 내심 거는 기대가 컸다.
“그나저나 짐은 앞으로 그대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가 더 궁금하군. 사종악, 그자 문제를 해결한다면 이후에는 어찌할 생각인가? 따로 계획해 둔 바가 있는가?”
단악선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황제는 슬쩍 욕심이 났다.
능소밀이 그토록 조정을 벗어나려 애쓰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눈앞의 청년 때문이었다.
단악선을 황실 어의로 초빙해 이곳에 묶어 둔다면 자연스럽게 능소밀도 그에게 딸려 올 터.
그러나 돌아온 의외의 대답에 황제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무위에서 의원으로 지내고자 합니다.”
“무림인이 아닌, 일반 백성들과 함께 조용히 살고자 하는 것인가?”
“조용히 살지는 못하겠죠.”
의아해하던 황제가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가볍게 웃었다.
“본디 의원의 삶은 늘 치열한 법이니까요.”
“하나 세상이 과연 그대를 그냥 놓아둘까?”
단악선이 차분한 눈빛으로 황제와 시선을 마주했다.
“폐하께서 성덕을 베푸신다면 가능합니다.”
“……?”
“세상이 평화롭다면 일개 의원인 제가 굳이 도산검림을 헤맬 이유도 없겠지요.”
“그 말인즉슨, 네 향후 행보는 오직 짐에게 달렸다?”
곰곰이 단악선의 말을 곱씹던 황제가 심유한 눈빛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언제나 그랬군.”
그렇게 운을 뗀 황제가 복잡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지금까지 걸어온 네 삶을 들여다보니 진정으로 네가 원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비로소 짐도 알 것 같노라. 바로 화평(和平)이 네가 추구하던 가치였겠지.”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 역시 저와 같지 않으신가요?”
“그래. 그렇지. 짐이 비록 성군은 아니라 하나, 시대를 달리해도 천자가 바라는 건 오직 태평성대(太平聖代)뿐이노라.”
“모든 백성도 그것을 원하고 바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너는 짐을 원망했을 수도 있겠구나?”
돌이켜 보니 지금껏 정치적 이유로 뒷짐을 지고 상황을 관망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리 따지면 짐의 노력이 부족했도다. 짐을 원망한다 해도 할 말이 없겠어.”
“제가 무슨 자격으로 감히 폐하를 비난하겠어요? 다만 폐하의 어진 성심에 기대어 부탁을 드릴 뿐이죠.”
“부탁이라…….”
한참 동안 그 말의 의미를 되새기던 황제가 이윽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의 뜻을 짐은 이해하노라.”
“폐하도 참 힘드시겠어요.”
“응?”
뜬금없는 말에 의아해하던 황제가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팔걸이를 두들기며 웃음을 터트렸다.
“환자들의 생명을 책임지는 저조차도 이렇게 어깨가 무거운데 천하 백성들의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숙명의 무게는 감히 저로서는 헤아릴 수도 없어서요.”
“하하하. 짐에게 그리 말할 수 있는 자는 너 말고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웃음을 거둔 황제가 단악선을 응시했다.
“능 도어사가 왜 그토록 네 곁에 있으려는지 알 것 같구나. 더불어 짐이 그를 영원히 붙잡아 둘 수 없는 이유도.”
서로를 보며 웃음을 주고받길 잠시.
문득 생각난 듯 단악선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황제를 경호하던 어림친위들이 흠칫하며 단악선을 에워쌌지만 눈살을 찌푸린 황제의 제지에 곤혹스러워하며 다시 물러났다.
“그건?”
황제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단악선이 꺼내 든 물건.
한 쌍의 해와 달, 이것을 에워싼 구름 문양이 새겨진 금패였기 때문이다.
언젠가 사례태감이 자신의 재가를 얻어 단악선에게 하사한 신패였다.
“이걸 왜 돌려주는 것이냐?”
“오늘로써 더 이상 이 신패를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아서요.”
황제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더 이상 동창 소속의 제기들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능 도어사가 동창을 칠 준비를 마친 게로군.”
아니나 다를까.
무언가 보고를 받은 근시환관이 황급히 황제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도찰원이 금의위를 대동해 동안문을 점거했습니다.”
황제가 나직이 한숨을 흘리자 단악선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걱정 마세요. 당장 오늘 무언가 큰일이 일어나진 않을 테니까요.”
“오늘은 아니다?”
황제의 반문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늘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