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54)
신마의선-54화(54/500)
신마의선 (54)
그날 밤.
범계위와 한설화가 초악량의 모옥에 모였다.
“노단양 그놈이 제 세상처럼 설친다는데?”
범계위의 물음에 초악량이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가뜩이나 건방진 놈이 무림맹의 권위까지 등에 업었으니 눈에 보이는 게 없는 게지.”
“그런데 그놈이 뭐가 아쉬워 무림맹 앞잡이가 된 거유? 그것도 수하들까지 몽땅 데리고.”
“능소밀 말로는 무림맹주와 약속을 한 것 같다고 하더군.”
“무슨 약속 말이유?”
“자세한 내막까지는 알아내지 못한 모양이야.”
문제는 그가 단주로 있는 파사단이었다.
지금껏 초악량과 범계위가 상당수의 파사단 무인을 쓰러트렸지만 일각에 불과했다.
게다가 지금 이 순간에도 파사단의 인원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무림맹의 권위와 무력을 이용해 신소방과 같은 중소 방파를 흡수해 영향력을 넓혀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얼마 안 가 무림맹이 무림을 꿀꺽하겠는데?”
범계위의 예상에 초악량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돌아가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작금의 현실을 부정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마녀, 넌 어떻게 생각해?”
말없이 차만 홀짝이던 한설화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관심 없어.”
“그럼 왜 듣고 있어?”
한설화가 귀찮은 눈빛으로 대답했다.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두 사람이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기를 잠시.
“야, 마녀.”
범계위가 한설화를 향해 물었다.
“너 솔직히 우리랑 있는 거 재밌지?”
“……?”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이야기하면 항상 옆에 있더라?”
“…….”
한설화는 말없이 차만 홀짝일 뿐이었다.
다시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는 한설화를 향해 초악량이 말했다.
“아까 보니 그 잔 비었던데.”
한설화가 멈칫했다.
무안해진 그녀가 찻잔을 내려놓더니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런 그녀를 초악량이 만류했다.
“그냥 있어. 칠절마군은 그렇다 치고 이제부터는 단 의원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단악선 이야기가 나오자 범계위가 가장 먼저 반응했다.
“단 의원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유?”
한설화가 다시 자리에 앉자 초악량이 입을 열었다.
“내공심법. 일단 익히기로 마음먹은 이상 더 늦어져서는 안 돼.”
“하긴. 지금 시작해도 빠른 편은 아니니까.”
한설화도 처음으로 의견을 냈다.
“천하에 다시 없을 기재를 우리가 망칠 수는 없지.”
고개를 끄덕인 초악량이 두 사람을 향해 물었다.
“언제쯤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이론적으로는 어느 정도 정립이 되었는데…….”
머뭇거리던 범계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론과 실제는 많이 다르잖수.”
세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범계위의 말대로 아직 변수가 많은 상황.
미완성의 내공심법을 섣불리 단악선에게 익히게 할 수는 없었다.
“아무나 붙잡아 와서 가르쳐 볼까?”
지나가듯 툭 던진 범계위의 말에 초악량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좋은 생각인데?”
“응? 그렇수?”
당황한 범계위와 달리 한설화는 초악량의 생각을 바로 눈치챘다.
“마침 적당한 녀석이 들어왔잖아.”
“어? 그렇네?”
그제야 범계위도 두 사람의 의도를 깨달았다.
“그런데 만약 잘못되면?”
범계위의 반문에 초악량이 대답했다.
“고치면 되지. 절맥을 치료한 방법이 원래 주화입마를 치료하는 방법에서 파생된 거라고 하지 않았나?”
“맞아, 그랬어.”
세 사람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렇게 또다시 당사자인 능소밀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같은 시각.
능소밀은 이유 없이 오한을 느꼈다.
쌀쌀해진 밤공기 때문인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뭐지? 이 불길한 느낌은?’
주위를 둘러봤지만 딱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
‘긴장한 탓인가?’
앞서 걷는 사무심의 뒷모습을 보던 능소밀이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소리장도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눈앞의 수전귀야라면 얼마든지 웃음 속에 칼을 감추는 게 가능한 인물이었다.
긴장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능소밀을 안내하던 사무심이 창고 옆에 위치한 모옥을 가리켰다.
“당분간은 이곳에서 지내게.”
사무심의 눈치를 살피며 능소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여긴 총관님의 처소가 아닙니까?”
“환자에게 밤이슬을 맞게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사무심이 인자한 미소를 머금었다.
“먼 길 오느라 피곤할 텐데 부담 갖지 말고 마음 편히 쉬게.”
능소밀이 물끄러미 사무심을 보았다.
도가 지나친 그의 친절에 오히려 의혹과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
‘대체 왜 이러는 거지? 왜 이렇게 잘해 줘?’
심지어 손수 이부자리까지 봐 주고 목마를 때 마실 물까지 준비해 주고 있었다.
결국 참다못해 능소밀이 물었다.
“저…….”
“……?”
“수전귀야로 불리시던……. 사 선배님 맞으시죠?”
사무심이 온화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그렇게 불리던 때도 있었지. 하나 지금은 신마곡의 총관일 뿐일세.”
능소밀은 저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될지 고민했다.
그런 그에게 사무심이 친절한 태도로 말을 이어 갔다.
“지금 자네 심정이 어떨지 내 누구보다 잘 아네. 나 역시 그랬으니까. 그런데 이곳도 결국엔 사람 사는 곳일세. 지내다 보면 익숙해질 게야. 세 분 선배님들은 말할 것도 없고, 곡주님 역시 존경받아 마땅한 분이시니까.”
그 말에 능소밀은 새삼 경계심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의원이라고 했지?’
단악선을 찾아가 무슨 약을 먹였는지 묻고 싶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악랄함으로 그토록 이름 높았던 수전귀야가 득도한 고승처럼 구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능소밀의 뒤쪽을 본 사무심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능소밀이 깜짝 놀랐다.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초악량을 위시한 범계위와 한설화가 묘한 눈빛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능소밀이라고 했나?”
범계위의 말에 능소밀이 움찔했다.
“네? 네!”
“무슨 고기 좋아하냐?”
“예?”
“두 번 말하게 할래?”
범계위가 눈살을 찌푸리자 능소밀이 황급히 대답했다.
“돼지고기 좋아합니다!”
“그래? 알았다.”
그 말을 남기고 범계위가 돌아섰다.
그러자 이번에는 한설화가 물었다.
“과일은?”
“네?”
“…….”
지그시 노려보는 한설화의 눈빛에 능소밀이 황급히 대답했다.
“사, 산딸기! 산딸기 좋아합니다.”
대답을 들은 한설화도 말없이 돌아섰다.
역시나 초악량도 질문을 던졌다.
“무슨 술 좋아하냐?”
“소, 소홍주…….”
말을 다 듣지도 않고 초악량이 사라졌다.
능소밀은 영문을 알 수 없어 멍한 얼굴로 서 있을 뿐이었다.
“대체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이윽고 정신을 차린 능소밀이 사무심에게 물었다.
사무심이 웃으며 대답했다.
“선배님들께서 자네를 마음에 들어 하는 걸 보니 나도 흐뭇하군. 자네도 이만 들어가 쉬게. 난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제가 돕겠습니다.”
“당분간 정양해야 한다는 곡주님의 말씀 못 들었나? 부담 가질 필요 없으니 푹 쉬기나 하게.”
그 말을 끝으로 사무심도 미련 없이 돌아섰다.
홀로 남겨진 능소밀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뭐지? 왜 이렇게 불안한 거야?’
능소밀이 그 이유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능소밀은 자신 앞에 거하게 차려진 음식을 마주하고 눈을 껌벅였다.
한눈에 봐도 먹음직스러운 애저찜과 접시 가득한 산딸기, 그리고 동이째로 가져다 놓은 소홍주 때문이었다.
반면 다른 사람들의 식사는 온통 푸성귀 천지였다.
‘어째서 나만?’
부담스러워 차마 입에 넣을 수 없었다.
망설이는 능소밀을 향해 범계위가 불쑥 입을 열었다.
“뭐 하냐? 안 먹고.”
초악량과 한설화도 마찬가지.
빤히 자신을 바라보는 세 사람의 눈빛에 능소밀이 마지못해 음식을 입으로 가져갔다.
“같이 드시죠?”
혼자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영 민망해서 능소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세 사람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너 다 먹어.”
범계위가 음식들을 능소밀 앞으로 밀었다.
“가, 감사합니다.”
“아니야. 감사는 우리가 해야지.”
“네?”
“얼른 먹어. 남기지 말고 싹 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정작 능소밀은 음식 맛을 느끼지 못했다.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만큼 긴장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중간에 배가 불러 음식을 남기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자신에게 시선을 고정한 세 사람의 부담스러운 눈빛에 차마 남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꾸역꾸역 음식을 모두 먹어 치운 능소밀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다 먹었냐?”
“네…….”
초악량의 물음에 능소밀이 겨우 대답했다.
“그럼 잠깐 우리 좀 보자.”
“…….”
세 사람을 따라 으슥한 곳으로 끌려온 능소밀은 애써 억눌렀던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저더러 무공을 포기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능소밀이 당황해 소리쳤다.
저들에 비해 보잘것없는 수준이었으나 그래도 명색이 무림인이다.
죽었으면 죽었지 무공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초악량이 범계위를 향해 혀를 찼다.
“쯧! 그렇게 앞뒤 자르고 이야기하면 얘가 어떻게 알아듣냐?”
능소밀을 끌고와 범계위가 대뜸 한 말이 ‘네 무공을 없애자’였기 때문이다.
범계위가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틀린 말은 아니잖수. 내공심법을 새로 익히려면 기존의 내공을 모두 흩어 버리는 게 먼저잖소?”
“그러니까 그 이유를 먼저 설명해 줬어야지. 쟤 봐라. 놀라서 숨넘어가게 생겼다. 저래서야 어디 순순히 무공을 배우려 들겠냐?”
“싫다면 지가 어쩔 건데?”
범계위가 능소밀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말해 봐. 우리한테 무공 배우는 게 싫어?”
“그, 그게…….”
바로 코앞에서 범계위의 살기를 맞닥뜨린 능소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갔다.
범계위를 향해 한심한 눈빛을 던진 초악량이 결국 앞으로 나섰다.
“이번 일을 겪고 깨달은 바가 있다.”
잔뜩 겁에 질려 뒤룩뒤룩 눈만 굴리는 능소밀이 이어진 초악량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네가 날 위해 그토록 애써 주었으니 나 역시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해 줘야 하지 않겠느냐?”
“보상이요?”
“우리가 친히 네게 무공을 하사하도록 하마.”
무언가 수상함을 느낀 능소밀이 재빨리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보답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닙니다!”
“사양하지 마라.”
그 순간 범계위가 불쑥 끼어들었다.
“사양하면 안 되지.”
“……!”
“설마 우리의 호의를 무시하는 건 아닐 거야. 그치?”
사색이 된 능소밀은 그제야 저들이 고기며 술을 구해다 준 이유를 깨달았다.
역시나 단순한 선물일 리 없었던 것이다.
“네게도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이 무림이라는 곳의 생리가 실력이 받쳐 줘야만 모진 꼴을 겪지 않는 곳이니까.”
능소밀이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더러 선배님들의 공동전인이 되라는 말씀이십니까?”
한설화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범계위도 어이없긴 마찬가지.
자칫 오해가 생길까 우려한 초악량이 서둘러 설명을 이어 갔다.
“우리의 독문 무공을 전수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 셋이 함께 창안한 무공을 네게 가르치려 한다.”
‘그게 뭐가 다른데?’
능소밀은 갑자기 불안해졌다.
그래도 명색이 정보 단체의 수장이었던 능소밀이다.
다른 건 몰라도 주어진 정보를 취합해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만큼은 누구 못지않게 뛰어난 것이다.
‘이런 망할……!’
이어진 초악량과 범계위의 대화를 통해 능소밀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깨달았다.
한마디로 새로 창안한 내공심법을 실험할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기가 막히다 못해 아연할 수밖에.
능소밀은 자신의 운명 앞에 드리운 짙은 암운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