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69)
신마의선-69화(69/500)
신마의선 (69)
생각이 표정으로 드러났던 것일까.
제갈연이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 고개를 숙였다.
“혹시 제 방문이 언짢으셨다면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아니오. 제갈 단주의 방문이 뜻밖이라 놀란 것뿐이오.”
“그러시다니 다행입니다. 차 한잔 받지 못하고 쫓겨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럴 리가.”
제갈연에게 자리를 권한 노단양이 맞은편에 앉았다.
노단양의 지시에 수하들이 차를 내왔다. 한 모금의 차를 음미하는 제갈연을 노단양은 말없이 응시했다.
그러기를 잠시.
이윽고 그녀가 찻잔을 내려놓자 노단양이 물었다.
“이 누추한 곳엔 어인 일이시오?”
제갈연이 소매를 들어 입을 가리고 웃었다.
불같은 성미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다짜고짜 본론을 꺼낼 줄은 몰랐다.
약간 민망해진 노단양이 멋쩍게 웃었다.
“궁금한 것은 못 참는 성격이라 그렇소.”
제갈연이 가지고 온 서류들을 탁자 위에 올렸다.
“이건?”
“미력하나마 제가 가진 정보들입니다. 파사단주님께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요.”
뜬금없는 그녀의 호의가 노단양의 경계심을 건드렸다.
그는 서류에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물었다.
“어째서지요? 저와는 말도 섞기 싫어하던 거로 알고 있소만.”
“그리 오해하셨다니 유감입니다.”
뻔뻔한 그녀의 응수에 노단양은 내심 어이가 없었다.
‘유감은 개뿔.’
마주칠 때마다 인사는커녕 매번 굳은 표정으로 무심히 지나치던 그녀였다.
말도 섞기 싫다는 노골적인 태도를 어찌 모를까.
무림맹 인사 중 누구보다 오만하고 뻣뻣한 인간이 바로 그녀였다. 하긴 생각해 보니 오대세가 놈들치고 고개가 부드러운 인간은 본 적이 없었다.
“듣자니 맹주님께 또 한 소리 들으셨다고…….”
노단양은 순간 울컥했지만 애써 화를 억눌렀다.
“제 도움이 필요 없으시다면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제갈연이 웃으며 서류를 챙겼다.
노단양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내키지 않았지만 상황이 이쯤 되니 달리 방법이 없었다. 자존심은 둘째 치고 당장은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아쉬운 사람은 그였지 그녀가 아닌 것이다.
“실례했소. 사안이 사안인지라 마음이 어지러워서…….”
노단양이 말끝을 흐리자 제갈연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서류들을 노단양 앞으로 밀었다.
노단양이 말없이 그 안에 적혀 있는 내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다시금 의혹이 떠올랐다.
이번 일과 특별하게 상관없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왜 내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 거요?”
노단양이 서류 한 장을 집어 들었다.
그건 실종된 감찰 사자의 행적을 추적한 보고서였다.
“감숙성 무위에서 일어난 화재 사건을 기억하시는지요?”
“물론이요.”
임시 거점으로 쓰던 객잔에서 불이 나 그곳에 파견한 파사단원 모두가 화마를 피하지 못한 사건.
당시에도 노단양은 이를 이상하다 여겼었다.
“해당 사건을 조사한 사람과 최초 보고서를 올린 사람이 바로 백운휘입니다.”
제갈연이 아래쪽의 다른 서류 한 장을 찾아 노단양에게 건넸다.
“추후 파견된 조사관에 따르면 사망자 가운데 몇 명은 평소 술을 입에도 대지 않는 사람들이었고요.”
“그럼?”
“그 내용을 고의로 누락시킨 것이죠.”
“그가 무슨 이유로 그런 짓을 하겠소?”
제갈연은 대답 대신 다른 서류를 가리켰다.
정사 중간의 정보 단체인 신소방.
방주인 능소밀이 무림맹의 뒤를 캐고 있다는 부방주의 고발에 그 배후를 밝혀내기 위해 파사단을 투입했던 사건에 대한 보고서였다.
신소방주를 추포해 심문하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돌연 파견된 파사단원 전원이 전멸해 버렸다. 그리고 신소방주의 행방 역시 묘연해졌다. 당시 투입되었던 파사단원 중에는 그의 심복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해당 사건의 흉수는 아직 특정할 수 없어 여전히 조사 중입니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죠.”
제갈연의 말을 노단양이 받았다.
“대단한 고수의 단독 소행이라는 점.”
고개를 끄덕인 제갈연이 질문을 던졌다.
“공교롭다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제갈연이 두 사건의 보고서를 가리켰다.
“두 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것이요.”
“단순한 우연일 수도 있는 일 아니오?”
“과연 그럴까요?”
제갈연이 다른 서류를 노단양에게 내밀었다.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장락방의 인물들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내용의 보고서였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인 곳이 무위 근처였습니다.”
이쯤 되니 노단양도 이상한 점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는 일이라도 겹치고 반복되면 반드시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제갈연이 조심스럽게 자신이 짐작하는 바를 밝혔다.
“최근 소문이 무성한 신의의 아들에 대해 들어 보셨겠죠?”
노단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의 모든 의원들이 두 손 두 발 들었던 맹주 딸의 병을 치료한 어린 의원을 어찌 모를 수 있을까.
“그 어린 의원이 무위 출신이라고 하더군요.”
“……!”
“장락방은 평소 신의를 자신들의 원수라고 생각하는 자들이었고요.”
“설마…….”
갑자기 한 줄기 벼락처럼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화재로 사망한 파사단원의 임무는 초악량의 시신을 찾는 것이었다.
“무위에서의 화재 사건을 덮은 감찰 사자는 실종되었고, 비슷한 시기에 범계위가 백검문을 찾아와 행패를 부렸어요. 그리고 초악량과 범계위는…….”
“십대악인들 가운데 유일하게 교분이 있지.”
두 사람 모두 파사단 몇 개 조는 눈 감고도 쓸어버릴 실력을 지닌 고수.
장락방을 없애는 건 일도 아니다.
‘확실히 수상해.’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사건들을 모두 연결하니 어렴풋이 무언가가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이 모든 사건들이 감숙의 무위를 중심으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바로 단악선의 존재였다.
고심을 이어 가던 노단양이 무심코 중얼거렸다.
“신의의 아들이 초악량을 치료했다?”
의심으로 시작되었지만, 생각을 거듭할수록 확신으로 굳어졌다.
아비에게 물려받은 대단한 의술 실력이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설혹 그게 사실이 아니라 해도 조사해 볼 가치는 충분했다.
그러다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맹주의 딸을 치료하기 위해 본단에 초빙했던 의원들.
그중 자신에게 대놓고 시비를 걸어왔던 의원 한 명의 눈빛이 갑자기 떠오른 것이다.
당시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넘겼지만 이제 와 생각하니 과거에 그 눈빛을 마주한 적이 있었다.
“초악량!”
어찌나 놀랐는지 노단양은 한참이나 말을 잇지 못했다.
* * *
타오르는 듯한 붉은 노을이 감싼 신마곡.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만드는 장엄한 경관 사이로 한 사람이 들어섰다.
“단 의원!”
신마곡에 들어서기 무섭게 쩌렁한 그의 음성이 계곡 전체를 흔들었다.
그 음성이 채 흩어지기도 전에 어디선가 단악선이 달려 나왔다.
“아저씨!”
환한 미소로 반갑게 맞아 주는 단악선의 모습에 범계위가 흐뭇하게 웃었다.
그 순간 범계위의 신형이 사라졌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범계위가 병아리를 낚아채는 솔개처럼 단악선을 번쩍 들어 자신의 어깨에 올렸다. 그리곤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단악선에게 건넸다.
“이거 먹어! 아직 따듯해!”
기름 먹인 종이를 풀어 그 안의 내용물을 확인한 단악선이 탄성을 터트렸다.
“와!”
갈색빛이 감도는 바삭한 껍질과 육즙을 가득 머금은 새하얀 속살.
식욕을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가 단번에 코끝을 사로잡았다.
“북경 오리구이야! 단 의원 주려고 북경에서 사 왔어.”
범계위가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이, 다른 사람들도 속속 모습을 나타냈다.
“설마 북경 오리구이라고 해서 북경까지 가서 사 온 건 아니겠지?”
초악량의 물음에 범계위가 핀잔을 던졌다.
“당연한 걸 왜 물으슈? 북경 오리니 당연히 북경에서 사야지.”
“북경식 오리구이는 어딜 가도 있을 텐데?”
“내가 사 온 건 북경식 오리구이가 아니라 북경 오리구이니까! 단 의원은 원조 북경 오리구이를 먹을 자격이 있소!”
초악량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굳이 그걸 사러 북경을 찍고 오다니, 범계위다웠다.
단악선을 보며 싱글벙글하던 것도 잠시.
“어?”
무언가를 발견한 범계위가 멈칫했다.
“잠깐! 단 의원, 이거 뭐야?”
범계위가 단악선의 손을 붙들었다.
손목에 새겨진 멍 자국을 확인한 범계위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누구야? 어떤 때려죽일 놈이 감히 이런 거야?”
범계위의 호들갑에 한 사람이 나직하게 한숨을 흘렸다.
“나다, 이 자식아.”
범계위의 살기 어린 시선이 초악량에게 향했다.
“초 형! 미쳤수? 내 소중한 단 의원을 어떻게 다치게 할 수 있소?”
“안 미쳤다. 그리고 단 의원이 네 거냐? 또 이 중에 단 의원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
초악량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혀를 차더니 말을 이어 갔다.
“난들 어디 그러고 싶어 그랬겠냐?”
초악량이 한설화와 범계위를 노려봤다.
“한 누이와 너는 단 의원 머리카락 한 올도 건드리지 못하잖아. 그렇게 벌벌 떨어서 어떻게 무공을 가르쳐? 그러니 어쩌겠냐? 나라도 나서야지.”
“그걸 말이라고 하슈? 아무리 그래도 다치지 않게 적당히 조절했어야지!”
“최대한 조심해 가며 한 거라고!”
“그런데 왜 멍이 생겨?”
범계위가 단악선 앞을 가로막았다.
“됐소. 앞으로 초 형은 단 의원에게 접근 금지.”
“뭐, 인마?”
“창피하지도 않소?”
“뭐가?”
“권절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무공 전수를 핑계로 애나 패고…….”
“패긴 누가 패! 그리고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라고!”
“그렇다면 더 문제 아니요?”
“……?”
“손속의 위력도 마음대로 조절 못하다니! 그 정도 솜씨로 어떻게 권절이라 불리는 거야!”
초악량이 억울한 듯 가슴을 쳤다.
“단 의원이 원한 거야! 실전처럼 수련시켜 달라면서! 당해 보지 않으면 몰라! 단의원이 얼마나 집요한지!”
“됐소. 그만합시다. 괜히 내가 다 부끄럽소.”
금방이라도 거품을 물고 쓰러질 것 같은 초악량의 모습에 결국 단악선이 나섰다.
“제가 부탁드린 거니 너무 뭐라 하지 마세요. 그보다…….”
범계위의 어깨에서 폴짝 뛰어내린 단악선이 재빨리 어디론가 달려갔다.
잠시 후, 제미곤을 가지고 돌아온 단악선이 상기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아도 범 아저씨를 기다렸어요. 저 혼자 수련하다 보니 막히는 부분이 많았거든요. 좀 봐 주세요.”
“일단 이것부터 먹고…….”
범계위는 말을 이어 갈 수 없었다.
이미 제미곤을 들어 올린 단악선이 자세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에 초악량이 말했다.
“봤지? 어찌나 극성인지 말릴 수가 없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단악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
단악선의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하던 범계위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단악선이 그동안 얼마나 수련에 매진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움직임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특히나 제미곤을 잡는 위치를 바꾸어 가며 무게를 싣고 거두는 실력이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러웠다.
초식과 초식의 연결은 물론이고, 흐름을 주도적으로 가져와 의지대로 펼쳐 내는 감각도 탁월했다.
초식의 연계를 휘몰아치듯 쏟아 낸 단악선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범계위 앞에 섰다.
기대와 열기로 반짝이던 단악선의 눈빛.
이를 마주한 범계위는 절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게 가르치는 기쁨이라는 건가?’
마른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알려 주는 족족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는 단악선의 재능.
거기에 집요하리만치 수련에 매달리는 무서운 집중력은 더없이 그를 흡족하게 만들었다.
하나 지금은 그보다 우선해 가르쳐야 할 것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