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55)
신마의선-55화(55/500)
신마의선 (55)
능소밀이 애써 침착한 표정으로 초악량에게 물었다.
“저는 사실 딱히 무공에 큰 욕심이 없습니다. 이 나이에 내공심법을 새로 익힌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초악량이 진지하게 타일렀다.
“잘 생각해라. 무림 최고의 내공심법을 최초로 익힐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이건 네게 진정한 기연이 될 것이다.”
“하오나 전 이미 삼십 년이나 쌓은 내공이…….”
한설화가 실소했다.
이때 범계위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그딴 잡기는 잊어! 내가 깔끔하게 날려 줄게.”
능소밀이 화들짝 놀랐다.
“나, 날린다뇨?”
초악량이 쓰게 웃으며 능소밀을 바라봤다.
“삼십 년의 내공이라 하나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사실 양보다 질이 중요한 것이 내공이기 때문이다.”
한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삼십 년 가지고 생색은. 그 정도 내공은 내가 무공 수련한 지 이 년 만에 얻었다.”
“난 일 년 정도 걸렸지.”
초악량의 말에 범계위 역시 지지 않고 외쳤다.
“난 여섯 달!”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리며 범계위를 노려봤다.
“제발 허풍도 상황 봐 가며 하면 안 되냐?”
한설화도 범계위를 향해 못마땅한 눈빛을 던졌다.
이에 범계위는 갑자기 억울해졌다.
“진짜야! 우리 사부님한테 물어…….”
“돌아가셨다며?”
“…….”
세 사람의 대화에 능소밀은 차원이 다른 소외감을 느꼈다.
그러나 저들 모두 하나같이 희대의 천재라고 할 수 있는 무재들이었으니 달리 반박할 방법도 없었다.
그러나 자신의 운명이 달린 이상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
말이 좋아 천하제일 신공이지, 아직까지 검증되지도 않은 사이비 무공에 목숨을 맡길 수는 없었다.
무공을 익히는 것과 창안하는 것은 그만큼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앓느니 죽지!’
어설픈 무리를 앞세워 만들어진 내공심법을 익히다 주화입마에 빠져 폐인이 된 자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저는 지금 상태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능소밀의 말에 초악량이 그답지 않게 끈질긴 설득을 이어 갔다.
“파사단 놈들에게 당했던 기억을 떠올려 봐라. 만약 네가 이 내공심법을 익혔다면 놈들은 한주먹 거리도 안 되었을 것이다.”
“뭐,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 일도 겪고, 저런 일도 겪는 법 아니겠습니까?”
“최고의 내공심법이라고 우리가 보증한다니까?”
“그러니 더욱 저처럼 재능 없는 놈이 익히면 안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무공이 아깝죠.”
상황이 이쯤 되니 초악량의 눈빛도 점차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그로서는 나름 최선의 인내심을 발휘한 셈이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였다.
이는 범계위와 한설화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때 식사를 정리하기 위해 오가던 사무심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다가왔다.
“정 필요하시다면 제가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에 범계위가 폭발했다.
“뭐, 인마? 기껏 공청석유 먹여서 만들어 준 내공을 몽땅 날리겠단 말이야?”
초악량과 한설화도 덩달아 살기를 피워 올렸다.
사무심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능소밀을 보았다.
“하아―! 아쉽지만 나는 저분들께서 창안한 내공심법을 익힐 수가 없겠군.”
하나 능소밀은 다른 의미로 놀라는 중이었다.
‘공청석유?’
무슨 약을 먹었길래 사람이 저리 바뀌었나 싶었더니 그게 공청석유였을 줄이야!
‘나라도 그렇겠다!’
당연히 세상이 온통 꽃밭처럼 느껴지겠지.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과욕을 부렸습니다.”
공손히 사과하고 물러서는 사무심의 모습에 능소밀의 머릿속에서 한 줄기 의혹이 고개를 들었다.
‘공청석유씩이나 복용한 사람이 이렇게나 아쉬워한다고?’
능소밀은 마음이 흔들렸다.
‘설마 진짜 신공인가?’
그 순간.
온몸이 서걱서걱 잘려져 나갈 것 같은 가공할 기파를 느낀 능소밀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그대로 굳어졌다.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족히 백번을 죽이고도 남을 것 같은 눈빛들이 자신에게 고정된 채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처음부터 제게 결정권은 없었던 겁니까?”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거절하면……, 죽습니까?”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초악량의 말을 범계위가 받았다.
“죽이지 않아.”
그리고 한설화가 쐐기를 박았다.
“죽이지는.”
“…….”
능소밀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대놓고 죽인다는 말보다 저 말이 더 무서웠다.
능소밀이 한숨을 내쉬었다.
“좋습니다. 대신 하나만 확실히 짚고 넘어가죠.”
능소밀이 세 사람을 향해 물었다.
“그러니까 세 분께서 창안한 무공이 안전한지 아닌지를 저를 통해 확인하고 싶으신 거죠?”
“그게 뭐가 중요해? 아나 모르나 어차피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걸.”
범계위의 반문에 능소밀이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당하더라도 알고 당해야 그나마 덜 억울하니까요.”
“오히려 그 반대 아니야? 알면서도 당하는 건 멍청한 거지.”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닙니다. 영문도 모르고 배신을 당해 보니 삶의 가치관이 바뀌더군요.”
그 말에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이 맞다. 하지만 무림 역사상 최고의 내공 심법이라 자부한다!”
범계위의 말에 초악량도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내가 이십 년만 젊었어도 당장의 내공을 포기하더라도 이것을 익혔을 것이다.”
한설화도 한마디 보탰다.
“단 의원이 익히게 될 무공이다. 허투루 만들었을 것 같으냐?”
자부심이 느껴지는 세 사람의 확답에 능소밀은 조금은 믿음이 갔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요? 주화입마라든가, 그 외의 부작용 같은 것 말입니다.”
세 사람이 동시에 웃었다.
그들에게는 단악선이라는, 확실하게 비빌 언덕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담한다. 너는 이곳에서 기연을 만난 것이다.”
초악량의 말에 나머지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능소밀은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가 있어도 어차피 저들을 뿌리치고 달아날 방법은 전무했다.
“좋습니다. 하겠습니다.”
이로써 능소밀은 세 사람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내공심법, 위화신공을 최초로 익히는 사람이 되었다.
* * *
내공을 쌓으려면 운기토납(運氣吐納)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내공심법의 구결에 따라 진기를 일주천(一周天) 시켜 단전에 갈무리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운기행공을 반복해야 단전에 내공이 쌓이기 시작한다.
따라서 내공은 단순히 무인의 강함을 논하는 척도만이 아니었다.
살아온 세월만큼 경주했던 노력.
무인으로서의 삶을 증명하는 정체성과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무인들은 팔 하나를 자르면 잘랐지, 내공만큼은 포기하지 못한다.
그만큼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주저하는 능소밀을 향해 초악량은 말했다.
―새롭게 채우기 위해서는 우선 비워 내야 하는 법이다.
각오를 다지며 고개를 끄덕이자 범계위가 나섰다.
등 쪽의 명문혈을 통해 쏟아져 들어온 극양의 진기가 기맥을 따라 움직이며 단전이 위치한 기해혈을 파고들었다.
그리곤 순식간에 능소밀의 내공을 태워 날려 버렸다.
서로 다른 성질의 내공과 내공이 직접 충돌하면 자연스럽게 서로 반발하는 법.
한데 수준의 차원이 다르니 저항조차 불가능했다.
그리고 찾아온 것은 공허함이었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모든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 같은 괴로움이었다.
문득 처음 내공을 익혔던 때가 떠올랐다.
여덟 살 무렵.
돌림병으로 가족을 잃은 능소밀은 사흘을 내리 굶었다.
그리고 나흘째 되던 날.
살기 위해 자신을 팔았다.
그렇게 하오문에 입문하게 된 능소밀은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갖은 모욕과 폭력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운 좋게 운기토납법 하나를 얻었다.
제대로 된 이름도 없이 구결 몇 개가 전부인 삼류 내공심법이었다.
그래도 당시엔 세상을 전부 다 가진 것만 같았다.
내공을 쌓는 과정은 매우 더디고 지난했다.
오 년 넘게 수련했음에도 단전에는 고작 일 년 남짓한 수위의 내공만 쌓였을 뿐이었으니까.
하나 그조차도 능소밀은 감지덕지했다.
그러다 하오문 지부장의 눈에 들게 되었다.
그의 지도 아래 비로소 능소밀은 제대로 된 내공심법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삼십 년 동안 하루도 내공 수련을 거른 적이 없었다.
사람은 가까웠다 멀어지고 돈도 있다가 없어졌지만 그렇게 쌓아 온 내공은 온전히 그만의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마저도 사라져 버렸다.
그 상실감은 말로는 이루 설명할 수 없었다.
그렇게 열흘이 지났다.
이어진 열흘간은 몹시 고통스러웠다.
초악량을 비롯한 다른 두 사람이 임독양맥을 강제로 뚫어 버렸기 때문이다.
믿기 어려웠지만 저들이 단 의원이라 부르는 이곳의 곡주는 이미 임독양맥을 타통했다고 한다.
그래서 같은 조건을 갖추기 위해 그 역시 임독양맥을 타통해야 한다고 했다.
말이 좋아 타통이지 그 과정은 지금껏 받아 온 그 어떤 고문과도 견줄 바가 아니었다.
해일처럼 밀려든 막대한 진기가 거대한 압력이 되어 몸속 곳곳을 비집고 뒤집었다.
온몸이 갈가리 찢겨져 나가는 극심한 고통에 하루에도 몇 번씩 정신을 잃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죽기 전에 마주한다는 주마등이 눈앞을 스칠 정도였다.
열다섯이 되던 해.
능소밀은 하오문 소속의 기루와 도박판에서 심부름과 잡일을 전담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로 하오문에 입문한 또래들과 친해진 것도 그 무렵이었다.
어느 날인가 도박판에서 유명한 문파의 제자가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인은 독살.
그에게 술과 음식을 가져다준 사람으로 능소밀과 친구 한 명이 지목되었다.
당연히 보호해 주리라 믿었던 하오문은 오히려 허위 진술을 강요했다.
한 사람의 용모파기를 보여 주며 그가 독을 타도록 사주했다고 진술할 것을 지시한 것이다.
하오문 상부는 그 대가로 신변의 안전과 더 높은 지위를 약속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사탕발림에 속을 만큼 능소밀은 어리석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쓰다 버려진 이들의 말로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순히 상부의 지시에 응하는 척, 그들을 방심시킨 뒤 기회를 보아 친구와 함께 달아났다.
혹시 모를 추적에 대비해 며칠 밤낮을 쉬지 않고 도망쳤다.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이 되겠다고 맹세를 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그리고 새로운 신분으로 위장해 새 인생을 시작했다.
그렇게 두 사람으로 시작된 신소방이었다.
이후 말로 설명하기 힘든 수많은 고생을 겪었다.
그래도 서로의 등을 믿고 맡긴 친구가 있어 버틸 수가 있었다.
이규의 배신이 더욱 뼈아픈 이유도 그래서였다.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신소방을 일궈 온 유일한 친구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그래 봐야 뭐 하나.’
결국 돌고 돌아 처음과 다를 바 없는 신세였다.
지금의 이 끔찍한 고통도 마찬가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초악량에게 일신을 의탁한 대가였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하오문에 팔았던 당시와 조금도 나아진 게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끝이 없을 것 같던 고통의 시간이 끝나자 능소밀은 달라진 세상을 마주할 수 있었다.
스스로 놀랄 정도로 달라진 육체의 변화 때문이었다.
과거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 감각이 예민해진 것은 물론이고, 반응 속도와 인지 능력 역시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근력 또한 마찬가지.
피로가 쉽게 쌓이지도 않았고, 체력의 회복 역시 무서울 정도였다.
마지막 열흘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단전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기운 때문이었다.
임독양맥을 타통한 상태에서의 운기행공은 확실히 달랐다.
진기를 일주천 하는 시간도 삼 분의 일 이상 단축되었고, 반대로 단전에 축적되는 내공의 양은 월등히 많았다.
당연히 내공이 쌓이는 속도 자체가 달랐다.
그야말로 천양지차.
더구나 일대종사에 버금가는 세 사람이 심혈을 기울여 창안한 내공심법인 만큼 엄청난 기세로 내공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초악량과 범계위, 한설화 역시 수고를 마다치 않았다.
혹시 모를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능소밀이 운공 할 때마다 반드시 한 명 이상은 옆에서 상태를 지켜봤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오가는 저들의 대화를 통해 능소밀은 그들이 얼마나 위화신공에 공을 들였는지 알게 되었다.
그렇게 위화신공을 익힌 지 한 달째 되는 날.
운기행공을 마친 능소밀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