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56)
신마의선-56화(56/500)
신마의선 (56)
“진짜 기연이 맞았구나!”
운기행공을 마친 능소밀이 탄성을 흘렸다.
단전을 채운 내공 수위를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다.
“이전의 내공을 한 달 만에 따라잡다니…….”
그렇게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삐이익!
어디선가 들려온 피리 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운공이 끝났기에 망정이지 도중에 들었다면 집중력이 흔들렸을 만큼 시끄러운 소리였다.
모옥 밖으로 나온 능소밀은 눈살을 찌푸린 채 밖으로 나서는 초악량을 발견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범계위와 한설화도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같이 미간을 찡그린 채 불쾌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이었다.
유일하게 단악선만 태연한 표정으로 계곡 안을 거닐고 있을 뿐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난리냐?”
범계위의 물음에 단악선이 웃으며 대답했다.
“총관님이 퉁소를 연습하고 계시는 거예요.”
“갑자기 왜?”
“취미를 가지고 싶다고 하셔서 제가 추천해 드렸어요.”
“이건 도저히 들어 줄 수준이 아닌데?”
그 말에 능소밀도 크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의 호곡성을 방불케 하는 음률은 그만큼 난폭하고 기괴했다.
대체 퉁소에서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나오는지 신기했다.
이 정도면 음공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거기에 한술 더 떠 노랫가락도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길 가는 이들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돌아보면 모든 자취는 지워져 있고 추억(追億)은 미로와 같나니,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는 설주 뱃전에 풍운이 물결 되어 출렁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길 가는 이들이여. 그대 비록 악(惡)을 이기지 못하였으나 약(藥)과 마음을 얻었으면, 아픈 세상으로 가서 아프자.”
견디다 못한 한설화가 솜을 뭉쳐 귀를 막았다.
피리 연주도 연주였지만 노래 실력 또한 그에 못지않게 끔찍했던 것이다.
결국 범계위가 버럭했다.
“작작 하지 못해? 여기 너 혼자 사냐?”
쩌렁한 그의 음성이 대기를 흔들었다.
잠시 후 사무심이 머쓱한 웃음을 흘리며 나타났다.
“하하, 죄송합니다. 저 혼자 흥에 취해 버렸군요.”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지금 상황이 딱 그랬다.
이렇게 먼저 선선히 사과를 해 버리니 오히려 범계위가 뻘쭘했다.
이때 초악량이 입을 열었다.
“산해경(山海經)의 문구더냐?”
사무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지막 글귀에 곡을 붙여 보았습니다.”
“한데 왜 하필 산해경인가? 그건 신화를 한데 엮은 지리서일 텐데?”
“창고에 굴러다니던 것을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지난번 시장에서 비품들을 구입했을 때 딸려 온 모양입니다. 아시다시피 이곳에 있는 책이라곤 하나같이 죄다 의서들뿐이잖습니까?”
“하긴.”
가뜩이나 딱딱한 내용의 의서로 노래를 만들었다면 그 자체로 더욱 기괴했을 것이다.
“어쨌든 적당히 해라.”
“주의하겠습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멀어지는 사무심을 바라보며 범계위가 투덜댔다.
“죽다 살아나더니 정말 이상해졌어. 뭐가 그리 좋은지 맨날 실실거리기만 하고.”
반면 능소밀은 멍한 눈으로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의도한 것은 아닌, 단순한 우연이었겠지만 사무심이 읊조렸던 산해경의 문구가 지금의 자신과 자꾸만 겹쳐졌기 때문이다.
‘길 가는 이들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렇게 몇 번이고 속으로 되뇐 능소밀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삶이라는 것이 본디 그런 게 아니겠는가.
“공덕녀(功德女)와 흑암녀(黑暗女)는 늘 함께 하는 법.”
열반경(涅槃經) 성행품(聖行品)에 적혀 있는 말을 떠올렸다.
공덕녀는 재물과 건강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선녀(善女)인 반면 흑암녀는 불행과 재난을 가져다주는 악녀(惡女).
하지만 그들 자매는 늘 항상 같이 다닌다고 했다.
불행한 일을 계기로 이곳 신마곡에 들어왔지만 지금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그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던 초악량이 눈살을 찡그렸다.
“쟤는 또 왜 저래? 내공심법의 부작용인가?”
“그럴 리가.”
단호하게 부정한 범계위가 이내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여기 터가 안 좋은가? 어째 하나같이 여기에만 오면 이상해지지?”
“너나 한 누이는 원래부터 이상하지 않았느냐?”
“다른 사람은 몰라도 초 형에게는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수.”
평소처럼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한설화가 지겹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돌아섰다.
* * *
능소밀이 신마곡에 온 지도 벌써 두 달이 흘렀다.
그사이 계절이 바뀌고 날씨는 제법 쌀쌀해져서 만산홍엽(滿山紅葉)의 가을 정취를 만끽할 수 있었다.
아침부터 부산한 신마곡의 분위기에 능소밀은 이내 이유를 깨달았다.
‘아, 오늘이었던가?’
사무심이 추진한 상행단이 첫 여정에 나서는 날이었다.
잠시 후, 짐을 바리바리 꾸린 사무심이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총관님께서 직접 가셔야 하는 건가요?”
아쉬워하는 단악선의 모습에 사무심이 슬쩍 웃음을 머금었다.
“아무래도 첫 상행이니까요.”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고수는 필요했다.
게다가 그만큼 초원길에 익숙한 사람도 없었다.
“전서에 의하면 제가 잡아 넘겼던 애송이가 혈운사 우두머리의 후계자라 하더군요. 저와 친분이 두터운 부족이 놈을 인질로 삼아 혈운사와 협상을 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일부 교역로의 안전을 확보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다.
언제 약속을 번복할지 모르는 혈운사였기 때문이다.
“부디 조심하세요. 이거 꼭 챙기시고요.”
먼 길을 떠나야 하는 사무심이었기에 단악선은 그에게 상비약으로 쓸 단환 한 상자를 챙겨 주었다.
“최대한 아껴 쓰겠습니다.”
사무심의 말에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상황이 되는 대로 바로바로 쓰세요. 단약은 언제든 다시 만들 수 있으니까요.”
사무심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초악량과 범계위, 한설화와 차례대로 인사를 나눈 사무심이 짐을 수레에 싣고 신마곡을 나섰다.
그런 그를 능소밀이 배웅했다.
“이만 들어가게.”
“형님…….”
능소밀이 애잔한 눈빛으로 사무심을 바라봤다.
고작 두 달.
짧다면 짧다 할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그들은 제법 정이 쌓여 어느새 흉금을 터놓는 사이가 되었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게 된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신마곡 안에서 유일하게 나이대가 비슷했기 때문이다.
“무사히 다녀오십시오.”
“고맙네. 내가 없는 동안 곡주님과 세 분 선배님을 잘 부탁하네.”
그러다 문득 생각난 듯 사무심이 한 가지를 더 당부했다.
“이따금 시간이 나면 마을에 들러 이의당 쪽도 한 번씩 살펴봐 주게.”
“염려 마십시오. 녀석들뿐만 아니라 형님께서 애지중지하시는 비둘기들도 잘 돌보겠습니다.”
“허허, 고맙네. 내 나중에 사례는 톡톡히 하겠네.”
“사례라니요! 저는 형님이 무탈하게 돌아오시는 것으로 족합니다.”
“그럼 고생하게.”
그렇게 인사를 나눈 뒤 사무심이 멀어졌다.
능소밀은 사무심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다 신마곡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어딘가 평소와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단악선을 둘러싼 세 사람이 더없이 진지한 눈빛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부터 무공 수련을 시작하자.”
초악량의 말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미 오래전부터 약조가 되어 있었기에 단악선은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초악량을 비롯한 다른 두 사람은 약간의 거리를 두고 품자 형태로 단악선을 둘러쌌다.
호법을 서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세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단악선이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은 채 구결에 집중했다.
그 모습에 능소밀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내공 수련이 처음……이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직접 진기를 이끌어 주는 도인 과정도 없고, 심지어 내공의 구결조차 언급하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조차 처음 위화신공을 익힐 때 초악량과 범계위가 번갈아 가며 도움을 주지 않았던가.
범계위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위화신공을 만든 사람이 단 의원이다. 우리가 역할을 하긴 했지만, 신공에 가장 이해가 깊은 사람 역시 단 의원이지.”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혈도나 기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니, 괜히 조언이랍시고 말을 보태 봐야 잡념만 늘어날 뿐이지.”
“……!”
능소밀이 놀란 눈으로 단악선을 보았다.
그 순간 단악선이 감았던 눈을 뜨며 탄성을 흘렸다.
“아! 깜빡할 뻔했네요.”
“뭐가 말이냐?”
초악량의 물음에 단악선이 배시시 웃었다.
“잊은 게 있어서요.”
그리곤 자신의 전각으로 달려가 무언가를 들고 왔다.
그것이 밀랍으로 쌓여 있는 단약이라는 것을 깨달은 초악량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단악선이 밀랍을 벗기고 단약을 입에 넣자 주위로 알싸한 향기가 퍼져 나갔다.
평소에 자주 접했던 익숙한 향기였다.
“그것은 건강 환 아니냐?”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께서 오래전에 만들어 두셨던 거예요.”
“신의께서?”
“네. 언젠가 제가 무공을 익힐 때를 대비해서요.”
초악량의 눈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이미 안배를 하셨구나.”
“네. 그래서 제겐 더 특별해요.”
그렇게 말한 단악선이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구결에 따라 운기행공을 시작했다.
단전에서 깨어난 한 줄기 청량한 기운이 사지백해를 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약했으나 이내 몸속의 혈관을 타고 돌던 단약의 기운을 흡수하며 기세를 불려 나가기 시작했다.
단악선은 시간이 지날수록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기맥을 따라 움직이는 진기.
그 안에 포함된 단약의 기운이 따듯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만든 단약을 복용해서였을까.
불현듯 어린 시절의 일이 떠올랐다.
―훗날, 혹시라도 내공을 수련하게 되면 이걸 꼭 먹고 시작하거라.
몇 번이고 다짐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이렇게 대답했다.
‘전 아빠 엄마처럼 의원이 되고 싶은데요?’
그 말에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에이, 뭐 하러 그래. 의원 따윈 할 짓이 못 돼요. 힘만 들고 귀찮기만 하지.
―뭐, 하고 싶다면 하는 거지. 그래도 어느 정도 무공도 갖추는 게 좋겠다. 결국 이 짓도 체력이 받쳐 주지 않으면 못 해 먹으니까.
그 말에 어머니가 발끈했다.
―이 양반이 제정신이야? 그 고생을 해 놓고선 뭐? 난 반대야. 적어도 우리 애만큼은 사람답게 살아야지.
―애가 하고 싶다잖아! 하고 싶으면 해야지. 우리 아들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 결혼만 빼고.
―뭐? 이 인간이! 그게 애 앞에서 할 소리야?
심각해지는 엄마의 분위기에 뒤늦게 아차 싶었는지 아빠가 재빨리 말을 이어 갔다.
―네 엄마 같은 여자 만나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거든. 그러니 포기하란 뜻이었다. 이 아비는 네 엄마와 혼인 하는 데 남은 운을 전부 써 버렸단다.
언제 화를 냈냐는 듯 금세 발그레해지는 엄마의 얼굴과…….
―그래서 앞으로 그 어떤 운도 기대할 수가 없게 되었지.
엄마의 눈을 피해 조용히 한숨을 흘리던 아버지의 모습.
오랜만에 마주한 그리운 광경에 단악선은 기쁘면서도 슬펐다.
초악량은 가슴이 철렁했다.
이미 한참 전에 무념무상의 상태로 접어든 단악선이 희미하게 웃었기 때문이다.
범계위와 한설화도 마찬가지.
깜짝 놀란 그들이 급히 단악선에게 다가갔다.
조심스럽게 단악선을 살피던 초악량이 이내 안도한 표정으로 한숨을 흘렸다.
다행히 별다른 문제는 없어 보였다.
“영약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꿈이라도 꾸는 걸까?”
범계위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제법 일리 있는 말이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