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72)
신마의선-72화(72/500)
신마의선 (72)
원단이 지났지만 무위는 여전히 축제 분위기가 한창이었다.
새해를 맞이하는 행사는 당일에 그치지 않고 보름 후인 원소절(元宵節)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거리에는 홍등이 즐비하게 늘어섰고, 집집마다 복을 기원하는 춘련이 붙었다.
붉은 색지를 상서로운 모양으로 늘어트린 전지(剪紙)가 곳곳을 장식한 것은 물론이고, 장터가 어우러지는 행사인 묘회(廟會)에서는 사자춤 공연이 한창이었다.
이따금 여기저기서 역병을 가져오는 귀신을 내쫓기 위한 폭죽이 터지기도 했다.
넘쳐나는 저자의 사람들은 저마다 덕담을 주고받으며 떠들썩한 명절 분위기를 만끽했다.
그렇게 인산인해를 이룬 저자를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몇 번을 기웠는지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지독하게 해어진 누더기를 걸친 초로인.
짤따란 체구에 생김새는 평범했지만 분위기가 독특했다.
유난히 혈색이 좋아 잘 익은 대춧빛에 가까운 홍안(紅顔).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는 대머리였는데, 차분하면서도 깊은 눈빛은 쉽게 흉내 내기 어려운 품위와 위엄이 담겨 있었다.
거지들에게 각박한 세상인심도 이 시기만큼은 그 여느 때보다 넉넉해지는 것이다.
“대목이구나. 끌끌.”
홍두타(紅豆駝)라 불리는 이립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휘적휘적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마을 외곽의 다리 밑에 위치한 움막 근처에 이르렀다.
“쯧.”
이립이 짧게 혀를 찼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
움막 바로 옆, 볕이 잘 드는 곳에 거적을 뒤집어쓴 채 거지 한 명이 늘어져 있었다.
“저래 가지고 무슨 동냥을 한다고.”
이립이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거적을 뒤집어쓴 거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립이 발끝으로 옆구리를 툭툭 건드렸다. 그러자 대번 걸걸한 욕설이 날아들었다.
“씨☓럴. 어떤 개잡종 놈이 고단한 어르신의 휴식을 방해하는 게냐?”
거적 사이로 불쑥 깡마른 손 하나가 튀어 나왔다.
“적선할 거면 얼른 놓고 사라져라.”
이립이 말없이 물끄러미 내려다보자 그제야 거적 사이로 퀭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온통 새하얀 머리카락에 목내이(木乃伊)처럼 비쩍 마른 거지였다.
“어?”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자 누워 있던 거지의 눈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이립이 한심하다는 눈빛을 던졌다.
“뭐 하냐?”
“보면 모르슈? 구걸하고 있잖소.”
“그 꼴로?”
“내 꼴이 어때서? 충분히 거지 같고만.”
“퍽이나. 얼어 죽은 거지 시체인 줄 알았다. 적선하고 싶어도 어디 무서워 가까이나 오겠냐?”
이립의 핀잔에 홍적문이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일어났다.
그리곤 대뜸 이립을 향해 투덜거렸다.
“방주, 진짜 너무 하는 거 아니오?”
“어허. 인사는? 방주를 봤으면 예의부터 갖춰야지.”
“지랄 마슈. 지금은 방도가 아닌 불알친구로서 따지는 거니까.”
이립이 피식 웃었다.
“그래? 그럼 어디 계속 따져 봐.”
“대체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는 거요? 내 나이가 몇인데! 장로 대우 해 준다며? 내 꼬라지를 좀 봐. 이게 어디가 장로 대우인데? 원로원에 들어가도 모자랄 판에 길바닥에서 동냥이나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게 말이 되냐고!”
“다 했냐?”
“아니, 멀었지. 선배라면 후배들에게 희망을 줘야 하는 거 아니요? 그런데 내 꼬락서니를 보고 어린 거지들이 무슨 꿈과 희망을 가지겠어? 장로도 이렇게 길바닥을 전전하는데!”
“쯧. 우리가 괜히 개방인가? 단순히 거지들만 모인 집단이었다면 이렇게 오랜 세월 명맥을 유지하지도 못했을 걸세. 우리가 바로 협의의…….”
“협의고 나발이고 당장 나부터 죽겠다니까?”
홍적문의 엄살에 이립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도 받은 게 있으니 돌려줘야지. 사파 놈들이 신의의 아들을 노릴 것이 뻔한데, 우리라도 나서 지켜 줘야 할 것 아닌가?”
이립이 신의를 언급하자 홍적문이 움찔했다.
그에겐 어떤 의미로 가장 아픈 기억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곧 정식으로 이쪽에 지부를 만들 테니까 조금만 참아.”
“지부? 장난하슈? 나더러 다시 일선에서 뛰라고?”
“어쩌겠냐. 그나마 믿을 만한 사람이라곤 네가 유일한데.”
“염병! 나 좀 그만 믿으라니까! 중원 오지란 오지는 다 돌아다녔어!”
“야, 야, 애들 본다.”
“보거나 말거나!”
작정하고 뻗대는 홍적문의 모습에 이립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너 자꾸 그러다 아예 방주 시키는 수가 있다.”
“응? 그게 웬 자다 봉창 두드리는 소리요?”
“내가 유서를 미리 적어 뒀거든. 나 다음 방주로 너 시키라고.”
“……!”
“이렇게 자꾸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데 어떻게 내가 제명을 다 누리겠어? 아이고……. 갑자기 혈압이……. 야, 나 풍 오나 보다.”
홍적문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방주라는 직책이 얼마나 피곤한 자리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까닭이다.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내가 언제 방주를 피곤하게 했다고…….”
기가 꺾인 홍적문의 태도에 이립이 피식 웃었다.
“자, 이거나 받아.”
“그게 뭐요?”
“홍포(紅包). 그래도 명색이 새해니까.”
이립이 건넨 빨간색 꾸러미를 받아 든 홍적문의 얼굴이 대번 밝아졌다.
홍포는 원래 윗사람에게 절을 올리고 덕담과 함께 받아야 하는 법.
“절 받으십시오, 방주님!”
넙죽 엎드린 홍적문이 새해 인사를 떠올렸다.
‘어디 보자. 거지 팔자에 부자 되라는 뜻의 금옥만당(金玉滿堂)은 가당치도 않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의미의 춘절쾌락(春节快乐)?
아니면 영춘접복(迎春接福)?
그러다 적당한 인사말이 떠올랐다.
“만사여의(萬事如意)하십시오!”
“자네도 늘 쾌수여의(快手如意)하게나.”
쾌수여의는 홍적문을 상징하는 명호였다.
비록 꼴은 남루하고 소해광(小海狂)이라 불릴 정도로 괴팍한 성격이긴 하나, 자타가 공인하는 개방 최고 고수가 바로 그다. 말석이긴 하나 중원 최고의 권사(拳士) 셋에 이름을 올릴 정도의 고수이기도 했다.
권절 초악량, 소림의 계율원주(戒律院主)인 법료와 더불어 말이다.
홍포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하는 순간.
싱글벙글하던 홍적문이 와락 얼굴을 구겼다.
“겨우 이거야? 이걸 누구 입에 붙이라고? 만두 몇 개 사면 남는 것도 없겠고만!”
“방의 사정이 넉넉지 않아서…….”
“언제는 넉넉했소? 대체 언제 넉넉해지는 거요?”
“넉넉하면 그게 거지냐?”
“…….”
“…….”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무룩해지는 두 사람이었다.
그러기를 잠시.
이립이 홍적문에게 무언가를 불쑥 내밀었다.
그것이 술병이라는 것을 알아본 홍적문의 얼굴이 더없이 환해졌다.
지금까지 마신 술이 작은 바다만큼은 된다 자부할 만큼 술에 미친 인간이 바로 그였다.
오죽하면 명호가 소해광일까.
“산서 분주(汾酒)야. 그것도 행화촌에 가서 직접 받아 온.”
“혹시 유가 가문의?”
“그래. 네 생각나서 힘들게 얻어 왔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술병은 어느새 홍적문의 손에 들려 있었다.
병을 낚아채는 움직임이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쾌수여의라는 명호에 부족함이 없는 빠름이었다.
“어?”
술병을 흔들어 보던 홍적문이 이립을 향해 의아한 눈빛을 던졌다.
“한 모금이 비는데?”
“애초에 받을 때 그만큼만 받은 거야.”
홍적문이 지그시 이립을 응시했다.
말없이 다그치는 그 눈빛에 결국 이립이 이실직고했다.
“그래! 딱 한 모금 마셨다! 어렵게 구한 거라 맛만 살짝 봤어!”
그제야 홍적문이 표정을 풀었다.
마개를 열어 병 주둥이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던 홍적문이 탄성을 흘렸다.
“히야! 좋다! 과연 산서 분주! 기가 막히는구나!”
몇 번이고 주향을 음미하던 홍적문이 정작 술은 마시지 않고 다시 마개를 닫았다.
“왜 안 마시고?”
이립의 물음에 홍적문이 뻔뻔한 얼굴로 대답했다.
“지금 마시면 나눠 마셔야 하잖소. 그냥 아껴 뒀다 혼자 몰래몰래 마시려고.”
이립이 버럭 했다.
“이 의리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놈!”
“의리? 고작 술 한 모금 가지고 거짓말을 한 사람이 의리를 논한다고?”
할 말이 없어진 이립이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올해는 이렇게 보냈지만 다가오는 섣달 그믐날은 같이 해를 지키자.”
한 해의 마지막 날은 원단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다.
제야(除夜)라고도 불리는 이날 저녁에는 온 식구가 둘러앉아 연야반(年夜飯)이라는 음식을 먹고, 이튿날 새벽까지 밤을 새우는 풍습이 있었다. 한밤중에 내려온 신에게 세배를 드리기 전까지 잠을 자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밤을 새우는 것을 수세(守歲)라 한다.
“됐소. 둘이서 마셔 봐야 우울한 이야기만 하지.”
그 말에 이립과 홍적문의 얼굴이 침울해졌다. 지금은 없는 한 사람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예전엔 그와 함께 셋이서 밤새도록 술을 즐기곤 했었다.
그때였다.
“어?”
이립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다리 위를 막 지나가는 사자춤 행렬.
행운을 불러들인다는 사자춤은 명절마다 흥을 돋우는 데 탁월한 공연이었다.
사자의 형상과 동작을 모방한 것으로, 정교하게 눈을 움직이게 만든 사자탈과 가죽을 만들어 그 안에 두세 명이 들어가 춤을 춘다.
한 사람이 머리를 조종하고 나머지 사람은 꼬리를 조종하는 형식이다.
거기에 한 사람이 장대에 매단 공을 움직여 사자를 희롱한다.
한데 문제는 사자춤을 시연하는 무사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저거 신행백변(神行百變)이잖아?”
어째 범상치 않더라니.
화산파의 대표적인 경신법이 사자춤에 쓰이고 있었던 것이다. 홍적문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한 보름 됐나? 화산도 매화검수 몇을 이곳에 파견했소.”
“왜?”
“왜겠소? 우리랑 비슷한 이유겠지.”
“그런데 왜 보고를 안 해?”
“안 했겠소? 전서를 매단 비둘기는 지금쯤 본단에 도착해 있겠지.”
미리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온 방주를 그렇게 돌려 까는 홍적문이었다. 괜히 멋쩍어 헛기침을 터트리는 이립을 향해 홍적문이 말을 이어 갔다.
“가만히 지켜보니 저들과 우리가 다른 점이 있더이다.”
“……?”
“화산파 제자들은 열흘마다 사람이 바뀐다는 거요. 열흘만 견디면 된다는 거지. 어디의 거지들과는 다르게.”
“우리는 사람이 없지 않느냐. 어쩔 수…….”
“하! 지금 개방이 사람이 없다고 했소? 머릿수만으로 따지면 중원 최대 방파인데?”
“어허, 목소리 낮추라니까. 아예 대놓고 광고를 하지 그래? 개방이 여기 감시를 붙였다고?”
“쳇.”
“그나저나 신의의 아들은 어때?”
홍적문이 시큰둥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여기 분위기를 읽었는지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소. 아직 얼굴도 못 봤소.”
“확실해?”
“내가 지금 거짓말을 한단 말이오?”
“그럼 쟤는 누구야?”
“어?”
이립이 가리킨 곳을 따라 시선을 돌린 홍적문의 입에서 당혹성이 터져 나왔다.
저자 사이를 거니는 소년.
얼굴이며 특징이 그가 지닌 단악선의 용모파기와 정확히 일치했다.
그런데…….
“엇?”
“헉!”
두 사람의 입에서 당혹성과 헛바람 삼키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말없이 단악선 뒤를 따르는 한 여인을 발견한 직후였다.
이립과 홍적문의 시선은 그녀에게 고정된 채 떨어질 줄 몰랐다.
“빙옥선자가 진짜 살아 있었군.”
“가서 인사라도 하지 그러슈?”
“에라이! 차라리 그냥 비상을 먹고 죽으라고 해라.”
“안 좋은 기억이라도 있으신 모양이오?”
실실 웃으며 약 올리는 홍적문을 향해 이립이 반문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가 할 말은 아닌 듯싶은데?”
홍적문이 쓰게 웃었다.
“나도 딱히 아는 척하고 싶지 않소. 한 번 인사하려면 열 번은 씻어야 했으니까.”
애초에 병적으로 청결과 깔끔함을 추구하는 한설화인지라 자신들과 같은 거지와는 아주 상극이었다.
게다가 무공이나 명성으로도 비벼 볼 수 없으니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저 조용히 피해 다니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