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62)
신마의선-62화(62/500)
신마의선 (62)
으득!
악영호가 으스러져라 이를 악물었다.
비로소 놈의 간교한 혓바닥에 놀아난 것을 깨달은 것이다.
장락방의 성세가 과거와 같았다면 감히 함부로 얼굴도 마주하지 못했을 하찮은 놈이 감히 자신들을 우롱하다니!
생각하면 할수록 부아가 치밀었다.
핏발 선 눈으로 능소밀을 노려보던 악영호가 가까운 수하를 향해 명령했다.
“놈의 팔을 가져와라.”
생각 같아선 당장 목을 날려 버리고 싶었다. 하나 아직 놈에겐 알아내야 할 것이 남아 있었다.
“복명!”
흑의인 한 명이 곧장 능소밀을 향해 다가섰다.
짤랑.
한 걸음씩 거리를 좁혀 올 때마다 금환태도의 고리가 섬뜩한 금속성을 흘렸다.
그러나 능소밀은 두렵지 않았다.
“쉽지 않을걸?”
오히려 자신감을 내비치며 오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상대와의 거리는 고작 여섯 걸음. 그런데 그 어디에서도 범계위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았다.
능소밀이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선배님?”
반응이 없었다.
“……!”
능소밀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 때,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온 흑의인이 벼락처럼 칼을 휘둘렀다.
“선배니임!”
능소밀이 질끈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콰득.
바로 코앞에서 들려온 소리에 능소밀이 슬쩍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어깨 위, 한 치 남짓한 거리를 남기고 멈춰 선 금환태도였다.
뒤이어 금환태도를 움켜쥔 커다란 손이 보였다.
범계위였다.
어느새 그의 옆구리에는 약재상 주인이 끼워져 있었다.
능소밀이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거봐, 쉽지 않을 거라 했지?”
그 와중에도 악영호를 향해 빈정대는 능소밀이었다. 반면 악영호는 경악에 가까운 충격을 느끼고 있었다.
‘대체 언제?’
눈을 뜨고 있음에도 꿈을 꾸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만큼 비현실적인 상황이었다.
갑자기 눈앞에 희끗한 잔영이 아른거리나 싶더니, 뒤늦게 일진광풍(一陣狂風)이 들이쳤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근처에 널브러져 있던 놈이 사라진 뒤였다. 그가 다시 나타난 곳은 수하의 앞. 거한이 수하의 칼을 맨손으로 움켜쥐고 있었다.
이 모두가 고작 눈 한번 깜빡이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귀하는 대체 누구시오?”
악영호는 자신도 모르게 존대를 쓰고 있었다. 상대의 존재감이 그만큼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서늘하게 식은 눈빛뿐이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악영호는 일순 숨이 막혔다.
칼을 붙들린 흑의인은 말할 것도 없었다.
범계위가 뿜어내는 가공할 살기를 목전에서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익!”
힘주어 칼을 잡아 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당혹감과 수치심에 복면 위로 드러난 흑의인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헉!”
헛바람을 들이켠 흑의인이 황급히 칼을 놓으며 물러섰다. 갑작스럽게 도파를 타고 올라온 지독한 열기 때문이었다.
고통스러운 신음을 삼킨 흑의인이 벌겋게 익어 벗겨진 손바닥을 내려다 봤다.
그러나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은 그 직후였다.
거한의 손에 붙들려 있던 칼 중간 부분이 벌겋게 달아오르나 싶더니, 그대로 시뻘건 쇳물로 녹아 후드득 쏟아진 것이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지독한 열양진기였다.
악영호의 눈빛이 흔들렸다.
오랜 세월 강호에 발길을 하지 않았더라도 소식과 소문을 들을 귀는 남아 있었다. 그중에서는 절대 조우해서는 안 되는 괴물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
저런 거구에 가공할 열양진기를 지닌 사람은 무림에 오직 한 명.
“망산초자?”
거한이 불쑥 입을 열었다.
“우리가 본 적이 있냐?”
“……!”
악영호는 그만 아연해졌다. 등골을 타고 오르는 오한에 안색은 이미 창백할 대로 창백해진 상태였다.
어째서 여기서 망산초자가 튀어나온단 말인가.
그들의 목적은 빙옥선자였지 인간의 육신을 뒤집어쓴 흉신(凶神)이 아니었다.
악영호가 흔들리는 표정을 애써 수습하며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귀하께서는 왜 여기에……?”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찾아온 건 너희들이잖아.”
그 대답으로 확실해졌다.
단악선이라는 의원 곁에는 한설화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비로소 악영호는 자신들이 터무니없는 상황에 발을 디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돌이키기엔 너무 늦어 버렸다.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이었기 때문이다.
범계위의 눈에 담겨 있는 노골적인 적의!
먹이를 눈앞에 둔 포식자의 눈빛을 마주한 지금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양패구상을 각오한다면 적어도 치명적인 부상을 안길 수 있을 터.’
애초에 단신으로 놈을 쓰러트리는 것은 아예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만큼 최악의 상대였다.
전대 방주가 살아 돌아온다면 모를까 이 자리의 어느 누구도 눈앞의 괴물을 맞설 방법은 없다.
하나 다행히 그들에게는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비전절예가 있었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공포를 애써 떨쳐 내며 악영호가 소리쳤다.
“금성벽라진(金聲霹羅陣)을 펼쳐라!”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악영호를 포함한 열 명의 장락방도가 범계위를 에워쌌다.
그들의 손에 들린 금환태도가 일제히 진동했다.
그 순간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기이한 음향이 사찰 전체를 에워쌌다.
“큭!”
능소밀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고막을 갉아 내는 듯한 지독한 소리가 내부를 진탕시키기 시작했다.
장락방도들 또한 편한 안색은 아니었다. 칼에 쏟아붓는 진기의 양이 상당한 모양이었다.
반면 범계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
“정신 사납게 뭔 짓이야?”
범계위가 손에 들린 물건을 집어 던졌다.
쾌애액!
소름 끼치는 파공음이 대기를 갈랐다.
퍼억.
범계위의 맞은편에 있던 악영호가 가슴을 움켜쥐며 힘없이 주저앉았다.
순간 그의 등 뒤로 자욱한 피 보라가 뿜어져 나왔다. 범계위의 손을 떠난 암기가 가슴뼈를 부수며 파고들어 그대로 관통한 것이다.
그러고도 여력이 줄지 않아 한참을 날아간 암기는 육중한 석탑을 무너트리고 나서야 바닥을 뒹굴었다.
“……!”
목숨이 흩어지는 와중에도 악영호는 기가 막혔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을 가공할 신력에 그저 아연할 뿐이었다.
자신의 가슴을 꿰뚫은 암기의 정체. 날카로운 도첨도 아닌, 뭉툭한 손잡이 부분인 도파였기 때문이다.
능소밀조차 기가 질려 버릴 지경이었다.
범계위는 초악량이나 한설화와 티격태격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로 탈바꿈해 있었다.
턱.
범계위가 옆구리에 끼고 있던 약재상 주인을 능소밀에게 넘겼다.
“너는 이 사람 데리고 돌아가라.”
“네? 네…….”
놈들의 고문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한눈에 봐도 약재상 주인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거추장스럽던 환자가 사라지자 범계위가 곧장 신형을 날렸다. 그리곤 우두머리를 잃고 우왕좌왕하는 장락방의 무인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 죽이기 시작했다.
두 번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거침없이 휘두르는 범계위의 손에 걸리는 족족 머리가 깨져 나가고 가슴뼈가 박살 났다.
‘금성벽라진은 개뿔…….’
능소밀은 소문으로만 듣던 범계위의 무공에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저들과 범계위 사이에는 애초부터 그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현격한 무위의 격차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초악량의 무공은 몇 번인가 본 적이 있었던 능소밀이다. 그러나 범계위의 무공은 초악량과는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절제되고 세련된 초악량의 무공과 반대로 파괴적이고 흉험했다.
능소밀은 문득 웃음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둘을 구분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어차피 둘 다 피를 몰고 다니는 괴물들이고, 천재지변에 버금가는 재앙인 건 매한가지다.
‘아차!’
뒤늦게 무언가를 깨달은 능소밀이 서둘러 참혹한 살육의 현장을 벗어났다.
그만큼 약재상 주인의 상태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언제 숨이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등 뒤로 들려오는 비명과 끔찍한 살기를 뒤로한 채 능소밀이 서둘러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각을 다투어 신마곡에 도착한 능소밀이 큰 소리로 단악선을 불렀다.
“곡주니임!”
그 음성이 채 흩어지기도 전에 능소밀의 눈앞에는 초악량과 한설화가 서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의 어깨 너머로 서둘러 달려오는 단악선의 모습이 보였다.
능소밀이 안고 있던 약재상 주인을 바닥에 눕혔다.
“어?”
약재상 주인의 얼굴을 확인한 단악선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저씨!”
비명 같은 외침을 지르는 와중에도 손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서둘러 약재상의 호흡을 확인한 뒤, 오른쪽 손목을 붙들더니 다른 손으로는 품을 뒤져 침이 담긴 목갑을 꺼냈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실낱같은 맥을 확인한 단악선이 황급히 초악량을 불렀다.
“도와주세요!”
단악선의 의도를 알아차린 초악량이 약재상 주인의 가슴에 손바닥을 올렸다.
그리고 직접 진기를 흘려 넣기 시작했다.
“으으…….”
약재상 주인이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단악선을 올려다보던 그의 눈빛이 격하게 흔들렸다. 그리곤 힘없이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네?”
단악선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정신이 흐릿한 와중에도 약재상 주인은 몇 번이고 미안하단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감정이 격해진 탓일까.
약재상 주인이 부르르 몸을 떨더니 밭은기침을 토했다. 그 기침에 피가 섞여 있었다. 단악선이 황급히 침을 이용해 그의 수혈을 찔러 잠재웠다.
지금은 겨우 숨만 간신히 붙들어 놓은 상태.
치료를 서둘러야 했다.
초악량이 그에게 진기를 불어 넣어 내상이 악화되는 걸 막는 사이, 단악선은 재빨리 손을 움직여 주요 혈도에 침을 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호흡이 안정되고 백지장처럼 창백했던 안색도 점차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숨을 돌리며 단악선이 치료를 이어 가는 사이 초악량이 능소밀을 향해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게냐?”
“그게…….”
능소밀이 설명을 시작했다.
이의당으로부터 전서구가 날아온 것부터 범계위와 함께 장락방도들과 마주친 것까지.
특히나 저들의 목적이 단악선이라는 것을 언급하자 단악선의 표정이 급격히 흐려졌다.
‘장락방…….’
방주였던 악영산의 죽음으로 귀결된 산서혈사에 대해서는 아버지도 몇 번인가 언급했기에 단악선도 알고 있었다. 하나 이토록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해묵은 과거의 원한이 자신을 찾아올 줄은 예상도 못 했다.
심지어 아버지조차 원한의 당사자가 아니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이미 정신을 잃어 들을 수 없음에도 단악선은 약재상 주인에게 사과를 건넸다. 그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초악량은 문득 이상한 점을 느꼈다.
“무위로 기어들어 온 놈들이 서른 명 정도라고 했었지?”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찰에서 능소밀을 기다리고 있던 장락방의 방도들은 고작 열 명뿐이었다.
“다른 놈들이 있다는 건데.”
“곧 놈들의 위치를 파악해 보고하겠습니다.”
능소밀의 대답에 초악량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네? 어째서…….”
반문하던 능소밀이 말끝을 흐렸다.
초악량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능소밀은 계곡 입구로 모여드는 흑의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