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6)
신마의선-6화(6/500)
신마의선 (6)
장우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의가의 병상에 누워 있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산속이었다.
게다가 바로 눈앞에는 이글거리는 불덩이 두 개가 떠 있었다.
“히익!”
뒤늦게 그것이 사람의 눈이라는 걸 깨달은 장우가 기겁하며 물러섰다.
이글거리는 눈의 주인.
수염 비쭉한 대머리 거한이 나직하게 물었다.
“넌 어디가 아프냐?”
“네?”
“어디가 아파서 의원을 찾아갔냐고.”
“손목이 아파서…….”
“다른 곳은?”
“어, 없습니다. 손목 빼곤 다 괜찮습니다.”
“왜?”
“예?”
“왜 다른 데는 안 아프냐고!”
“그, 그야…….”
가뜩이나 무섭게 생긴 그가 인상을 찌푸리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때 대머리 거한이 고개를 돌렸다.
“넌 어디가 아픈데?”
그제야 장우는 이곳에 다른 사람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과 함께 병상에 누워 있던 사람들이었다.
범계위의 질문을 받은 노인이 황급히 대답했다.
“그냥 고뿔입니다.”
“아닌데?”
“예?”
“딱 봐도 상태가 심각한데? 피부의 탄력이 없잖아. 검버섯도 너무 많고. 식은땀도 막 흘리는데?”
“그건 그냥 기운이 달려서…….”
“쯧!”
못마땅한 표정으로 혀를 찬 범계위가 고개를 돌렸다. 그와 시선이 마주친 나머지 두 사람도 서둘러 대답했다.
“그냥 변비입니다!”
“단순히 허리를 삐끗한 것뿐입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이러면 곤란한데…….”
말끝을 흐리던 범계위가 무릎을 탁 쳤다.
“좋아, 이렇게 하자.”
범계위가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가리켰다.
“너희들은 지금부터 온몸이 다 아파. 내장이 뒤틀리고 뼈가 으스러진 것처럼 아픈 게다.”
얼토당토않은 범계위의 말에 중인들이 당혹감을 드러냈다.
“그건 저희들의 증상이 아닌데요?”
범계위가 웃었다.
그 끔찍한 웃음은 차라리 웃느니 못한 그런 것이었다.
범계위의 야차 같은 모습에 눈치 빠른 사내 한 명이 배를 움켜잡았다.
“지, 진짜 그 정도로 아픈 것 같습니다.”
“바로 그거야.”
범계위가 만족하자 다른 이들도 하나같이 몸을 비틀며 떨기 시작했다.
“너무 걱정들 하지 마. 깨끗하게 고쳐 줄 사람을 만날 거니까. 나에게 고마워하게 될 거야.”
그 말을 할 때였다.
“아저씨?”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범계위가 고개를 돌렸다.
일 장쯤 떨어진 바위 옆.
언제부터인지 그곳에 단악선이 서 있었다.
“어? 다, 단 의원!”
범계위가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그리곤 황급히 사람들을 가리켰다.
“산을 내려가던 도중에 죽어 가는 사람들을 발견했지 뭐야? 그래서 차마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잘 오셨어요.”
“응?”
“기다렸거든요.”
단악선이 웃으며 범계위에게 다가섰다.
“일단 환자들부터 좀 살펴볼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단악선이 환자들을 살피는 동안 범계위는 멍한 표정으로 제자리를 지켰다.
‘기다렸다고? 나를?’
왠지 모르게 가슴 한구석이 찡해졌다.
‘그러고 보니…….’
돌아가신 사부님 외에는 이처럼 자신을 반겨 준 사람이 없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 보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이각쯤 지났을까.
단악선은 부지런히 움직여 환자들을 치료했다.
“다 됐어요.”
마을 사람들의 얼굴 위로 놀라움이 떠올랐다.
고작 침 몇 개에 뜸, 그리고 아픈 부위를 만져 준 것뿐인데, 거짓말처럼 증상이 호전된 것이다.
“이제 돌아가셔도 돼요.”
단악선의 말에 마을 사람들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다.
돌아가는 길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뿔싸!’
뒤늦게 상황을 깨달은 범계위가 재빨리 앞으로 나섰다.
“내가 데려다주마.”
범계위가 마을 사람들을 한꺼번에 둘러업었다. 그리곤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뭐 해? 감사하다고 해야지?”
마을 사람들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
“가, 감사합니다, 대인!”
범계위가 눈살을 찌푸렸다.
“나 말고.”
“네?”
“내가 치료했냐?”
“아!”
뒤늦게 범계위의 의도를 이해한 마을 사람들이 단악선을 향해 인사를 했다.
그제야 범계위가 돌아섰다.
막 범계위가 신형을 날리려던 찰나였다.
“다시 오실 거죠?”
범계위가 히죽 웃었다.
“그래, 그러마.”
범계위의 신형이 허공을 갈랐다.
“으아악!”
마을 사람들의 비명과 함께 범계위의 모습이 순식간에 멀어졌다.
* * *
두 시진 후.
범계위가 신마곡에 돌아왔다.
그러나 그를 반긴 것은 초악량의 쓴소리였다. 저간의 상황에 대해 들은 초악량이 한바탕 핀잔을 쏟아 낸 것이다.
“아예 우리가 여기 있다고 소문을 내고 다니지 그러냐?”
“에이, 무림인도 아닌데 저들이 어떻게 날 알아보겠수?”
“세상에 너처럼 생긴 고수가 흔할까! 한번 보면 꿈에서도 나타나는 면상인데!”
범계위가 발끈했다.
“내 얼굴이 어때서! 그래도 한때 강서의 송옥이라 불렸던 적도 있었어. 인물로는 알아줬다고!”
“헛소리한다! 강서 사람들은 눈이 죄다 엉덩이에 달렸다던? 어딜 봐서 네가 송옥이냐? 장비라면 몰라도.”
서로의 언성이 높아지자 단악선이 만류했다.
“싸우지 마세요. 어차피 그분들은 여기가 어딘지도 모를 테니까요.”
범계위 정도의 고수가 경공을 펼쳐서 무려 한 시진이나 이동했다. 무공을 모르는 일반인이라면 거리와 방향을 가늠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단악선이 편을 들어 주자 범계위가 어깨를 으쓱했다.
“맞아. 데려다 놓으니 반쯤 얼이 빠져 있던데? 아마 제대로 기억 못 할 거야.”
“저게 뚫린 입이라고…….”
초악량이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됐다. 앓느니 죽지. 그냥 말을 말자.”
초악량이 물러서자 범계위가 씨익 웃었다. 그걸 지켜보던 단악선이 범계위를 향해 말했다.
“아저씨, 우리 한 가지만 약속해요.”
“약속?”
의아한 얼굴로 반문하는 범계위에게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는 마음대로 이곳을 떠나지 않기로요.”
“난 약속 같은 건 안 하는데…….”
“걱정돼서 그래요.”
“걱정을…… 한다고?”
범계위가 뚫어져라 단악선을 응시했다.
단악선의 얼굴에서는 그 어떤 사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순수한 염려만이 가득했다.
범계위의 눈빛이 흔들렸다.
언젠가 저와 같은 눈빛을 마주했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사부…….’
지금까지 살아오며 저런 눈빛을 보여 준 사람은 그만이 유일했다.
범계위는 갑자기 울컥했다.
그분이 돌아가신 뒤로는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무공을 익힌 후 얻게 된 광증.
그 이후로 늘 두려움과 환멸, 혹은 기피하는 눈빛만 접해 왔다.
“약속하마.”
범계위의 말에 초악량이 깜짝 놀랐다.
그가 알던 범계위가 입에 담을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범계위가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네 허락 없이 여기를 떠나지 않겠다.”
그제야 단악선이 환하게 웃었다.
“헤헤. 고마워요.”
천진난만한 단악선의 웃음에 범계위도 슬쩍 웃고 말았다.
그런 단악선 너머로 마뜩잖은 표정을 짓고 있는 초악량이 눈에 들어왔다. 또 한 소리를 할 줄 알았는데, 초악량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왔다.
“애썼다.”
“……?”
“그 고집 꺾기가 힘들었을 텐데.”
초악량이 돌아서더니 모옥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
“거긴 내 집인데?”
범계위의 말에 모옥 안에서 초악량이 버럭버럭했다.
“그러게 누가 집을 부수래?”
* * *
산속의 밤은 일찍 찾아온다. 높은 절벽이 병풍처럼 에워싼 신마곡은 더욱 그렇다.
해가 떨어지자 신마곡은 금세 어둠에 잠겼다.
전각과 모옥 사이.
중앙의 작은 모닥불이 어둠을 밝히는 전부였다.
모닥불 주변에는 세 사람이 둘러앉아 있었는데, 고기가 익어 가는 중이었다. 단악선이 나뭇가지에 꿰인 고기를 꺼내 범계위와 초악량에게 내밀었다.
“드셔 보세요. 다 익은 것 같아요.”
범계위가 반색하며 고기를 받아 들었다.
“이게 얼마만의 고기냐! 맨날 푸성귀만 먹이더니?”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특별한 날이니까요.”
“특별한 날?”
“범 아저씨가 돌아오셨잖아요.”
고기를 입으로 가져가던 범계위가 멈칫했다.
잠시 고민하던 범계위가 들고 있던 고기를 단악선에 내밀었다.
“어? 먼저 드시지 않고요.”
“난 괜찮아. 그보다 단 의원…….”
“네.”
“우리에게 왜 이렇게 잘해 줘?”
내심 궁금했는지 초악량의 시선도 단악선을 향했다.
“두 분은 환자잖아요. 전 의원이고요.”
단악선이 두 사람을 향해 해맑게 웃었다.
“환자를 돌보는 건 당연한 거죠.”
범계위와 초악량이 서로를 마주 봤다.
―그냥 바본가? 착한 것도 이 정도면 문제 있는 거 아뇨?
범계위의 전음에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라 한마디 쏘아 주고 싶었지만 내공을 쓸 수 없어 전음 역시 날릴 수 없었다.
“세상 사람이 다 너 같은 줄 아냐?”
이렇게 핀잔을 던지는 게 고작이었다. 그때 생각에 잠겨 있던 단악선이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이유가 더 있긴 해요.”
―것 보슈.
초악량에게 전음을 날린 범계위가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두 분이 제 첫 환자거든요.”
두 사람은 단악선의 말에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뭐?”
범계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초악량도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의 의술만 봐도 범상치 않은 수준임은 분명했다. 그런데 첫 환자라니.
“설마 우릴 연습 대상으로 쓴…….”
단악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요.”
두 사람의 오해를 풀기 위해 단악선이 설명을 이어 갔다.
“제가 처음 환자를 치료한 건 네 살 때였어요. 하지만 그분은 부모님의 환자였지, 제 환자는 아니었으니까요.”
당시를 떠올린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그때는 그저 부모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침을 놓고 약을 처방했을 뿐이거든요. 온전히 제가 방법을 결정하고 치료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뜻이었어요.”
단악선이 배시시 웃었다.
“그동안 사람이 정말 그리웠거든요.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오랫동안 혼자 지내 왔으니까요.”
단악선의 얼굴이 잠시 흐려졌다.
“그런데 그때 두 분이 오신 거예요. 어떻게 제가 잘해 드리지 않을 수 있겠어요?”
“거참…….”
범계위가 콧잔등을 긁었다.
“울면서 할 이야기를 웃으면서 하니까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왜 울면서 해요? 아저씨들이랑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만 해도 얼마나 즐거운데요.”
그 순진무구한 미소 앞에 범계위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화들짝 놀랐다.
‘위험해.’
오랜 세월 무림을 겪어 오며 자연스럽게 쌓아 온 위기의식.
그 본능이 경고를 보내왔다. 그만큼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뼛속 깊이 새겨져 있는 범계위였다.
그런데 여기에 온 뒤부터 경계심이 무너지고 있었다.
이는 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초악량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강호 무림의 살아 있는 공포로 군림하던 혈수존자가 저런 온화한 미소라니!
이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이란 말인가.
그를 아는 무림인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몇 번이나 눈을 비비고 다시 봤을 광경이었다.
그때였다.
“윽.”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곤 뜯고 있던 고기를 슬그머니 내려놓는 게 아닌가.
“입맛은 까다로워서. 거 대충 드쇼. 고기가 다 거기서 거기지.”
핀잔을 던진 범계위가 고기를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그리고 이내 그 역시 미간이 일그러졌다.
“뭐야, 이건?”
겉은 타고 속은 익지 않아 핏물이 질척한 고기.
게다가 간도 엉망이었다. 어느 부위는 싱겁고, 어느 부위는 소태였다. 그런데도 단악선은 행복한 얼굴로 고기를 뜯고 있었다.
‘산속에 혼자 있었다더니…….’
문득 단악선이 가엾게 느껴졌다.
초악량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던지 서로 시선이 마주치자 씁쓸하게 웃었다.
―하늘은 저 아이에게 천하제일의 의술을 허락했지만, 미각을 빼앗아 갔구려.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은 늘 공평하지.”
웬일로 초악량이 수긍하나 싶어 의아해하고 있을 때, 초악량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네게 십대악인 삼 위의 무공을 주고 머리카락을 빼앗아 간 것처럼 말이야.”
“……!”
범계위가 들고 있던 고기를 초악량에게 던졌다.
“거기서 머리카락 이야기가 왜 나와! 그리고 삼 위 아니고 이 위라고!”
암기처럼 날아든 고기 꼬치를 피한 초악량이 자신의 고기도 범계위에게 던졌다.
“하긴 빼앗아 간 게 머리카락만은 아니지.”
초악량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숙인 범계위의 눈이 자신의 사타구니에 멈춰 섰다.
철그럭.
범계위가 대초자곤을 집어 들려고 할 때 단악선이 끼어들었다.
“정말 애들도 아니고 왜 그렇게 싸우세요? 드시기 싫으면 이리 주세요. 제가 먹을게요.”
초악량과 범계위가 서로를 바라봤다.
살짝 갈등했지만 고민은 잠깐이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고기를 우적우적 씹어 삼키기 시작했다.
차마 이 맛없는 음식을 단악선에게 떠넘길 수 없었던 것이다.
달밤 그윽한 어느 날.
그렇게 신마곡의 밤이 깊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