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58)
신마의선-58화(58/500)
신마의선 (58)
그런데 정작 다른 문제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각자가 전수할 무공에 대해서는 결정했지만, 누가 먼저 가르칠 것이냐를 두고 또다시 팽팽한 신경전이 오간 것이다.
서로가 온갖 이유와 명분을 들며 치열하게 우선권을 주장했지만 결과는 매한가지.
한 치의 양보 없이 대립하던 세 사람은 결국 이번에도 제비뽑기에 운명을 맡기기로 했다.
다행히 이번만큼은 하늘이 범계위의 손을 들어 주었다.
덕분에 능소밀만 억울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공정을 기하기 위해 능소밀이 제비를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능소밀은 명줄이 짧아지는 느낌을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범계위보다 짧은 나뭇가지를 뽑은 초악량과 한설화의 살기는 그만큼 살벌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범계위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가장 먼저 단악선과 마주했다.
“오늘부터 단 의원에게 병기 다루는 법을 가르쳐 줄 거야.”
“네!”
기대 어린 단악선의 눈빛에 범계위는 벌써부터 기분이 흐뭇해졌다.
“병장기를 다루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
“무기의 특성을 이해하는 건가요?”
“그렇지! 역시 우리 단 의원!”
호쾌하게 맞장구를 친 범계위가 다시 질문을 이어 갔다.
“그러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하던 단악선이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저라면 먼저 무기를 잡아 볼 것 같아요.”
“그리고?”
“무기 그 자체를 느끼는 거죠.”
단악선은 아직 무기를 다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지극히 의원다운 방식으로 접근했다.
환자의 상태를 알아내기 위해서 시진과 청진, 타진과 촉진을 사용한다.
무기를 익히는 것 역시 마찬가지.
오감을 동원해 본질적인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 대답이 매우 흡족했는지 범계위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범계위가 추구하던 기본 무리에 가장 근접한 기본적인 요체이자 핵심에 가까운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그걸 단번에 알았다고? 내가 모르는 사이에 무기를 다뤄 본 적이 있었어?”
범계위는 혹시나 싶어 뒤쪽을 바라봤다.
멀찍이 떨어져 이쪽을 바라보는 초악량과 한설화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괜한 의심이었다.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침술도 기본적으로는 비슷하거든요. 손끝의 감각을 통해 침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하니까요.”
“에이, 그래도 침하고 무기하고 같나 어디.”
“침을 암기로 활용하는 문파도 있다고 들었는데요?”
범계위가 눈을 껌벅이며 멍한 표정을 짓자 보다 못한 초악량이 끼어들었다.
“사천의 독종들 말하는 것 같은데?”
“아, 당가 그 자식들이 있었지!”
고개를 끄덕이는 범계위를 대신해 초악량이 설명했다.
“놈들이 침을 암기로 쓰기는 하지만 무공을 이용한 것은 아니다. 장치로 발사하는 거지. 당가의 오대암기 중 하나인 금명선(禁命扇)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접었다 펼 수 있는 쥘부채의 살을 강철로 만들어 그 안에 머리칼보다 가느다란 우모침을 발사하는 장치를 설치해 놓았지.”
범계위가 눈살을 찌푸리며 초악량을 노려봤다.
“거참, 끼어들지 좀 마슈. 지금은 내 시간 아니오?”
“아 자식이? 기껏 도와줬더니…….”
“내가 언제 도와 달라 했수?”
초악량이 뭐라 할 틈도 주지 않고 범계위가 단악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쨌거나 그런 암기 따위는 계집애들처럼 허약한 놈들이나 쓰는 거다. 반면 이 제미곤은…….”
쿠웅.
범계위가 들고 있던 철봉을 들어 바닥을 찍자 육중한 충격이 계곡 전체로 퍼져 나갔다.
“진짜 남자만이 다룰 수 있는 최고의 무기지.”
범계위가 득의양양하게 설명을 이어 갔다.
“손장난 같은 금나수? 제대로 걸리면 그대로 손가락 아작 난다.”
듣고 있던 초악량의 눈썹이 꿈틀했다.
“강기니 뭐니 하는 잡다한 기공도 마찬가지. 걸리는 족족 깨부숴 버리면 그만이다.”
이번엔 한설화의 아미가 파르르 떨렸다.
범계위가 신이 나 말을 이어 갔다.
“어떤 놈들은 검이 만병지왕이라고 하지만 헛소리다. 진짜 최고는 내가 가르쳐 주는 이 제미곤이다. 왜냐? 실제로 난 그 어떤 무기를 다루는 놈들에게 져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와!”
단악선이 감탄하며 자신의 손에 들린 목봉을 만지작거렸다.
범계위가 들고 있던 철곤을 휘둘렀다.
섬뜩한 파공음과 함께 어지러운 잔영이 순식간에 허공을 가득 메웠다.
“어느 정도 무기가 손에 익으면 초식을 펼치는 순간 바로 느낌이 온다. 무기가 내 몸의 일부 같은 느낌!”
꽈앙.
단악선의 눈앞을 스친 철곤이 크게 회전해 근처의 아름드리 바위를 그대로 으스러뜨렸다.
“바로 이런 식으로!”
의기양양한 범계위의 모습에 멀찍이 서 있던 초악량과 한설화는 어이가 없었다.
“되게 못 가르치네.”
참다못한 한설화가 중얼거리자 초악량이 웃으며 제지했다.
“듣겠다.”
“들으라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걸.”
그 순간 범계위가 휙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하여튼 귀만 밝아서는.”
한설화가 고개를 돌리자 초악량은 계속하라는 듯 범계위에게 눈짓했다.
범계위가 잠시 씩씩대다 다시금 단악선 쪽으로 돌아섰다.
단악선이 목봉을 휘둘러 범계위의 동작을 따라 했다. 하지만 몇 번 휘두르지도 못하고 목봉을 떨어트렸다.
길이가 너무 길어 목봉의 양 끝이 바닥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충격으로 얼얼한 손바닥을 쥐었다 펴며 단악선이 쓰게 웃었다.
“제미곤은 생각보다 다루기 어려운 무기군요.”
“어? 그럴 리가.”
뒤늦게 범계위가 아차 싶었다.
제미곤은 세웠을 때 눈썹 높이까지 와야 하는 무기.
한데 지금 단악선이 들고 있는 목봉이 단악선의 키를 한참이나 넘기고 있었다.
처음부터 목봉을 깎을 때 범계위 자신의 눈썹 높이에 길이를 맞추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쯧.”
대번 초악량의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런 녀석에게 단 의원을 어찌 맡기누.”
민망함에 얼굴이 붉어진 범계위가 수도를 그어 목봉을 잘라 냈다.
그제야 단악선이 목봉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며 무게와 길이를 손으로 직접 느껴 보기 시작했다.
길이의 제약이 사라지자 처음과 달리 이번엔 제법 수월하게 제미곤을 다룰 수 있었다.
가뜩이나 키가 작아 머리가 범계위의 허리춤밖에 오지 않는 단악선이다.
그런 단악선이 제 키와 비슷한 단봉을 휘두르는 모습은 절로 웃음이 나올 만큼 앙증맞았다.
“허리는 펴고 시선과 어깨 제미곤 끝이 삼각 형태를 이루도록……, 그래! 그렇지.”
기본적인 파지법과 자세 몇 가지를 가르쳐 주는 와중에도 한숨을 푹푹 내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범계위의 눈썹이 꿈틀했다.
아예 대놓고 하는 지적질보다 그 한숨 소리가 더욱 거슬리고 짜증 났던 것이다. 그러나 단악선의 지도가 우선이었기에 치솟는 화를 애써 꾹꾹 눌러 담았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다. ‘휙’ 한 다음에 ‘파팟!’ 하는 느낌이 있어야 해. 바로 이렇게!”
범계위가 철곤을 휘두르자 단악선이 그 동작을 따라 했다.
초악량과 한설화는 기가 막혔다.
저렇게 황당한 설명을 어떻게 알아듣는단 말인가.
그런데도 얼추 비슷하게 따라 하는 단악선이 신기할 지경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내심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두 사람과 달리 단악선은 눈빛을 빛내며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그러니까 핵심은 모든 무기는 결국 손으로 잡는 것이기에, 쥐는 방법을 제대로 깨우쳐야 그 무기를 온전히 다룰 수 있다는 이야기군요.”
“어? 어, 그렇지. 정확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 말이었어.”
순간 범계위가 멈칫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초악량과 한설화의 대화 때문이었다.
“개떡같이 말하는데 찰떡같이 알아듣는군.”
“이래서야 누가 누굴 가르치는 건지, 원…….”
홱!
범계위가 노려보자 두 사람은 어느새 시치미를 떼고 먼 곳을 바라봤다.
범계위가 다시 단악선을 지도하자 한설화가 나직하게 한숨을 흘렸다.
“언제는 자신이 천하의 기재라더니.”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이다.”
의외로 범계위를 두둔하는 초악량의 태도에 한설화가 다소 놀란 표정이 되었다.
그런 그녀에게 초악량이 말했다.
“오랫동안 지켜봐 온 바로는 저……놈 천재 맞아.”
범계위가 익힌 내공심법인 도반삼양공은 연마 과정 자체가 여타 내공심법과 차원이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만큼 강호 역사를 통틀어 도반삼양공을 익힌 이는 매우 드물었다.
연성 자체도 까다로울뿐더러 웬만한 오성과 재능이 받쳐 주지 않고서는 엄두조차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대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내려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범계위의 사부가 그랬듯, 도반삼양공의 전승자들이 하나같이 후인을 애지중지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피만 보면 미쳐 날뛰는 광증만 아니었다면 더 높은 경지를 바라볼 수도 있었겠지. 중간에 주저앉지만 않았어도 진즉에 나를 뛰어넘었을 게야.”
“그런데 가르치는 건 왜 저 모양인지…….”
초악량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머금었다.
“배우는 재능과 가르치는 재능은 별개라는 뜻이지.”
범계위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웬일로 역성을 들어 주나 싶었는데, 결국 그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이다.
“다 들린다고!”
노성을 터트린 범계위가 양팔을 걷어붙이며 두 사람을 향해 다가섰다.
“둘 다 덤벼!”
쩌렁한 범계위의 일갈이 허공을 뒤흔들었다.
“차라리 싸워 이긴 사람이 전부 가르치는 거야!”
초악량과 한설화의 눈빛이 마주쳤다.
순간 범계위는 가슴이 철렁했다.
울컥한 마음에 기분 가는 대로 말을 던지고 보니 그 상대가 다름 아닌 초악량과 한설화였다.
아니나 다를까.
두 사람이 진짜로 자신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잠깐! 이 대 일은 좀 비겁한 것 같지 않수?”
“네가 덤비라며?”
뜨끔한 범계위가 이번엔 한설화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우리 사이에 꼭 이래야겠어?”
“우리가 무슨 사인데?”
“어……. 손을 잡고 함께 밤을 지낸 사이?”
“……!”
한설화의 표정이 얼음처럼 굳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무림맹주의 딸을 치료하기 위해 위화요법을 연구하던 당시 손을 맞댄 채 밤을 새우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감 자체가 몹시 불쾌하고 거슬렸다.
“죽자, 그냥.”
한설화가 냉기를 풀풀 날리며 범계위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초악량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 이쯤 되니 범계위도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었다.
그렇게 세 사람이 격돌하려던 순간.
“앗!”
갑자기 들려온 앳된 비명에 세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단악선 쪽으로 향했다.
먼지투성이가 되어 바닥을 구르는 단악선의 모습을 발견한 것도 그때였다.
세 사람이 황급히 단악선에게 달려갔다.
발목을 접질렸는지 미간을 찡그린 채 발목을 문지르던 단악선이 환하게 웃으며 세 사람을 반겼다.
“무공이란 거 정말 재밌네요.”
그러나 세 사람은 단악선의 얼굴을 빤히 응시할 뿐이었다.
“너 코피 난다.”
초악량의 말에 단악선은 머쓱하게 웃더니 소매를 들어 코밑을 훔쳤다.
그 바람에 코피가 번져 얼굴이 더욱 엉망이 되었다.
한설화가 재빨리 다가가 지혈을 하더니 소매로 단악선의 얼굴을 꼼꼼히 닦아 냈다.
자신의 옷이 더러워지는 것도 마다치 않는 그녀의 행동에 초악량과 범계위는 내심 놀랐다.
그것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단악선을 끔찍이 아끼는지 알 수 있었다.
결벽증에 가깝던 그녀의 성격을 익히 알기 때문이다.
“어쩌다 이런 거야?”
한설화의 물음에 단악선이 범계위가 가르쳐 줬던 동작을 취했다.
그러자 한설화가 고개를 흔들었다.
“중심을 봉에 두려 하지 말고 발을 먼저 디뎌야 해. 이런 식으로.”
한설화가 직접 단악선의 자세를 교정해 주자 범계위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내가 가르칠 거야! 지금만큼은 내 거라고!”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제대로 가르치기나 하든가! 너 때문에 단 의원 코피 나잖아!”
“아니, 그게 왜 내 탓이오? 초 형과 마녀가 수련을 방해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애초에 없었수!”
범계위가 신형을 날려 한설화와 단악선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그리곤 병아리를 낚아채는 매처럼 단악선을 옆구리에 끼고는 그대로 신형을 뽑아 올린 뒤 절벽 쪽으로 내달렸다.
계곡을 맴돌던 바람도 놀라 달아날 만큼 삼엄한 기세였다.
“녀석에게 맡겨 둬도 괜찮은 걸까?”
근심 가득한 초악량의 표정에 한설화도 고운 아미를 찡그렸다.
“괜찮아. 내가 가르치면서 보완하면 돼. 어차피 다음 차례는 나니까.”
그 말에 초악량이 멈칫했다.
“왜 다음 차례가 너야? 내 제비가 좀 더 길었는데?”
“내 제비가 더 길었어.”
“…….”
“…….”
말없이 서로를 응시하던 두 사람 사이로 팽팽한 긴장이 자리 잡았다.
결국 결과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두 사람은 능소밀을 찾았다.
초악량이 다짜고짜 물었다.
“아까 뽑았던 제비 중에 누구 것이 더 길었지?”
왜 이러나 싶어 의아했지만 능소밀은 순순히 대답했다.
“그야 범 선배님의 것이 가장…….”
“그 녀석 말고. 우리 두 사람 중 누구의 제비가 더 길었느냔 말이다.”
능소밀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그것까지는 미처 확인을 하지 못한 것이다.
“모, 모르겠습니다.”
“왜 몰라! 네가 만들었으니 당연히 알아야지!”
초악량의 일갈에 능소밀이 울상을 지었다.
“대체 제게 왜 이러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