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67)
신마의선-67화(67/500)
신마의선 (67)
태원은 오래전부터 북방의 이민족을 방어해 온 군사 도시다. 과거에 축조된 고성(古城)이 남아 있는 이유도 그래서다.
평요성과 함께 이대 고성으로 불리는 봉황성.
백검문은 봉황성 북문을 마주 보는 요지에 위치해 있었다.
지금은 성세가 기울어 무림 내에 영향력은 미미했지만, 봉황성과 역사를 함께해 온 만큼 지역 내의 입지는 매우 탄탄했다.
이곳의 터줏대감 역할을 해 온 유일한 정도 문파였기 때문이다.
어둠이 내려앉은 자정 무렵.
멀리 보이는 백검문의 전각들을 눈에 담은 범계위가 품속에서 단약을 꺼냈다.
“아까운데 반만 먹을까?”
몇 개 남지 않은 성수신단을 보며 범계위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잠시 고민하던 범계위가 이내 마음을 굳혔다.
“에이, 그냥 먹자.”
피를 보더라도 정신만큼은 온전해야 한다.
미련 없이 신단을 입에 털어 넣은 범계위가 가슴 깊이 눌러두었던 살기를 개방했다.
“감히 단 의원을 건드렸겠다?”
그 일로 인해 마음고생이 심했을 단악선을 떠올리니 절로 분노가 끓어올랐다.
쿠웅.
범계위가 진각을 구르자 충격을 견디지 못한 대지가 움푹 꺼지며 거미줄 같은 균열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그 순간 범계위의 신형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한 번의 도약으로 삼십여 장을 날아간 범계위가 곧장 한 곳으로 쇄도했다.
꽈앙!
유성처럼 내리꽂힌 범계위에 의해 백검문의 정문이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우지끈.
뒤이어 외부 손님을 맞이하는 지객당의 전각도 송두리째 박살이 나 버렸다.
“습격이다!”
비명에 가까운 누군가의 경호성을 시작으로 곳곳에서 호각 소리와 고함 소리가 이어졌고, 전각 곳곳에서 무인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잠옷 차림인 것으로 보아 자다 깬 것이 역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마다 쥐고 있는 무기에서는 눈빛만큼이나 삼엄한 예기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당황한 상태였다.
감히 누가 있어 백검문의 담을 넘는단 말인가. 전성기의 장락방조차 백검문의 담을 넘을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그만큼 백검문은 이곳 태원에서 상징적인 문파였다.
“적은 한 명뿐이다!”
이미 오십 명이 넘는 무인들이 빼곡하게 침입자를 에워싼 상황.
그러나 압도적인 수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상대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주위를 둘러본 범계위가 등에 메고 있던 대초자곤을 움켜쥐었다.
쿠웅.
“백운휘라는 놈이 누구냐?”
무인들 중 강호 경험이 많은 노련한 무인이 경악해 소리쳤다.
“망산초자!”
엄청난 거구와 가시처럼 돋은 수염, 거기에 범계위의 독문병기인 대초자곤을 알아본 것이다.
“……!”
백검문 무인들 사이로 감출 수 없는 동요가 번져 나갔다.
모르면 몰랐을까 범계위의 정체를 알게 된 이상 먼저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그들을 응시하며 범계위가 나직하게 으르렁댔다.
“놈을 데려와라.”
철그럭.
범계위가 대초자곤을 움켜쥔 손에 힘을 넣었다.
“아니면 전부 죽든가.”
어차피 초악량처럼 말발로 상대를 압도하는 재주가 없으니, 차라리 이게 낫다. 하지만 상대를 초토화하는 것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는 범계위가 아니던가.
‘쓸어버리면 그중에 있겠지.’
범계위는 심의운기(心意運氣)의 경지에 이른 고수.
의지를 따라 자연스럽게 일어난 살기가 폭발하듯 짙어졌다. 삽시간에 주위를 에워싼 가공할 기세에 백검문도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갔다.
주위를 압도하는 눈빛과 가공할 존재감.
일대종사가 아니고서는 지닐 수 없는 무서운 압력이 자신들이 서 있는 공간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범계위가 막 신형을 날리려던 찰나.
―찾았습니다.
한 줄기 전음이 날아들었다.
범계위가 고개를 돌려 전음이 날아온 방향을 보았다. 무너진 담벼락 너머로 슬쩍 모습을 보이는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엽단영이었다.
얼마나 급히 달려왔는지 얼굴이 온통 땀범벅이었다.
“쳇! 하필 왜 이때 오는 거야.”
범계위가 아쉬운 표정으로 미간을 찡그렸다.
“운 좋았다, 니들.”
미련 없이 돌아선 범계위가 앞서 사라진 엽단영을 따라 신형을 날렸다. 그리고 그대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뒤늦게 나타난 백검문주가 멍하니 서 있는 문도들을 다그쳤다.
하나 그들도 영문을 모르긴 마찬가지.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던 문도들 가운데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외당의 경비를 책임지고 있던 지객당주였다.
“침입자는 범계위였습니다.”
“뭐?”
무너진 대문과 지객당 건물을 눈에 담은 백검문주, 백운경의 눈에 감출 수 없는 의혹이 떠올랐다.
“그자가 왜?”
백운경은 도무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림맹의 십대악인 토벌에 백검문은 참여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와는 지금까지 이렇다 할 뚜렷한 은원도 없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서로 활동하는 지역이 멀리 떨어져 있어, 엮일 기회조차 없었다.
“저 또한 경황이 없어 자세한 연유는 알지 못하지만…….”
말끝을 흐리던 지객당주가 석연치 않은 점을 언급했다.
“그가 백운휘 도련님의 이름을 언급했습니다.”
“휘아를? 오래전에 발길을 끊은 그 아이를 왜 여기서 찾는단 말인가?”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황망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백운경이 무거운 탄식을 터트렸다.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니는 것이냐!’
범계위 정도 되는 괴물을 끌어들였다는 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무너진 전각 사이로 흘러나오는 부상자들의 신음 소리에 백운경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다친 사람들을 수습하고 무림맹에 전서구를 날리도록!”
백운경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멍하니 서 있던 백검문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태원과 반나절 거리인 작은 마을.
사위를 에워싼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등을 밝힌 객잔이 있었다.
그 안에서 백운휘는 백천인과 마주하고 있었다.
팔뚝만큼이나 굵은 대황촉(大黃燭)이 촛농을 떨구며 주위를 밝히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얼굴에는 깊은 그늘이 드리워 있었다.
창문 사이로 스며든 바람에 이따금 일렁이는 촛불.
벽에 드리워 너울거리는 그림자가 가뜩이나 심란한 마음을 더욱 어지럽게 만들었다.
“다음에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한참의 침묵 끝에 백운휘가 운을 뗐다.
“다행히 신의의 아들 소재와 관련된 소문은 퍼지지 않았으니까요.”
말없이 허연 수염을 쓰다듬던 백천인의 눈 위로 초조함이 떠올랐다.
“하지만 시간이 많지는 않을 텐데.”
장락방의 정예들이 통째로 사라진 이상 그와 관련된 구설수가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건 시간문제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계속 두드리면 언젠가 문은 열리기 마련입니다. 장락방을 대신할 자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자신만만한 백운휘의 말투에 백천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괜히 풀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미 한 번 겪은 이상 빙옥선자의 경각심은 더욱 높아졌을 터. 더구나 신마곡에 투입된 장락방도들은 종적 자체가 묘연하다.
“어쩌면 빙옥선자와 관련된 소문이 사실일 수도…….”
소란은커녕 존재가 송두리째 지워진 것처럼 사라지다니.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심상치 않았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번엔 반드시 성공할 테니까요.”
“어떻게?”
백운휘가 식은 차를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한 모금의 차로 입술을 적신 뒤 백운휘가 입을 열었다.
“북해의 빙궁을 끌어들일까 합니다.”
“……!”
백천인이 반색하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녀가 한때 북해빙궁을 상징하던 고수였다는 사실은 그 역시 알고 있었다.
“그들을 움직이는 게 쉽지 않을 텐데?”
“감찰 사자라는 직책은 이럴 때 매우 유용하지요.”
비록 무림맹 소속은 아니었으나 새외에서 유일하게 무림맹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문파가 빙궁이다.
“빙옥선자의 행방만 알려도 그들은 맨발로 달려올 것입니다.”
“어째서지?”
백천인의 반문에 백운휘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머금었다.
“이유는 밝히기 어려우나 지금 저들이 처한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근 심상치 않은 새외의 동향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그였기에 이것만큼은 장담할 수 있었다.
“그들은 반드시 그녀를 찾아 올 것입니다. 자신들의 사활이 걸린 문제니까요.”
자신만만한 백운휘의 태도에 백천인은 불신을 거두었다.
“머잖아 우리 백검문이 천하를 오시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백운휘의 말에 백천인이 흐뭇한 얼굴로 습관처럼 수염을 쓰다듬었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군.”
그때였다.
백운휘는 갑자기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꼬집어 설명하기 힘든 묘한 이질감.
“왜 그러느냐?”
“아닙니다, 아무것도.”
의아해하는 백천인의 물음에 애써 웃으며 입을 여는 순간 백운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갑자기 온몸의 털이 쭈뼛 곤두섰기 때문이다.
‘이건?’
백운휘가 황급히 주위를 둘러봤다.
주변을 에워싼 공기가 점차 무거워지고 있었다.
뒤늦게 그 이유가 사방에서 요동치는 농밀한 살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벌컥.
돌연 방문이 열리더니 거대한 체구의 사내가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당황한 나머지 두 사람이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범계위가 태연히 의자를 끌어와 두 사람 사이에 앉았다.
백천인은 당혹스러운 나머지 백운휘를 바라봤다.
“아는 자더냐?”
그 역시 거구라 할 수 있는 체구였지만 상대는 자신보다 머리통 하나가 더 컸다. 살다 살다 이런 괴물 같은 덩치는 처음이었다.
백천인과 백운휘를 번갈아 보던 범계위가 씨익 웃었다.
“너구나?”
감찰 사자는 백검문주의 동생이라 했으니 눈앞의 늙은이는 아닐 터.
범계위의 웃음을 마주한 백운휘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제야 상대의 정체를 깨달은 것이다.
조카의 심상치 않은 표정을 눈치챈 백천인이 앉은 자세 그대로 쌍장을 뻗었다.
쩌엉!
상대의 등판에 작렬한 장력이 거칠게 실내에 휘몰아쳤다.
“크악!”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진 것도 그때였다.
선공을 가한 백천인의 입에서 터져 나온 비명이었다.
손목뼈가 부서져 덜렁거리는 자신의 양손을 백천인이 아연한 얼굴로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울컥 피를 토했다.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호신강기가…….”
마치 거대한 금성 철벽을 후려친 것 같았다.
중얼거리던 백천인은 말을 이어 갈 수 없었다. 갑자기 눈앞으로 튀어나온 커다란 손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헛바람을 들이켠 백천인이 재차 손을 뻗으려 했다.
우두둑.
범계위의 손아귀 안에서 소름 끼치는 소리가 터져 나온 것도 동시였다.
“……!”
백운휘의 눈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힘없이 축 늘어진 백천인의 손.
코피를 쏟으며 절명한 그의 머리는 범계위의 손에 의해 움푹 찌그러져 있었다.
두 눈을 부릅뜬 채 절명한 그의 눈을 가득 채운 것은 오직 경악과 공포의 감정뿐이었다.
범계위와 시선이 마주치자 백운휘가 황급히 외쳤다.
“나를 해치면 무림맹이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오!”
범계위가 실소했다.
“내 목에 현상금을 건 게 언젠데 새삼스럽게 무슨.”
할 말이 없어진 백운휘가 불안하게 눈을 굴리던 그때 방문이 열리며 엽단영이 조용히 들어섰다.
코피를 쏟고 절명한 백천인을 뒤늦게 발견한 엽단영이 그 자리에 굳어졌다.
‘난리 났다!’
일단 피를 보면 완전히 돌아 버리는 범계위다.
그를 잘 아는 까닭에 사태를 조용히 마무리하긴 글렀다고 판단한 것이다.
‘씨☓!’
아니, 수습은커녕 이제는 이 자리를 무사히 벗어나는 것도 어렵게 되었다.
엽단영이 백운휘를 노려봤다. 이게 다 저 머저리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자신을 바라보는 범계위의 눈빛이 너무나 맑았기 때문이다.
엽단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으신 겁니까?”
“뭐가?”
“그……, 광증……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