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70)
신마의선-70화(70/500)
신마의선 (70)
“단 의원.”
“네.”
“즐기면서 해.”
“네?”
“우리 사부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 무공이라는 건 결국 즐겁게 살기 위해 배우는 거라고.”
범계위가 단악선의 손에서 제미곤을 낚아챘다.
눈 깜짝할 사이 제미곤을 빼앗긴 단악선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단악선에게 범계위가 말했다.
“지금은 오리구이를 먹어. 그다음에 내가 같이 즐겁게 수련해 줄 테니까.”
“하지만…….”
“단 의원이 무공을 수련하는 이유가 뭐야?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며?”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용은 조금 다르지만, 결론적으로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
“네, 맞아요.”
“그럼 지금의 행복도 놓치면 안 되지.”
범계위가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주어진 당장의 행복도 누릴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나중의 행복을 누릴 수 있겠어?”
“어?”
단악선의 눈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아저씨 말이 맞아요.”
“자! 먹어!”
오리구이를 내민 범계위를 향해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다 같이 먹으면 더 행복할 거 같아요.”
“좋아. 오늘만 특별히 허락하지.”
범계위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다 같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던 도중이었다.
초악량이 새삼스럽다는 눈빛으로 범계위를 보았다.
그 역시 몇 번이나 단악선을 설득하려 했지만 대단한 고집에 매번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네 녀석에게 그런 말재주가 있을 줄이야…….”
음식을 우물거리던 범계위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사부님이 했던 말이오. 그땐 오리구이가 아니라 닭고기였지만.”
범계위의 표정이 일순 시무룩해졌다.
“에이, 갑자기 사부님이 보고 싶네.”
씁쓸한 눈빛으로 중얼거리는 범계위의 음성에는 감출 수 없는 그리움이 역력했다. 그 순간 무언가가 불쑥 눈앞에 나타났다.
단악선이 큼직하게 찢은 오리 다리를 범계위에게 내민 것이다.
“고마워요.”
“응? 뭐가?”
“요리도, 충고도 전부 다요. 아저씨 덕분에 조급했던 마음이 편해졌어요.”
오리 다리를 입으로 가져가는 범계위의 얼굴이 다시 환해졌다.
“그래? 그럼 됐어. 으하하.”
쩌렁한 범계위의 웃음소리가 신마곡에 울려 퍼졌다.
* * *
십이월의 마지막 날인 늦은 오후.
혹독하게 몰아치던 매서운 바람이 조금 잠잠해지나 싶더니, 낮게 깔려 흐르던 무거운 회색 구름이 기어이 눈발을 뿌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눈을 반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쏟아지는 눈의 양이 많아지더니 종국에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폭설이 되어 무위를 뒤덮었다.
춘절 준비를 위해 시장을 찾았던 사람들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대목을 앞두고 있던 상인들 역시 마찬가지.
매섭게 몰아치는 눈보라에 무위는 금세 인적이 끊어졌다. 그래서 소적산은 짙은 눈보라를 뚫고 한 사람이 들어섰을 때 깜짝 놀랐다.
두꺼운 피풍의로 온몸을 감싼 사내가 눈만 드러낸 채 조용히 웃었다.
“잘 있었나?”
“……!”
상대의 목소리를 알아본 소적산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총관님!”
무려 육 개월 만의 재회였다.
머리와 어깨에 쌓인 눈을 털어 내는 사무심에게 소적산이 따듯한 차를 건넸다.
“고맙네. 잘 마시지.”
소적산은 사무심이 찻잔을 모두 비우고 언 몸이 조금 녹은 뒤에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일찍 오셨군요. 일 년 이상 걸릴 거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갈 때는 함께했지만, 돌아올 때는 혼자였으니 길을 재촉했네. 아무래도 이곳을 너무 오래 비운 것 같아서 말이야.”
그 말에 소적산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도 괜찮습니까?”
사무심이 없이 돌아올 상단 일행을 걱정하는 것이다.
“염려 말게. 상단 일행은 서역 상인들과 동행 중이니 별일 없을 걸세.”
소적산이 비로소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무심이 물었다.
“그동안 별일 없었나?”
“이렇다 할 큰일은 없었……, 아! 그렇지.”
소적산은 과거 장락방의 무리들이 무위에 잠입했던 일을 상세히 보고했다.
“그래서 어찌 되었는가?”
“글쎄요. 그대로 사라져 버려서…….”
사무심이 희미하게 웃었다.
신마곡에 알렸다 했으니 선배님들께서 알아서 잘 처리하셨을 터, 크게 우려할 일은 아닌 듯싶었다.
“다른 건?”
“얼마 전까지 신의의 아들을 찾는다며 근처를 탐문하는 외부인들이 많았습니다.”
사무심도 짐작했던 일이다. 다만 궁금한 건 마치 일이 끝난 것 같다는 소적산의 어투였다.
“해결이 됐다는 건가?”
“네. 개방 거지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외부인들을 몰아냈습니다.”
“개방에서?”
“네, 저의는 분명하지 않지만 아무런 탐문도 하지 않고, 그저 외부인을 경계하기만 하고 있습니다. 어쩐지 무위를 지키는 것처럼요.”
“음. 의원님을 보호해 주는 건가?”
개방의 호의는 고맙지만 껄끄러운 부분도 많다.
“그것보다 전에 부탁했던 일은 어찌 되었나?”
사무심의 물음에 소적산이 빙그레 웃었다.
“상단 직원이라면 말씀하신 대로 충원해 두었습니다.”
“수고했네. 조만간 그들을 따로 모아 가르칠 것이니 그 전에 잘 먹고 쉬며 체력을 단련해 두라 이르게.”
“이미 그리하고 있습니다.”
소적산의 일 처리에 사무심은 내심 흡족함을 느꼈다.
“아! 이걸 잊을 뻔했군.”
뒤늦게 무언가를 떠올린 사무심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소적산에게 내밀었다.
얼떨결에 이를 받아 든 소적산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이건 뭡니까?”
“서역의 유명한 술이라더군.”
“네? 이런 황송한…….”
감격한 나머지 말을 잇지 못하는 소적산을 향해 사무심이 사람 좋은 미소를 건넸다.
“돈을 벌게 되면 더 챙겨 주겠네.”
칭찬과 격려의 의미를 담아 소적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 사무심이 다시 피풍의를 걸쳤다.
그리고 떠나기 전, 당부의 말을 남겼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하게. 저들은 무림인이니 무리해 조사하려 들진 말고.”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또 보세.”
쏟아지는 눈 속으로 다시 나서는 사무심을 향해 소적산이 조심스레 제안했다.
“곧 밤이 찾아올 텐데 눈이라도 그치면 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말은 고맙지만 사양하겠네.”
사무심이 빙그레 웃었다.
“그래도 새해는 집에서 맞이하고 싶어서.”
* * *
“하늘이 돕는군.”
신마곡으로 향하는 사무심의 걸음이 점차 빨라졌다.
마을을 벗어나 산자락에 들어서자 거짓말처럼 눈발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걸음을 재촉하자 저 멀리 신마곡의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보는 낯익은 산세와 정경이 새삼 반갑게 느껴졌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 보는 기분이었다.
마치 고향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
그런데 그것도 잠시, 신마곡의 입구와 가까워질수록 묘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무심은 더욱 걸음을 빨리했다. 어쩐 일인지 호랑이와 곰, 멧돼지 같은 맹수를 비롯한 온갖 산짐승들이 곡 입구에 몰려 있었다.
그 맞은편에는 능소밀이 혼자 맹수들을 맞아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사무심이 눈앞의 호랑이를 향해 벼락같이 손을 휘둘렀다.
“안 됩니다, 형님! 죽이면 안 돼요!”
능소밀이 놀라 외쳤다.
“……?”
사무심이 당황해 황급히 손을 거두었다.
맹수들을 단번에 뒤로 물린 능소밀이 반색하며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형님.”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가?”
“이거요?”
능소밀이 멋쩍은 듯 웃었다.
“이놈들이 지금은 좀 흥분해 있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얌전해집니다. 저도 그사이 녀석들을 이용해 수련을 하는 중이고요.”
“산짐승들이 대체 왜?”
능소밀이 대답 대신 신마곡 안쪽을 가리켰다.
그제야 사무심은 고개를 돌려 신마곡 내부를 살필 수 있었다.
‘이건?’
사람을 잡아 끄는 묘한 기운.
그 중심에 단악선이 있었다.
가부좌를 튼 채 눈을 감고 있는 단악선의 등 뒤로는 범계위와 한설화가 나란히 앉아 단악선의 등에 손바닥을 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지키고 있는 초악량.
그들 주위로 상서로운 서기가 넘실댔다.
“이놈들은 저 기운에 끌려 온 것이군.”
능소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곧 끝날 겁니다.”
“아, 참. 인사가 늦었군. 다시 보게 되어 반갑네.”
“네, 저도 반갑……. 헉헉, 잠시만요. 일단 이놈들부터 좀 처리해 놓고요…….”
입을 열어 말을 하자 진기가 달리는지 능소밀이 헉헉댔다. 그러다 가까이 있던 곰 한 마리가 휘두른 앞발에 얼굴을 얻어맞고 말았다.
“컥!”
“자네 괜찮나?”
“네! 별거 아닙니다. 이 정도는 간지럽지도 않아요.”
사무심이 손을 들어 능소밀의 얼굴을 가리켰다.
“코피 나는데?”
“……?”
손등으로 코를 쓱 훔친 능소밀이 얼굴을 구겼다.
“미안하네. 괜히 나와 대화하느라…….”
“아닙니다, 형님. 이 정도는 일상다반사인걸요.”
말과는 달리 맹수들을 향해 휘두르는 몽둥이의 위력은 지금까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매서워졌다.
“너! 이리 와!”
능소밀이 수비를 도외시한 채 놀란 곰을 붙잡았다.
“내가! 적당히 하라고 했지!”
어이가 없어 실소를 흘리던 사무심은 고개를 돌려 신마곡 안쪽을 살폈다.
이 모든 현상을 만든 신비롭던 기운이 빨려 들 듯 단악선 쪽으로 흡수되고 있었다.
초악량 앞에 선 사무심이 최대한 정중하게 예를 갖추어 고개를 숙였다.
“다녀왔습니다, 선배님.”
“그래, 고생했다. 별일 없었느냐?”
“약간의 어려움은 있었지만 무사히 해결했습니다.”
초악량은 자세히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먼 길 다녀오느라 고될 텐데 좀 쉬어라.”
“인사부터 하고요.”
단악선이 눈을 뜬 것은 약 일각의 시간이 지난 뒤였다.
‘겨우 반년 만에?’
맑은 찻물처럼 깊고도 안정적인 단악선의 눈빛.
사무심은 경악에 가까운 충격을 받았다.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넘어 온전히 갈무리하기 시작하는 내공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실로 놀라운 발전 속도였다.
타고난 재능과 일대종사에 버금가는 세 사람의 가르침이 더해졌다는 것을 감안해도 그랬다.
사무심을 발견한 단악선이 환하게 웃으며 달려왔다.
“어서 오세요! 총관 아저씨. 몸은 괜찮으세요?”
손을 잡으며 반겨 주는 단악선의 인사에 사무심은 가슴 깊은 곳에서 샘솟는 푸근함을 느꼈다.
‘여전하시구나.’
달라진 것은 몸의 변화일 뿐 단악선은 여전히 단악선이었다.
“덕분에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떠나기 전에는 자신의 명치쯤이었던 키가 지금은 쇄골 바로 밑까지 와 있었다.
“못 뵌 사이에 키가 부쩍 자라셨군요.”
멋쩍은 듯 웃는 단악선을 향해 사무심이 품속에서 꺼낸 물건을 내밀었다.
“뭔가요, 이건?”
“열어 보십시오.”
사무심이 건넨 목갑을 받아 열어 본 단악선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이건!”
사무심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토록 원하셨던 용연향과 장홍화입니다.”
상단을 통해 들여오는 물품 중 최상 등급의 약재를 단악선에게 선물하기 위해 따로 챙겨 온 것이다.
“와! 이것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비쌀 텐데.”
곱게 말린 붉은 꽃잎의 황홀한 색상이 대번 단악선의 눈을 사로잡았다.
“약재의 양을 재는 단위로 그만큼이 한 냥인데, 대략 이천 송이가 넘는 꽃을 따야 그만큼을 얻을 수 있다더군요.”
“고마워요, 총관 아저씨.”
“별말씀을. 제가 더 고맙습니다.”
“네?”
“기뻐하시는 곡주님의 모습을 뵈니 긴 여정이 비로소 보답을 받는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