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57)
신마의선-57화(57/500)
신마의선 (57)
능소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운공 도중에 저래도 되는 겁니까?”
세 사람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자 능소밀이 말을 이어 갔다.
“제게도 매번 잡념을 떨쳐 내라 하셨잖습니까. 진기 흐트러진다고.”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고개를 끄덕인 초악량이 다시 단악선을 보았다.
말로 설명한들 단악선의 재능을 표현해 낼 방법이 없었다.
오죽했으면 무림의 내로라하는 고수들인 자신들이 무턱대고 내공심법부터 전수했을까. 게다가 실제로 단악선은 서로 다른 세 사람의 심법을 완벽하게 운용해 냈었다.
그것만으로도 일반적인 재능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선 일이다.
다만 내공이 쌓이면 서로 다른 성질의 진기가 충돌해 주화입마로 이어질 수도 있어 수련을 못 하게 했을 뿐.
“어쨌거나 당장은 달리 방법이 없다.”
초악량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초조한 마음으로 운공이 끝나기를 기다릴 수밖에.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 단악선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곤 빙그레 웃었다.
“이런 기분이었군요.”
나직이 탄성을 흘리는 단악선을 향해 다가선 세 사람이 앞다투어 물었다.
“단 의원, 어땠어?”
“문제가 될 만한 건 없었느냐?”
“이상은 없고?”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주 좋아요.”
마치 단잠을 자고 난 것처럼 더없이 몸이 상쾌하고 가벼웠다.
비로소 세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그럼 이제 위화요법과 병행한 연마를 시도해 보자.”
초악량의 말에 단악선이 다시 가부좌를 틀었다.
범계위가 단악선의 맞은편에, 한설화는 그 반대쪽인 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단악선이 눈을 감고 운공을 시작하자 범계위와 한설화가 시선을 마주하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범계위가 단악선의 단전이 위치한 기해혈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
그와 동시에 한설화 역시 단악선의 등 쪽, 명문혈에 장심을 붙였다.
수많은 연습으로 다져진,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긴장감이 드러났다.
다른 대상도 아닌 무려 단악선을 상대로 펼치는 위화요법이다.
그 어떤 시행착오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눈빛을 주고받은 두 사람이 동시에 진기를 끌어 올렸다.
그 순간 가공할 열기와 냉기가 두 사람의 손을 통해 단악선의 기해혈과 명문혈을 통해 쏟아져 들어갔다.
“……!”
좌정하고 있던 단악선이 움찔했다.
그만큼 혈도를 통해 밀려드는 진기의 양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이내 얼굴이 평온해졌다.
서로 완벽하게 다른 이질적인 기운이 내부에서 격하게 충돌하고 어지럽게 뒤엉켰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단악선은 범계위와 한설화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당황하지 않고 두 사람의 진기에 몸을 내맡겼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단악선을 중심으로 휘몰아치던 기운이 점차 한데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성질 자체가 바뀌기 시작했다.
멍하니 그 모습을 보던 능소밀이 자신도 모르게 단악선을 향해 다가섰다.
그 순간 호법을 서고 있던 초악량이 입을 열었다.
“거기까지다.”
나직하지만 힘이 실린 단호한 음성이었다.
“……!”
능소밀이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넋을 잃고 단악선을 향해 다가서는 자신의 모습을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십 장 안의 공간을 아우르는 찬란한 운무의 향연을 목도한 것도 그때였다.
한없이 따듯하면서도 마주한 것만으로도 절로 마음이 편해지는 기운. 아지랑이처럼 너울대며 흩어졌다 다시 모이기를 반복하는 안개의 파도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능소밀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건 대체 무슨 사공(邪功)입니까?”
“사공 따위가 아니다.”
단호하게 선을 그은 초악량이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신공(神功)이다.”
초악량 정도 되는 일대종사가 당당히 선언한 만큼 능소밀은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제가 신공을 익힐 때도 저랬습니까?”
초악량이 실소하며 고개를 저었다.
“단 의원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신체적 조건은 둘째 치고, 상대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없이는 감히 시도할 수도 없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능소밀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범계위와 한설화의 내력을 동시에 받아들인다니.
생각만 해도 덜컥 겁이 나며 식은땀이 절로 흘렀다.
“그나저나 이건……. 대단하군요.”
이 순간에도 능소밀은 스스로와 싸우고 있었다.
그만큼 단악선을 에워싼 기운은 사람을 잡아당기는 힘이 있었다.
초악량 덕분에 간신히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잠깐만 방심해도 눈앞의 기운에 미혹될 것만 같았다.
화산파의 절학인 매화검법.
그중 낙매성우(落梅成雨)라는 초식을 사용하면 은은한 매화 향이 사방 십 리를 가득 채운다는 소문이 있다.
그때는 호사가들의 허풍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처럼 비현실적인 상황을 보고 나니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느끼는 것이 너만은 아닌 것 같구나.”
“네?”
초악량이 눈짓으로 능소밀의 뒤쪽을 가리켰다.
고개를 돌린 능소밀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맙소사!”
어디선가 날아든 새들이 멀찍이 자신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도 사방에서 온갖 새들이 날아드는 중이었다.
문제는 단악선이 내뿜는 기운에 현혹된 것이 새들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은은하게 계곡 전체를 감싸고 있는 신비한 기운에 취해 네발 달린 짐승들마저 계곡 입구로 들어서고 있었다.
능소밀은 눈으로 보고도 황당했다.
토끼나 다람쥐 같은 작은 동물들이 호랑이와 곰 같은 맹수들을 두려워하기는커녕 떼 지어 함께 어슬렁거리며 접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광경이 신기하다 못해 기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당분간은 네가 고생이겠다.”
“제가요?”
잠시 의아해하던 능소밀은 이어진 초악량의 말에 쓴웃음을 머금었다.
“나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자리를 지켜야 하니 누군가는 녀석들의 접근을 막아야 할 것 아니냐?”
능소밀이 한숨을 쉬며 다가오는 짐승들을 막아섰다.
수를 헤아리기도 힘든 온갖 짐승들을 마주하니 생각보다 부담이 컸다.
운남 만수산장(萬獸山莊)의 비전절학이라는 만수대진(萬獸大陣)에 견줄 바는 아니겠지만 위압감은 그에 못지않았다.
긴장한 그의 등 뒤로 초악량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고생이 길지는 않을 것이다. 단 의원이라면 진기를 다루는 데 금방 익숙해질 터. 그때는 이처럼 번거로운 일도 줄어들 것이다.”
당장은 위로가 되지 않는 말이었지만 능소밀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까마득한 선배이자 절대 고수인 초악량의 말은 옥황상제의 명령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능소밀이 이를 악물며 짐승들의 거대한 파도 위에 몸을 던졌다.
잠시 후.
“헉헉…….”
사력을 다해 짐승들을 신마곡 밖으로 몰아낸 능소밀이 입구를 지키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다행히 한번 혼쭐이 난 짐승들은 다시금 계곡 안으로 들어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산주로 군림하는 호랑이 정도만이 거리를 둔 채 으르렁거릴 뿐이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오래가지 않았다.
갑자기 짐승들이 정신을 차린 듯 서둘러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계곡 안쪽으로 고개를 돌린 능소밀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단악선의 전신 모공에서 뿜어진 진기의 운무가 크게 한차례 출렁이나 싶더니, 어느 한순간 코와 정수리를 쪽으로 빨려 들어가듯 흡수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단악선이 눈을 떴다.
뒤이어 범계위와 한설화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초악량이 미소를 건네며 말했다.
“고생했다.”
위화요법이 더해진 신공의 수련.
그 성공 여부는 굳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몸을 점검하고 스스로 놀라는 단악선의 모습과 지친 와중에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는 두 사람의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단악선이 내공을 수련한 것도 열흘.
“대단하구나.”
단악선의 상태를 살피던 초악량이 진심을 담아 감탄했다.
이미 범계위와 한설화를 통해 설명을 들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어 직접 확인을 했는데.
자리 잡은 내력은 실로 놀라웠다.
열흘 수련한 내공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정순하고 웅혼한 진기는 내로라하는 도가 문파에서 몇 년 수련한 제자들과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정련된 내력의 순수함은 비교할 바가 못 되었다.
단악선의 재질에 대해 인지하던 상태라 어느 정도 기대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결과에 초악량도 아연할 지경이었다.
“그러게 내가 뭐랬수.”
범계위가 어깨를 으쓱하며 뿌듯한 얼굴로 단악선을 바라봤다.
“이 맛에 다들 제자를 거두려 안달 내나 보오.”
초악량이 실소했다.
오히려 실상은 그 반대의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제자들의 늦은 진전에 복장이 터지는 사부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흔치 않은 기연을 마주한 셈이다.
이때 단악선이 일어나 빙그레 웃었다.
“그럼 전 정리 좀 할게요.”
“앞으로도 계속 일지를 작성할 생각이냐?”
초악량의 물음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야죠. 매일같이 수련 과정과 느낀 바를 기록해 두면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단악선이 전각으로 향하자 초악량이 범계위와 한설화를 향해 말했다.
“우리도 이제 바빠지겠군.”
“바빠질 게 뭐 있수? 단 의원이 알아서 잘하는데.”
“내공만 있으면 무공이 된다더냐?”
초악량의 핀잔에 범계위가 비로소 그 의미를 깨달았다.
위화신공은 어디까지나 내공심법.
이를 제대로 펼쳐 내기 위해서는 그 위력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는 외공이 필요하다.
“그럼 다시 머리를 맞대고 외공을 연구해야 하는 거요?”
우려를 담은 범계위의 말에 초악량이 고개를 저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의아해하는 범계위를 향해 초악량이 설명을 이어 갔다.
“이제와 새로운 초식을 만든다 한들 이해도나 숙련도가 기존의 무공을 넘어설 리 없지 않느냐? 우리가 익힌 무공도 신공절학으로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러니 각자 가장 자신 있는 무공을 단 의원에게 전수하면 될 것이다.”
“초 형은 뭘 가르칠 생각이우?”
“내가 나은 게 금나술밖에 없지 않으냐.”
범계위가 선선히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난 무기 쓰는 법을 가르쳐야겠군.”
한편에서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한설화가 눈살을 찌푸렸다.
단악선이 흉측한 쇠도리깨를 휘두르는 모습을 떠올리니 기분이 언짢아진 것이다.
이를 눈치챈 범계위가 한설화를 노려봤다.
“그런 거 아니거든?”
범계위가 대초자곤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몸체와 연결된 사슬 부분을 잡고 힘주어 돌렸다.
철컥.
그러자 가시가 비죽한 머리 부분이 사슬과 함께 분리되었다.
원래부터 그렇게 결합과 분리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무기였던 것이다.
“이러면 딱 제미곤(齊眉棍) 길이지?”
“…….”
“곤(棍)이야말로 천하 모든 병기의 시작이지.”
특히나 날붙이가 달려 있지 않아서 의원인 단악선에게 이만한 무기도 없었다.
괜히 소림의 땡중들이 봉에 집착하는 게 아니다.
도나 검 같은 다른 무기들에 비해 살기 자체가 현저히 적은 무기이니 말이다.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한설화의 말에 범계위의 눈썹이 꿈틀했다.
“눈으로 말했잖아!”
“그걸로 내 생각을 읽었다고?”
한설화가 내심 어이없어하며 범계위를 응시했다.
그러자 범계위가 으르렁거렸다.
“누가 멍청이냐!”
순간 한설화가 멈칫했다.
정곡을 찔린 기색이 역력한 표정이었다. 초악량이 쓰게 웃으며 한설화에게 물었다.
“한 누이는 무얼 가르칠 생각인가?”
한설화는 말없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주변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나 싶더니 허공에 투명한 얼음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를 본 초악량과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격공섭물을 이용해 강기를 다루는 무공에 그녀를 따라올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렇게 세 사람의 협의에 의해 단악선이 익힐 무공이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