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63)
신마의선-63화(63/500)
신마의선 (63)
제 집인 양 신마곡 안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오는 흑의인들의 모습에 능소밀은 어이가 없었다.
‘하긴.’
범계위에게 당한 놈들과 같은 놈들이다.
불에 데어 봐야 뜨거운 걸 깨닫고,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릴 족속들. 이래서 무지가 무서운 것이다.
“장락방에서 오셨나?”
능소밀의 말에 선두에서 수하들을 이끌고 있던 악영기가 멈칫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한 눈치로군?”
능소밀이 피식 웃었다.
“당신네 다른 패거리를 이미 만났으니까.”
그제야 악영기는 정신을 잃고 누워 있는 약재상 주인을 발견했다.
한데 그 점이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악영산이 저들을 그리 쉽게 놓아줄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눈앞에서 얄밉게 웃고 있는 놈은 한눈에 봐도 자신들보다 한참 하수다.
악영기가 눈살을 찌푸렸다.
“어떻게 돌아온 거지?”
“직접 물어보시지. 어차피 곧 만나게 될 테니까.”
악영기가 의아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다른 일행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능소밀이 그런 그를 비웃었다.
“아무리 찾아봐야 그들은 오지 못해. 지금쯤 염왕과 면담하느라 정신이 없을 테니까.”
“뭐?”
“걱정 마. 그리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을 거야. 당신들도 곧 그 옆에 나란히 서게 될 거거든.”
“헛소리!”
악영기는 내심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다.
가뜩이나 산을 헤매느라 짜증이 치밀던 차에 황당한 소리를 들으니 더 화가 솟구쳤다.
약재상 주인을 납치하는 건 수월했다. 그러나 애초에 그가 아는 것은 많지 않았다.
그들이 알아낸 것은 신의의 아들이 산속 어딘가에 산다는 것과, 마을로 올 때마다 매번 동문을 이용한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수하들과 함께 동쪽 산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한데 이곳의 지형이 워낙 교묘해 좀처럼 찾아낼 수 없었다.
중간에 능소밀을 발견했기에 망정이지, 어쩌면 아직도 산속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시신이라도 온전히 남기려면 그 입 다무는 게 좋을 거다.”
악영기의 엄포에 능소밀이 실소했다.
“그래도 양심은 있군? 살려 준다며 눈앞에서 대놓고 거짓말하는 아우와는 다르게 말이야.”
악영기는 순간 발끈했지만 이내 화를 억눌렀다.
놈과 길게 말을 섞어 봐야 자신만 손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무공은 몰라도 혓바닥 놀리는 재간은 놈이 고수였다.
잠시 후에는 그 혀를 놀리고 싶어도 그리할 수 없게 될 터.
게다가 지금은 이곳을 찾아온 목적이 우선이었다.
악영기의 시선이 단악선에게 향했다.
“네가 신의의 아들이냐?”
섬뜩한 눈빛을 마주한 단악선도 지지 않고 마주 노려보았다.
“당신들이군요. 저 하나 찾자고 죄 없는 사람을 이리 만든 자들이.”
단악선의 얼굴을 응시하던 악영기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좋다! 아주 좋아!”
한참을 웃어 대던 악영기가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확실히 핏줄이 무섭구나. 신의의 얼굴이 확실히 남아 있어.”
악영기의 눈 위로 자욱한 안광이 일렁였다.
“이제 묵은 빚을 청산할 때가 되었다.”
“저는 당신에게 빚을 진 적이 없어요.”
단악선의 말에 악영기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아비의 과오는 자식이 짊어진다. 그게 바로 피로 이어진 업보라는 것이지. 그리고 그것이 강호의 방식이다.”
단악선이 분노로 입술을 깨물었다.
“좋구나. 그 얼굴……. 아주 좋아.”
자신을 노려보는 단악선의 표정에 악영기의 얼굴에 맺힌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
“신의……. 그자의 표정과 아주 닮았어.”
“…….”
“기대하마. 그 얼굴로 울며불며 비명을 지르고 애원하는 모습을…….”
악귀와 같은 웃음을 흘리는 악영기를 노려보는 단악선의 눈 위로 감출 수 없는 분노가 휘몰아쳤다.
그 순간 한설화가 단악선 앞을 막아섰다.
그리곤 능소밀을 향해 말했다.
“두 사람을 전각으로.”
짧지만 그 안의 의미는 명백했다.
머지않아 펼쳐질 살풍경한 광경을 단악선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가시죠, 곡주님.”
“하지만…….”
능소밀이 부드러운 미소로 단악선을 설득했다.
“빨리 그분을 치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단악선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떠나기 직전 악영기를 노려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능소밀이 단악선과 약재상 주인을 데리고 전각으로 향했다.
이를 지켜보던 악영기의 시선이 단악선을 떠나 한설화에게 고정되었다. 악영기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누구나 확연히 알 수 있는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귀하가 그 소문의 빙옥선자시라고?”
보면 볼수록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눈앞의 여인은 기껏해야 이십 대 중반 언저리.
어떻게 봐도 노회한 고수로 보이지 않았다.
충분히 사람을 홀리고도 남을 미모라는 건 인정하지만 그는 상식적인 사람이었다. 사람이 그리 오래 살 수 없다.
그것도 젊음을 유지한 채.
‘전설의 주안과라도 먹었다면 모를까.’
하나 그조차 떠들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의 헛소리에 불과하다. 악영기는 그런 허황된 이야기를 진지하게 믿을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소문의 진위를 확인해 보지.”
스릉.
악영기의 눈빛을 받은 장락방의 방도 한 명이 금환태도를 뽑아 들고 한설화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늘어트린 칼에서 뿜어져 나온 도기가 바닥을 긁으며 기다란 고랑을 새겼다.
반면 한설화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악영기는 자신의 예상이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했다. 지금껏 수많은 자들이 그럴싸한 허장성세에 속아 그녀를 추앙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를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악영기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한설화를 향해 다가서던 수하가 갑자기 그 자리에 멈춰 섰기 때문이다.
그녀와는 단 두 걸음만을 남겨 두고 있을 뿐이었다.
“뭐 하는 것이냐?”
악영기의 질책에 한설화를 향해 다가서던 장락방도가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 그의 얼굴에 당혹감이 가득했다.
“발이…….”
“뭐?”
“움직이지 않습니다.”
“무슨 헛소리야!”
수하는 대답하지 못했다.
새하얀 입김을 뿜어내는가 싶더니 석상이 된 듯 미동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침묵을 유지하던 한설화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린 것도 그때였다.
툭.
한설화가 우두커니 서 있는 장락방도의 어깨를 떠밀었다.
쩌적.
균형을 잃고 기우뚱 쓰러진 장락방도의 발목이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그의 발목 언저리는 어느새 새하얀 얼음에 뒤덮여 있었다.
하나 진짜 놀라운 것은 그 뒤에 일어났다.
쨍그랑.
바닥에 넘어진 장락방도의 몸이 사기그릇처럼 그대로 박살이 나 조각조각 흩어져 버렸다.
“대체 무슨 사술을!”
경악에 가까운 악영기의 외침에 장락방도 셋이 일제히 신형을 뽑아 올렸다. 그리고 무서운 속도로 한설화를 향해 쇄도했다.
한설화가 차가운 냉소를 말아 올렸다.
서걱.
한설화를 향해 달려들던 세 사람이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허공에서 토막 나 잘려 나갔다. 한설화의 손짓을 따라 보이지 않은 경력의 칼이 사방에서 솟구쳐 올라 온몸을 난도질해 버린 것이다.
“……!”
시신조차 온전히 남기지 못한 수하들의 참혹한 죽음 앞에 악영기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밀려드는 당혹감은 둘째 치고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을 머리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비현실적인 상황이었다.
‘이건…….’
도저히 인간의 경지라 믿을 수 없는 무위에 악영기는 창백한 낯빛으로 입술만 벙긋거렸다.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빙옥선자!’
소문이란 것은 으레 그러하듯 왕왕 와전되고 부풀려지기 마련이다.
강호에 떠도는 그녀에 관한 소문 역시 어느 정도의 과장이 더해졌으리라 생각했건만, 이게 웬걸.
직접 겪어 보니 오히려 소문이 소박하게 느껴졌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천하를 오시할 정도의 무공을 지닌 사람이 어떻게 그 오랜 세월을 은거하며 지낸단 말인가!
한 사람이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쯧쯧,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는 것을…….”
초악량이었다.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찬 초악량이 천천히 말을 이어 갔다.
“무림맹주의 안목이 너보다 못하다 생각하느냐?”
처음엔 영문을 몰라 의아해하던 악영기는 이내 그 말에 담긴 의미를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오랜 은거를 깨고 한설화가 처음 모습을 보인 곳은 무림맹이었다.
만약 그녀가 가짜였다면 무림맹주인 남궁백부터 자신을 능멸한 책임을 물었을 터.
“그래서 확증편향(確證偏向)이 무서운 거야.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보고 듣게 만드니까. 그 외의 사실은 철저히 무시하고.”
“……!”
초악량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탐욕에 사로잡힌 자들은 종종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지.”
“나, 나는…….”
“과거의 은원을 청산하고자 했다고?”
악영기의 말을 자른 초악량이 코웃음을 쳤다.
“아니. 그 말을 하는 순간에도 네 눈에 가득했던 건 오직 탐욕뿐이었다.”
정곡을 찔린 것일까.
붉으락푸르락하는 악영기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수하 한 명이 칼을 뽑아 들며 소리쳤다.
“닥쳐…….”
그러나 그는 말을 끝맺지도 못했다.
뻐억!
끔찍한 소리와 함께 그대로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 버렸기 때문이다.
사방으로 비산하는 뇌수와 육편.
피 분수를 뿜으며 쓰러지는 수하의 모습이 악영기의 망막에 새겨졌다.
툭. 데구르르.
뒤늦게 바닥으로 돌멩이 하나가 나뒹굴었다.
‘이건!’
악영기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수하의 머리를 터트린 그것은 방금 전 일장 연설을 늘어놓던 초로인이 지압구처럼 손안에서 굴리던 돌멩이가 분명했다.
단지 한 번의 돌팔매질로 사람 머리를 터트려 버리다니!
헌데 이걸로 그치지 않고 비릿한 혈 향만큼이나 지독한 살기가 사위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자네 이름이 악영기였나? 전대 장락방주였던 흑산노호 악영산의 형제들 중 한 명이었지 아마?”
“당신은……?”
“죽은 장락방주와는 제법 면식이 있었지. 자네도 몇 번인가 본 적이 있었고.”
악영기는 악몽과도 같은 상대를 기억에서 떠올리려 애썼다.
“그만큼 시야가 좁아진 거야. 심지어 아직까지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헉!”
그때서야 눈앞의 안개가 걷히며 악영기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혀, 혈수존자!”
과거와는 분위기가 너무 달라 바로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눈매며 윤곽이 비로소 예전의 그와 겹쳐졌다.
‘빌어먹을!’
악영기는 그만 눈앞이 아득해졌다.
한설화만으로도 살아 벗어나기 요원한데 거기에 초악량이라니!
그런데 그의 절망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다른 장락방도들의 생환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그들에게는 이미 북망산이 찾아갔으니까.”
“……?”
“아, 마침 저기 오는군.”
초악량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악영기는 계곡 입구를 막아선 거구의 사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뒤늦게 초악량이 언급한 북망산을 떠올리자 자연스럽게 한 사람의 명호가 튀어나왔다.
“망산초자!”
악영기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나만으로도 감당이 불가한 괴물이 무려 셋이나 이 자리에 있었다.
“허…….”
실성한 듯 허탈한 웃음을 흘리는 그의 동요는 고스란히 다른 수하들에게 전해졌다.
다른 장락방도들 역시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중 몇몇은 학질에 걸린 듯 바람 앞의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고 있었다.
그들도 무림에 몸담은 이상 강호 무림 꼭대기에 군림하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무수히 들어 왔다.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넘어선 괴물 같은 존재들.
그 순간 한설화가 움직였다.
초악량과 범계위 역시 마찬가지.
단악선에게 악의를 품은 자들을 살려서 돌려 보낼 만큼 어리석은 그들이 아니었다.
“강호의 방식이라고 했었나?”
공포에 질린 장락방도들에게 다가서며 초악량이 입을 열었다.
“그 말 그대로 돌려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