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96)
신마의선-496화(496/500)
신마의선 (496)
동창을 흔들기 위해 능소밀이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이미 사전에 계획한 대로 수많은 이들이 각지에서 활동을 개시했을 터.
이른바 만단정화(萬端正化)라 명명한 계획.
그 시작을 알린 곳은 동창의 전각과 조옥이 위치해 있는 동안문 내부였다.
이미 금의위를 대거 차출해 입구를 점거한 능소밀은 보무도 당당하게 도찰원 소속의 관원들을 이끌고 동집사창 내부로 들어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의위 위사들과 대치하고 있는 동창 소속 당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비록 무기만 빼 들지 않았을 뿐인지 분위기 자체는 더없이 흉흉하기 짝이 없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오가는 살기 어린 눈빛을 마주한 능소밀이 피식 웃었다.
이때 동창 쪽 인물 하나가 능소밀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이곳은 엄중한 기밀을 다루는 곳. 관련자 외에는 출입을 허가할 수 없소!”
“이래도 말인가?”
펄럭.
능소밀이 품속에서 황제의 명령이 담긴 조서(詔書)를 꺼내 펼쳤다.
황명은 그야말로 전가의 보도.
이를 마주한 동창 소속의 당두들은 일순 얼굴이 창백해지며 그 자리에 엎드리듯 부복했다.
“흥!”
차갑게 코웃음을 흘린 능소밀이 당두들을 밀치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한순간.
능소밀이 발걸음을 멈춰 섰다.
동창의 본관 건물인 창본각(廠本閣) 옆에 나란히 자리 잡은 악비의 사당 앞에 이르러서였다.
여진족의 금나라 군대를 물리쳐 백성을 구한 구국의 영웅.
그가 활약했던 송나라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지만 지금도 그는 여전히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사당 옆에 걸려 있는 유방백세(流芳百世)라는 글귀를 마주한 능소밀이 차가운 웃음을 말아 올렸다.
향기가 백대에 걸쳐 흐른다는 뜻이니, 꽃다운 이름이 후세에 길이 전하는 것을 의미했다.
백성들이 숭상하는 영웅을 내세워 자신들이 조정과 백성을 수호하는 단체라며 선전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유방백세는 개뿔. 유취만년(流臭萬年)이겠지.”
선(善)으로 남긴 자취는 백세를 가지만, 반대로 악(惡)으로 남긴 더러운 자취는 만년까지 이어진다.
그렇게 한껏 동창을 비웃은 능소밀이 창본각 안으로 들어섰다.
이미 황제의 조서를 보았기에 어느 누구도 섣불리 나서 능소밀을 제지하는 이가 없었다.
심지어 동창의 독주인 장인태감 역시 마찬가지.
소태를 씹은 표정이었지만 선선히 능소밀을 위한 자리를 내주었다.
물론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그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한기는 일대를 빙굴처럼 얼리고도 남을 만큼 서늘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원한 가득한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하고도 능소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 시간부로 폐하의 엄명에 따라 동창에 대한 특별 사찰을 시작한다! 지시에 불응하는 자는 역도로 간주, 모반에 준하는 형벌로 그 죄를 다스릴 것이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능소밀이 가장 먼저 전각 내부에 보관하고 있던 기밀 서류와 장부들을 가지고 온 수레에 와르르 쓸어 담았다.
“뭐 하나? 어서 제 할 일들 하지 않고?”
능소밀이 다그치자 동창의 눈치를 살피고 있던 도찰원 소속의 관원들이 질끈 눈을 감고 지시를 이행했다.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 창본각 내부.
이를 눈에 담은 장인태감이 능소밀을 향해 다가섰다.
“정말 이러긴가?”
“시간은 충분히 줬다고 생각합니다만?”
“이런다 해서 없는 증거나 나오는 건 아닐 텐데? 모르는 걸 모른다 했을 뿐.”
“그러니까요.”
“……?”
“원래라면 없던 증거도 만들어 내는 곳이 이곳 동창 아닙니까? 왜 지금껏 가만히 계셨습니까?”
“뭐라?”
잠시 발끈했던 장인태감이 애써 표정을 수습했다.
어차피 놈에게 주어진 권한은 한시적인 것.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결국 시간은 자신들의 편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다.
무엇보다 황제에게 직접 올리는 보고서와 달리 동창 내부에서 보관하는 자료들은 암어로 기록되는 것이 기본이었다.
복호화(復號化) 과정을 거치지 않는 이상 의미 없는 문장의 나열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이어진 능소밀의 말에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금일부터 동창에 소속되어 있는 모든 인원에 대해 개별 조서를 작성할 것인즉, 이 시각을 기해 동안문 밖으로 벗어나는 것을 엄금한다. 여기에 단 한 명도 예외는 없으며, 불가피한 상황이 있다면 사유서를 제출한 뒤 도찰원의 인가를 얻어야 한다. 이를 어길 시 앞서 언급한 대로…….”
장인태감은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래서 능소밀이 떠들어 대는 뒤의 말은 아예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뿔싸!’
놈의 진정한 목적을 깨달은 장인태감은 당혹감에 사로잡혔다.
‘이자의 목적은 처음부터 이것이었나?’
단지 자신들을 묶어 두고 시간을 벌 속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예상했다면 모를까 당하고 난 뒤에는 손쓸 방법이 전무했다.
그런 장인태감의 모습에 능소밀이 비웃음을 남기고 돌아섰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능소밀의 시선이 향한 곳.
그곳을 향해 고개를 돌린 장인태감의 눈빛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이곳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 때문이었다.
유일하게 자신보다 높은 환관인 사례태감과, 금의위의 지휘권을 지닌 표기장군.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한 장인태감의 얼굴에 짙은 암운이 드리웠다.
* * *
그 시각.
능소밀의 행보와 발맞추어 무림도 재빠르게 행동을 개시했다.
그중 일익(一翼)을 담당한 곳은 개방.
특히 발 빠르고 무공이 뛰어난 자들로 구성된 감찰당 소속의 개방도들이 은밀하게 북경에 잠입했다.
그들을 진두지휘하는 사람은 당연히 감찰당주인 방소방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왜 황실의 뜻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까?”
낮게 엎드려 몸을 감춘 채 전방을 응시하던 방소방이 눈살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봤다.
질문을 던진 자는 가까운 곳에서 차출된 분타 소속의 젊은 거지였다.
방소방과 시선이 마주친 젊은 거지가 재차 물었다.
“우리가 황실의 권력 재편에 가담하는 건 관무불가침의 불문율에 어긋나는 것 아닙니까?”
“그래. 이참에 확실히 해 두자.”
상황을 보아하니 비슷한 의문을 지닌 사람이 한둘이 아닌 터라 방소방은 확실히 짚고 넘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관무불가침의 원칙은 어긴 것은 저쪽이 먼저였다. 또한 우리는 황실의 뜻에 따르는 게 아니다. 우리 개방의 친구, 신마의선을 돕기 위해 나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과정의 목적은 결국 하나다. 바로 사종악을 찾아 강호의 혼란을 종식하는 것이지.”
그제야 납득한 듯 젊은 거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일이 맞네요. 그런데 동창의 비리를 증언해 줄 사람이 이것밖에 안 됩니까?”
현재 이곳에 차출된 인원은 고작 서른 명 남짓.
그것도 지금은 뿔뿔이 흩어져 서너 명이 한 개 조를 이루어 감시를 진행 중이었다.
그들이 매복한 곳은 과거 동창과 엮인 적이 있었던 고위 관리들의 저택이었다.
동창의 규모를 감안하면 그 숫자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
“대부분 죽었을 테니까. 그 치밀한 놈들이 우환을 남겨 둘 리 없지.”
방소방의 대답에 이번엔 다른 거지가 물었다.
“그럼 아직까지 살아 있는 자들은요? 왜 누구는 죽여 입막음을 하고, 누구는 살려 둔 겁니까?”
“살아 있는 놈들은 두 가지 부류지. 아직 이용 가치가 있거나, 아니면 동창과 한배를 탔거나.”
“아! 그래서 감시하는 거군요.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확실하게 증거를 인멸하려 들 테니까요.”
“맞아. 그런 만큼 더욱 은밀하고 조심하게 행동해야 하지. 그런데 그런 것치곤 우리가 참 말이 많았다. 그치?”
“……입 다물겠습니다.”
방소방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눈앞의 저택을 응시했다.
계획은 간단했다.
지금쯤 동창은 발칵 뒤집혔을 테니 어떻게든 자신들이 관련된 증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단속을 하려 할 터.
접근해 오는 동창의 하수인들을 제압하고, 회유할 놈은 회유하고 협박할 놈은 협박해 조금이라도 상황을 유리하게 가져가면 그뿐이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방소방의 눈 위로 이채가 떠올랐다.
소리 없이 담장을 타고 넘어가는 인영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자, 거지들아. 한바탕 깽판을 쳐 보자꾸나.”
방소방을 위시한 개방의 고수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 * *
북경 외곽의 모처.
오랫동안 쓰지 않아 폐허로 변한 관제묘 앞에 각기 다른 차림의 사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비장한 표정의 사내들이 서로의 면면을 확인한 뒤 눈인사를 나눴다.
그중 가장 먼저 이곳에 도착해 다른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사내가 좌중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이번이 우리에게 마지막 기회일세.”
한때 흑점의 산서 지부를 맡고 있던 엽단영의 말에 고벽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무위에서 이화루라는 기루를 운영했지만 실제로는 신마상단과의 거래를 책임졌던 흑점의 지부장이었다.
두 사람 모두 흑점 내에서는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자들이었다.
“비록 단 의원님께서 우리의 명부록을 없애셨다 하나, 우리가 다시 당당히 활동하기 위해서는 흑점의 저력을 증명해야만 하네. 그러니 이번 일에서 가장 큰 공은 우리가 세워야 해. 신마곡에서 보내 준 사건에 대한 증인과 증거 확보를 최우선으로 다루되, 필요한 것이 있으면 추가 조사를 해서라도 놈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원천적으로 봉쇄해야 할 걸세.”
이렇게 한자리에 흑점의 지부장들이 모두 모인 것은 흑점의 역사를 통틀어 전례가 없는 일.
그런 만큼 사안의 중대성은 누구보다 본인들이 잘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은퇴한 관리들과 이제 막 동창에 발을 들인 어린 내시들도 샅샅이 조사하고 있습니다.”
“신마곡에서 의뢰한 사건과는 별도로 당두급 이상 인사들의 개인적인 비리와 치부도 확보 중입니다.”
흑점 역시 이번 일에 사활을 걸었기에 전심전력으로 정보망을 가동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조직의 존망이 결정될 중대한 사안.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이제는 결과를 기다릴 뿐이었다.
한편, 그런 흑점과 더불어 동시에 움직이는 또다른 무림 세력도 존재했다.
바로 하오문이었다.
오랜 앙숙이라 할 수도 있는 두 세력이 이번만큼은 합심하여 한뜻으로 같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일에 가장 많은 인원을 투입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를 주도한 사람은 한때 서안 지부를 책임지고 있던 설난영이었다.
“명심하세요. 능 도어사는 과거 본 문의 출신이지만 우리에게 깊은 유감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 일이 틀어지면 그만큼 하오문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거예요. 과거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해요.”
전대 하오문주의 죽음을 공표한 뒤 그 뒤를 이어 이제는 하오문의 문주가 된 그녀였다.
여기에는 그녀와 단악선 사이에 형성된 유대가 크게 한몫했다.
새롭게 문주로 추대된 그녀가 가장 먼저 중점을 둔 것은 능소밀과의 관계 회복과 이를 통해 무림의 정보 시장에서 우위에 서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런 그녀도 사방에서 밀려드는 정보의 홍수에는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자고로 뇌물 수수와 비리로 얼룩진 이익 관계에서 술과 여인이 빠질 수 없는 법.
“정말 어마어마하군요.”
산처럼 쌓인 보고서에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중요도를 감안해 세 번 이상의 교차 검증을 마친 보고서만 추려 모은 게 그 정도입니다.”
수하의 말에 설난영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내 무덤을 내가 팠군.”
하나 어쩌겠는가.
하오문주로 추대된 이상 그에 걸맞은 책임도 함께 따라오는 것이다.
“신마의선은 사분오열 될 뻔했던 우리 하오문을 위기에서 건져 준 은인. 이 기회에 완벽하게 일을 마무리 지어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어 두는 게 좋겠지.”
그 자리에서 몇 가지 지시가 내려졌고, 하오문주가 된 그녀의 명령에 따라 중원 전역에 산재한 하오문도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