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68)
신마의선-68화(68/500)
신마의선 (68)
어렵사리 말을 꺼냈지만 범계위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고쳤어.”
“네?”
범계위는 성수신단이라는 말을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말해 줄 이유가 없잖은가. 하지만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는 엽단영과 백운휘가 동시에 놀랐다.
범계위의 광증이 치료되었다니!
애써 놀라움을 삼킨 엽단영이 범계위를 향해 입을 열었다.
“객잔을 수중에 넣었습니다.”
이미 방마다 수하들을 배치한 뒤 몽혼약으로 손님들을 모두 재워 버렸다.
사람을 죽여 입을 막는 건 생각보다 몹시 번거로운 일이다. 시신을 없애는 건 둘째 치고, 다수의 실종자가 발생하면 그에 따른 무림맹의 조사에 꼬리가 밟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제야 백운휘는 지금과 같은 소란에도 객잔이 잠잠한 이유를 깨달았다.
엽단영이 백운휘를 노려봤다.
“너희 두 사람 정도는 소리 소문 없이 지울 수 있다는 뜻이야.”
살의가 담긴 엽단영의 눈빛에 백운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자, 잠깐! 협상을 합시다!”
백운휘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나는 무림맹 내의 기밀 정보에 접근할 권한이 있소.”
엽단영은 순간 솔깃해졌다.
무림맹 내부의 핵심 정보들을 얻는다면 이를 이용해 흑점 내에서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다지는 것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나 이내 마음을 접었다.
범계위를 눈앞에 두고 욕심을 채울 정도로 그는 멍청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범계위는 백운휘를 살려 둘 생각이 없었다.
언감생심 꿈도 꾸어선 안 되는 일인 것이다. 자신의 제안이 씨알도 먹히지 않자 백운휘는 생각을 달리했다.
“치, 칠절마군!”
범계위라면 분명히 그냥 넘어가지 못할 이름을 외쳤다.
예상대로 범계위가 반응을 보였다.
“그 개자식이 왜?”
“무림맹주와 그자의 거래에 대해 알고 있소.”
그 말에 범계위뿐만 아니라 엽단영의 표정도 달라졌다. 당금 무림에 가장 큰 의문 중에 하나가 바로 그것 아닌가.
십대악인 칠절마군은 대체 왜 무림맹의 파사단주가 되었는가?
“그 거래가 뭔데?”
“사, 살려 준다고 약조하시오.”
“굳이 그런 약속을 해야 하나?”
범계위가 히죽 웃었다.
턱.
범계위가 손을 뻗어 백운휘의 팔을 붙들었다.
“무, 무슨 짓을……!”
범계위의 얼굴에 맺혀 있던 웃음이 짙어졌다.
“솔직히 궁금하긴 한데, 널 살려 둘 정도는 아니야. 어차피 칠절마군 그놈도 내 손에 죽을 거거든. 그때 물어보지, 뭐.”
“자, 잠깐!”
화들짝 놀란 백운휘의 음성이 이내 끔찍한 비명으로 바뀌었다.
뿌드득.
“끄아악!”
범계위가 손에 힘을 주어 백운휘의 팔을 뽑아 버렸다.
어깨 아래로 송두리째 팔이 뜯긴 백운휘가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제, 제발!”
“이제 시작인데 엄살은. 넌 아주 고통스럽게 죽을 거야.”
범계위가 반대쪽 손을 잡자 백운휘가 소리쳤다.
“뭐, 뭐든 시키는 대로 하겠소! 그러니 제발!”
“안 된다니까.”
촤앗!
결국 반대쪽 팔마저 뽑아 버린 범계위가 백운휘를 탁자 위에 눕혔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범계위의 얼굴을 본 백운휘는 결코 이곳에서 살아 나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 개새끼…….”
한바탕 욕을 쏟아 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범계위의 손에서 시작된 기이한 열기가 몸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기맥이 뜨거워지나 싶더니 금세 온몸이 불에 타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그것은 신체 일부를 잃었다는 사실조차 잊게 할 정도로 끔찍한 극통이었다.
문제는 그 고통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차라리 정신을 놓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해가 뜨려면 네 시진이나 남았네. 천천히 해도 되겠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백운휘는 살고자 하는 희망마저 사라졌다.
“제, 제발 그냥, 주, 죽여 주시오.”
불지옥에 떨어진 것 같은 고통이 일각에 이르자 백운휘는 결국 눈물을 쏟으며 애원했다.
하지만 범계위는 대답 대신 진기를 더욱 끌어 올렸다.
“끄아악!”
숨넘어갈 것 같은 비명이 객잔을 가득 메웠다.
지금까지 겪은 것이 최악의 고통이라 여겼건만, 그보다 더한 고통이 존재하고 있었다.
백운휘는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혀, 혈라진경.”
그 한마디에 범계위가 진기를 거두어들였다. 그러자 백운휘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정마대전에서 무림맹이 혈라진경을 입수했습니다. 그런데 무림맹주가 혈라진경을 없애기 전 필사본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혈라진경의 필사본?”
“그 후에 칠절마군이 무림맹의 파사단주로 왔습니다.”
마교 교주의 상징과도 같은 무공이 기록된 책자가 혈라진경이다. 즉, 제법 앞뒤가 들어맞는 정황이었다.
십대악인 내에서도 유난히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노단양 아니었던가.
그만큼 힘에 대한 집착이 누구보다 컸다.
“이, 이제 그만 죽여 주시오.”
“그러지.”
오히려 편안한 표정으로 눈을 감는 백운휘를 보며 범계위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범계위가 다시 진기를 주입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열기가 백운휘를 감쌌다.
찢어지는 비명 사이로 백운휘가 충혈된 눈을 들어 범계위를 노려봤다.
“어떻게 죽일지는 내 마음이잖아.”
히죽 웃는 범계위의 모습에 백운휘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너 같은 놈이 편안하게 죽으면 안 되지.”
무려 일각.
온몸의 신경이 모두 타들어 가는 끔찍한 고통을 느낀 후에야 백운휘는 숨을 거둘 수 있었다.
“왜? 할 말 있어?”
백운휘를 처리한 범계위가 곁에 있던 엽단영을 보며 물었다.
“어, 없습니다.”
“뒤처리 확실히 해라.”
“네. 알겠습니다.”
“고생해라, 그럼.”
범계위가 일어나 엽단영을 지나치며 슬쩍 웃었다.
“또 보자.”
그 말에 엽단영은 죽은 백운휘를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 * *
“둘 중에 어느 게 나은 것 같아요?”
두 종류의 옷감을 들어 비교하는 딸의 모습에 남궁백이 조용히 웃었다.
예전의 창백하고 병약했던 모습이 아닌, 꽃처럼 화사한 딸의 미소는 더없이 행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둘 다 좋구나.”
“피.”
입술을 삐죽인 남궁향이 이내 배시시 웃었다.
“오랜만에 세가에 돌아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레어요.”
춘절이 코앞에 다가오자 남궁백은 오랜만에 남궁세가가 있는 안휘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남궁향의 병 때문에 오랫동안 세가를 떠나 있었기 때문이다.
“춘련(春聯)과 년화(年畵)도 미리 준비했어요.”
남궁향이 거꾸로 뒤집은 복(福) 자와 물고기 그림을 자랑스럽게 흔들었다.
한 해의 복을 기원하며 집 안 곳곳을 장식하는 것들이었다.
복(福) 자를 거꾸로 붙이는 이유는 거꾸로라는 뜻의 단어인 도(倒)와 온다는 뜻의 도(到)가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복이 오라는 의미다.
물고기가 그려진 년화 역시 마찬가지.
어(魚)는 여유롭다는 의미의 여(餘)와 발음이 비슷했다. 일 년 내 여유롭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그림인 것이다.
남궁백의 얼굴 위로 문득 씁쓸함이 떠올랐다.
당장 세가의 재정 상황이 여유롭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까닭이다.
영약 구입으로 인한 세가의 빚을 메우기 위해 지금도 전전긍긍하고 있을 노총관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비어 버린 곳간은 다시 채우면 그만.
하지만 그 무엇도 딸의 목숨과 견줄 수 없다. 그러다 문득 남궁백은 의아함을 느꼈다.
방금까지만 해도 몹시 들떠 있던 남궁향이 멍한 시선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분께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무심코 중얼거린 남궁향의 말에 남궁백이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그녀가 말한 그분이 누구인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어린 의원 말이냐?”
뒤늦게 자신이 속내를 소리 내 말했다는 것을 깨달은 남궁향이 깜짝 놀라 얼굴이 붉어졌다.
“네…….”
남궁백의 속도 모르고 남궁향이 말을 이어 갔다.
“그분 덕에 이렇게 새해를 맞이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남궁백은 복잡한 눈빛으로 남궁향을 보았다.
최근 그 어린 의원이 신의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강호가 꽤 떠들썩하다고 들었다. 하지만 정작 그가 신경 쓰이는 건 다른 자들이었다.
단악선과 동행했던 일행.
풍진성이야 신원이 확실하니 의심할 것이 없었지만 다른 두 사람이 문제였다.
의원이라 하기에는 그들의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다.’
심상치 않다거나 하는 수준의 느낌이 아니었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그 두 사람을 떠올리니 자신도 모르게 온몸의 근육과 신경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맹주님.
전음이 날아든 것도 그때였다.
창천대의 대주인 양불위였다.
“그럼 천천히 준비하거라.”
귀향을 위해 짐을 싸는 남궁향을 남겨 둔 채 남궁백이 밖으로 나섰다. 남궁백을 기다리고 있던 양불위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실종되었던 감찰 사자에 대한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이번에도 찾지 못했나?”
남궁백의 물음에 양불위의 고개가 더욱 밑으로 떨어졌다.
“죄송합니다. 속하들이 부족하여…….”
남궁백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감찰 사자직을 맡겼던 백운휘가 사라진 것도 벌써 석 달.
그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문제는 한때 그가 속해 있던 백검문의 장로 한 명도 비슷한 시기에 사라졌다는 점이다.
그것도 하필 범계위가 백검문에 나타난 직후였다.
우연이라기엔 지나치게 공교로운 사건.
“백검문에 침입한 자가 범계위인 것은 분명한가?”
“목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살펴도 그날 백검문에 나타난 자가 범계위라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으음…….”
갑자기 나타나 그냥 사라진 범계위.
그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이 오히려 무림맹 산하의 중소 문파들에게 불안감을 부추기고 있었다.
십대악인 척살을 천명한 것도 이미 상당한 시간이 지난 상황, 더 이상 좌시하고 있을 수는 없다.
자신의 체면은 둘째 치고 무림맹의 권위와도 직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파사단주를 부르도록.”
자신의 유용함을 증명하기 위해 가장 절박하게 행동으로 나설 자.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사람이 바로 그였다.
* * *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온 노단양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면전에서 쏟아진 남궁백의 질책 때문이다.
―초악량, 범계위, 악호군. 약속한 기한 내에도 그들이 여전히 살아 있다면 너 역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것이다.
노단양이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싶어 틈틈이 연구했지만 반쪽짜리 혈라진경은 쓸모가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머지 절반을 손에 넣어야 한다.
“범계위의 행방은?”
노단양의 물음에 그의 눈치를 살피던 수하 한 명이 급히 대답했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
“수색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대충 수색했다는 건가?”
“아, 아닙니다.”
사색이 되어 고개를 흔드는 수하의 모습에 노단양이 미간을 찌푸렸다.
‘무능한 놈들.’
괜히 수하들을 다그쳐 봐야 입만 아플 뿐이다. 그렇게 달리 뾰족한 수가 없어 고민만 깊어지고 있을 때였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수하의 보고에 노단양이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파사단을 맡으며 무림맹에 몸담은 이후 이제껏 그를 찾아온 인사들이 전무했던 까닭이다.
사파 출신, 그것도 십대악인이었던 그를 달가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파와 사파를 구분 짓는 벽은 그만큼 높았다.
그런 만큼 손님의 정체가 몹시 궁금했다.
“모셔라.”
잠시 후.
수하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을 본 순간, 노단양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필 방문한 사람이 가장 상대하기 껄끄러운 사람이었다.
차분한 눈빛과 고아한 분위기를 지닌 여인.
무림맹의 눈과 귀를 담당하는 정보 조직, 천이단의 책임자인 제갈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