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5)
신마의선-5화(5/500)
신마의선 (5)
날이 밝기 무섭게 단악선이 범계위를 찾아갔다.
그사이 모옥은 한 채가 더 늘어나 있었는데 통나무를 얽어 만든 범계위의 처소였다.
그곳의 처마에는 범계위가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이를 발견한 단악선이 조용히 웃었다.
초악량과 범계위.
다행히 두 사람은 단악선의 말을 잘 따랐고, 별다른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
인기척을 느낀 범계위가 번쩍 눈을 떴다.
핏발 가득한 두 눈 안에서 소름 끼치는 안광이 줄기줄기 흘러 내렸다.
단악선이 인사를 건넸다.
“잘 주무셨어요?”
범계위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따끔거려 죽겠다. 눈 안쪽도 간지러워 미칠 것도 같고.”
범계위가 눈알을 굴려 자신의 머리 쪽을 가리켰다.
“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냐?”
단악선이 대답 대신 범계위를 향해 다가섰다.
반질반질한 범계위의 머리 위로는 여러 개의 침이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단악선은 그 중 유독 검게 물들어 있는 침을 뽑았다.
퐁!
침이 뽑힌 자리에서 핏물이 쏟아졌다.
탁하고 역한 죽은 피였다.
잠시 후 범계위의 머리에서 쏟아지던 핏물이 선홍색으로 바뀌자 단악선은 마개를 막듯 새로운 침을 그 자리에 찔러 넣었다.
“지금은 어떠세요?”
범계위의 얼굴이 환해졌다.
“내 평생 이렇게 머리가 맑은 적은 처음이다!”
그의 흉폭하던 살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대신 평온한 미소만이 얼굴에 가득했다.
“반 각 만 더 계시다가 내려오세요.”
“한 시진. 아니, 꼬박 하루라도 괜찮다.”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오래 버티는 게 꼭 좋은 건 아니니까요.”
범계위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그런데 내 아랫도리는 언제 고쳐지는 게냐?”
단악선이 대답 대신 손가락을 들어 한곳을 가리켰다.
“……!”
그 손가락을 좇아 시선을 움직이던 범계위가 두 눈을 부릅떴다. 불룩하게 솟아 있는 자신의 아랫도리를 그제야 발견한 것이다.
“오오!”
환희에 찬 탄성을 터트린 범계위가 단악선을 향해 소리쳤다.
“고맙네, 단 의원. 정말 고마워!”
빙그레 웃은 단악선이 이번엔 초악량의 처소로 향했다.
초악량은 침상에 좌정한 채 운기조식을 하고 있었다. 눈에 띄게 좋아진 그의 혈색을 확인한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좋아지셨네요.”
초악량이 천천히 눈을 떴다.
“모두 단 의원이 애써 준 덕분이지.”
“오늘부터 산책 정도는 괜찮아요. 곡을 벗어나선 안 되고요.”
단악선이 몇 가지 당부 사항을 덧붙였다.
“격하게 움직이지도 마시고, 숨이 차거나 현기증이 나면 곧바로 휴식을 취하세요. 절대 무리해선 안 돼요.”
“명심하마.”
아침 일과를 마치고 전각으로 돌아온 단악선은 곧장 이 층으로 향했다.
침실 겸 서재로 사용하는 곳이다.
단악선은 입구를 중심으로 양쪽에 위치한 책장에서 각각 두 권의 책자를 뽑아 들었다. 한 권은 성수의록 요상편이었고, 다른 한 권은 생사의록 요체편이었다.
단악선은 두 책자를 꼼꼼히 비교하며 확인했다.
그러다 간혹 비어 있는 공란이 눈에 띄면 붓을 들어 채웠다.
생전에 부모님께서 남기셨던 방대한 임상 치료 기록.
이를 이렇게 다시 요약하고 세분화하여 집대성하는 작업이 단악선의 일과가 된 지 오래였다.
그렇게 집필에 한참 몰입해 있을 때였다.
꽈앙!
건물 전체가 울릴 정도로 엄청난 충격이 느껴졌다.
단악선이 눈살을 찌푸렸다.
붓이 흔들려 책자 곳곳에 먹물이 튄 것이다.
천을 집어 조심스럽게 먹물을 찍어 내는데…….
쿠웅!
다시 한 번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이 이어졌다.
“…….”
단악선이 책을 덮고 일어섰다.
전각을 나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초악량이 머물던 모옥이었다.
반쯤 무너지고 반쯤은 날아간.
상황을 알기 위해 다가가는데 쩌렁한 음성이 허공을 찢었다.
“이 사기꾼!”
범계위의 목소리였다.
초악량이 곧바로 받아쳤다.
“이 자식이 은혜도 모르고!”
“은혜는 무슨 은혜! 내 돈이 필요해서 꼬드긴 거잖아!”
범계위가 더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단 의원 소개해 준 것도 이십 년 전 내 도움을 갚은 거고!”
“그건 널 살려 준 것으로 갚았지. 무림맹 애들이 너 찾는 거 알려 주지 않았다면 거기서 아무것도 모른 채 당했을 거 아냐? 신의를 소개시켜 준 건 별개지.”
“난 내 치료비 다 내고 고치는 건데? 그 돈이면 다른 의원도 목숨 걸고 고쳐줄걸?”
“그렇게 자신 있으면 다른 의원 찾아보든가!”
“흥! 그러라면 내가 못할 줄 알고?”
잔뜩 흥분한 범계위가 씩씩거리며 돌아섰다.
그 순간 단악선과 딱 마주쳐 버렸다.
“정말 가시게요?”
걱정 가득한 단악선의 얼굴에 범계위가 움찔했다.
그러나 이미 한번 내친걸음.
그렇게 큰소리쳤는데 이제 와 물리는 것도 너무 볼품없지 않은가.
“내 저 인간이 뒈지면 다시 오마!”
지나치게 흥분했던 탓일까.
피잉!
그의 머리에서 튀어나와 솟구친 침이 반쯤 무너진 모옥 서까래에 암기처럼 틀어박혔다.
“아저씨, 잠깐만요.”
단악선이 서둘러 전각에 다녀왔다. 그리고 무언가를 범계위에게 내밀었다.
“이거 돌려 드릴게요.”
범계위가 가지고 왔던 전표였다.
“됐다. 그건 모옥 수리비로 써라. 그깟 돈, 뭐가 중요하다고.”
“그래도 다른 의원에게 치료를 받으려면 돈이 있어야 하잖아요.”
전표를 쥐여 주는 단악선을 보며, 범계위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뭐냐?”
전표만이 아니라 작은 주머니에 단약이 들어 있었다.
“의식이 흐려지면 복용하세요. 머리를 맑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거에요.”
단악선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말했다.
“그런데 정말 가셔야겠어요? 무림맹에서 찾고 있다던데…….”
“흥! 걱정은 내가 아니라 놈들이 해야지. 보이는 족족 처죽여 줄 테니까!”
그때 초악량이 끼어들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여기 있어라.”
초악량이 만류했지만 오히려 불난 데 기름 부은 격이었다.
“흥! 누구 좋으라고.”
차가운 웃음과 함께 범계위가 그대로 신형을 날렸다.
순식간에 작은 점으로 변해 사라진 그의 모습에 단악선이 한숨을 내쉬었다.
초악량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후우. 저놈의 성질머리.”
“그런데 왜 싸우신 거예요? 목숨까지 구해 줄 정도로 친하신 것 같더니.”
“그게…….”
초악량이 그답지 않게 곤혹스런 표정을 드러냈다.
“말하기 힘드시면 안 하셔도 되고요.”
“아니. 그런 건 아니다. 다만 조금 민망할 뿐이지.”
초악량이 멋쩍게 웃었다.
“사실 우리 사이엔 서열이 있단다. 우리가 결정한 것은 아니고, 호사가들이 순위를 매긴 거지. 그래서 십대악인이고.”
“그런데요?”
“말했다시피 내가 수좌고 범계위 저놈이 세 번짼데 계속 두 번째라고 우기지 뭐냐.”
“그래서요?”
초악량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게 다다.”
“네?”
“다라고…….”
“그게 이렇게까지 싸울 일인가요?”
초악량이 어색하게 고개를 돌려 단악선의 시선을 피했다.
“저놈하고만 얽히면 상황이 자꾸 이상하게 꼬이는구나.”
단악선이 초악량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확실히 혼자 있을 때와 범계위와 함께 있을 때의 초악량은 확연히 달랐다.
“일단 알겠어요. 그래도 혹시 돌아올 수 있으니 기다려 보죠.”
“그놈이? 아서라. 그건 그놈을 몰라서 하는 소리야.”
초악량이 말을 이어 갔다.
“길을 잘못 들었다고 알려 줘도 끝내 제 놈이 맞다고 우겨 사흘을 돌아오는 놈이다. 고집만큼은 강호 최고야.”
“그래도요.”
단악선이 웃으며 말했다.
“기다리는 사람이 없으면, 돌아올 수가 없잖아요.”
* * *
밤이 깊은 자시 말엽.
짙은 어둠을 헤치며 나아가던 범계위는 갑자기 밀려오는 두통에 머리를 감쌌다.
“으으……. 망할! 왜 또 이러는 거야?”
치료받는 동안은 항상 머리가 맑아 잠시 잊고 있었다.
지금의 고통은 그가 항상 달고 살던 일상이었다.
“차라리 치료를 받지 말걸.”
온전하게 맑은 정신을 경험하고 나니 다시 도진 두통이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설마……?”
범계위가 고개를 숙여 아래쪽을 바라봤다.
역시 반응이 없었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토록 힘차게 존재감을 뿜어내던 녀석이 지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
범계위는 할 말을 잃었다.
상실감이 너무 커 무언가 다른 행동을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그런데 이때.
역한 노린내가 코를 파고들었다.
“……?”
의아함에 고개를 돌리는 순간.
한 쌍의 샛노란 눈동자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
호랑이였다.
그것도 산주(山主)라 불릴 만큼 거대한 몸집을 지닌 놈이다. 잠시 정신을 팔고 있는 사이 지척까지 접근한 것이다.
“크헝!”
쩌렁한 호랑이의 포효가 차가운 밤하늘을 흔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범계위는 대초자곤을 휘둘러 그대로 호랑이의 대가리를 부숴 버렸다.
그 순간 범계위의 얼굴로 핏물이 튀었다.
얼굴에 묻은 핏물을 훔쳐 내던 범계위가 멈칫했다. 점점 눈앞이 붉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으으…….”
범계위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오나 싶더니.
“크아아악!”
그의 광기가 솟구쳤다.
범계위는 미친 듯이 대초자곤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쾅쾅쾅쾅!
무시무시한 충격음이 연이어 밤공기를 뒤흔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집채만 하던 호랑이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짓이겨지고 으깨지다 못해 아예 곤죽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범계위가 핏발 가득한 눈으로 주위를 훑어봤다.
그리곤 어둠 속으로 신형을 날렸다.
콰콰콰쾅!
산 곳곳에서 연이어 폭음이 터져 나왔다.
광기에 몸을 내어 준 범계위는 재앙 그 자체였다.
그는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박살 내기 시작했다.
* * *
다음 날 아침.
정신이 돌아온 범계위는 진한 허탈감에 침음을 흘려야 했다.
눈앞은 마치 한 폭의 지옥도를 펼쳐 놓은 것같이 참혹했다. 무성하던 거목들은 수수깡처럼 박살 나 있었고, 폐허가 된 숲 곳곳에는 피떡이 된 짐승 사체가 즐비했다.
“빌어먹을!”
진절머리가 났다.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그간 얼마나 고생했던가. 그러나 이건 의지로 어찌해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다시금 코끝을 간질이는 비릿한 혈향이 느껴졌다.
그 피 내음에 다시 그의 광기가 꾸물거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범계위가 괴성을 내질렀다.
그렇게 다시 광증이 도지려 할 때.
―도움이 될 거예요.
단악선의 말이 뇌리를 스쳤다.
품속을 뒤지자 신마곡을 떠나기 전 단악선이 건네준 단약이 손에 잡혔다.
범계위는 허겁지겁 약을 씹어 삼켰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광증이 잠잠해졌다.
이제 남은 단약은 두 개.
물론 이건 임시방편일 뿐이다. 단악선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이 지긋지긋한 저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일단 몸부터 씻자.”
몸에 묻은 혈향을 지우는 게 우선이었다.
* * *
산서성 삭주에 위치한 왕정의가(王訂醫家).
초대 가주가 이곳에 터를 닦은 이래, 삼대에 걸쳐 가업을 이어 온 명문 의가로 당대 가주인 왕석필 역시 명의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런 이유로 오늘도 새벽부터 환자들이 밀려들었다.
준비한 네 개의 병상은 이미 다 찬 상태.
왕석필이 한숨을 흘렸다.
점심도 거른 채 환자를 살폈지만 환자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힘닿는 대로 치료하는 수밖에.
“그래, 어떻게 오셨다고?”
왕석필이 묻기 무섭게 병상의 환자들이 한꺼번에 대답했다.
“요즘 변을 잘 못 봐서…….”
“일을 하다 손목을 삐끗했습니다.”
“자꾸 기침이 나고 식은땀이 납니다.”
문진을 통해 환자들의 증상을 확인한 왕석필의 얼굴이 조금은 밝아졌다.
그다지 어려운 치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왕석필이 처방전을 쓰기 위해 돌아서는 순간.
휘잉!
어디선가 갑자기 맹렬한 바람이 들이닥쳤다.
“으악!”
자욱한 먼지와 허공에 흩날리는 처방전 사이로 사람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의가를 휩쓴 일진광풍은 나타날 때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문제는 사라진 것이 바람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병상에 누워 있던 환자들까지 모조리 사라지고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