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98)
신마의선-498화(498/500)
신마의선 (498)
능소밀이 표정을 달리 했다.
“그곳이 어디지?”
“산서성 오태산입니다!”
“오태산?”
“녹림이 비밀리에 마련했던 안가에서 악호군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수색을 담당했던 어사들의 부검(剖檢) 보고에 따르면 산 채로 진원진기가 빨려 절명한 것으로 짐작된다 합니다.”
“하!”
능소밀이 짧게 헛웃음을 흘렸다.
장강의 교룡이 깊은 산에 숨어 있었으니 지금껏 수색이 난항을 겪었던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덧붙여 시급을 요하는 중요한 첩지(諜知) 하나가 더 있습니다.”
이어진 수하의 보고에 능소밀이 깜짝 놀랐다.
“동창의 주요 인사 중 하나가 은밀하게 연락을 취해 왔습니다.”
조심스럽게 건넨 수하의 보고서.
그 안의 내용을 파악한 능소밀이 단악선을 향해 결연한 눈빛을 드러냈다.
“이제 때가 된 듯합니다.”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이자 능소밀이 수하를 향해 지시했다.
“당장 금의위를 소집하라. 일거에 몰아붙여 이번 일을 마무리 짓겠다.”
* * *
그 시각 장인태감은 별도로 마련된 안가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었다.
그의 수족이라 부를 수 있는 최소한의 인원만으로 암암리에 진행되는 회의였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는 모두 다섯.
그 한 명 한 명을 돌아보던 장인태감이 침중한 눈빛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그간 우리에게 협조적이었던 상단들이 대거 이탈하며 우리와의 연결 고리를 끊어 내고 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금껏 자신들이 목줄을 쥐고 있다 여겼던 조정의 관리들 역시 태도를 달리해 속속 능소밀 쪽으로 돌아서고 있었다.
전방위적으로 숨통을 조여 오는 정치적 파상 공세에 동창은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입지가 좁아진 상태였다.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하느니.”
장인태감의 말에 숨죽이고 있던 그의 수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현 상황을 타개할 신묘한 방법이 있겠습니까?”
“일단 시간을 벌고 판 자체를 뒤엎는다.”
장인태감의 눈빛이 스산해졌다.
“적이 유리한 지형에서 싸우는 것은 스스로 패배를 자초하는 어리석은 짓. 따라서 우리에게 유리한 판세로 상황을 이끌 것이다.”
“유리한 판세라 하심은……?”
“이를테면…….”
장인태감이 목소리를 낮춰 하나의 예를 들었다.
“조만간 불순한 무리들이 황궁에 잠입하여 폐하를 시해하려는 시도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
오랜 세월 장인태감을 보필해 온 그들인지라 곧바로 그 의도를 눈치챘다.
이른바 큰 불로 작은 불을 덮는 것이다.
황제의 암살 시도라는 전대미문의 사태에 비하면 동창의 작은 비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 배후를 발본색원하는 과정에서 동창의 힘이 반드시 필요할 터.
호랑이를 산에서 떨어뜨려 놓는 조호리산(調虎離山)의 계책.
비로소 판을 뒤엎는다는 장인태감의 말뜻을 이해한 누군가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범인이 추국 과정에서 숨이 끊어지는 일은 흔한 법이니까요.”
동창의 심문 방법은 그만큼 가혹했다.
“하나 마지막에 자객은 자신의 배후를 지목하겠지요?”
그 배후가 누가 될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이때 그 자리의 누군가가 그 말을 받았다.
“아! 그래서 이 자리에 그가 없는 것이었군요.”
장인태감이 눈살을 찌푸리자 방금 입을 열었던 동창의 당두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는 장인태감을 제외한 모두가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의 심복이라 할 수 있는 모두가 모인 이 자리에 이형백호(理刑百戶)가 없다는 사실이 못내 의아했던 것이다.
어차피 장형천호(掌刑千戶) 유신은 역도로 몰려 종적을 감춘 상태.
그가 장인태감의 오른팔이라면 이형백호(理刑百戶)는 왼팔이나 다름없었다.
이때 그 자리의 누군가가 한 가지 문제를 언급했다.
“그나저나 판을 엎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어떻게……?”
비로소 다른 이들은 장인태감이 시간을 버는 방법을 아직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인태감이 차가운 표정으로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현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쉽게 넘어가지는 못하겠지. 희생을 통해 피해를 줄이는 수밖에.”
이어진 장인태감의 말에 회의에 참석한 수하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도마뱀은 살기 위해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며, 수탉은 제사의 희생물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꼬리 깃털을 뽑아낸다 하였다.”
그가 단미구생(斷尾求生)을 언급하는 순간 자신들의 운명을 직감한 것이다.
“내가 이 자리를 온전히 지키고 있어야 너희 역시 살길이 열린다. 목이 잘린 수탉의 꽁지깃이 되고 싶은 자는 지금 말하라.”
그 말의 의미를 깨닫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들이 괜히 동창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정계 곳곳에 심어 둔 눈과 귀를 통해 능소밀에게 올라가는 보고 대부분은 이미 앞서 파악해 둔 상태.
능소밀이 벼르고 있는 칼이 누구를 노리고 있는지 이제는 확실해져 있었다.
바로 장인태감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집중된 혐의를 이 자리의 모두에게 배분해 자신의 실각을 어떻게든 늦추고자 하는 것이다.
잠시 후.
서로의 시선을 마주한 그의 수하들이 결연한 의지를 담아 입을 열었다.
“속하들은 공공의 명에 따를 뿐이옵니다.”
“부디 속하들의 충정만은 기억해 주소서.”
이어지는 수하들의 충성 서약에 흡족해하던 것도 잠시.
벌컥.
갑자기 열린 회의실 문으로 들어선 수하의 모습에 장인태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슨 일이냐?”
“금의위 병력을 대거 이끌고 도찰원의 장관이 곧장 이곳을 향해 밀고 들어오고 있습니다.”
“뭐라? 대체 이 안가의 위치는 어떻게 알고?”
“그것은 속하도 잘…….”
장인태감은 그만 눈앞이 깜깜해졌다.
애석하게도 시간은 자신들의 편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동창 내에서도 무거운 기밀로 취급되는 안가와 자신의 행적이 드러났다는 사실 자체가 더욱 암담하게 느껴졌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기 때문이다.
바로 내부로부터의 배신이었다.
‘감히 네놈이!’
문득 뇌리를 스치는 한 사람을 떠올린 장인태감이 빠드득 이를 갈았다.
그들이 미처 대비할 틈도 없이 삼엄한 군세가 안가를 에워쌌다.
그리고 곧장 능소밀이 회의실 안으로 들이닥쳤다.
“흠차총독(欽差總督)……. 아! 이제는 아니지.”
당황한 장인태감과 시선을 마주한 능소밀이 비웃음을 말아 올렸다.
“이 시간부로 환관 이괄을 동창관교(東廠官校)의 직에서 파하노라. 아울러 병필태감의 지위 역시 파한다.”
“감히!”
분노에 사로잡혀 일갈을 터트렸던 장인태감의 전신에서 가공할 살기가 뭉클거리며 쏟아졌다.
하나 이어진 능소밀의 말에 그 자리에 굳어 버리고 말았다.
“이 자리의 역도들을 당장 추포하라! 혐의는 폐하의 시해 시도 및 내란 모의다!”
“……!”
장인태감은 모든 것이 어그러졌다는 것을 이 순간 직감했다.
반면 사색이 된 그의 수하들은 자신들을 포박하기 위해 다가서는 금의위 위사들을 향해 일제히 살기를 뿜어내며 내력을 끌어 올렸다.
그들은 하나같이 동창 내에서도 정상급의 무공을 갖춘 고수들.
그 기세에 밀린 금의위가 주춤하는 사이,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 사람에게 모아졌다.
능소밀이었다.
그 순간.
우지끈.
회의실 천장을 박살 내며 떨어져 내린 인영이 있었다.
태연하게 능소밀 곁에 내려선 범계위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주위를 쓸어 봤다.
“반항하면 알지?”
여기서 범계위의 존재가 진가를 발휘했다.
머릿수의 우위를 점하고 있음에도 범계위가 지닌 압도적인 존재감 앞에서는 그 어떤 의미도 없었다.
끝을 짐작할 수 없는 무저갱 같은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심혼이 얼어붙어 입도 뻥긋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확인한 능소밀이 빙긋 웃었다.
“지금부터 저항하는 자는 즉결 처분해도 좋다.”
그 말에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은 범계위였다.
“어? 진짜 죽여도 되는 거냐?”
“폐하의 암살과 조정의 혼란을 획책한 자들입니다. 증인 확보를 통해 혐의가 완전히 입증된 이상 역도로 취급하는 게 당연하지요.”
“그래?”
반색한 범계위가 성큼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저항해! 당장 뭐라도 해 보라고!”
그러나 이미 기세에 눌린 그들은 더욱 위축될 뿐이었다.
그사이 능소밀의 지시를 이행한 금의위의 위사들이 붉은 포승줄로 장인태감에서 끌어내린 이괄을 거칠게 포박했다.
그에게 다가간 능소밀이 섬뜩한 미소를 건넸다.
“어쩌다 이런 괴물이 되어 버렸습니까?”
이를 갈며 자신을 노려보는 노환관의 시선을 마주하던 능소밀이 차갑게 돌아섰다.
“죄인들은 전부 금의위의 조옥으로 압송하라!”
개처럼 끌려 나가는 동창의 고위 인사들을 싸늘한 눈빛으로 응시하길 잠시.
사태를 마무리 지은 능소밀이 곧장 황제가 머무는 침전으로 향했다.
이미 사전에 명을 받은 어림친위들은 능소밀을 제지하지 않고 순순히 길을 터 주었다.
잠시 후.
황제를 마주한 능소밀은 자신보다 앞서 도착해 있는 사례태감을 향해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곧장 황제에게 감찰 결과를 보고했다.
“제독동창을 위시한 동창의 수뇌부 서른일곱 명에 대한 감찰 결과, 다수의 혐의를 입증하여 파직과 동시에 투옥을 마쳤나이다. 또한 이와 연루된 마흔여덟 명에 대해서도 앞서 상신한 보고서 내용대로…….”
황제가 나직이 한숨을 흘린 것도 그때였다.
“그 말인즉슨, 동창을 지탱하던 핵심 인력이 죄다 갈려 나갔다는 의미로군.”
이는 동창의 기능이 실질적으로 마비되었다는 것을 뜻했다.
그들의 공백이 가져올 여파는 실로 적지 않을 터.
그러나 능소밀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만큼 썩을 대로 썩어 있었다는 것이지요.”
“내가 어찌하면 좋겠느냐?”
“소신은 오직 폐하의 뜻에 따를 뿐입니다.”
“으음…….”
고민에 잠긴 황제를 향해 능소밀이 간언을 올렸다.
“오히려 지금이 창위(廠衛) 조직을 송두리째 개편할 적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창(廠)은 동창(東廠), 위(衛)는 금의위를 가리킨다.
황제는 문득 능소밀의 속내가 못내 궁금해졌다.
“짐이 듣겠노라. 의견이 있다면 기탄없이 고하라.”
사례태감을 한 차례 힐끗한 능소밀이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조직 개편안을 소상히 설명했다.
“별도의 환관 기구를 통해 동창을 견제하심이 바람직하다 사료되옵니다.”
능소밀의 계획은 의외로 간단했다.
금의위는 본래 내정어림군(內廷御林軍).
따라서 관료를 감시하는 임무는 그들에게 맡기고, 관민과 금의위를 감시하는 역할은 전과 동일하게 동창에게 일임한다.
여기에 동창에 속하지 않은 환관들로 구성된 별도의 감시 체계를 마련해 금의위와 동창을 전문적으로 감찰하는 것이다.
“그걸로 과연 대안이 되리라 생각하느냐?”
본디 팔은 안으로 굽는 법.
환관동일체라는 그들만의 원칙을 황제도 모르지는 않았다.
과연 별도의 조직을 설립한다 한들 결국 환관끼리 작당해 담합한다면 의미가 있겠냐는 반문이었다.
이에 능소밀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말아 올렸다.
“환관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폐하의 신임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끼리 경쟁하는 구도를 만들어 서로를 견제하는 체제가 갖춰진다면 그것만으로도 한 세력의 독주를 막아 내기엔 충분할 것이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슬쩍 자신의 의중을 묻는 능소밀의 모습에 사례태감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권력을 향한 탐욕에 불을 붙여 환관 세력을 둘로 쪼갠다는 계획은 대담하면서도 효과적이었다.
나직이 한숨을 흘린 사례태감이 입을 연 것은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망국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대부분 환관의 전횡에서 모든 사달이 비롯되었나이다.”
가까이는 왕진이 그랬고, 멀게는 조고가 그랬다.
그러나 환관 중에서는 그들처럼 황권을 농단한 자들과 달리 자신과 같이 진정 황제와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동창의 첩형관인 이형백호 풍보(馮保) 역시 마찬가지. 그 또한 빈직 못지않게 오직 폐하께만 충성하는 인물이옵니다.”
“이번에 짐을 시해를 획책하던 자들을 발고한 그자 말인가?”
“그를 병필태감의 직책과 더불어 향후 동창을 견제할 서창(西廠)의 책임자로 삼는다면 작금과 같은 폐단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황제가 피식 웃으며 능소밀을 바라봤다.
“이 역시 다 네 계획의 일부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