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53)
신마의선-53화(53/500)
신마의선 (53)
“놈들을 어찌 믿습니까? 지금이야 필요하니 간 쓸개 다 내어 줄 것처럼 굴지만 본래 뿌리를 정파에 두고 있는 곳입니다. 언제 내쳐도 이상하지 않지요. 특히나 칠절마군 같은 마두에게 파사단주라는 중책을 맡기는 것도 수상하고요. 과연 그들이 끝까지 신의를 지킬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필요한 만큼 쓰고 미련 없이 버리겠죠.”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나름 정보 단체를 이끈 수장이랍시고 제법 안목이 트여 있었다.
“그래서? 이제 갈 곳은 있나?”
능소밀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이제 신소방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됐다. 무림맹 놈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당연히 수배령을 내렸을 것 아닌가.
“일단 이규 그 자식부터 죽이고 생각하려고요.”
“그 몸으로?”
능소밀이 두 눈에서 자욱한 살기를 뿌려 댔다.
“그런 놈은 어금니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뼈째 씹어 먹어 버릴 거니까요.”
“좋아. 그럼 그 후에 다시 이야기하지.”
“네?”
“말하지 않았나? 난 은원이 확실한 사람이라고.”
초악량이 슬쩍 웃었다.
“그리고 한번 한 말은 반드시 지키지.”
그 말과 함께 초악량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능소밀에게 던졌다. 얼떨결에 이를 받아 든 능소밀이 의아한 눈으로 초악량을 바라봤다.
“뭡니까? 이게.”
“영단이다.”
“영단이요?”
실제론 단악선이 만들어 준 건강 환이었지만 초악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림의 대환단이나 화산파의 자소단 같은 영단을 먹어 본 적은 없어 비교는 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몸으로 겪어 본 효험만큼은 대단했다.
“곧 돌아오지.”
그 말을 남긴 채 초악량이 사라졌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들 만큼 가공할 신법이었다.
“뭐야? 갑자기…….”
얼떨떨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던 능소밀이 초악량이 남기고 간 단약을 보았다.
“설마 독약은 아니겠지?”
물끄러미 단약을 응시하던 능소밀이 이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죽을 놈 살려 놓고 다시 죽일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애초부터 초악량은 독 따위와 거리가 먼 사람이다. 아니, 독 자체를 지독히 싫어하는 사람이다. 당가와의 악연도 독 때문에 생겼다는 사실은 이미 무림에 유명한 일화 아닌가.
당가에선 초악량을 죽이기 위해 가내의 최고 고수를 파견했었다.
천수암제.
명성만큼 무공도 대단해서 천하오절 가운데 한 자리가 비면 다음 차례는 그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였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원한이 뼈에 사무친 것이다.
‘뭐, 그런 그조차 지금은 월하고혼(月下孤魂)이 되어 버렸지만.’
그런 괴물 셋을 동시에 황천에 담가 버린 초악량이다.
마음만 먹으면 손가락 한 번 튕기는 것으로 죽이고도 남았다.
그런 그가 번거롭게 독을 쓸 이유가 없었다.
능소밀이 단약을 감싸고 있던 밀랍을 조심스럽게 벗겼다.
그러자 알싸하고 향긋한 냄새가 주위로 퍼져 나갔다.
초악량이 영단이라고 말한 이유를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 행여 약 기운이 날아갈세라 능소밀이 재빨리 단약을 입으로 가져가 씹어 삼켰다.
그러자 얼마 안 가 따듯한 기운이 온몸을 가득 채우며 순식간에 통증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예상을 훨씬 상회하는 효과에 능소밀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래도 양심은 있네. ☓새끼.”
그때 능소밀의 뒤쪽으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
화들짝 놀란 능소밀이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구름 사이로 언뜻 모습을 드러낸 달 때문에 생긴 나무 그림자였다.
“후우.”
안도의 한숨을 내쉰 능소밀이 놀란 가슴을 다스렸다.
그리곤 손바닥으로 자신의 입을 때렸다.
“입조심하자, 입!”
하염없이 초악량을 기다리던 능소밀이 고민을 거듭했다.
초악량은 돌아온다 했지만 언제까지 여기서 죽치고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머지않아 심문관과 파사단의 죽음이 알려질 것이고, 무림맹이 근처를 수색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튀어?’
그렇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쿵!
육중한 무언가가 그의 눈앞에 떨어졌다.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물러서던 능소밀의 눈이 더없이 크게 떠졌다.
“어?”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사내.
그의 얼굴이 너무나 낯익었기 때문이다.
상대 역시 능소밀을 알아보고 화들짝 놀랐다.
“바, 방주!”
“너 이 새끼!”
이규의 얼굴을 확인한 능소밀이 두 눈을 부릅떴다. 그 순간 두 사람 사이에 초악량이 내려섰다.
“저 자식은 왜 데리고 오신 겁니까?”
능소밀의 물음에 초악량이 의아한 얼굴로 반문했다.
“이놈부터 죽이고 생각한다며?”
“저놈은 멀쩡한데요?”
아무리 봐도 이규는 크게 다친 곳이 없어 보였다.
반면 자신은 고문을 당해 도저히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초악량이 실소하며 능소밀에게 물었다.
“어금니만 있으면 된다 하지 않았나?”
처음엔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던 능소밀의 얼굴 위로 독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그랬죠.”
뿌득.
한차례 이를 갈아붙인 능소밀이 투지를 불태우며 이규를 노려봤다.
“바, 방주! 제 말 좀…….”
“닥치고, 덤벼라.”
야차처럼 얼굴을 일그러트린 능소밀이 이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지금부터 내가 씹어 먹어 줄라니까.”
능소밀이 괴성을 지르며 이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이내 서로 한데 뒤엉켜 개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능소밀은 부상이 심해 온전히 무공을 펼칠 수 없었다.
다만 기세가 달랐다.
능소밀은 자신의 생사를 도외시한 채 죽이려 달려들었고, 반면 이규는 기회를 보아 달아날 생각만 하고 있었다.
싸움에 임하는 그 자세가 확연한 결과의 차이를 보였다.
서로 뒤엉켜 엎치락뒤치락하는 와중에 이규의 응조수가 능소밀의 옆구리에 틀어박혔다.
“왁!”
한바탕 피를 게워 낸 능소밀이 악귀처럼 웃었다.
“……!”
이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온통 피 칠갑한 얼굴로 거리를 좁혀 오는 능소밀의 모습은 더없이 섬뜩했다.
능소밀이 입안에 고여 있던 핏물을 이규의 얼굴을 향해 뿜었다. 그가 당혹감에 허우적거리는 사이 능소밀이 이규의 가슴을 올라타고 앉았다.
이규의 두 팔은 오금 아래 욱여넣어 완벽하게 봉쇄한 상태.
능소밀이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리곤 이마로 이규의 얼굴을 들이받았다.
우직!
한 번.
콰득!
그리고 두 번.
그렇게 연달아 다섯 번의 박치기로 이규의 얼굴을 완전히 으깨 버린 능소밀이 찢어진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지도 않고 미친놈처럼 웃었다.
한편 능소밀이 위험에 처하면 언제든지 손을 쓸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던 초악량은 뜻밖의 결과에 내심 감탄했다.
몸도 성치 않은 능소밀이 멀쩡한 놈을 때려죽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 독기만큼은 초악량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숨을 헐떡이는 능소밀에게 초악량이 다가섰다.
“아직 죽일 놈이 남아 있나?”
“한 명 더 있긴 한데 포기하렵니다.”
예상외의 대답에 초악량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어진 능소밀의 말에 피식 웃고 말았다.
“그 사람은 제 능력 밖이라서요.”
“그럼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지. 이제 어떻게 할 텐가? 갈 곳은 있나?”
“어디 산속에라도 들어가 숨죽이고 살아야죠. 젠장! 월향이가 새 기루를 차렸다고 놀러 오라고 했는데!”
“천이단이 본격적으로 나서면 숨을 곳이 없을 텐데?”
“별수 있습니까? 그럼 죽어야죠.”
바닥에 벌렁 누운 능소밀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걱정 마십시오. 그때도 존자의 이름은 입에 담지 않을 테니까요. 정 의심스러우면 여기서 깔끔하게 죽이시든가요.”
능소밀은 될 대로 되라는 듯이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런 능소밀을 내려다보며 초악량이 말했다.
“일어서라.”
“정말 죽이시려고요?”
긴장이 묻어나는 능소밀의 표정에 초악량이 실소했다.
“머물 곳을 마련해 주마.”
몇 번을 고심한 끝에 능소밀은 결국 초악량을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어딜 간들 살긴 요원했던 탓이었다.
그로부터 보름 후.
‘아니야. 이건 아니야.’
능소밀은 지금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선 이대로 신형을 돌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고 싶었다.
하지만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오른쪽에는 혈수존자가 버티고 있고, 왼쪽에는 망산초자가 서 있었다.
‘게다가 빙옥선자까지!’
생각하면 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아?’
차라리 무림맹 놈들에게 쫓기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물론 이곳에 오기 전 초악량이 간단하게 몇 가지 이야기를 해 주긴 했었다.
그런데 저들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게다가…….
‘수전귀야!’
무림맹이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는 돈 귀신을 이곳에서 마주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혼란스러운 감정이 가득한 능소밀의 눈빛을 마주한 사무심이 사람 좋은 미소를 건넸다.
그러나 정작 능소밀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일단 얽히면 달아날 곳이 저승밖에 없다는 집요한 돈 귀신.
그 악명을 익히 아는 까닭에 사무심의 미소가 소름 끼치고 불길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이 꼬맹이가 신의와 마의의 아들이라고?’
나름 정보 단체를 이끄는 수장이었던 능소밀은 최근 무림맹에서 시작된 소문에 대해 알고 있었다.
성수신의의 진전을 이은 후인이 무림맹주의 딸을 치료했다는 내용이었다.
그것도 무려 절맥을 치료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어린 나이였을 줄이야.
“지독하게 당하셨네요.”
고문으로 엉망이 된 능소밀의 모습에 단악선이 안타까운 눈빛을 흘렸다.
“이렇게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초 아저씨에게 의리를 지키셨다니…….”
단악선의 말에 능소밀은 그저 쓰게 웃을 뿐이었다.
지키고 싶어 지킨 것이 아니었다.
그냥 오기였을 뿐.
“다행히 응급조치는 잘하셨어요.”
단악선의 말에 능소밀이 고개를 갸웃했다.
“응급조치?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순간 사방에서 쏟아지는 살기에 능소밀은 가슴이 철렁했다.
앉아 있는 그대로 심장이 멎어 버릴 만큼 섬뜩한 살기였다.
“……요.”
능소밀이 재빨리 말투를 공대로 바꾸었다.
그러자 전신을 난도질하던 살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근육을 수축시켜 부러진 늑골을 고정하셨네요?”
단악선이 감탄 어린 눈으로 초악량을 바라봤다.
숨 쉴 때마다 부러진 곳이 벌어져 부목을 댄다 해도 접골이 된 상태를 유지하는 게 어려운 곳이 늑골이었기 때문이다.
초악량이 멋쩍게 웃었다.
적어도 금나수에 관해서만큼은 중원 제일이라 자부하는 그였다.
뼈와 관절, 근육의 움직임에 대한 이해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단 의원의 의술에 비하면 조악한 수준이지.”
겸양하는 초악량의 모습에 능소밀은 당혹스러웠다.
천하의 혈수존자가 이처럼 겸손한 태도로 상대방을 존중하는 모습이 그만큼 의외였기 때문이다.
단악선이 새삼 감탄했다.
“무공을 응용하면 이런 치료도 가능하군요.”
단악선이 웃으며 능소밀에게 말했다.
“운이 좋으셨네요. 초 아저씨를 제때 만나지 못하셨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빠졌을 거예요.”
주위를 둘러본 능소밀은 과연 운이 좋은 걸까 싶었다.
‘사방이 괴물 천진데 어디 편하게 물이나 마실 수 있을까?’
그런 능소밀의 속내를 알 리 없는 단악선이 말을 이어 갔다.
“당분간은 정양이 필요해요. 부러진 늑골도 시간이 지나면 아물 테고, 다행히 내상도 호전된 상태예요. 화상을 입은 부위와 외상만 덧나지 않도록 치료하면 될 것 같아요. 상태가 호전될 때까지는 가급적 움직이지 말고 푹 쉬세요.”
단악선이 일행을 둘러보며 의견을 구했다.
“다른 분들만 허락하신다면 이곳에 머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단 의원이 좋다면야.”
범계위의 수락에 한설화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사무심 역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도 좋습니다. 허허.”
그렇게 당사자인 능소밀의 뜻과 상관없이 만장일치로 신마곡의 체류가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