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65)
신마의선-65화(65/500)
신마의선 (65)
무위를 벗어난 호젓한 산길.
산길을 거슬러 달리는 한 기의 인마가 있었다.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을 다그치는 사람.
풍진성이었다.
얼마 전 진성의가에 능소밀이 보낸 전서구가 도착했다.
한데 전서의 지면이 워낙 작아 자세한 전후 사정을 파악하기 어려웠기에 곧장 말을 달려 왔다. 그러잖아도 최근 단악선과 관련된 소문 탓에 신경이 곤두선 상태였기 때문이다.
생각 같아선 더욱 속도를 내고 싶었지만 이미 말은 지칠 대로 지쳐 기진맥진한 상태.
다행히 저 멀리 신마곡의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온갖 걱정과 우려가 풍진성의 심기를 어지럽혔다.
그런데 막상 신마곡에 들어서자 괜한 기우였다는 걸 깨달았다.
진법도 펼쳐지지 않았고 분위기 또한 예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안도하며 말에서 내린 풍진성이 계곡 안쪽으로 향했다.
그러다 뜻밖의 광경과 조우했다.
저 멀리 땀을 뻘뻘 흘리며 움직이는 단악선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보법을 수련하고 있는지 단악선은 바닥에 그어진 선과 표시를 따라 열심히 뛰고 있었다.
그 옆에는 초악량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단악선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때때로 입을 열어 단악선의 자세와 움직임을 교정해 주고 있었다.
“발을 내딛기 전에 이어질 움직임을 미리 생각해선 안 된다. 감각에 몸을 맡겨라.”
평소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엄하고도 서슬 퍼런 음성이었다.
“강재타력전(剛在他力前), 유승타력후(柔乘他力後)! 상대의 힘이 완성되기 전에 강하게 먼저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반대로 상대의 힘을 받아 낼 때는 부드럽게 흘려 버려야 하지.”
초악량은 보법의 핵심이 되는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중요한 가르침을 가결(歌訣)의 형태로 전수하고 있었다.
그 설명이 지극히 난해해, 무공을 익히지 않은 풍진성에게는 다른 세상의 언어로 느껴졌다.
풍진성은 아예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 단악선이 수련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다행히 수련의 성과가 흡족했던지 시간이 지날수록 초악량의 말수가 부쩍 줄어들었다.
대신 보일 듯 말 듯 한 희미한 미소가 입가에 어렸다. 반면 저 뒤쪽에서 단악선의 수련을 지켜보는 한설화는 안타까운 눈빛을 던질 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엇! 저런!”
풍진성이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어지럽게 움직이던 단악선이 보법이 꼬였던지 그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거칠게 나뒹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초악량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단악선 역시 마찬가지.
꽤나 요란하게 넘어졌기에 상당히 아팠을 텐데도 까진 무릎에 침 한 번 바르더니 다시 몸을 날려 보법을 밟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풍진성이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이때 누군가 그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오셨습니까?”
능소밀이었다.
풍진성이 반색하며 능소밀에게 다가갔다.
“보내 주신 서신은 잘 받았습니다. 그와 관련해 몇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설명이 부족한 것 같아 추가로 전서를 보낼까 하던 참이었습니다.”
능소밀이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상세히 설명했다.
풍진성은 때론 놀라고, 때로는 침음하며 능소밀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무림인이라는 작자들은 어찌 그리 염치가 없는지…….”
능소밀의 설명이 끝나자 풍진성은 진심으로 분노했지만 이내 걱정이 앞섰다.
단악선을 노리는 자들이 비단 그들만은 아닐 터.
그렇게 한참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을 때였다.
“아저씨!”
손을 흔들며 달려오는 단악선을 발견한 풍진성이 마주 웃으며 손수건을 건넸다.
“수련은 끝나신 겁니까?”
“아뇨. 일각 정도 쉰 후에 계속할 거예요.”
풍진성이 단악선의 이마에 자리 잡은 커다란 멍을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자세히 보니 이마뿐만이 아니었다.
온몸 곳곳에 쓸리고 긁힌 상처가 빼곡했다.
풍진성의 눈빛을 읽은 단악선이 배시시 웃었다.
“걱정하실 것 없어요. 큰 부상도 아니고, 치료도 그때그때 바로 하고 있어요.”
“까진 무릎에 침 바르는 것처럼 말이지요.”
“보셨어요?”
멋쩍게 웃는 단악선의 모습에 풍진성이 한숨을 흘렸다.
“아무리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의원이신데…….”
“헤헤, 죄송해요.”
물끄러미 단악선을 주시하던 풍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표정이 밝아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오랜 시간 풍진성을 알아 온 터라 단악선은 단번에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부모님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맞서 보려고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두 분께서도 곡주님께서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사는 걸 원치 않으셨을 겁니다.”
사실 풍진성이야말로 단악선이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진심으로 바라 왔던 사람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단악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예전에 아저씨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
“부모님처럼 평생 이곳에서 살아도 행복하다고 했었잖아요.”
풍진성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언젠가 얼핏 그런 말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때도 바깥세상이 늘 궁금했어요. 다만 아저씨가 걱정하실까 봐…….”
“하하. 사과하실 것 없습니다. 저도 알고 있었으니까요.”
풍진성이 흐뭇한 미소로 단악선을 응원했다.
“힘내십시오. 여기서도, 밖에서도 곡주님은 분명 잘 해내실 겁니다.”
진심이 담긴 그 말에 단악선이 환하게 웃고는 돌아섰다. 그리곤 수련을 계속하기 위해 초악량 쪽으로 돌아갔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풍진성은 가슴 한구석이 찡해졌다.
‘못 본 사이 부쩍 성장하셨구나.’
물끄러미 단악선을 응시하던 풍진성이 가지고 온 짐을 풀었다. 모처럼 온 길이니 단악선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한창 전각으로 짐을 옮기고 있을 때였다.
“도와주지.”
언제 왔는지 초악량이 무거운 짐들을 번쩍 들어 올렸다.
“감사합니다.”
풍진성의 인사에 초악량이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약재들인가?”
“네. 청양환(淸揚丸)에 들어갈 것들입니다.”
“청양환?”
“스승님의 비전이었던 성수신단의 제조 방법을 제 방식대로 개량한 겁니다.”
초악량이 깜짝 놀랐다.
개량은 나쁜 점을 보완하여 더 좋게 고친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자네가 만든 청양환이 성수신단보다 뛰어나다고?”
풍진성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그런데 왜 개량이라 했는가?”
“성수신단의 가장의 큰 단점을 보완했으니까요.”
“단점?”
고개를 갸웃하던 초악량이 이어진 풍진성의 말에 크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수신단 하나를 제조하는 데 들어가는 약재 비용은 그야말로 사악할 정도입니다.”
게다가 만들 수 있는 양도 매우 한정적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청양환(淸揚丸).
성수신단에 비견할 수 없으나 흔한 약재들로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비록 기사회생이나 내공을 증진하는 효능은 없었지만 피로 회복과 내상 치료엔 충분할 정도의 효험이 있었다.
“대략 성수신단의 십 분의 일 정도 되는 효과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대신 제조 비용은 백 분의 일밖에 되지 않지요.”
“그래서 개량이라 한 거군.”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활한 공급을 위해 어느 정도 약효를 포기한 대신 제조 비용의 단점을 보완한 것이다.
“소림의 소환단 정도로 생각하면 될까?”
풍진성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소림의 비전 신단과 견줄 수 있겠습니까. 성수신단이라면 모를까…….”
“우리끼린데 굳이 겸양 떨 것 없네. 자네 실력은 충분히 알고 있으니.”
괜히 머쓱해진 풍진성이 고개를 돌려 단악선 쪽을 바라봤다.
단악선은 진지한 얼굴로 혼자서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몇 번이고 구르고 넘어져도 곧바로 일어나 자세를 바로잡는 모습에서 비장함을 넘어 독기마저 느껴졌다.
그 모습을 유심히 살피던 초악량이 미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무리하는군.”
“말릴까?”
언제 곁에 다가왔는지 한설화가 불쑥 입을 열었다.
“오랜만입니다.”
풍진성이 건넨 인사에 한설화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뒤 채근하듯 초악량을 응시했다.
초악량이 잠시 고민하는 사이 풍진성이 고개를 저었다.
“소용없을 겁니다.”
의아해하는 두 사람에게 풍진성이 쓰게 웃었다.
“저런 눈빛을 한 곡주님은 말릴 수가 없으니까요.”
“그게 무슨 뜻인가?”
초악량의 물음에 풍진성이 오래된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곡주님이 다섯 살 때, 약탕법을 처음 배우셨습니다.”
자신이 달인 탕약과의 차이를 메우겠다며 잠도 잊고 아궁이를 지키던 모습이 생각났다.
“당시의 집중력과 집념은 무서울 정도였습니다. 오죽했으면 두 분 스승님들께서 만류하셨을까요.”
고집으로는 천하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신의와 마의였다.
그런 두 사람도 단악선 앞에서는 한 수 접어야 했다.
온갖 회유와 엄포에도 단악선의 의지를 꺾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 결국 단악선은 기력이 다해 혼절하고 말았다.
풍진성이 문득 쓰게 웃었다.
정신을 잃은 단악선을 두고 서로를 닮아서라며 싸우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 고생한 것이 지금도 눈앞에 선했기 때문이다.
“그때도 저런 눈빛을 하고 계셨지요.”
결국 단악선은 한 달 만에 완벽하게 탕약을 달일 수 있게 되었다.
족히 반년 이상은 걸릴 것이라 단언했던 신의와 마의의 예상을 한참이나 앞당긴 결과였다.
“저 나이에 저런 의술을 지닌 게 이제야 이해가 가는군.”
초악량의 말에 한설화도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생각난 듯 풍진성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다른 한 분은 어디 가셨습니까?”
한시도 단악선 곁을 떠나지 않던 범계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볼일이 좀 있어서.”
초악량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이어 갔다.
“단 의원을 건드리려 했던 놈들은 확실히 뿌리를 뽑아야지.”
범계위를 떠올린 풍진성은 왠지 모르게 걱정이 앞섰다. 그런 풍진성의 표정을 읽은 초악량이 조용히 웃었다.
“안심하게. 조금 긴 산책을 간 것과 같으니.”
* * *
산서성(山西省)의 성도인 태원은 이천 년의 역사를 지닌 고도(古都)였다.
시대가 바뀌어 지금은 중원의 변방으로 밀려나 있었지만 눈에 띄게 발전한 상업 덕에 여전히 중원 경제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수많은 문파들이 난립해 이권을 다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다만 서로에 대한 견제가 워낙 심한 탓에 거대 방파가 들어서기 어려웠다.
한때 장락방이 이 일대의 패권을 거머쥐었던 적도 있었으나, 구파일방 중 한 곳인 개방과의 전면전에서 방주가 사망했고,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느긋하게 차를 기울이던 엽단영은 당시를 떠올리며 조용히 웃었다.
장락방의 위세에 숨죽이고 있던 이 지역 무림인들의 이합집산(離合集散)이 시작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조직 내부의 권력 싸움에 밀려 변방으로 좌천된 그에게는 그야말로 천우신조의 기회.
쓰디쓴 절망을 딛고 그가 다시 조직의 핵심 인물로 일어설 수 있었던 것도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용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절망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기회였던 대혼란.
엽단영은 후자였다.
쌍탑사라 불리는 영조사가 멀리 눈에 들어오는 다루.
그 꼭대기 층을 통째로 사용해 여유롭게 차를 즐기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공을 거둔 셈이다.
“좋구나.”
저 아래에서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지금 기분도 각별했다.
하지만 좋은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계단을 다급히 오르는 발걸음 소리에 엽단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루 중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기에 어지간한 일로는 이를 방해하지 않을 수하들이었다.
엽단영이 아쉬운 표정으로 찻잔을 내려놓았다.
“무슨 일이냐?”
점소이 차림의 수하가 그 앞에 부복했다.
“은밀하게 장락방의 뒤를 밟던 아이들과 연락이 두절됐습니다.”
“얼마나?”
“사흘 전부터입니다.”
엽단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위기 상황 시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정보원의 특성상 연락 두절은 언제든지 상정해 두고 있다. 그러나 이어진 수하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굳어졌다.
“혹시 몰라 투입한 수색조와 연락책마저 사라져 버렸습니다.”
“사라져?”
어감이 이상해 되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네. 호수에 던진 조약돌처럼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대답은 엉뚱한 곳에서 들려왔다.
“걔들 어디 있는지 가르쳐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