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66)
신마의선-66화(66/500)
신마의선 (66)
화들짝 놀란 엽단영이 눈을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다루 지붕이 박살 나며 한 사람이 뚝 떨어져 내린 것도 그때였다.
“어? 다, 당신은…….”
엽단영의 얼굴은 어느새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여, 오랜만이야.”
반가운 친구를 만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다가선 범계위가 부드럽게 손을 뻗었다.
엽단영이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때는 이미 범계위의 철탑 같은 팔이 어깨 위에 둘러진 뒤였다.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정도가 있어야지!’
난데없이 범계위의 등장에 엽단영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강호인들이 그에게 괜히 망산초자라는 불길한 명호를 붙여 준 게 아니다. 그와 만나 목숨을 부지한 자는 그야말로 손에 꼽을 정도.
그만큼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바들바들 떠는 엽단영을 내려다보며 범계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 아프냐?”
없던 병도 생길 지경이었지만 엽단영은 애써 웃었다.
“바, 반가워서요.”
평생 동안 망산초자와 조우할 기회가 몇 번이나 있을까. 그런데 그에게는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목숨이 붙어 있는 건 그야말로 타고난 운 덕분이었다.
‘아니, 그 반대인가?’
얼마나 운이 없으면 역신(疫神)처럼 재앙을 몰고 다니는 그를 이처럼 번번이 만날 수 있단 말인가.
“어젯밤 꿈자리가 길하더니 다 이유가 있었군요. 망산의 종주(宗主)를 이런 곳에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망산의 뭐?”
의아해하는 범계위의 모습에 엽단영이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망산초자라 할 순 없잖습니까. 그렇게 불리는 걸 싫어하시니까요.”
“맞아. 싫어하지.”
고개를 끄덕인 범계위가 기특하다는 듯 엽단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다 한순간 얼굴에서 웃음을 지웠다.
“그걸 아는 놈이 왜 그랬을까?”
“예?”
“장락방 애들이 찾아왔더라?”
“장락방이요? 그들이 왜……?”
말끝을 흐리던 엽단영의 눈빛이 격하게 흔들렸다.
“혹시 신마곡에 머물고 계셨습니까?”
“어. 내가 신세를……. 아니, 돌보고 있어.”
“……!”
엽단영의 얼굴이 한순간 창백해졌다. 비로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어진 범계위의 말에 엽단영의 안색은 아예 흙빛이 되어 버렸다.
“걔들한테 물으니 여기, 흑점 산서 지부를 대던데?”
석상처럼 굳어 말을 잇지 못하는 엽단영을 범계위가 지그시 응시했다.
“왜 그랬냐?”
엽단영이 사력을 다해 외쳤다.
“모, 몰랐습니다! 정말 몰랐습니다! 만약 알았다면 절대 정보를 팔지 않았을 겁니다! 믿어 주십시오!”
“그래?”
의외로 범계위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고 한 건데 어쩔 수 없지.”
“감사합…….”
“그런데 또 그럴 거야?”
“네?”
“내가 그곳에 있는 걸 이제는 알았잖아. 그런데도 또 귀찮게 할 거냐고.”
“두 번 다시 그런 불민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좋아.”
고개를 끄덕인 범계위가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다 바닥에 부복한 채 자신을 힐끔거리는 엽단영의 수하를 발견했다.
“야, 너.”
“네? 넵!”
“시원한 물 좀 가져와라. 열심히 뛰어왔더니 목이 마르다.”
우물쭈물 망설이는 수하를 향해 엽단영이 눈을 부라렸다. 그제야 그의 수하가 서둘러 밖으로 달려 나갔다.
물을 기다리는 사이 엽단영이 범계위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장락방도들은 어찌 되었는지 여쭈어도 될는지요?”
“어떻게 되었을 것 같아?”
엽단영은 돌아온 대답에 질끈 눈을 감았다. 뒷말은 굳이 듣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득 장락방도들을 감시하던 수하들이 사라진 것을 떠올렸다.
“혹시 제 수하들도……?”
고개를 갸웃하던 범계위가 문득 무언가를 떠올렸다.
신마곡을 나선 직후 기척을 감춘 채 주변에 은신해 있던 일단의 무리가 그의 감각에 걸렸다.
“아! 걔들? 뭐 하는 놈들이냐 물었는데 다짜고짜 달려들던데?”
‘젠장!’
엽단영이 속으로 욕설을 삼켰다.
묻지 않아도 상황은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이때 한 사람이 쟁반에 찻잔을 받쳐 들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마실 것을 가지러 간 수하였다.
그가 공손히 범계위에게 차를 바쳐 올렸다.
잔에 담겨 찰랑이는 투명한 금빛과 코끝을 감도는 향긋한 내음만으로도 단번에 고급 차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범계위의 표정은 심드렁했다.
“너 일부러 나 먹이냐?”
엽단영이 당황해 손을 내저었다.
“예? 제가 어찌 감히…….”
“찬물 가져오랬잖아. 가뜩이나 더워 죽겠는데 뜨뜻한 차를 내오는 건 무슨 심보야?”
엽단영이 즉시 수하를 향해 소리쳤다.
“찬물 가져와! 어서!”
“됐어. 그냥 마시지, 뭐.”
범계위가 찻잔을 낚아채더니 몇 모금 차를 마신 뒤 묘한 표정을 지었다.
“차 맛이 제법 괜찮은데?”
“군산 은침입니다.”
동정호의 작은 섬인 군산에서 나는 침형의 황아차.
생산량이 워낙 적어 웬만한 권력이나 부를 지니지 않고서는 구할 수 없다는 명차다.
범계위가 엽단영을 향해 찻잔을 내밀었다.
“마셔.”
“예?”
“빨리. 두 번 다시 맛보기 힘든 맛이라니까?”
강요에 가까운 권유에 마지못해 찻잔을 입으로 가져간 엽단영은 이어진 범계위의 말에 찻물을 뿜어냈다.
“살면서 상린남영(祥鱗藍影)을 맛볼 기회는 흔치 않지.”
“푸훕!”
“어? 그 비싼 걸 왜 뱉어?”
“쿨럭.”
밭은기침을 토한 엽단영이 당혹감에 휩싸여 수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창백한 얼굴로 부들부들 떠는 수하의 모습에 엽단영은 범계위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시키지도 않은 짓을!’
심복의 과잉 충성이 가져온 재액이었다.
사천당가의 절독 중 하나인 상린남영은 칠음절명(七吟絶命)이라 불린다. 일단 복용하면 일곱 번의 신음을 토하기 전에 죽음에 이른다는 무색무취의 극독. 삼키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혀끝이 저릿하게 마비되고 있었다.
두 번 다시 맛보기 힘들다는 범계위의 말을 엽단영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한 번 맛보면 죽을 테니 두 번 맛볼 기회가 있겠는가.
“퇫!”
범계위가 바닥에 침을 뱉었다.
부글거리며 지독한 악취를 피워 올리는 독기!
“이것도 모르고 그런 거냐?”
엽단영이 변명할 틈도 주지 않고 범계위가 벼락같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대로 엽단영의 수하를 붙잡아 번쩍 들어 올렸다.
“커헉!”
목을 움켜쥔 커다란 손에 꺽꺽대며 발버둥 치던 것도 잠시.
이내 그의 칠공에서 시뻘건 화염이 치솟았다.
“……!”
순식간에 눈앞에서 새카만 재로 변해 허공으로 흩어지는 수하!
그 모습을 엽단영은 그저 망연자실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범계위가 불쑥 입을 열었다.
“신마곡에 대한 정보는 어디서 얻은 거냐?”
“백검문의…….”
“백검문?”
“헉!”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무심코 대답하던 엽단영이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모든 것을 거래하는 흑점이라지만 단 하나 거래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정보 제공자의 신원이다.
만약 정보 제공자의 신원이 드러난다면 정보 판매상으로서의 신용에 큰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목숨을 걸고 철저히 함구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백검문의 뭐? 왜 말을 하다 말아?”
범계위의 재촉에도 엽단영은 식은땀만 흘렸다.
“네가 알고 싶어 했던 정보를 건넸으니 너도 내가 알고 싶은 걸 알려 줘야지?”
범계위가 눈살을 찌푸린 채 물었다.
“제가 알고 싶어 했던 정보요?”
“그래. 아까 궁금해했잖아. 네 수하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엽단영이 장탄식을 터트렸다.
뛰어난 처세술로 일가를 이룬 그였지만 범계위를 상대로는 도저히 답이 없었다.
“무림맹의 감찰 사자 백운휘. 정보의 출처가 그였습니다.”
범계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림맹 소속의, 그것도 감찰 사자 정도의 직책을 지닌 자가 흑점에 정보를 넘긴 이유가 자못 의아했던 것이다.
“놈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 봐.”
“그것까지는…….”
망설이며 대답을 주저하는 엽단영을 향해 범계위가 히죽 웃었다. 엽단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말 안 하면 소문낸다?”
“예?”
“흑점 산서 지부장 입 싸다고.”
엽단영이 눈을 질끈 감았다.
외통수.
그가 몸담고 있는 조직이 알게 된다면 면책 정도로 끝낼 리 만무하다. 그러나 그것은 나중 일. 그런 것 따위 범계위에 비하면 문제라고 할 바도 못 된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지!’
생각을 굳힌 엽단영이 백운휘에 대해 모았던 정보를 사실대로 설명했다.
“그러니까 그놈이 백검문주의 동생인데, 백검문을 차지하기 위해 자신의 백부와 모종의 결탁을 했다?”
“그렇습니다.”
“겸사겸사 성수신단도 확보하고?”
“당금 강호에 신단을 탐내지 않을 무림인은 없을 테니까요.”
“너도 그래?”
“예?”
빤히 자신을 응시하는 범계위의 모습에 엽단영이 소스라치게 놀라 고개를 끄덕였다.
“무, 물론 저는 탐내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요!”
“좋아.”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범계위가 그대로 돌아섰다.
“앞으로 종종 보자.”
“어디 가십니까?”
“백검문.”
“네? 거길 왜…….”
“그놈 잡으러.”
그 말에 엽단영이 화들짝 놀랐다.
“설마 백검문을 치시려고요?”
“이 기회에 쓸어버리지, 뭐.”
끔찍한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지껄이는 범계위의 모습에 엽단영이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엽단영은 걷잡을 수 없이 돌아가는 상황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범계위가 허언을 할 자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백검문이 피해를 입게 되면 조사 차원에서라도 무림맹이 나서게 될 것이고, 이번 일에 이곳 산서 지부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건 시간문제가 된다.
‘젠장!’
결국 죽어 나가는 건 자신뿐이었다.
엽단영이 급히 머리를 굴렸다.
“백검문에 가 봐야 놈은 없을 것입니다.”
“왜?”
“무림맹의 감찰 사자니까요. 직책이 직책이니만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무림맹 본단에 머물고 있습니다.”
범계위는 이미 오래전부터 척살령이 내려진 상황.
아무리 무모하다 할지라도 무림맹 본단으로 쳐들어가는 미친 짓은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얼마나 안일한 생각이었는지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 무림맹에 있었어? 그거 고마운 정보네.”
신형을 날리기 위해 방향을 가늠하는 범계위의 모습에 엽단영은 불길함이 솟구쳤다.
“어디 가십니까?”
“놈이 무림맹에 있다며?”
“무림맹으로 가시겠다는 겁니까?”
“왜? 문제 있어?”
왜 없겠는가.
너만 가서 죽으면 괜찮은데, 내 목숨이 달린 게 문제지.
어떻게든 범계위를 만류하지 않으면 자칫 손쓸 수 없는 대형 사고로 번질 터. 엽단영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제가 놈이 있는 곳을 알아봐 드리겠습니다.”
“지겹게 기다리긴 뭘 기다려? 그냥 백검문과 무림맹, 순서대로 들쑤시면 어디선가 튀어나오겠지.”
“……!”
말릴 틈도 없이 범계위가 그대로 신형을 날렸다.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던 엽단영이 뒤늦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비상!”
그의 음성이 채 흩어지기도 전에 곳곳에서 수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변복을 한 채 존재를 숨기고 있던 흑점의 고수들이었다.
“그가 백검문에 도착하기 전에 백운휘의 행방을 알아내야 한다! 당장 움직여!”
“복명!”
그의 명령에 일제히 복창한 수하들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