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71)
신마의선-71화(71/500)
신마의선 (71)
그렇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 입구 쪽에서 고함 소리가 들렸다.
“야, 인마! 내가 적당히 하라 그랬지? 여기 보여? 하마터면 구멍 날 뻔했어!”
목소리를 쫓아 고개를 돌리니 호랑이 한 마리를 붙잡아 호통을 치는 능소밀의 모습이 보였다.
“어? 나나 되니까 봐주면서 하는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벌써 니들은 가죽만 남기고 사라졌을 거야. 알아?”
슬쩍 돌아서는 곰 한 마리를 능소밀이 다시 붙들어 끌고 와 앉혔다. 그리고 비슷한 설교를 한참 동안 이어 갔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맹수들의 눈동자를 보니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사뭇 진지한 능소밀의 모습에 사무심은 어이가 없었다.
“저런다고 짐승들이 사람 말을 알아들을까.”
그런데 의외의 말이 돌아왔다.
“알아듣던데?”
초악량의 말에 사무심이 놀라 되물었다.
“짐승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겁니까?”
“티격태격하다 보니 정이 들었나 보지.”
다른 사람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지만 사무심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맹수와의 교감을 통해 남만 일대에 절대적 아성을 구축한 만수산장.
그들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을 능소밀이 해내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총관 형님이 돌아오셔서 이 정도로 봐준다! 그만 가 봐!”
따악! 딱!
능소밀의 손에 들린 작대기가 맹수들의 머리에 작렬했다.
꼬리를 말고 허겁지겁 산속으로 달아나는 맹수들을 뒤로한 채 능소밀이 한껏 으스댔다.
“짜식들이 말이야. 말로 할 때 들으면 오죽 좀 좋아? 서로 피곤한 일도 없고.”
얼핏 보아서는 마치 산의 제왕이라도 된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능소밀이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사무심은 신기하다는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그날 저녁.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둘러앉은 사무심은 능소밀과 밀린 대화를 나누었다.
쉬지 않고 이야기를 쏟아 내는 쪽은 능소밀이었고 사무심은 사람 좋은 미소로 그 이야기를 들어 주고 있었다.
그러나 중간중간 고개를 돌려 단악선의 모습을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십 장 정도 떨어져 있는 너른 공터.
단악선은 그 한가운데에서 초악량의 지도 아래 금나수를 연습하는 중이었다.
부드러우면서도 절도 있는 움직임은 말할 것도 없었고, 초식을 이어 나가는 흐름도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고작 반년 수련했다곤 믿어지지 않는 실력.
사무심의 눈 위로 이채가 떠올랐다.
사무심의 시선을 쫓아 고개를 돌린 능소밀이 빙그레 웃었다.
“대단하죠?”
사무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었다면 나는 절대 믿지 않았을 걸세. 정말 엄청난 발전 속도야.”
“그만큼 지독하게 수련하셨거든요. 제가 질릴 정도로요.”
“그런 것 같군.”
그때였다.
“아! 저 초식은 저런 식으로 쓰면 안 되는데…….”
범계위의 안타까운 탄식에 맞은편에 서 있던 한설화도 한숨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피망아정대(彼忙我靜待)……. 지박임군투(知拍任君鬪)…….”
“무슨 소리야?”
한설화가 한심하다는 듯 범계위를 노려보다 다시 한 번 한숨을 내뱉었다.
“있어, 그런 게.”
상대가 서두르면 나는 기다리며 누구와 싸우든지 간에 치는 법을 알아야 한다는 핵심 구결이었지만 설명한다고 알아들을 범계위가 아니었다.
입만 아플 바에 포기하는 것이 편한 것이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능소밀이 목소리를 낮췄다.
“서로 지독하게 방해도 하셨고요.”
“허허.”
“그냥 웃어넘길 일이 아닙니다. 곡주님의 수련 방식을 놓고 세 분이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십니다. 며칠 전에는 정말 제대로 붙으셨다니까요?”
능소밀이 계곡 한편을 가리켰다.
“저기 전각 두 개 보이시죠? 새로 지어진 겁니다. 다 박살 내셨거든요.”
“허허허. 그게 이곳의 재미 아닌가? 솔직히 자네도 꽤나 즐기고 있는 것 같은데?”
“즐기다뇨. 힘이 없으니 포기하고 사는 거죠.”
그사이 단악선이 수련을 마쳤다. 그리고 무언가 미진한 듯 아쉬운 표정으로 초악량을 힐끔거렸다.
이를 눈치챈 초악량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단악선이 실망한 얼굴로 저쪽으로 물러나 도인체조(導引體操)를 시작했다.
털고, 두드리고, 늘이고, 당기고.
다양한 동작을 통해 관절과 근육, 인대를 부드럽게 풀어 주는 동시에 경혈을 자극해 전신기혈의 순환을 돕는 마무리 체조였다.
단악선을 뒤로한 채 초악량이 범계위와 한설화 쪽으로 다가왔다.
“이제 슬슬 실전 비무를 경험해 봐야 할 것 같은데.”
초악량의 말에 범계위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비무라면 내가 매일 해 주는데?”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실전 비무 말이야! 네 녀석과의 비무에서는 단 의원이 위협을 느끼지 못하잖아!”
“뭐, 나만 그렇수?”
범계위의 시선을 받은 한설화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생사결(生死決)에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지?”
초악량의 물음에 한설화와 범계위가 대답했다.
“거리와 호흡.”
“무슨 소리야? 싸움은 기세지!”
초악량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
“……?”
의아해하는 두 사람을 향해 초악량이 말했다.
“담(膽)이다.”
“담?”
“그래. 달리 표현하자면 배짱이나 과감함.”
초악량이 말을 이어 갔다.
“아무리 무공이 뛰어나더라도 담이 작으면 자신의 기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는 법이지.”
죽음, 혹은 부상에 대한 두려움.
담이 작으면 작은 위기에도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이목이 둔해진다.
감각을 통해 얻는 정보들이 한정적이게 되고 그러다 결국 실질적인 위험에 대처할 수단도 적어지는 것이다.
“공포란 결국 자기 마음이 일으키는 것.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바로 위협적인 상대와 끊임없이 반복해 겨루는 것이다.
“까다로운 상대와 겨루다 보면 유사시 강적을 만나더라도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실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지.”
그래서 실전 비무만 한 게 없었다.
“그러려면 아주 독한 놈이 필요할 텐데?”
무심코 내뱉은 범계위의 말에 초악량은 자신도 모르게 한 사람을 눈에 담았다.
“저놈이면 되지 않을까?”
초악량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범계위와 한설화도 이내 동의했다.
독기로 치면 저만한 상대도 없는 것이다.
그런 상황도 모른 채 능소밀은 신이 나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잠시 후.
초악량에게 불려 온 능소밀은 단악선과의 비무 상대로 자신이 결정되었다는 말에 아연실색했다. 기량 차이는 둘째 치고 자칫 단악선이 다치기라도 한다면 그 뒷감당을 어찌한단 말인가!
반면 단악선은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대련해도 되는 건가요?”
“단, 조건이 있다.”
초악량의 시선이 능소밀에게 향했다.
“넌 내공을 일체 쓰지 않아야 한다.”
“네?”
“예?”
단악선과 능소밀 모두 놀란 얼굴로 반문했다.
이는 범계위와 한설화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한 거 아니요? 그럼 단 의원에게 너무 유리할 텐데?”
범계위의 반문에 초악량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떠올렸다.
“과연 그럴까?”
초악량이 능소밀에게 말했다.
“대신 뭐든지 해도 좋다.”
“뭐든지요?”
“그래. 이기기 위해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좋다.”
그 말에 능소밀이 씨익 웃었다.
악바리 근성으로 똘똘 뭉친 능소밀의 진면목을 아는 사람은 초악량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대놓고 모든 수단을 강구해 싸우라 독려했다.
그 의미를 모를 만큼 능소밀은 눈치가 없지 않았다.
그렇게 단악선과 능소밀.
두 사람의 대련이 성사되었다.
“잘 봐 둬라. 너희 두 사람의 과보호가 단 의원을 어떻게 망치는지.”
초악량의 말에 범계위와 한설화가 코웃음을 쳤지만 얼마 안 가 얼굴이 굳어졌다.
“이런 치사한!”
범계위가 버럭 해 능소밀을 노려봤다.
단악선이 거리를 좁히는 순간 능소밀이 기다렸다는 듯 냅다 흙모래를 뿌려 버린 것이다.
눈에 모래가 들어가 당황한 단악선이 깜짝 놀라 물러서는 순간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능소밀이 달려들었다.
단악선이 금나수로 반격하려 했지만 이미 그때는 능소밀이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단악선의 목에 가져다 댄 뒤였다.
쏟아지는 범계위의 살기와 살벌한 한설화의 눈빛에 능소밀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전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요…….”
울상을 짓는 능소밀을 대신해 초악량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
“이게 실전이었다면 단 의원은 죽었다.”
“……!”
“……!”
범계위와 한설화가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초악량이 단악선과 능소밀을 향해 말했다.
“계속.”
이번에는 단악선도 제미곤을 들었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호흡을 가다듬길 잠시.
단악선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능소밀의 수비 자세에서 실낱같은 빈틈을 발견한 것이다.
“하앗!”
짧은 기합과 함께 단악선의 신형이 능소밀과의 거리를 줄이며 쇄도했다. 동시에 제미곤이 능소밀의 빈틈을 향해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앗!”
단악선의 입에서 경호성이 터져 나왔다.
시선을 엉뚱한 곳에 두고 있는 능소밀의 모습 때문이었다.
이 와중에 딴생각이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심지어 옆구리를 향해 날아드는 제미곤을 눈치채지도 못하고 있었다. 단악선이 황급히 손에 힘을 풀었다.
씨익.
능소밀이 한 줄기 웃음을 말아 올린 것도 그때였다.
뒤늦게 그것이 능소밀의 연기였다는 것을 깨달은 단악선이 이를 악물며 공격을 이어 가려 했다.
그러나 이미 한 번 거둔 힘을 다시 실어 내는 것은 몹시 어려운 법.
호흡과 호흡이 교차하는 찰나의 틈을 고스란히 내어 주고 말았다.
그 사이를 절묘하게 비집고 들어온 능소밀이 나뭇가지로 단악선의 턱 밑을 콕 찔렀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단악선이 한껏 볼을 부풀렸다.
그 와중에도 초악량은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무림 초출이 자주 하는 실수지. 오직 자신의 무공 실력에 자신한 나머지 상대의 얕은수에 언제든지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거야. 바로 지금의 단 의원처럼.”
초악량이 단악선을 향해 말했다.
“만약 이게 실전이었다면 벌써 두 번이나 죽은 거야.”
“하지만…….”
“억울하다고?”
초악량이 혀를 찼다.
“죽음이 누구에게 억울하지 않을까.”
단악선은 할 말이 없었다.
이번 비무를 통해 초악량이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범계위와 한설화도 마찬가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두 사람에게 초악량이 말했다.
“문제가 뭔지 이제 알겠지?”
“…….”
“…….”
초악량이 슬쩍 웃었다.
“단 의원을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비무의 강도를 높여야 해.”
괴롭고 고통스럽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쳇, 알았수.”
범계위가 괜히 능소밀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우리 단 의원이 저렇게 야비한 놈에게 당하면 안 되지.”
한설화 역시 지그시 능소밀을 노려봤다. 졸지에 두 사람의 무서운 눈빛을 받은 능소밀은 울 것 같은 얼굴로 쩔쩔맬 뿐이었다.
단악선이 웃으며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그냥 말로 하시지 그러셨어요.”
“음?”
“그 과정이 힘들고 고통스럽다 해도 저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요. 설마 제가 그만한 각오도 없이 시작했을 것 같나요?”
초악량이 흐뭇하게 웃었다.
“그런 마음가짐은 매우 바람직하다.”
칭찬을 이어 가려던 초악량이 순간 멈칫했다.
“단 의원?”
“네?”
“혹시 그 손에 들고 있는 게 마령침……인가?”
“네.”
“그건 갑자기 왜?”
“미리 확인하는 거예요. 내일 아침 치료에 쓸 거라서요.”
초악량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런 말은 없었지 않았느냐?”
“능 아저씨와 이런 식으로 비무를 치른다는 언질이 없었던 것처럼 말이죠?”
“……!”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그런데 이 순간만큼은 그 웃음이 무척이나 두렵게 느껴졌다.
―삐졌네.
―그것도 엄청.
전음을 주고받은 범계위와 한설화가 초악량을 노려봤다.
원망 가득한 두 사람의 눈빛을 외면하며 초악량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