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51)
신마의선-51화(51/500)
신마의선 (51)
“어?”
아두는 당황했다.
자신이 뒤쫓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골목 모퉁이를 도는 모습을 확인하고 곧바로 달려왔는데, 눈앞에 아무도 없었다.
더구나 골목은 막다른 길이었다.
그 순간 등 뒤에서 서늘한 음성이 들려왔다.
“궁가방(窮家幫) 사람이냐?”
아두가 깜짝 놀라 돌아보니 사라졌던 사내가 자신이 들어온 골목 입구를 막아서고 있었다.
“너는 몇 결 제자냐?”
“예?”
아두는 당혹스러웠다.
대체 궁가방은 무엇이고 결은 뭐란 말인가? 그러다 문득 무언가를 떠올렸다.
거지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천하제일 방파, 개방.
천하에 거지가 없는 곳은 없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그 어디라도 거지가 있고, 그들 상당수가 개방의 소속이었다.
물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이규가 내뿜는 기세에 잔뜩 움츠러든 아두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무림인이 아닌데요.”
이규가 서늘한 눈빛으로 아두를 응시했다.
확실히 그 어디에도 개방 제자를 상징하는 매듭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째서 내 뒤를 밟은 것이냐?”
“그건 능소밀이라는 분을 찾기 위해서…….”
이규의 눈 위로 기광이 번뜩였다.
“무엇 때문에?”
“그건 말씀드릴 수…… 아악!”
아두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갈고리처럼 휘어진 이규의 손이 어깨를 움켜쥐었기 때문이다. 개방의 제자가 아닌, 길거리의 거지라면 더 이상 그가 거리낄 이유가 없었다.
“내가 익힌 응조수(鷹爪手)는 웬만한 바위에도 손가락 구멍을 만들 수 있지. 한데 그 대상이 사람의 몸이라면 어떨 것 같으냐?”
이규의 눈빛이 스산해졌다.
어깨가 뜯겨 나가는 것 같은 끔찍한 고통에 아두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서신! 서신을 전하라고 하셨어요!”
“누가?”
“이름은 저도 몰라요! 아악!”
아두의 몸을 뒤져 서신을 찾아낸 이규가 순간 멈칫했다.
서찰 중앙에 적혀 있는 붉은 글씨 때문이었다.
혈(血).
휘갈기듯 써진 글자 하나를 보는 순간 온몸의 피가 끓어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그자다!’
아무런 내용도 없이 그저 한 글자뿐이었지만 이규는 이것이 능소밀로 하여금 무림맹의 조사를 지시하게 만든 배후임을 직감했다.
하늘이 정말 제대로 기회를 준 것이다.
이규가 고개를 숙여 아두와 시선을 가까이 했다.
“나를 따라와라. 행여 허튼수작을 부린다면…….”
말끝을 흐린 이규가 조용히 웃었다.
섬뜩한 웃음 위에 살기가 얹어지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위협이 되었다.
아두가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흡족한 표정으로 이규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두는 서둘러 이규의 뒤를 따랐다.
그 순간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쏴아!
한두 방울씩 떨어지던 빗방울이 이내 굵은 빗줄기로 변해 요란하게 바닥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거리를 오가던 사람들이 갑작스런 비에 황급히 내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규는 여전히 여유롭게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때문에 아두 역시 쏟아지는 비를 고스란히 맞아야 했다.
앞서 걷던 이규가 불쑥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전에도 이런 서신을 전한 적이 있었나?”
“네…….”
“그게 언제였지?”
아두가 기억을 더듬어 서신을 전한 날짜를 순순히 털어놓았다.
이규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날이로군.’
향연루의 소문난 기녀인 예월향.
그녀를 품에 안겠다며 호기롭게 나섰던 능소밀이 허탈한 얼굴로 돌아온 날이었다.
돌이켜 보니 확실히 그날부터 그의 행동이 눈에 띄게 달라졌었다.
‘서신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접선 장소를 미리 정해 두었다는 의미.
신소방의 비밀 접선 장소는 부방주인 그 역시 모두 훤히 꿰고 있었다.
‘정말 하늘이 나를 돕는구나.’
아두라 자신을 밝힌 어린 거지를 만난 것도, 그 거지가 하필 배후로 의심되는 누군가의 서신을 지닌 것도.
모두 자신을 위해 안배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이런 기회를 걷어차는 건 머저리나 하는 짓이지.’
순간 아두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다리 한가운데서 멈춰 선 이규가 무표정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아직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했구나.”
아두는 뭐라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벼락처럼 달려든 이규가 그대로 마혈을 짚어 버렸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몸이 뻣뻣하게 굳자 아두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수고했다.”
그 말과 함께 이규가 아두를 다리 난간 밖으로 떠밀었다.
아두가 비명을 질렀지만 이조차도 쏟아지는 빗소리에 삼켜져 버렸다.
첨벙.
물보라를 일으키며 아두가 냇물 아래로 가라앉았다.
날이 저문 데다 비까지 오고 있어 다리 위를 오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운 좋게 하류 어딘가에서 발견되더라도 익사체에서는 그 어떤 흔적도 남지 않았을 터.
그야말로 완벽한 증거 인멸 방법이었다.
“남은 것은 무림맹과의 협상뿐인가?”
칼자루를 거머쥐었다고 생각한 이규는 곧장 무림맹 지부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난주 외곽에 위치한 폐사찰.
오랫동안 사람 손이 닿지 않은 사찰은 허름하기 짝이 없었다. 아니, 허름하다 못해 툭 건드리기만 해도 그대로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았다.
벽을 떠받친 기둥은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고, 흙과 기와를 겨우 이어 붙인 지붕 역시 반쯤 주저앉아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쯧.”
초악량은 짧게 혀를 찼다.
심각할 정도로 물이 새는 지붕 탓에 애써 비를 피한 보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쏟아진 빗물 때문에 온몸은 흠뻑 젖은 지 오래.
게다가 더욱 짜증 나는 것은 나타날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능소밀이 감감무소식이라는 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초악량의 눈썹이 꿈틀했다.
폐사찰 주변을 에워싼 인기척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었다.
‘스물……. 아니, 스물한 명인가?’
그 순간 사찰 안으로 누군가가 들어섰다.
초악량은 단번에 상대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놈은?’
안면이 있는 놈이었다.
지금은 변절한 칠절마군 노단양 휘하의 심복 중 한 명인 팔비요수(八臂擾手) 왕일천이라는 자였다.
초악량은 입맛이 썼다.
왕일천이 무림맹, 그것도 파사단의 복장을 갖춰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팔아넘긴 것인가…….’
제법 사람 보는 안목이 있다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능소밀이 배신을 했을 줄이야.
‘어쩔 수 없지.’
상황이 이리된 마당에 이곳에 더 머물 이유가 없었다.
“우습군.”
어둠 속에서 들려온 음성에 왕일천이 깜짝 놀랐다.
“누구냐!”
왕일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파사단 무인들이 폐사찰 안으로 우르르 밀려들어 왔다. 그들이 손에 쥔 횃불이 너울거리며 사찰 안의 어둠을 걷어 냈다.
어둠 속에 몸을 묻고 있던 초악량이 일렁이는 불빛 아래로 걸어 나왔다.
“가관이군. 파사단이 고작 저따위 사파의 잡졸을 따르다니.”
잠시 얼떨떨한 표정을 짓던 왕일천이 이내 초악량을 알아보곤 헛바람을 들이켰다.
“혀, 혈수존자!”
어찌나 당황했던지 왕일천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설마 이런 곳에서 난데없이 초악량과 맞닥뜨리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젠장!’
자신을 신소방의 부방주라 밝힌 자가 지껄였던 말 중에는 어디에서도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없었다.
다만 신소방의 방주였던 능소밀에게 무림맹에 대한 조사를 지시한 인물로 짐작되는 자가 있고, 그와 접선 장소로 예상되는 곳이 있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래도 일단 첩보가 들어온 이상 그냥 넘길 수 없는 일.
한데 초악량이라니.
토끼 굴인 줄 알고 들쑤셨는데 난데없이 호랑이가 튀어나온 격이었다.
‘어쩌지?’
왕일천의 머릿속에서는 당장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파사단 모두가 이곳으로 병력을 집중했다면 모를까 이 정도 인원으로는 감히 비벼 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마른 섶에 불이 옮겨붙듯 그의 동요는 순식간에 주변으로 번져 나갔다.
그때 수하들 중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조, 조장님. 일단 단주님께 보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겁에 질린 수하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왕일천은 깜깜하던 눈앞에 한 줄기 빛이 드리워지는 것만 같았다.
제법 그럴듯한 명분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보고만큼은 최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냉혹한 노단양이라 할지라도 상을 줬으면 줬지 벌을 내리진 않을 터.
그때였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겁쟁이로구나. 좋다, 옛정을 생각해 한 번은 특별히 기회를 주마. 돌아가라.”
초악량이 건넨 말에 왕일천의 눈 위로 의아함이 떠올랐다.
‘그냥 보내 준다고?’
천하의 혈수존자가 이유 없이 자비를 베풀 리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초악량을 죽이기 위해 파견했던 무림맹의 고수들은 결국 목숨을 잃었지만 그 역시 무사하지 못할 거라는 말이었다.
당시 시신들을 수습한 사람은 그의 상관인 노단양이었다.
그 또한 무림의 고수.
그런 그가 현장에 남겨진 흔적들을 토대로 내린 결론이었으니 충분히 신뢰할 수 있었다. 왕일천은 후퇴할 때 후퇴하더라도 슬쩍 찔러보기로 마음먹었다.
“정말 제가 알던 존자가 맞습니까? 이처럼 관대하신 분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의심도 많으면 병이지.”
왕일천의 의심은 더욱 깊어졌다.
초악량은 그냥 사람을 죽였으면 죽였지 이처럼 애써 말을 늘어놓는 인간이 아니었다.
이때 초악량의 행색이 눈에 들어왔다.
물에 빠진 생쥐처럼 쫄딱 젖은 초악량의 모습에서 왠지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러다 갑자기 떠오르는 바가 있었다.
초악량은 의지를 일으키면 진기가 스스로 일어나 좇는, 심의운기(心意運氣)의 경지에 이른 고수.
게다가 옷이 젖는 걸 끔찍하게 싫어했었다.
심지어 어쩔 수 없이 비를 맞게 되는 경우에는 호신강기를 둘러 아예 비를 차단해 버렸다.
빗방울이 초악량의 지척에 이르자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그대로 미끄러지던 모습은 당시에도 신기 그 자체였다.
지금은 그때와는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자세히 보니 희미하게 손끝도 떨고 있었다.
게다가 애써 감추려 했으나 어딘가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
왕일천은 확신했다.
여러 가지 정황이 초악량이 부상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왕일천이 은밀하게 수하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위축되어 있던 파사단의 분위기가 한순간 달라졌다.
상처 입은 야수를 둘러싼 굶주린 들개처럼 소름 끼치는 눈빛을 흘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고조된 살기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차가운 왕일천의 음성이 사찰 안의 공기를 흔들었다.
“쳐라!”
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파사단의 무인들이 일제히 초악량을 향해 쇄도했다.
그 순간.
“……?”
예상대로 초악량은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한데 그의 입가에 슬며시 맺혀 있는 웃음은 대체 뭐란 말인가?
왕일천의 눈 위로 짙은 의혹의 감정이 떠올랐다.
‘설마?’
왕일천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함정……!”
왕일천이 수하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황급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미처 말을 맺기도 전에 갑자기 실내가 어둠에 잠겼다. 갑자기 들이닥친 강력한 경력이 그들이 가져온 횃불을 모조리 꺼트린 것이다.
삽시간에 사위를 집어삼킨 어둠.
그 속에서 연달아 끔찍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득.
“끄악!”
콰직.
“컥!”
놀란 왕일천이 황급히 뒤로 몸을 뺐다.
그 순간 화끈한 느낌과 함께 왕일천의 코끝이 뭉텅 뜯겨져 나갔다.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왕일천은 정신없이 뒷걸음질 쳤다.
조금만 늦었어도 그 역시 저 비명소리 들과 한데 섞여 있었을 것이다.
‘빌어먹을!’
밀려드는 지독한 절망에 왕일천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완벽하게 속은 것이다.
자신들 중 한 명이라도 놓치면 무림맹에 보고가 올라갈 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초악량은 단숨에 격살할 수 있는 거리까지 자신들을 유인한 것이다.
왕일천은 그대로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밤이 깊은 데다 쏟아지는 비 때문에 방향조차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일단 무작정 달리고 봤다.
그러나 이 역시 의미 없는 도주였다.
단내가 날 정도로 달려 도착한 마을 어귀엔 이미 초악량이 유령처럼 서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