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7)
신마의선-7화(7/500)
신마의선 (7)
‘오늘은 유독 햇살이 좋군.’
모옥 앞에 마련된 평상 위에 초악량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생각했다. 바람은 따스하고 공기는 청량했다.
이처럼 기분 좋은 날씨를 만끽해 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몰랐다.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게지.’
스스로를 돌아본 초악량이 더없이 흡족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런 그의 안색은 처음과 비교해 무척이나 좋아져 있었다.
이는 범계위 또한 마찬가지.
옆에 자리한 아름드리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범계위 역시 표정이 편안했다.
항상 충혈되어 있던 눈도 선명하게 바뀌어 있었다.
우당탕.
이때 어디선가 들려온 요란한 소리에 계곡의 평화가 흐트러졌다.
초악량과 범계위가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저런. 또 넘어졌어?”
범계위가 혀를 차자 단악선이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약 바르면 돼요.”
재빨리 일어선 단악선이 쏟아진 약재들을 바구니에 주워 담기 시작했다. 자신만 한 크기의 바구니를 다시 짊어진 단악선이 다시 전각으로 향했다.
그러나 휘청이는 걸음걸이는 여전히 위태로워 보였다.
단악선이 사라지자 범계위가 입을 열었다.
“피 난 거 같은데?”
“소리가 요란했잖느냐. 아마 안 아픈 곳이 없을 게다.”
화륵.
범계위의 양손 위로 시뻘건 화염이 솟구쳤다.
“뭐 하려고?”
“감히 우리 단 의원 발목을 걸어 넘어뜨리다니! 저기 보이는 잡초들 다 태워 버릴 거요.”
초악량이 혀를 찼다.
“그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럼 단 의원이 맨날 넘어지는 걸 보고만 있으라고? 이 산의 풀들을 깡그리 다 태워 버리면…….”
“쯧쯧, 언제 철들래.”
초악량이 가자미눈을 하고 노려보다가 말했다.
“단 의원 다치는 게 우리에게 쓸 약초 구하려다 그러는 거 아니냐. 그러니 문제는 우리인데, 애먼 풀들에 화풀이나 하려고 하다니.”
“그건…….”
범계위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초악량이 나직하게 한숨을 흘렸다.
“그래. 네 말이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니다. 우리도 염치는 있어야지.”
“염치?”
“단 의원이 하루 종일 하는 일이 뭐냐?”
“우리 치료하는 거지.”
“그 외에는?”
“약초 캐고, 잡초 뽑고, 청소하고, 밥도 하고……. 전부 다 하네?”
“그러니 저 어린 몸이 무슨 수로 버텨 낼까. 아닌 척해도 몸이 많이 허해졌다.”
잠시 고민하던 초악량이 마음을 굳혔다.
“앞으로 단 의원은 치료에만 전념하도록 하자.”
“어떻게 말이오?”
“의원 일 말고는 우리가 도맡아 하는 거지.”
“천하의 혈수존자가 잡초 뽑고 빨래나 하겠다고?”
“왜 넌 은근슬쩍 빠지는 건데?”
“난 그런 거 해 본 적 없으니까.”
당당한 범계위의 태도에 초악량이 한심한 눈빛을 던졌다.
“나라고 있겠냐? 해야 되니 하는 거지.”
“그럼 초 형이 다 하면 되겠네.”
“그래, 나는 할 거다. 은인을 위해 도움이 된다면 이깟 허드렛일이 대수일까.”
범계위가 쓴 입맛을 다셨다. 괜히 자기 혼자 염치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냥 내가 마을 가서 일꾼으로 부릴 놈 몇 명 잡아 올까?”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우리가 여기 있다고 알리고 다니게? 단 의원까지 위험에 빠뜨릴 생각이냐?”
“그건……, 곤란하지.”
초악량이 피식 웃었다.
“여튼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천하의 망산초자(邙山招子)가 다른 사람 눈치를 다 보다니 말이야.”
결국 범계위가 짜증을 냈다.
“그럼 나더러 어쩌라고!”
“어쩌긴 어째. 서로 일을 나눠야지.”
단호한 초악량의 태도에 범계위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초 형.”
“왜?”
“청소는 어떻게 하는 거요? 요리나 설거지는?”
“그거야…….”
초악량이 말끝을 흐렸다. 그 역시 이쪽 일에는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일단 뭐……, 하다 보면 늘지 않겠냐? 설마 무공수련보다 어려울까?”
“하긴.”
두 사람은 호기롭게 이불 빨래를 시작했지만 얼마 못 가 곧바로 난관에 부딪혔다.
짜자작!
단지 이불의 먼지를 털기 위해 힘껏 펼쳤을 뿐인데, 이불이 갈가리 찢겨나갔다.
아무리 내공을 쓸 수 없다고 해도 초악량은 고수다.
오랜 세월 단련된 무인의 육신은 범인과 비교할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
“이거 왜 이렇게 약해?”
초악량이 당황하고 있을 때였다.
우지끈!
계곡 한편에서는 굉음과 함께 아름드리나무가 뿌리째 뽑혀 넘어갔다.
“어? 이게 나무뿌리였어?”
범계위가 쥐고 있던 나무뿌리와 쓰러진 나무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 소란에 단악선이 놀란 얼굴로 전각에서 달려 나왔다.
“두 분 뭐 하세요?”
범계위가 씨익 웃으며 하던 일을 계속했다.
“앞으로 단 의원은 의술에만 집중해. 나머지 잡일은 우리에게 맡기고.”
짜자작.
“어허―! 천이 이렇게 약해서야.”
단악선이 황당한 얼굴로 초악량을 바라봤다.
“지금 이불을 털고 계신 거 맞죠?”
“그래, 맞다. 내가 아직은 서툴러서 이게 잘 안 되긴 하는구나.”
찌이익.
“그만 하세요. 더 찢어졌다간 꿰맬 수도 없겠어요!”
초악량을 만류하던 단악선이 그 자리에서 굳어졌다. 신이 나서 땅을 갈아엎는 범계위의 모습 때문이었다.
“그거 약초인데…….”
“어?”
범계위가 쥐고 있던 약초를 민망하게 바라봤다.
“이게? 다른 풀하고 똑같이 생겼는데?”
단악선이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그렇게 생긴 약초예요. 냄새로 구분해야 해요.”
“그럼 이걸 어쩌지?”
범계위가 뽑아 든 풀들을 다시 땅에 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심고 계신 건 잡초고요.”
초악량과 범계위가 하던 일을 멈추고 단악선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단악선은 웃음 한 번으로 그들의 실수를 털어 냈다.
“뭐 어때요? 안 그래도 오늘 약재상에 다녀오려 했어요. 간 김에 이불이랑 약초도 사 오면 되죠.”
그렇지 않아도 사람이 늘면서 필요한 물건들도 많아졌다.
“혼자 가려는 게냐?”
초악량의 물음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들은 숨어 계셔야 하니까요.”
“언제쯤 돌아오느냐?”
“저녁 무렵에는 올 거예요.”
“밤길이라 위험할 텐데? 산짐승도 많을 테고.”
“괜찮아요. 맹수들이 질색하는 약초를 지니고 가면 돼요.”
“그래도…….”
“항상 하던 일인데요, 뭐.”
그때 범계위가 나섰다.
“내가 함께 가마.”
“무림맹 사람들이 찾고 있잖아요.”
“그거야 변장하면 되지.”
적극적인 범계위의 모습에 초악량은 불안해졌다. 그 순간 범계위가 손바닥으로 턱과 뺨을 문질렀다.
치지직.
범계위의 손바닥과 얼굴 피부 사이에서 새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짐승 털이 타는 듯한 매캐한 노린내가 진동하나 싶더니.
고슴도치 같던 범계위의 수염이 우수수 떨어졌다.
삼매진화(三昧眞火)를 일으켜 수염을 모조리 태워 버린 것이다.
“우와!”
몰라보게 달라진 범계위의 모습에 단악선이 탄성을 터트렸다. 단지 비죽비죽한 수염이 사라졌을 뿐인데도 사람이 달라 보였다.
범계위가 씨익 웃었다.
“어떠냐? 이러니 몰라보겠지?”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완전 잘생긴…….”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범계위가 와락 얼굴을 구겼다.
“스님 같아요.”
반대로 초악량은 웃음을 터트렸다. 악의가 전혀 없다는 걸 알았기에 지금 상황이 더 웃겼다.
“그런데 괜찮으시겠어요?”
단악선의 물음에 범계위가 되물었다.
“뭐가 말이냐?”
“그 수염이요. 다음번에 변장하려면 또 길러야 하잖아요.”
“문제없다. 하루만 자고 나면 금방 자라는걸.”
초악량이 피식했다.
“그렇게 수염은 잘 자라는데 왜 머리카락은 자라지 않는 건지.”
“뭐요?”
발끈하는 범계위의 모습에 초악량이 애써 웃음을 삼켰다.
“그래도 없는 말을 지어낸 건 아니구나.”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지난번 강서의 송옥 운운했던 것 말이다. 수염이 없으니 인물이 산다고.”
초악량도 그제야 걱정을 하나 덜 수 있었다.
범계위를 아는 누가 봐도 지금의 모습을 알아볼 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단악선의 마을행에 범계위가 동행했다.
“아무 일 없어야 할 텐데…….”
두 사람을 배웅하며 초악량이 중얼거렸다.
그날 오후.
두 사람은 예상보다 훨씬 빨리 돌아왔다.
초악량이 우려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은 모양인데,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발생했다.
범계위가 아닌, 단악선 때문에 불거진 문제였다.
* * *
예상보다 일찍 돌아온 두 사람을 초악량이 맞이했다.
“응? 빨리 왔구나.”
“네. 범 아저씨가 경공으로 태워 주셨거든요!”
양 볼이 빨개진 단악선은 한껏 들떠 있었다.
범계위가 히죽 웃었다.
“언제든지 말해라. 원한다면 세외까지라도 달려 주마!”
“헤헤. 고마워요. 저도 언젠가 꼭 가 보고 싶었어요.”
지금까지 신마곡과 인근 마을만 오갔던 단악선이었다. 그래서 늘 여행을 꿈꿔 왔다.
단악선이 범계위의 어깨 위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초악량이 의아한 얼굴로 바라봤다.
“그런데 짐이 별로 없구나?”
분명 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살 게 많다 들었는데, 단악선이 가지고 온 짐은 매우 단출했다.
“아!”
뒤늦게 생각난 듯 단악선이 매고 있던 보자기를 풀었다.
“이것 보세요!”
단악선이 내민 물건을 확인한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하수오 아니냐?”
“평범한 그냥 하수오가 아니에요. 무려 천 년이나 된 하수오예요!”
“오! 그 귀한 걸?”
“거래하는 약재상 아저씨와 친분이 깊거든요.”
단악선이 환하게 웃었다.
“두 분 치료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전 그럼 얼른 가서 준비 좀 할게요.”
말을 마치기 무섭게 단악선이 하수오를 들고 전각으로 달려갔다.
단악선이 사라지자 초악량이 범계위를 바라봤다.
“그래서. 필요하다던 물건은 못 산 거냐?”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하수오가 얼마나 하길래?”
“가진 돈 몽땅 털어 넣었수.”
“뭐?”
“그러고도 모자라 빚까지 졌지.”
“그걸 보고만 있었어?”
초악량의 핀잔에 범계위가 투덜거렸다.
“그건 초 형이 기뻐하는 단 의원 얼굴을 못 봤으니까 하는 말이고.”
“기뻐했다고?”
“아주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던데? 치료가 빨라지겠다고.”
초악량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럼 우리 때문에?”
범계위가 단악선이 사라진 쪽을 바라봤다.
“정말 짠한 건 뭔지 아쇼?”
“……?”
“돌아오는 내내 산을 살피더라고. 혹시 과일 같은 거라도 찾아야 한다면서.”
눈빛으로 이유를 묻는 초악량에게 범계위가 말했다.
“우리 당장 먹을 식량도 없다던데?”
“그런데 넌 참 태연하구나.”
“뭐 어떻수? 단 의원이 좋아하면 됐지.”
“내일은 굶고?”
“내가 가서 산짐승이라도 잡아 오면 되는 거 아니오.”
“음식은 그렇다 치고, 다른 물건들은? 당장 오늘 밤에 덮고 잘 이불도 없잖아.”
“거 대충 자쇼. 옛날엔 벼룩이 우글대는 거적때기 뒤집어쓰고도 잘만 잤으면서.”
“그때가 언제 적인데. 그리고 내가 그때 이야기하지 말랬지?”
“아, 됐고. 어쨌든 모자란 하수오값을 치르기 위해 내일 다시 가기로 했수.”
“돈은 있고?”
“집에 있는 값나가는 것들 털면 될 것 같다던데?”
초악량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 너를 딸려 보낼 때부터 불안불안하더라니.”
범계위가 실소했다.
“그건 초 형이 못 봐서 그런 거라니까. 초 형이 옆에 있었어도 절대 못 말렸을 거요.”
“하긴 단 의원이 의술이 뛰어나지 세상 이치에 밝은 건 아니니까.”
“열두 살 꼬마요. 뭘 바라시오? 그리고 돈 걱정은 마쇼. 필요하면 내가 구해 올 테니까.”
“어디서?”
“돈 많은 놈들이야 널리고 널렸지.”
범계위의 생각을 눈치챈 초악량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다 들키면? 나쁜 놈으로 찍히려고?”
“안 들켜야지.”
“나중에라도 알게 되면? 그 돈으로 밥 먹고 약재 산 거 알게 되면?”
“영원히 모르게 해야지.”
“무림에 영원한 비밀이 있더냐?”
“그럼 어쩌란 말이오?”
“후우. 방법을 모색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