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61)
신마의선-61화(61/500)
신마의선 (61)
먼동이 터 오르기 시작한 이른 새벽.
깎아지른 절벽 사이로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절벽을 거스르는 바람을 피해 크게 선회한 비둘기는 이내 커다란 측백나무 가지에 내려앉았다.
가지 끝에 매달려 있던 작은 방울이 흔들렸다.
잠시 후.
가까운 모옥 문이 열리며 능소밀이 걸어 나왔다.
비둘기에게 모이로 포상을 한 뒤 다리에 매달려 있는 연통을 열어 안에 담긴 내용을 확인한 능소밀이 고개를 갸웃했다.
서신은 이의당의 당주, 소적산이 보낸 것이었다.
예전에 사무심이 따로 자리를 만들어 그와 안면을 튼 적이 있었지만, 그 이후 연락을 주고받은 적은 없었다.
이따금 마을에 내려갔을 때 서로 인사를 나누는 정도가 다였다.
“음?”
전서를 확인한 능소밀의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서둘러 신형을 움직였다. 그런데 몇 걸음 떼기도 전에 그를 불러 세운 음성이 있었다.
“어디 가냐?”
범계위였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린 능소밀이 화들짝 놀랐다.
모옥 처마 끝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범계위 때문이었다.
처음 보는 광경은 아니었지만 볼 때마다 놀라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물구나무를 선 채 형형한 안광을 흘리는 모습은 그 자체로 기괴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이의당에서 급보가 도착했습니다. 마을에 문제가 생긴 모양입니다.”
“문제?”
“곡주님과 친분이 있는 단골 약재상 주인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범계위의 표정이 굳어졌다.
“누구 짓인데?”
범계위는 이미 납치를 가정한 듯싶었다.
하나 속단하기는 이른 상황.
“자세한 상황을 알아보려 지금 마을로 가려는 중입니다.”
그 길로 능소밀은 곧장 마을로 향했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반색하며 그에게 다가서는 사람이 있었다.
소적산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능소밀의 물음에 소적산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순찰을 돌다가 분위기가 이상해서 확인해 보니 이미 사라진 뒤였습니다. 마지막 순찰을 했던 축시에는 이상이 없었으니 그로부터 한 시진 사이에 벌어진 일입니다.”
“평소와 다른 점은?”
“밤중에 마을로 은밀히 잠입한 자들을 보았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대략 서른 명 남짓이었다고 합니다.”
능소밀은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을 직감했다.
“그들이 어디로 향했는지 본 사람은 있나?”
“보고한 자의 말에 따르면 워낙 순식간에 사라져 자신이 헛것을 보았나 싶었답니다.”
“으음…….”
생각을 정리하던 능소밀이 곧장 약재상으로 향했다.
일단은 단서를 확보하는 게 우선이었다.
상점에 도착해 내부를 확인한 능소밀이 미간을 찡그렸다.
의외로 침입이나 저항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나무 바닥에 남겨진 희미한 족적 몇 개를 발견했다.
족적이 남겨진 곳의 흙을 손가락으로 문질러 보았다.
옅은 습기가 느껴졌다.
새벽이슬이 내린 이후에 침입한 자들의 것이 분명했다.
상점을 나와 주위를 살피던 능소밀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살짝 파인 흙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흔적이 줄지어 있었다.
고개를 돌려 약재상과의 거리를 가늠한 능소밀이 내심 침음했다.
‘열 명. 상승의 무공을 익힌 자들이다!’
그 정도 고수들이라면 무공도 익히지 못한 일반인은 반항조차 할 수 없었을 터.
저항한 흔적이 남지 않은 것도 이해가 되었다.
문제는 상대의 무공이 범상치 않다는 점이었다.
한 번의 도약으로 단숨에 십 장 이상을 이동하는 건 상당한 고수라는 의미.
특히나 한 사람의 실력이 유독 눈에 띄었다.
착지한 곳의 족적 중 하나만 유독 희미했기 때문이다.
경신술이 다른 이들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방증이었다.
“열 명에서 서른 명 정도의 인원이 흔적을 남기지 않고 숨어 있을 만한 장소가 있나?”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소적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짐작이 가는 곳이 있습니다.”
“어딘가?”
“마을 밖의 버려진 사찰입니다. 그만한 인원이 마을 안에서 움직였다면 진즉 눈에 띄었을 테니까요. 그곳이라면 평소에도 인적이 거의 없으니 몸을 숨기기 용이할 겁니다.”
역시나 이 지역 토박이답게 근처의 지리를 빠삭하게 꿰고 있었다.
“고맙네. 이제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지.”
“그럼 전 수하들과 함께 마을 안을 수색하겠습니다.”
“아니, 그러지 말게.”
“네?”
“자칫 풀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하는 우를 범할 수 있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능소밀의 속마음은 달랐다.
당장 그조차 상대할 자신이 없을 만큼 침입자들의 무위가 심상치 않았다. 자칫 저들이 얽혀 이의당이 피해를 입으면 훗날 돌아올 사무심을 볼 면목이 없었다.
‘어쩌지? 지금이라도 선배님들을 모셔 와야 하나?’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 와중에 한 줄기 전음이 뇌리를 파고들었다.
―추적해.
그것이 범계위의 목소리라는 것을 깨달은 능소밀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때 다시 한 번 전음이 날아들었다.
―티 내지 말고 태연하게. 멀리서 너를 주시하는 놈들이 있다. 내가 뒤따를 테니 자연스럽게 움직여.
그 말에 일말의 불안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평소에는 무섭기만 한 범계위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렇게 든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대로라면 소림사 정문의 백팔 계단도 망설임 없이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능소밀은 소적산에게 폐사찰의 위치를 물었다.
그리고 곧장 경공을 전개해 북쪽으로 내달렸다.
* * *
멀찍이 거리를 둔 채 능소밀을 따르던 범계위는 기척을 숨긴 채 능소밀을 추적하는 흑의인들을 파악했다.
단 두 명뿐이었으나 제법 한가락 하는 놈들이었다.
‘어디서 기어 나온 놈들이지?’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나선 길이었지만 상황이 이쯤 되니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꽤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능소밀을 추적하는 인원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그러다 폐사찰에 도착했을 때는 추적자의 숫자가 여덟 명에 이르렀다.
혹시 모를 탈출 경로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팔방을 물샐틈없이 에워싼 것이다.
누군가가 이곳으로 향하는 것을 사전에 대비해 둔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따라오길 잘했군.’
사무심이라면 상황이 불리해지더라도 충분히 몸을 뺄 수 있었겠지만 능소밀에게는 아직 버거운 상대들이었다.
범계위는 은밀히 놈들의 뒤를 밟아 갔다.
* * *
한편 능소밀은 반쯤 무너진 일주문(一柱門)을 지나 사찰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이내 한 사람을 발견했다.
전신을 흑의로 감싸고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사내였다.
복면 위로 드러난 흑의인의 눈에 언뜻 실망감이 떠올랐다.
“월척을 기대했건만 송사리가 걸려들었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흑의인의 뒤쪽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동시에 여덟 방위를 차단하고 있던 나머지 인물들도 모습을 드러내 포위하듯 능소밀과의 거리를 좁혔다.
주위를 둘러보던 능소밀이 고개를 갸웃했다.
“땡중이 사라진 사찰이라 쥐새끼만 가득하군.”
능소밀의 말에 우두머리인 듯한 사내의 눈에서 자욱한 살광이 폭사되었다.
“건방진…….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한 것인가?”
진득한 살기가 묻어나는 그의 엄포에 능소밀이 코를 잡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똥구멍으로 말을 하나? 뭔 냄새가 이리 지독해?”
“……!”
“딱 봐도 무명의 어중이떠중이는 아닌 것 같은데, 서로 인사나 할까? 나는 능소밀, 지금은 와해되었지만 한때 신소방이라는 곳을 이끌고 있던 사람이지. 그쪽은 어디 사는 누구신가? 아니면 진짜 쥐새끼인가?”
졸지에 신분을 밝히지 않으면 쥐새끼라고 인정하는 꼴이 될 판이었다.
“아! 복면 쓴 놈들에게 할 말은 아닌가? 하긴……. 무공도 익히지 않은 일반인을 납치할 만큼 치졸한 자들이니 쪽팔리기도 하겠다만.”
“닥쳐라!”
결국 흑의인들 중 한 명이 분기탱천해 일갈을 터트렸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서슬 퍼런 살기를 머금은 육중한 도가 쥐어져 있었다. 그 칼의 형태를 확인한 능소밀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금환태도(金環太刀)?”
칼등에 뚫려 있는 구멍 사이로 고리 모양의 금환 세 개가 줄지어 매달려 있었다.
금환이 부딪쳐 만들어 내는 소리가 상대의 집중력을 분산시켜 절명음도(絶命音刀)라고도 불리는 칼이었다.
그리고 이는 한때 산서의 패주로 군림했던 장락방의 독문병기이기도 했다.
“네놈들은 산서의 광견(狂犬)들이구나!”
능소밀이 자신들을 알아보자 우두머리 사내가 천천히 복면을 벗었다.
악영호의 얼굴을 확인한 능소밀은 가슴이 철렁했다.
범계위가 자신과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을 만큼 당황한 것이다.
이십 년 전, 산서혈사를 일으킨 장본인들을 이곳에서 마주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최근 두문불출하고 있다곤 하나 아직 산서에서만큼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들이었다.
정파의 하북팽가와 비견되는 사파 유일의 도방(刀房)이 바로 그들이었다.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하는 능소밀의 모습에 흑의인들이 노골적인 조소를 흘렸다.
‘나머지 놈들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야겠군.’
사찰 안에 있는 자는 열 명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능소밀은 잔뜩 위축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사나이 능소밀, 한 많은 인생을 여기서 내려놓는구나.”
“방금까지의 기세는 어디 갔지?”
악영호의 조롱에 능소밀이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자고로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으라 하지 않습니까? 모르면 몰랐을까, 알게 된 이상 어찌 감히 저따위가 산서의 대영웅들 앞에서 삿된 생각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체념이 묻어나는 능소밀의 태도에 악영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너는 빙옥선자와 어떤 관계냐?”
능소밀은 털썩 주저앉고 대답했다.
“그분께 일신을 의탁하고 있습니다. 대신 허드렛일을 도맡아 해 드리는 조건으로요.”
“단악선이라는 아이도 그녀와 함께 신마곡이라는 곳에 머물고 있느냐?”
순간 능소밀의 눈 위로 차가운 안광이 스치듯 떠올랐지만, 워낙 순식간에 사라져 아무도 알아챈 사람이 없었다.
‘이미 알고 왔구나.’
그렇다면 굳이 숨길 필요가 없었다.
“그렇습니다. 그녀의 병을 그 어린 의원이 치료해 주고 있습니다.”
“병?”
“네. 자세히는 알지 못하나 매일같이 그 어린 의원에게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 말에 악영호의 얼굴이 밝아졌다.
생각보다 일이 더 쉬워질 수도 있겠다 판단한 것이다.
“그 의원이 성수신단을 가지고 있느냐?”
“물론입니다. 몇 번인가 사용하는 것을 직접 본 적도 있습니다!”
그 말에 악영호가 격정을 감추지 못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능소밀이 입을 열었다.
“약재상을 이용하면 쉽게 그 어린 의원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그는 아는 것이 별로 없던데?”
“혹시 그를 이미 죽이셨습니까?”
악영호가 눈짓하자 흑의인들 중 한 명이 뒤쪽에서 약재상 주인을 질질 끌고 나왔다. 축 늘어진 약재상 주인의 모습에 능소밀은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모진 고문에 숨만 겨우 붙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 어린 의원이 사는 곳을 말하라 했더니 한사코 모른다 하더군. 한데 정말 모르고 있었을 줄이야…….”
쓴웃음을 짓던 악영호가 능소밀을 향해 말했다.
“이자가 언급한 신마곡이라는 곳으로 우릴 안내하도록.”
능소밀이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대답했다.
“하나 그곳에는 빙옥선자가 있습니다. 고작 이 정도 인원으로는…….”
“어째서 여기 인원이 전부라 생각하느냐.”
“네?”
“신마곡을 찾기 위해 먼저 움직인 일행이 있다. 그들과 합류해 빙옥선자를 처리할 것이다.”
능소밀이 대답이 없자 악영호가 회유책을 꺼내 들었다.
“협조한다면 목숨만은 살려 주지.”
능소밀이 반색했다.
“정말입니까?”
“물론.”
“설마 일구이언하는 후레자식은 아니겠죠?”
“뭐?”
“생각해 보십시오.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언제 겁을 먹었냐는 듯 능소밀이 표정을 바꿨다. 이미 원하는 바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행사가 외부로 알려져 좋을 것이 없으니 당연히 나를 죽여 입을 막으려 들겠지. 이런 일에 살인멸구와 삭초제근은 필수니까. 안 그래?”
“너, 이놈……!”
“누가 산서 촌뜨기들 아니랄까 봐 거짓말도 더럽게 못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