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97)
신마의선-497화(497/500)
신마의선 (497)
“험험. 어때? 안 어색하냐?”
오랜만에 다시 북경을 찾은 소적산은 평소와 다르게 멋들어진 옷을 차려입고 있었다.
어딘가 민망한 듯 자꾸만 옷매무새를 매만지는 소적산의 모습에 수하들이 웃으며 한껏 추켜세웠다.
“이 정도면 대인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습니다.”
“무위 촌놈이 출세했다. 그치?”
“에이, 언제 적 이야깁니까? 촌이라 하기에 이미 무위는 너무 커져 버렸죠. 게다가 단주님이 스스로 촌놈이라 해 버리면 그 휘하의 우리들은 뭐가 됩니까?”
과거에는 뒷골목 파락호였지만 지금은 신마상단을 일궈 낸 핵심 인사들로, 상단 내 요직을 한자리씩 차지한 그들이었다.
“그나저나 분위기가 삭막하기 그지없군.”
소적산의 말에 그를 수행하던 수하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명의 수도답게 저자에는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지만 하나같이 표정이 밝지 않았다.
“동창이 동안문 안에 발이 묶인 지 벌써 보름째니까요. 사람들도 아는 거죠. 이제 곧 무언가 사달이 일어나도 일어날 거라는 것을요.”
“미안하다. 험지가 될지도 모르는 곳까지 끌고 와서.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중임을 떠안게 되어 버렸네.”
소적산의 사과에 그를 에워싼 사내들이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왜 이러십니까? 대형. 순의방 시절부터 했던 맹세를 그새 잊어버리신 겁니까?”
소적산이 픽 웃었다.
“그게 언제 적 이야긴데?”
“그래도 잊을 수야 없죠. 잊어서도 안 되고요. 그때 대형께서 맹세했던 우리 이의당의 기치가 지금의 신마상단을 일궈 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누군가가 크게 외쳤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단 두 가지뿐!”
그 말을 다른 누군가가 받았다.
“형제들과의 의리를 지키고, 상인들과의 의리를 지킨다!”
오랜만에 듣는 그 말에 소적산의 얼굴이 벌게졌다.
당시에는 술김에 내뱉은 말이라고 하나, 세월이 지나 돌이켜 보니 참으로 낯 뜨겁기 짝이 없었다.
그런 소적산을 수하들이 독려했다.
“졸지 마십시오. 긴장해야 하는 건 대형이 아닙니다. 중원 제일 상단주를 맞이해야 할 다른 상단의 주인들이죠.”
“맞습니다. 이참에 그 건방진 놈들에게 아주 본때를 보여 주십시오. 어차피 이 바닥은 재력이 전부 아닙니까? 돈으로 패는 놈이 이기는 법이죠. 무인으로 따지자면 대형이 천하제일고수나 마찬가지입니다.”
소적산이 씨익 웃었다.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때 한 사람이 소적산에게 다가섰다.
신마상단의 북경 지부를 도맡고 있는 사내였다.
“다들 모였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소적산이 자신과 함께하는 수하들을 돌아봤다.
오랜 시간 한결같이 자신을 믿고 지지해 준 고마운 이들이었다.
“그럼 가지.”
그렇게 믿음직한 상단의 간부들을 대동하고 소적산이 도착한 곳은 이 지역에서 가장 최고로 손꼽히는 유명한 객잔이었다.
북경에서도 알아주는 권세가나 부자가 아니면 자리도 잡기 힘들다는 그곳이 오늘은 웬일인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처음에는 신마상단 측에서 하루 정도 이곳을 전세 내려 했었다.
하나 그것이 여의치 않자, 신마상단은 이곳 객잔을 비롯한 일대의 상점가를 아예 통째로 구입해 버렸다.
그래서였을까.
소적산이 들어서자 커다란 팔선탁에 둘러앉아 있던 일곱 명의 사내가 엉거주춤 일어섰다.
그들은 모두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각자 나름대로 중원 전역에서 내로라하는 거부들이었지만 신마상단의 압도적인 재력 앞에 기가 질린 것이다.
그중에는 몇 대에 걸쳐 부를 쌓은 이들도 있었다.
처음 신마상단이 발족했을 때만 해도 온갖 견제와 방해를 일삼던 그들이 이제는 먼저 알아서 기어야 할 정도로 신마상단은 규모에서부터 그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격차가 벌어져 있었다.
소적산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여러 상단주님들을 이리 모시게 되어 영광이외다.”
평소 소탈하던 소적산도 이때만큼은 분위기가 달랐다.
신마상단 전체를 대표해 나선 자리였기 때문이다.
서로 눈치를 살피던 팔선탁의 손님들 중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후덕한 인상의 중년인이었다.
“오히려 저희가 영광입니다. 누구의 초청인데 마다할까요.”
그가 운을 떼자 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앞다투어 입을 열었다.
“전 중원의 자금줄을 틀어쥐고 계시다 해도 과언이 아닌 신마상단의 단주님을 이제야 이렇게 뵙는군요.”
“수로연맹 놈들 때문에 경색되었던 상계가 신마상단 덕에 다시 활력을 찾게 되었으니,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드립니다.”
막혀 있던 장강의 수로 길이 다시 열리며 가장 먼저 그 지역의 운송권을 거머쥔 신마상단이었기에 지금은 그들이 먼저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와해된 장강수로채를 대신해 물길의 치안을 담당하는 곳은 해남검파였고, 그들과 신마상단의 결속력은 오랜 세월 쌓아 온 신뢰만큼이나 단단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소적산의 말에 모인 이들이 입을 다물었다.
소적산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뒤에 도열해 있던 일행 중 한 명이 한 뭉치의 서류를 가져와 팔선탁 위에 올렸다.
“현재까지 밝혀진 동창의 비리와 범죄 사실들이오. 증좌와 증인이 확실한 것만 해도 이 정도요.”
동창이라는 단어가 언급되는 순간 움찔하는 몇몇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소적산은 이를 못 본 척 말을 이어 갔다.
“그들과 연루된 사람들 중에는 여러분의 이름도 들어 있소. 하지만 때론 이권을 놓고 경쟁하는 처지라 하나 우리는 같은 상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 그대들도 아시다시피 언제 또 힘을 합치게 될지 모르는 일 아니오? 그래서 나는 여러분께 기회를 주려고 하오.”
소적산의 눈빛과 태도는 그 여느 때보다 당당하고 위엄이 넘쳤다.
“결정하시오. 곧 침몰할 동창과 함께 운명을 함께할지, 아니면 스스로 이 난관을 타개하여 위기를 기회로 만들지.”
이들도 나름 돈에 있어서는 어디 가서 기죽을 인사들은 아니었다.
하나 이 바닥에서 재력은 곧 힘.
무엇보다 그들 또한 현재 북경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애초에 시류를 읽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거부라 불릴 자격도 없는 것이다.
곳곳에서 무거운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이곳 북경에서 거금을 만지는 사람치고 동창과 금의위 쪽에 선을 대지 않은 경우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아무리 돈이 많다 해도 막강한 정치적 배후가 없이는 지닌 재산을 온전히 보전하기란 요원했기 때문이다.
그때 초빙된 손님들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앞서 언급하신 그 기회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습니까?”
소적산은 방금 말을 건네 온 사람의 얼굴을 확인했다.
이제껏 침묵으로 일관하던 금룡상단의 주인, 금대룡이었다.
한때는 명실상부 중원 제일 상단인 금룡상단이었다.
전설적인 부자인 석숭 이후 가장 막대한 금권을 거머쥔 것으로 알려진 그였으나 지금은 쇠락을 거듭해 중원 팔 대 상단 끝자락에 겨우 이름을 올리고 있는 정도였다.
신마상단을 견제하느라 무리한 탓이었다.
“적극적으로 협조할 경우, 최소한 일신의 안전은 보장해 주겠다 약조하셨소. 그동안 불법적으로 축재한 이익을 환수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어질 것이오.”
살짝 안도한 금대룡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추징될 금액이라 해 봐야 전체 재산에 비하면 그리 큰 액수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 정도만으로 그치는 게 다행이었다.
자칫 최악으로 치달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소적산의 제안은 눈앞에 드리운 동아줄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이어진 소적산의 말에 그의 낯빛이 굳어졌다.
“다만 이 협상안은 동창과 연루된 사안에 관해 숨김없이 증언하고, 숨겨 둔 기밀 장부와 증좌를 모두 제출해야 한다는 조건을 전제로 하고 있소.”
동창의 장인태감 정도를 거꾸러트리기 위해서는 확실한 한 방이 필요했다.
“어설프게 쳐 냈다가 그가 다시 재기라도 한다면 정치적 보복이 따를 것은 분명한 일.”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지 몇몇 이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소적산의 말에 그들의 눈빛에 결연한 의지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우리는 상인이오. 그러니 도박 말고 사업을 합시다. 과욕과 만용을 내려놓고 철저히 사업적인 계산으로 접근한다면 결정은 어렵지 않을 것이오.”
할 말을 마친 소적산이 비로소 웃으며 어딘가를 향해 손짓했다.
그의 신호가 떨어지자 금세 주방에서 갖가지 산해진미들이 쏟아져 나와 팔선탁 안을 가득 채웠다.
“이렇게 상계의 선배님들을 뵙게 된 것도 영광인데, 이 후배의 대접을 마다치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종종 이런 기회가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 말을 남긴 소적산이 예의를 갖춰 인사를 올린 뒤 그대로 돌아섰다.
남겨진 이들은 먹음직스런 음식을 앞에 두고도 선뜻 손을 대지 못했다.
소적산이 남긴 마지막 말이 무척이나 의미심장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 * *
모처럼 단악선과 식사 자리를 마련한 능소밀은 불안한 눈빛으로 범계위를 힐끔거렸다.
‘범 선배님이 여기 계셔도 되는 걸까?’
애써 내색하지 않으려 했으나 하루도 불안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나마 초악량이나 한설화라면 상식적인 사람들이니 걱정이 덜할 텐데, 어디로 튈지 모르는 범계위는 그야말로 심지 짧은 폭탄 같은 존재였다.
가정을 꾸리면서 달라졌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것도 아내와 딸 앞에서나 해당되는 이야기일 뿐.
여전히 그가 보기엔 두렵고 불안한 재앙 그 자체였다.
‘왜 하필 범 선배님이지?’
듣자니 단악선이 직접 부탁했다던데, 여전히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능소밀이었다.
그런데 그때.
“너 왜 눈을 그렇게 뜨냐?”
갑자기 날아든 범계위의 음성에 능소밀이 흠칫했다.
무심코 범계위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나한테 불만이 있는 것 같은 눈빛인데?”
“그, 그럴 리가요.”
“황궁 생활을 오래해서 그런가? 어째 좀 건방져진 것 같기도 하고?”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능소밀이 화들짝 놀라 손을 마구 내저었다.
“아닙니다! 선배님! 제가 어찌 감히 그런…….”
능소밀을 위기에서 구한 사람은 역시 단악선이었다.
“역시 범 아저씨와 오길 잘했어요. 황궁에서의 생활은 따분할 줄 알았거든요. 덕분에 무료하지 않아 좋아요.”
“흐흐. 역시 그렇지?”
대번에 환하게 웃는 범계위의 모습을 보며 능소밀은 뒤늦게 깨달음 하나를 얻었다.
‘아! 그래서였구나!’
사실 단악선도 이제는 아는 것이다.
범계위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만이 유일하다는 사실을.
범계위가 능소밀을 향해 한마디를 툭 던졌다.
“잘하자?”
“넵! 선배님!”
깍듯하게 대답하는 능소밀을 향해 단악선이 질문을 던진 것도 그때였다.
“그런데 이제 끝낼 때도 되지 않았나요? 증거도 충분히 모인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아도 슬슬 여기저기에서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과중한 업무로 인해 도찰원 관원들도 지쳐서 나가떨어지기 직전이고요.”
심지어 황제 쪽에서도 슬슬 사태를 마무리 지으라 언질을 줄 정도였다.
“하지만 아직 사종악을 찾지 못했습니다.”
“만약 동창에서 끝까지 함구한다면요?”
“그때는 어쩔 수 없지요.”
능소밀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반격 따위는 꿈도 꿀 수 없도록 이 기회에 아예 깡그리 참초제근(慘草除根) 하는 수밖에요.”
피 냄새가 물씬 느껴지는 능소밀의 음성에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권력의 쟁투는 무림의 싸움보다 훨씬 더 가혹하고 잔인했다.
만에 하나라도 동창이 이번 위기를 넘긴다면 그 후폭풍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능소밀이 될 터.
한데 그 순간 뜻밖의 소식이 날아들었다.
실내 안으로 황급히 뛰어드는 사내.
얼마나 서둘러 달려왔는지 그의 얼굴에서는 비 오듯 땀이 쏟아지고 있었다.
각 성(省)에 파견한 백여 명의 감찰어사(監察御史) 중에서도 특히나 능력이 출중해 능소밀이 외부 정보 조직과의 연락을 맡긴 자였다.
“무슨 일이냐?”
능소밀의 물음에 황씨 성을 지닌 그가 서둘러 대답했다.
“번강룡의 흔적을 찾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