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52)
신마의선-52화(52/500)
신마의선 (52)
“……!”
이쯤 되니 왕일천도 방법이 없었다.
최후의 도박에 모든 것을 내던지는 수밖에.
“죽엇!”
팔비요수라는 별호에 걸맞게 어지러운 손 그림자가 순식간에 초악량의 전면을 뒤덮었다.
그의 손에는 스치기만 해도 절명한다는 극독이 발라진 단검이 들려 있었다. 그러나 목숨을 건 그의 절초는 팔을 비틀어 쳐올리는 간단한 동작 하나에 너무나 쉽게 와해되어 버렸다.
비수를 쥔 왕일천의 손이 튕겨 나가며 그대로 가슴이 훤히 열렸다.
그 위로 초악량의 팔꿈치가 작렬했다.
우드득.
그걸로 끝이었다.
가슴뼈가 산산이 부서진 왕일천이 한바탕 피를 게워 내더니 그대로 주저앉아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
“사, 살려…….”
목숨을 애원하는 왕일천을 향해 서늘한 눈빛이 쏟아졌다.
“가서 칠절마군에게 전해라. 변절자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한지.”
“……?”
의아해하던 왕일천이 이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꼭 전하…….”
살 수 있다는 희망에 왕일천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 순간 초악량의 주먹이 그의 턱을 걷어 올렸다.
꽈직!
뼈가 산산조각 나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왕일천의 신형이 훌훌 날아가 젖은 낙엽처럼 처박혔다. 죽는 순간까지도 왕일천의 눈에는 지울 수 없는 의혹이 가득했다.
“저승에 먼저 가서 전하란 말이다.”
초악량이 천천히 신형을 돌렸다.
그리고 바람 앞의 사시나무처럼 몸을 떠는 사내를 향해 다가섰다.
초악량이 일부러 남겨 놓은 생존자였다.
절망과 공포에 허우적거리는 사내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초악량이 물었다.
“능소밀은 어디 있느냐?”
* * *
치이익.
“끄아악!”
벌겋게 달궈진 인두가 허벅지를 지지자 능소밀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한참 동안 이어진 끔찍한 고통!
살이 타들어 가는 매캐한 내음에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다.
그런데 정작 고문을 가한 심문관의 표정에는 이렇다 할 감흥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좀 말할 생각이 드나?”
“…….”
능소밀은 대답할 기력도 없었다.
묶인 의자에 축 늘어진 채 거친 숨만 헐떡일 뿐이었다.
그의 상태는 실로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손톱과 발톱은 모조리 뽑혀 벌건 속살이 드러나 있었고, 찢긴 옷 사이로 드러난 피부는 온통 울긋불긋했다.
얼굴 역시 마찬가지.
부모가 와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퉁퉁 부어터진 상태였다.
능소밀이 힘겹게 입술을 달싹였다.
“뭐라고?”
심문관이 다가서는 순간. 능소밀이 입안에 고여 있던 핏물을 상대의 얼굴에 뿜었다.
그리곤 히죽 웃었다.
“……조까라고. 씨☓놈아.”
“쯧쯧.”
한차례 혀를 찬 심문관이 능소밀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강제로 머리를 젖혔다. 그리곤 아직도 살점이 타들어 가는 인두를 능소밀의 눈앞에 흔들었다.
“왜 이리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지 모르겠군.”
심문관이 짐짓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예의를 갖추려고 노력했다는 걸 기억해 줬으면 좋겠군. 상황을 이렇게 끌고 온 것은 결국 능 방주야.”
“…….”
“우리가 어째서 이규라는 자를 아직까지 방주로 추대하지 않는지 아나?”
“…….”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돼지와 손잡을 만큼 본 맹이 그리 어려운 형편은 아니거든. 오히려 우리는 능 방주의 능력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다네. 그 어떤 배경도 없는 혈혈단신으로 이 정도 방파를 일궈 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
“그러니 이쯤 하지 그래?”
심문관은 여유로운 태도로 능소밀의 대답을 기다렸다.
고문의 핵심은 얼마나 끔찍한 고통을 가할 수 있느냐가 아니다. 고통을 통해 얼마나 공포를 이끌어 낼 수 있느냐다.
그것도 결국엔 자백을 받아 내기 위한 수단일 뿐.
그 목적을 위해 때론 희망도 필요했다.
바로 지금처럼.
“능 방주가 결정만 내린다면 당장 치료를 해 주겠네. 그리고 자네를 배신한 이규를 넘겨주지. 다시 신소방을 장악할 때까지 본 맹이 직접 나서 능 방주의 신변을 책임져 주겠네.”
“…….”
“게다가 앞으로 진행될 사업을 본 맹과 함께 도모해 볼 수도 있겠지.”
능소밀의 흔들리는 눈빛을 확인한 심문관이 슬쩍 웃음을 말아 올렸다.
역시나 효과가 있었다.
무작정 고문만 가한다고 능사가 아닌 것이다.
능소밀처럼 강단 있는 자는 더욱 그랬다.
절망은 체념을 불러오지만 희망이 생기면 절망 또한 공포가 되는 법이다.
무엇보다 저 눈은 아직 삶을 포기한 눈빛이 아니었다.
능소밀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물……. 물을 좀…….”
심문관이 고개를 끄덕이자 파사단의 무인 한 명이 그릇을 가져와 능소밀의 입에 물을 흘려 넣었다.
벌컥벌컥 물을 들이켠 능소밀은 그제서야 조금 힘이 나는지 눈을 들어 심문관을 올려다보았다.
“나더러 어쩌라고?”
“본 맹에 대한 정보를 따로 모은 이유를 알고 싶군.”
능소밀이 피식 웃었다.
“정보로 먹고사는 놈이 무슨 이유가 있겠어? 일단 닥치는 대로 긁어모으고 보는 거지. 누가 뭐래도 당금 무림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닌 곳이니까.”
“그것뿐인가? 그렇다면 왜 따로 지시를 내렸지? 그것도 유독 파사단주와 파사단에 관련한 정보를 집중적으로 말이야.”
“내가 파사단주님을 사모하거든.”
“뭐?”
“내 취향이 좀 그래. 듣자니 그쪽 맹주도 그렇게 수하들을 꼬셨다던데? 언감생심 맹주는 건드릴 수 없으니 파사단주라도 어떻게 해 보려고 했지.”
와락 얼굴을 구기는 심문관을 향해 능소밀이 킬킬대며 웃었다.
“물 잘 마셨다, 새끼들아.”
심문관이 섬뜩한 눈빛을 흘렸다.
“그래. 그래야 할 거야. 지금부터 물값을 받아 낼 생각이니까.”
그때 파사단의 무인 한 명이 들어서더니 심문관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심문관이 조용히 웃으며 능소밀을 바라봤다.
“마지막 기회를 주지. 왜 파사단의 정보를 따로 모았지?”
“파사단주 살맛이 궁금했다니까?”
“이해할 수가 없군. 자네처럼 영리한 사람이 왜 최악의 선택을 하는지. 안타깝군. 실로 안타까운 일이야. 이건 내 진심일세.”
한숨을 흘린 심문관이 능소밀에게 다가섰다.
“분골착근(分骨錯筋)에 대해서는 들어 봤겠지?”
“……!”
처음으로 능소밀의 눈 위로 진짜 공포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늑골을 부러트릴 거야. 바로 이렇게.”
심문관의 손가락이 능소밀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뚝.
“으아악!”
처절한 비명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심문관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모든 늑골을 하나씩 부러트리는 거지. 그러면 어찌 되는지 아나? 숨 쉴 때마다 부러진 늑골이 폐를 찌르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지옥이 되는 것이다.
“거기에 발목의 힘줄을 자르고, 무릎의 슬개골을 도려내 두 발로 설 수 없게 만들지. 그러고 나서 관절의 마디마디를 부러트리는 거야. 장담하건대, 사람의 몸도 경우에 따라서는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될 걸세.”
물론 그 뒤로도 온갖 고문 수법이 가해진다.
달궈진 부지깽이로 기해혈을 지져 단전을 망가뜨리고, 사지의 인대를 끊어 말려 들어간 근육이 서로 뭉쳐 한데 섞이는 과정까지.
고통 때문에 얕게 숨을 몰아쉬던 능소밀은 분골착근의 순서를 친절하게 설명하는 심문관의 태도에 으스러져라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이어진 마지막 말에 표정이 무너졌다.
“어떤 거지 아이가 네게 서신을 전하려 했다는군.”
“……!”
“이미 접선 장소로 사람을 보냈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심문관이 잔인한 미소를 흘렸다.
“자네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이야기야.”
그 말과 함께 함께 심문관의 손이 능소밀의 반대쪽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뚝.
“씨바알!”
비명 대신 욕설을 터트리는 능소밀의 모습에 심문관이 스산한 눈빛을 던졌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나? 이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배후를 밝힌다면 적어도 고통 없이 보내 주도록 하지.”
두 눈에서 광망을 줄기줄기 흘리며 능소밀이 소리쳤다.
“좆 까! 너 같은 개새끼한테 죽는 게 천추의 한이다! 너희 파사단도 좆같고, 말할 수 없는 그 새끼도 좆같고! 인생 지랄 맞네! 씨☓!”
“말할 수 없는 그 새끼?”
“그래! 그 새끼가 제일 좆같지! 뭐 하나 주는 것도 없으면서 맨날 심부름이나 시키고! 이제 사람까지 죽게 만들어? 양심도 없는 ☓새끼! 내가 귀신이 돼서라도 그 새끼만큼은 두고두고 저주할 거다! 내생에도 다음생에도 영원히 고자로 태어나라!”
“그래서 그 새끼가 누군데?”
“있어! 그런 더러운 새끼!”
“이름은?”
“말 안 한다고 씨☓ 새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능소밀은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등줄기가 서늘해진 까닭이다. 그러고 보니 심문관의 목소리도 어딘가 달라진 기분이 들었다.
능소밀이 고개를 들어 심문관을 바라봤다.
그리고 몇 번이나 눈을 껌벅여 상대를 확인하고, 다시 확인했다.
“아, 씨☓…….”
자신도 모르게 욕이 흘러나왔다.
아무리 봐도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은 초악량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방 안에는 온통 시신만이 즐비했다.
이때만큼은 고통도 잊은 채 능소밀이 울상을 지었다.
“……진짜 좆 됐네.”
* * *
마을을 벗어난 호젓한 산길.
앞서 걷는 초악량을 따르던 능소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언제 오셨습니까?”
초악량이 돌아서자 능소밀이 움찔했다.
“그 새끼가 제일 좆같지부터?”
‘빌어먹을!’
다 들었단 소리다.
초악량이 다시 걷기 시작하자 능소밀 역시 눈치를 살피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능소밀이 신음을 흘렸다.
“크으…….”
이미 늑골이 두 대나 부러진 상황.
걸음 옮기는 걸 떠나 숨을 쉬는 것도 버거운 상태였다. 게다가 며칠동안 이어진 가혹한 고문 탓에 체력도 바닥이었다.
그 와중에도 능소밀은 미친놈처럼 웃음을 흘렸다.
“크큭.”
“뭐가 그리 즐겁지?”
“저를 고문했던 심문관 말입니다.”
“그자가 왜?”
“존자를 뵙고 경악했을 놈의 표정을 상상하니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서요.”
사실 놈이 서신을 가로채 접선지로 파사단을 파견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기분이 좋았었다.
난데없는 날벼락에 넋이 나갔을 놈들을 생각하니 묵은 체증이 한꺼번에 씻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런 능소밀을 초악량이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보았다.
이놈도 확실히 제정신은 아니었다.
가만히 능소밀을 보던 초악량이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어째서 내 이름을 말하지 않았지?”
초악량은 내심 그것이 궁금했다.
따지고 보면 목숨을 걸 정도로 교분을 나눈 것도 아니고, 신의로 맺어진 사이도 아니었다.
굳이 정의하자면 공포로 굴복시킨 관계일 뿐.
온갖 고문에도 능소밀이 버틴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능소밀이 입안에 고인 핏물을 뱉어 내더니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원칙 때문이죠.”
“원칙?”
“존자께서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의아해하는 초악량을 향해 능소밀이 되려 반문했다.
“한번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킨다면서요?”
“그랬지.”
“저도 그렇습니다.”
“그게……. 끝인가?”
“이유가 더 필요합니까?”
물끄러미 능소밀을 응시하던 초악량이 피식 웃었다.
상황이 이쯤 되니 초악량도 능소밀에 대한 생각을 달리해야만 했다.
생각보다 괜찮은 녀석이었던 것이다.
힘 있는 자도 신의를 지키는 것은 어려운 법.
힘없는 자가 신의를 지키는 건 그보다 열 배는 어려운 일이다.
그때 무언가를 떠올린 능소밀이 빠드득 이를 갈았다.
“이규 그 빌어먹을 놈 때문에 버틴 것도 있지만요.”
“이규?”
“부방주로 있는 놈입니다. 무림맹과 파사단에 대해 집중적으로 알아보라 했더니 지레 겁을 집어먹고 절 배신했죠. 저를 무림맹에 밀고한 게 그놈입니다.”
“방주 자리를 욕심낸 건가?”
능소밀이 고개를 끄덕였다.
“놈은 예전부터 신소방이 무림맹 산하로 들어가길 원했으니까요.”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이 이규만은 아니었다.
실제 많은 방파들이 무림맹의 그늘 아래 의탁하고 있었다.
“뭐, 평생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어질 테죠. 지금처럼 목숨 걸고 위험한 일을 자처할 필요도 없고요.”
“네 생각은 다른 모양이군.”
부러진 늑골이 아팠던지 능소밀이 인상을 쓰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