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50)
신마의선-50화(50/500)
신마의선 (50)
쿠웅.
그를 중심으로 퍼져 나간 육중한 충격파가 계곡 전체를 뒤흔들었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사무심의 눈동자도 덩달아 지진을 일으켰다.
“방금 뭘 하신 겁니까?”
“뭐긴. 평범한 진각이잖아.”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는 범계위의 모습에 사무심이 경악했다.
“이게 평범……이라고요?”
공청석유를 복용한 이후 무공이 일취월장한 사무심이었다.
하나 초악량의 진정한 무위의 일면을 엿본 것만으로도 그저 기가 질릴 뿐이었다.
“이 정도로 호들갑은. 초 형이 완전히 내공을 회복하면 아주 까무러치겠다?”
한편에 서서 초악량의 무공을 가늠하던 한설화도 한마디를 보탰다.
“나쁘지 않네.”
“……!”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하는 사무심을 범계위가 한심하다는 눈으로 보았다.
“괜히 저 인간이 천하오절이라 불렸겠냐?”
사무심이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범계위와 한설화를 보았다.
초악량도 초악량이었지만 이들도 하나같이 말도 안 되는 괴물이었다.
불가해의 영역을 거니는 존재들.
무공에 대한 기준 자체가 자신과는 다른 것이다.
‘하긴.’
다시 초악량을 향해 시선을 돌린 사무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권절이라는 칭호를 거저 내어 줄 만큼 무림은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초악량이 보법을 밟으며 양손을 벼락처럼 휘둘렀다.
잡아채서 꺾고, 누르며, 두드리고, 당기는…….
하나같이 기초적인 수법의 금나수였다.
한데 이 모든 것을 한데 모아 일거에 쏟아 내니 그야말로 신공절학이 따로 없었다.
이를 목도한 사무심은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음에도 손끝에서 터져 나오는 파공음과 예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동작 하나하나가 천하를 호령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것이 바로 “천하제일권의 무공이다!”라고.
사무심은 전에도 몇 번 초악량과 범계위가 무공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워낙 경황도 없어 두 사람의 무위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진지하게 무공을 펼치는 초악량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진짜 천외천의 경지를 온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초 아저씨 정말 대단하네요.”
단악선의 탄성에 범계위가 씨익 웃었다.
“단 의원은 저것보다 훨씬 더 강해질 거야.”
한설화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래야지.”
초악량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 사무심은 그 말에 소름이 돋았다.
두 사람의 말이 결코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체 어떤 괴물을 만들려는 거야?’
그 순간 쩌엉 하는 날카로운 기음과 함께 한순간 초악량의 모습이 일그러졌다가 돌아왔다. 그의 손에 얽혀 있던 공기가 원래의 자리를 찾아가며 빚어진 현상이었다.
초악량이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무공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소득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내공의 성질이 달라졌다!’
고작 삼 할에 불과했지만 온전히 돌아왔고, 무엇보다 내공 자체가 이전보다 훨씬 정순해져 있었다.
거기에 더욱 탄탄해진 기맥.
내달리는 진기에는 거침이 없었으며, 의지를 쫓아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움직인다.
‘어쩌면…….’
이대로 내공을 온전히 회복한다면, 과거에 넘어서지 못했던 한계의 벽을 이번에야말로 뛰어넘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무공과 함께 회복한 것은 자신감뿐만이 아니었다.
초악량의 눈빛 역시 어느새 달라져 있었다.
한때 천하를 오시하던 혈수존자.
그 본연의 눈빛을 오롯이 되찾은 것이다.
일행에게 돌아온 초악량이 입을 열었다.
“다녀올 곳이 있다.”
범계위가 피식했다.
“벌써부터 손이 근질거리는 거요?”
평소라면 대번 핀잔을 날렸을 초악량이 진지한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은밀하게 사파의 인물들을 규합하는 놈이 누구인지 알아봐야 할 것 같다.”
무림맹으로 향하던 도중 만났던 삼몰쌍괴.
왕염과 왕결의 행선지가 못내 신경 쓰였던 것이다.
범계위가 시큰둥한 얼굴로 되물었다.
“우리가 끼어들 일이 아니잖수?”
“삼몰쌍괴를 초빙한 자들이라면 분명 우리에게도 비슷한 제안을 해 올 것이다. 어떤 놈들인지 알아 둬서 손해 볼 일은 아니다. 겸사겸사 무림맹의 현 상황과 칠절마군에 대해서도 알아볼 생각이고.”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칠절마군은 두 사람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터.
자신들뿐이라면 무서울 게 없었지만 단악선과 함께 지내는 만큼 만전을 기해 나쁠 것이 없었다.
* * *
다음 날 아침.
날이 밝기 무섭게 초악량은 짧은 여행을 위한 채비를 마치고 모옥을 나섰다. 범계위가 그 모습을 보며 못마땅한 눈빛을 던졌다.
“아침은 먹고 가시지?”
초악량이 어색하게 웃었다.
“갈 길이 멀어서.”
“치사하긴.”
범계위가 거꾸로 매달려 있던 나무에서 내려왔다.
“거, 몸 좀 나았다고 바로 도망가는 거유?”
“누가 들으면 놀러 가는 줄 알겠다.”
“왜? 안 될 건 뭐야? 놀러 다니슈, 그냥.”
초악량이 의아한 눈빛을 던졌다. 웬일로 이렇게 살갑게 구나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역시나.
“좋은 곳 발견하면 그냥 거기 눌러사는 것도 좋지. 여긴 나한테 맡기고.”
내심 어이없어 범계위를 노려보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벌써 가시는 거예요?”
단악선이었다.
눈을 비비며 걸어오는 단악선의 얼굴에는 미처 떨쳐 내지 못한 수마가 한가득이었다.
“네 녀석이 떠드는 통에 단 의원이 깼잖아.”
“그게 왜 내 탓이유? 꼭두새벽부터 설친 초 형 때문이지.”
으르렁대는 두 사람 사이를 단악선이 비집고 들어왔다. 그리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초악량을 올려다보았다.
“너무 오래 떠나 계시면 안 돼요. 고비를 넘겼다곤 해도 치료는 계속해야 하니까요. 일부 회복은 됐지만, 여전히 불안정한 건 분명하거든요.”
“물론이다. 기껏해야 열흘 정도면 돌아올 테니 너무 염려 말거라.”
“네, 부디 조심하세요. 이것도 챙기시고요.”
단악선이 작은 주머니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밀랍으로 쌓인 작은 환단들이 여러 개 들어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영약을 끌어모아 약초와 함께 배합해 만든 단약이었다.
“밤새 전각의 불을 밝히고 있더라니……. 이걸 만들고 있었던 것이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통 마음이 놓이질 않아서요.”
초악량은 매번 이렇게 진심인 그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했기 때문이다.
“고맙다. 조심해서 다녀오마.”
그 인사를 뒤로하고 초악량이 신마곡을 내려갔다.
경공을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쓰지 않았다.
대신 걷는 내내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단악선의 모습을 몇 번이고 눈에 담았다.
* * *
아두는 거지였다.
올해로 열세 살이 되었지만, 여전히 키가 작은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워낙 제대로 먹질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눈치와 발만은 또래의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만큼 빠르다 자부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사람의 걸음걸이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대번에 눈치챘다. 예전에 단 한 번 저런 걸음을 가진 사람에게 은자를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어떻게 했더라?
자세를 바로 하고, 비굴한 듯 당당하게 고개를 들어 시선을 살짝…….
땡그랑.
역시!
이가 나간 사기그릇 위로 은자 하나가 굴러떨어졌다. 고개를 든 아두의 눈에 한 사람의 얼굴이 들어왔다.
……어라?
“날 기억하느냐?”
“물론이죠!”
아두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서신 한 통 전하는 대가로 무려 은자 한 냥을 쾌척했던 귀인을 어찌 몰라볼까.
초악량이 빙그레 웃으며 품속에서 서신 한 장을 꺼냈다.
“이번에도 할 수 있겠느냐?”
“그럼요. 능소밀이라는 분께 전해 드리면 되는 건가요?”
이번에는 초악량이 놀랐다.
외견과 달리 어린 거지의 기억력이 상당히 비상했던 것이다.
“맡겨만 주세요. 이 동네에서 사람 찾는 건 누구도 절 따라올 수 없으니까요.”
초악량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은자는 이제 네 것이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연거푸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하던 아두는 이상한 기분에 고개를 들었다.
방금 대화를 나눴던 사람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귀신에 홀린 것 같은 기분에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어디에서도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졸다 꿈을 꾼 게 아닌가 싶었지만, 손안의 은자가 꿈이 아니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아두가 서둘러 거적과 동냥 그릇을 챙겼다.
능소밀이라는 사람은 예전에 알아봤을 때 기루에서 자주 모습을 보였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별로 힘들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안타깝게도 그게 쉽지 않아질 모양이다.
“요즘 안 온다고요?”
어린 보조 숙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돈 펑펑 쓰던 대물 고객을 잃었다고 총관이 어찌나 심통을 부리는지 우리만 죽어 나가는 중이야.”
“어쩌지? 이러면 안 되는데?”
당황한 아두가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능소밀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종일 발품을 팔아도 성과가 없었다.
결국 아두는 평소 동냥을 하던 다리 위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제 어쩐다?”
일이 이렇게 꼬일 줄 알았다면 미리 돈을 받는 게 아니었는데.
그렇게 한참 고민하던 중 아두의 눈이 반짝였다.
멀리서 걸어오는 한 사람의 얼굴이 낯익었기 때문이다.
실처럼 가느다란 눈에 큼직한 주먹코.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이 인상적인 사내였다.
‘혹시 저 사람이라면?’
몇 번인가 그가 능소밀과 함께 기루에 들어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아두는 조심스럽게 사내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그를 따라다니다 보면 능소밀과 마주치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기대감 때문이었다.
신소방의 부방주, 이규는 오늘도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았다.
최근 들어 무림맹으로부터 가해지는 압박이 점차 심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게 다 그 자식 때문이야!’
방주였던 능소밀이 미친 짓만 벌이지 않았다면 상황이 이처럼 꼬이지 않았을 텐데.
어느 날인가 능소밀이 자신을 불러 은밀하게 몇 가지 지시를 내린 적이 있었다.
문제는 그 지시의 내용이다.
당금 강호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닌 무림맹. 그들의 신뢰를 얻기에도 모자랄 판에 무림맹과 관련된 정보를 모으라니.
이규는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지시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제대로 된 이유조차 알려 주지 않은 채 그저 다그치듯 지시를 내렸을 뿐이다.
이규는 기가 막혔다.
지금껏 함께한 세월이 이십 년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지시를 내릴 수 있단 말인가? 이 지시 하나로 힘들게 쌓아 올린 신소방이 단번에 날아갈 수 있다는 걸 정말 모른단 말인가?
무엇보다 무림맹은 눈뜬장님이 아니다.
천이단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강호 곳곳에 심어 둔 세작이 수백, 수천이다. 당연히 신소방이 자신들의 뒤를 캐고 있다는 것을 머지않아 알게 될 것이다.
그 후에는?
신소방 따위는 그대로 먼지처럼 쓸려 나갈 것이 분명했다.
이규는 그 길로 무림맹을 찾아가 능소밀을 발고했다.
그것만이 신소방이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양심의 가책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정작 그보다 더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건 따로 있었다.
‘지독한 놈!’
이 와중에도 능소밀은 끝끝내 자신이 쥔 정보를 풀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분명 무림맹의 조사를 지시한 이유가 있을 터.
그런데도 그 일에 대한 배경과 의뢰한 인물에 대해서는 끝끝내 함구했다. 그래서 이규는 파사단에 잡혀 있는 능소밀을 동정하지 않았다.
결국 자기 무덤 자기가 판 꼴 아닌가.
게다가 지금은 자신의 문제만으로도 벅찬 상황이다.
무림맹은 이제 자신들의 조사를 지시한 배후를 밝혀내라는 압력을 노골적으로 가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만 해도 그랬다.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자신을 불러 능소밀이 고문받는 장면을 지켜보도록 했다.
‘젠장!’
이렇게 시간을 지체하다 결과를 내놓지 못한다면 그 역시도 능소밀과 나란히 갇혀 고문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더욱 속이 타들어 갔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
능소밀의 배후만 밝혀낸다면…….
이를 이용해 신소방은 새로운 도약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발판 삼아 자신은 새로운 방주 자리에 오르면 된다.
물론 그러기엔 갈 길이 너무 멀지만.
지금도 어디선가 무림맹 산하의 천이단 소속 무인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혹시 몰라 주위를 살피던 이규의 눈빛이 이채를 발했다.
멀리서 자신을 따라오는 어린 거지 때문이었다.
일각 전에도, 그리고 이각 전에도 봤던 얼굴이다.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시기가 너무 공교롭지 않은가.
게다가 어린 거지의 눈빛은 시종일관 자신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미행이었지만 오히려 그 점을 노린 것일 수도 있다.
잠시 고민하던 이규가 이내 마음을 굳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