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59)
신마의선-59화(59/500)
신마의선 (59)
어스름한 노을이 서산을 붉게 물들인 시각.
평소에는 평화롭던 신마곡에 때아닌 기합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래. 이제 제법 자세가 나오는구나.”
금나수를 배우던 단악선은 초악량의 칭찬에 밝게 웃었다.
그때, 한 마리 전서구가 신마곡을 향해 날아들었다.
“진성의가에서 전서가 도착했습니다.”
서신을 건네받은 초악량이 낮게 침음했다.
최근 강호에 성수신의 아들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는 것이다.
“무림맹주의 딸을 치료한 일이 알려진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초악량이 단악선과 다른 사람들을 불러 모아 풍진성이 보낸 서신의 내용을 알렸다.
“무림맹으로 갈 때 이렇게 될 거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어요.”
단악선은 의외로 담담한 태도였다.
“당분간은 마을 내려가는 것도 자제해야겠네요. 아직까지 이곳의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을 테니까요.”
하나 이미 존재가 알려진 이상 자신의 행방을 찾는 자들이 생기는 건 시간문제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초악량과 범계위가 이곳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도 알려질 터.
범계위가 의아한 눈으로 단악선에게 물었다.
“혹시 소문을 듣고 환자가 몰릴까 봐 그러는 거야?”
“아뇨.”
“그럼?”
“저들이 찾는 게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에요.”
단악선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것 때문에 아빠도 세상에 회의를 느끼고 이곳에 칩거하신 거고요.”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던 능소밀이 탄성을 터트렸다.
“아! 혹시?”
“왜, 너 뭐 아는 거라도 있어?”
범계위의 질문에 능소밀이 바로 대답했다.
“왜 한때 떠들썩했잖습니까. 따지고 보면 그것 때문에 성수신의의 명성이 높아지기도 했고요.”
“그러니까 그게 뭔데?”
능소밀이 곤란한 표정을 하자 단악선이 말했다.
“성수신단 때문이에요.”
“……!”
초악량을 비롯한 범계위, 심지어 한설화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만큼 무림에 몸담은 사람치고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유명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무림의 내로라하는 문파들은 대부분 비전의 영단 제조법을 지니고 있었다. 소림의 대환단이 그랬고, 화산의 자소단과 무당의 태청단이 대표적이다.
내상을 다스리고 막대한 내공을 증진해 주는 지고한 영단.
제조가 까다로운 만큼 희소성이 높아 그 가치가 하늘을 찔렀다.
능소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심지어 성수신단은 소림의 대환단보다 뛰어나다는 소문도 있었지요.”
무림의 소문이란 게 으레 그렇듯 사람을 거치며 과장되고 부풀려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성수신단과 관련된 이야기는 반대였다.
직접 경험한 이들은 오히려 소문이 소박하게 느껴질 정도라며 공공연히 떠들고 다닐 정도였다.
특히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개방의 방주인 홍두타가 있었다.
오랜 세월 어깨를 맞대 온 구대문파와의 친분이 돈독한 그였지만 공명정대한 그의 성격상 사실을 호도할 수 없었다.
예전 일을 떠올린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를 찾아왔었어요.”
“그냥 조용히 부탁하는 놈들만 있진 않았겠군.”
초악량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안 그렇겠는가.
영단이나 비급, 혹은 그에 준하는 기진이보.
그중의 하나만 흘러나와도 피바람이 몰아치는 곳이 무림이었다.
감히 소림이나 화산, 무당의 담을 넘을 수는 없으니 그나마 만만한 신의를 찾아온 사람들의 태도가 공손할 리 없었다.
“네, 별별 사람들이 다 있었다고 들었어요. 협박은 셀 수도 없고, 납치를 시도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해요.”
“그래도 다행히 잘 넘긴 모양이구나.”
초악량의 말에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납치는 성공했어요.”
“……!”
의외의 대답에 장내의 모두가 놀란 눈으로 단악선을 바라봤다.
“성수신단을 노린 사람 중에는 엄마도 있었거든요.”
단악선이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엄마는 유혹했다고 하셨지만 아빠는 끝까지 납치당한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일행이 한순간에 웃음을 터트렸다.
온갖 기행을 일삼았던 생사마의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하나 이어진 초악량의 말에 분위기는 다시 무거워졌다.
“단 의원의 존재가 알려진 이상 성수신단을 찾으려는 놈들이 다시 설칠 수도 있겠군.”
잠자코 듣고 있던 범계위가 신마곡 입구 쪽을 가리켰다.
“저 진법을 미리 발동시켜야 하지 않을까?”
단악선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잠시 고민했다.
그사이에 능소밀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놓았다.
“그냥 이제 성수신단은 사라졌고, 제조법도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면 되지 않습니까? 어차피 신의께서 돌아가신 이상 성수신단 제조도 불가능해졌으니까요.”
범계위가 코웃음을 쳤다.
“영약에 집착하는 무림인의 탐욕을 알면서도 그래? 그걸 곧이곧대로 믿어 줄 인간이 몇이나 될까?”
“소문을 통해 믿게 하면 됩니다. 자고로 개 한 마리가 헛것을 보고 짖으면 온 동네 개들이 따라 짖는 법 아닙니까?”
“정보를 조작하자는 말이냐?”
“그게 제가 가장 잘하는 일입니다.”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군. 사실에 기반한 소문만큼 빠른 것도 없으니까.”
그때 단악선이 놀라운 이야기를 꺼냈다.
“성수신단은 실전되지 않았는데요?”
“……?”
의아해하는 중인들의 시선에 단악선이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었다.
“제가 만들 수 있어요. 이미 많이 만들어 봤고요.”
“그래? 그런데 우린 왜 몰랐지?”
반문하던 범계위가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뜨악한 표정이 되었다.
“모를 수도 있죠.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이미 드셔 보셨잖아요.”
“설마…….”
혹시나 싶어 말을 흐리는 초악량을 향해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범 아저씨 광증을 다스린 것과 초 아저씨 외출할 때 드렸던 것. 한 아주머니가 웃을 수 있게 된 그날 복용했던 단약 모두 성수신단이었어요.”
“허…….”
초악량이 헛웃음을 흘렸다.
반면 범계위는 탄성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효과가 너무 좋더라니…….”
한설화도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매번 복용할 때마다 효과가 심상치 않다 싶었는데,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었던 것이다.
반면 능소밀은 어이가 없었다.
“무슨 영약을 그렇게 막 쓰십니까?”
“세 분에게는 반드시 필요했으니까요. 단순히 침술로만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거든요.”
단악선이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세 사람은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대환단을 뛰어넘는 기보라 알려진 성수신단을 상비약처럼 복용하고 있었다니.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정말 말도 안 되는 호사를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성수신단을 복용하지 않고서는 치료가 불가능할 만큼 우리 병이 심각한 거였어?”
뒤늦게 입을 연 범계위의 말에 초악량과 한설화가 침음했다.
자신들을 치료하기 위해 단악선이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자각했기 때문이다.
범계위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좀 알려 주지 그랬어. 그랬다면 운기행공을 통해 약 기운을 흡수했을 텐데.”
단악선이 웃으며 대답했다.
“특별한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효과를 다하고 남은 약 기운은 자연스럽게 내공으로 흡수가 돼요. 달리 부작용도 없고요. 그래서 주의 사항을 말씀드리지 않았어요.”
이때 한설화가 무언가를 떠올렸다.
“지금까지 사용한 신단이 적지 않을 텐데?”
범계위도 깜짝 놀라 단악선에게 물었다.
“우리가 다 먹어서 이제 없는 거 아냐?”
“아직 다섯 개 남았어요. 약재만 있다면 얼마든지 더 만들 수 있고요.”
능소밀이 혼자 쓰게 웃었다.
약재들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점은 생각하지 않다니.
사무심이 파사국과의 교역을 위해 황량한 사막에 상단을 이끌고 나간 이유 역시 그 약값을 충당하기 위해서다.
하나 대놓고 그 사실을 떠들어 댈 만큼 눈치가 없지도 않았다.
단악선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젠 그렇게 많이 만들긴 어려울 것 같아요.”
“어째서?”
초악량은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 자신이 신마곡에 왔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고가의 약재가 풍족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재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
“가장 중요한 재료가 천년화리(千年火鯉)의 알이거든요.”
단악선이 고개를 돌려 폭포와 이어진 연못을 가리켰다.
“그래도 남아 있는 애들만 건강하다면 앞으로도 몇 개는 더 만들 수 있겠죠.”
“저 연못에 사는 잉어들이 설마?”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초악량과 범계위의 시선이 마주쳤다.
예전에 자신들이 청소한답시고 설쳤을 때 죽어 나간 물고기들이 생각났다.
“…….”
두 사람은 서로 말이 없었다.
비로소 당시에 왜 그렇게 단악선이 안타까워했는지 깨달은 것이다.
그때 범계위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제 저기 오줌 싸는 건 그만둬야겠군.”
“……!”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범계위에게 모아졌다.
“너어……!”
벌떡 일어난 한설화가 무시무시한 한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초악량이 황급히 한설화를 만류했다.
“참아! 한 누이!”
그사이 범계위는 이미 저만치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초악량을 뿌리친 한설화가 손을 들어 허공의 한 점을 짚었다.
쩌저적.
순식간에 얼어붙는 대기.
그 안에서 점차 형태를 갖춰 가는 투명한 얼음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가볍게 내저은 한설화의 손을 따라 빛살처럼 범계위를 향해 쏘아졌다.
꽈앙!
천지를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멀리서 범계위의 욕설이 날아들었다.
“방금 건 진짜 위험했다고!”
“위험? 흥! 진짜 위험한 게 뭔지 보여 주지.”
한설화가 신형을 날려 범계위를 쫓기 시작하자 두 사람의 모습이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멍하니 있던 능소밀이 정신을 차린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준비가 필요하긴 하겠는데요?”
능소밀이 단악선을 보며 말했다.
“행적이 알려진 이상 곡주님의 행방을 수소문하는 자들이 생길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능소밀은 내심 무슨 일이 있을까 싶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무려 초악량과 범계위, 한설화가 신마곡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이 셋을 어떻게 하려면 무림맹의 전력 중 절반은 움직여야 할 것이다.
반면 단악선은 마음이 복잡했다.
사람들을 피해 평생 이곳에서 은인자중했던 부모님.
‘나도 평생 이곳에서 스스로를 가두고 지내야 하는 걸까?’
외부와 차단된 위리안치(圍籬安置)의 삶이 얼마나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 * *
무위 인근에 위치한 관제묘.
죽립을 깊게 눌러쓴 흑색 무복의 중년인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자루 검을 비스듬히 끌어안은 채 벽에 기대어 있던 그가 이내 자세를 바로잡았다.
멀리서 다가오는 그림자 하나.
휘날리는 백발과 백염이 무색하게 유난히 얼굴빛이 좋은 홍안의 노인. 부리부리한 호안에 매부리코, 거기에 고집으로 똘똘 뭉친 입매. 한눈에 봐도 보통 성격이 아닌 모습이었다.
서로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죽립인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장로님.”
노인이 다소 못마땅한 눈빛으로 죽립인의 인사를 받았다.
“오랜만이오.”
마뜩잖은 기색이 역력한 노인의 말투에도 죽립인은 태연했다.
“아직도 본문 감찰을 막지 않은 것이 노여우십니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노인이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
“무림맹 일로 공사가 다망할 터인데, 이 늙은이를 보자고 한 연유나 말씀하시오.”
“말씀 편하게 하시지요.”
“일개 군소 문파에 몸담은 늙은이가 어찌 감히 대무림맹의 감찰 사자께 말을 놓을 수 있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