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73)
신마의선-73화(73/500)
신마의선 (73)
“와!”
명절을 맞은 거리의 풍경에 단악선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온갖 먹거리와 볼거리에 정신이 팔려 있길 잠시, 단악선은 문득 이상한 기분을 느끼고 뒤를 돌아봤다.
말없이 자신을 따라오던 한설화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한설화가 저 멀리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주머니?”
단악선이 그녀를 불렀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고운 아미를 찡그린 채 소매를 들어 코를 막고 있을 뿐.
그런 그녀의 모습이 단악선은 그저 의아할 뿐이었다.
“왜 그러세요?”
“냄새가 나.”
“네? 무슨 냄새요?”
“놈이 왔어.”
한설화가 주위를 살피던 도중.
파바바바박!
자욱한 연기와 함께 요란한 폭죽 소리가 거리를 가득 메웠다.
뒤이어 화려하게 꾸민 사자가 등장하며 거대한 환호가 거리를 뒤덮었다.
단악선이 사자춤을 구경하기 위해 까치발을 했다. 그러나 운집해 있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 볼 수가 없었다.
그때 범계위가 단악선을 번쩍 들어 자신의 어깨에 올렸다.
“고마워요.”
변장을 한 범계위가 씨익 웃었다.
단악선은 단악선대로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다.
범계위가 워낙 거구인지라 그 위에서 내려다보는 장내의 경관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명절 때 거리 행사를 구경하는 건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함께 왔던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렇게 단악선이 축제를 만끽하고 있던 그때.
한설화가 초악량을 불러 세웠다.
“자리를 뜨는 게 좋을 것 같아.”
인피면구를 쓰고 서생의 모습으로 변장한 초악량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거지 두목이 왔어.”
“개방 방주?”
한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지독한 악취는 그놈뿐이야.”
고개를 끄덕인 초악량이 범계위에게 전음을 날렸다.
―돌아가자. 개방 방주가 근처에 있다는구나.
―단 의원에게 이것만 보여 주면 안 돼?
―괜히 문제 일으키지 말고 돌아가자.
범계위가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두 사람은 단악선에게 신마곡으로 먼저 돌아간다고 말했다.
“왜요? 좀 더 같이 구경해요.”
단악선의 애원에 잠시 눈빛이 흔들리는 두 사람이었다.
“사람이 많은 곳은 영 불편하구나. 저 녀석과 나는 먼저 돌아가 쉬고 있으마. 한 누이와 천천히 놀다 오너라.”
아쉬운 기색이 역력한 단악선을 뒤로한 채 초악량과 범계위가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단악선도 왠지 흥이 식어 버렸다.
“혹시 이유를 아세요?”
굳이 감출 이유가 없어 한설화가 솔직히 대답했다.
“개방 방주가 이곳에 있다. 혹시라도 두 사람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에 먼저 돌아간 것이다.”
“아아…….”
그제야 연유를 알게 된 단악선이 탄식을 흘렸다.
갑자기 마음이 복잡해졌다. 처음엔 아쉬움이 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억울한 느낌이 더 강해졌다.
“두 분도 저처럼 답답하겠죠? 당당히 자신을 드러낼 수 없으니까요.”
두 사람 모두 어디 가서도 아쉬울 게 없는 사람이다.
천하의 그 누가 혈수존자와 망산초자를 무시할 수 있을까.
한데 자신과 함께하기 위해 매번 귀찮게 변장을 하고 스스로의 존재를 감춰야만 했다.
단악선은 문득 두 사람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라는 족쇄만 아니면 명숙 대접을 받으며 자유롭게 강호에서의 삶을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이쯤 되자 단악선은 더 이상 놀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우리도 돌아가요.”
단악선의 표정을 읽은 한설화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장에 들러 음식과 폭죽을 비롯해 명절을 함께할 물품을 구입한 뒤 신마곡으로 돌아가던 중 무언가를 발견한 단악선의 얼굴이 환해졌다.
한동안 문을 닫고 있던 단골 약재상의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약재상 아저씨가 돌아오셨나 봐요!”
장락방의 악한들에게 납치당해 심한 고초를 겪은 이후, 요양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갔던 약재상 주인이 새해를 맞아 다시 돌아온 것이다.
단악선이 약재상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저씨!”
역시나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기쁜 마음에 단악선이 새해 인사를 건넸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저씨. 몸은 이제 괜찮으세요?”
“…….”
그런데 뜻밖에도 단악선을 바라보는 약재상 주인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아저씨?”
단악선은 당혹스러웠다.
늘 살갑게 대하던 그였지만 오늘만큼은 왠지 모를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이유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미안하구나.”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약재상 주인이 말을 이어 갔다.
“너를 보니 그때 기억이 되살아나서…….”
말끝을 흐리는 약재상 주인의 말에 단악선이 입을 다물었다.
육신의 상처는 나았지만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오래가는 법. 평범한 사람인 그가 무림인들에게 고문을 감내해야 했다.
당시의 끔찍한 경험을 단시간에 잊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알겠어요. 몸조리 잘하세요.”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단악선을 향해 약재상 주인이 불쑥 입을 열었다.
“앞으로는 다른 약재상과 거래를 해 주었으면 좋겠구나.”
“네?”
“미안하다.”
약재상 주인이 단악선의 시선을 피해 눈을 돌렸다.
“도저히 너를 볼 면목이 없다. 그래선 안 되었는데……. 아무리 괴로웠어도 네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괜찮아요. 그런 상황에서는 아저씨가 아닌 누구라도 그랬을 거예요. 전 괜찮으니까…….”
“내가 힘들어서 그런다.”
“……!”
“매일같이 악몽에 시달리며 잠을 이루지 못하다 요 며칠 겨우 눈을 붙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너를 다시 보니…….”
약재상 주인이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단악선은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단악선이 입술을 깨물었다.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돌아서서 약재상을 나온 단악선이 한참을 말없이 걸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약재상을 돌아봤다.
오랜 추억이 깃든 곳을 눈에 담기 위해서였다.
다리를 절며 불편한 모습으로 가게 문을 닫는 약재상 주인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이 더없이 아프게 단악선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눈물을 애써 참고 있는데 한설화가 말없이 단악선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단악선은 그런 그녀를 올려다보며 웃었다.
너무나 서글퍼 보여, 차라리 우느니 못한 그런 웃음이었다.
그래서 한설화는 더욱 안타까웠다.
“오래 알고 지낸 분인데……. 이렇게 인연 하나를 또 잃게 되네요.”
“네 잘못이 아니다.”
한설화의 위로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더 위로를 해주고 싶은데, 한설화는 마땅한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 * *
생각보다 일찍 돌아온 단악선을 초악량과 범계위가 의아한 표정으로 맞이했다.
애써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얼굴 한구석에 드리운 그늘을 느끼지 못할 만큼 눈치 없는 그들이 아니었다.
“사자춤은 다 보고 온 거야?”
범계위의 물음에 단악선이 양손 가득 사 온 물건들을 들어 보였다.
“우리 폭죽놀이 해요!”
“갑자기?”
뜬금없는 단악선의 제안에 범계위가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폭죽을 터트리면 나쁜 일이 사라진다고 하잖아요.”
단악선이 폭죽을 꺼내 긴 장대에 매달았다. 그리고 기다란 심지에 불을 붙였다.
귀 따가운 폭음과 매캐한 화약 연기.
그 사이로 요란하게 번쩍이는 불꽃이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초악량과 범계위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정작 폭죽놀이를 제안한 당사자가 그리 신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멍한 표정으로 턱을 괴고 앉아 허공에 흩어지는 불꽃을 주시할 뿐이었다.
단악선이 불쑥 입을 열었다.
“효과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초악량이 한설화를 향해 의아한 시선을 던졌다.
이에 한설화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단악선이 다짜고짜 폭죽놀이를 하자고 한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걸 어찌 남에게 설명한단 말인가.
그저 저 폭죽과 함께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랄 뿐이었다.
줄지어 있던 폭죽은 얼마 가지 않아 모두 소진되었다.
그리고 금방 정적이 찾아왔다.
손에 턱을 괸 채 멍하니 앉아 있던 단악선은 문득 주변이 조용하다는 것을 깨닫고 눈을 들었다.
염려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주시하는 시선들.
단악선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거 아세요? 옛날에는 대나무를 태워서 껍질이 터지는 소리로 귀신을 쫓았대요. 지금은 화약으로 대신하지만 여전히 폭죽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래요.”
폭죽의 유래 따위야 그렇게 알고 싶지도,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초악량과 범계위는 잠자코 단악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꼬집어 설명하긴 힘들었지만 아까부터 단악선의 분위기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주변에 흐르는 묘한 기류를 눈치챈 능소밀이 너스레를 떨었다.
“저……. 술을 좀 내어 올까요?”
사무심이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좋은 생각일세. 명절에 술이 빠지면 서운한 법이지.”
두 사람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악선과 한설화가 시장에서 사 온 음식들에 창고에서 가져온 술이 더해져 순식간에 식사가 준비되었다.
* * *
문득 범계위는 자신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단악선의 시선을 느꼈다.
“그거…….”
“응?”
“저도 한번 마셔 봐도 돼요?”
그제야 범계위는 단악선의 시선이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술잔을 향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범계위가 무심코 술잔을 내밀었다.
그 순간 한설화의 얼음장 같은 음성이 날아들었다.
“돌았어?”
범계위가 당황한 사이 한설화가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범계위가 내민 술잔은 어느새 그녀의 손에 들려 있었다.
“애한테 술을 먹이려 하다니, 제정신이야?”
한설화의 핀잔에 범계위가 발끈했다.
“왜? 뭐가 어때서? 난 열 살 때부터 마셨는데!”
“그러니 그 모양이지.”
“뭐?”
가뜩이나 기분도 뒤숭숭한 차에 잘됐다 싶었는지 범계위가 오랜만에 진기를 끌어 올렸다.
한설화 역시 마찬가지.
뼛골 시린 한기가 그녀 주위를 맴돌며 주변에 새하얀 서리를 만들어 냈다.
그때 초악량이 두 사람을 만류하며 물었다.
“술맛이 궁금한 것이냐?”
“아뇨.”
“그럼?”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들었거든요. 정말 그런지 확인해 보고 싶었어요.”
오죽하면 이런 말을 할까.
물끄러미 단악선을 보던 초악량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사람에 따라, 혹은 상황에 따라 다르지. 반드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기분이 가라앉을 수도 있다.”
반면 범계위는 생각이 달랐다.
“한 잔 정도야 괜찮지 않나?”
내심 지금의 상황이 답답했던 범계위는 술기운을 빌려서라도 단악선의 솔직한 속내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범계위를 초악량이 눈짓으로 제지했다.
“피곤해 보이는데 차라리 좀 쉬지 그러느냐.”
초악량의 말에 단악선이 힘없이 웃었다.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자신의 전각으로 향하는 단악선을 말없이 지켜보던 초악량이 한설화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마을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보군.”
한설화는 단악선이 약재상 주인을 만났던 이야기를 꺼냈다.
저간의 상황을 파악한 초악량이 나직하게 한숨을 흘렸다.
“스스로를 책망하지 말아야 할 텐데.”
“단 의원 성격에 그게 어디 쉽겠소?”
범계위의 얼굴에도 안쓰러움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