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76)
신마의선-76화(76/500)
신마의선 (76)
이립과 홍적문이 끌려간 곳은 객잔 후원에 마련된 정자였다.
아무도 없는 정자에는 이미 여러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편하게 드시라고 여기에 차렸어요.”
이립이 감격한 표정으로 외쳤다.
“호부 아래 견자 없다더니 역시! 인심을 얻는 방법을 알아!”
홍적문도 마찬가지.
상에 놓인 술병을 보며 군침을 주체하지 못했다.
“민폐라는 건 알고 있는 거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한설화를 단악선이 만류했다.
“고마운 분들이시잖아요.”
단악선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아버지와 인연이 있다곤 하지만 자신과는 일면식도 없었기 때문이다.
“고맙기는.”
한설화가 실소했다.
“그날 내가 살려 주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있지도 못했을 것들인데.”
두 사람의 얼굴이 안쓰럽게 구겨졌다.
“에이, 선배님도……, 대체 언제 적 이야기를…….”
“그, 그때는 어렸을 적 아닙니까?”
말까지 더듬으며 당황한 두 사람과 달리 단악선은 호기심을 드러냈다.
“저분들과 인연이 있으셨어요?”
한설화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자리 잡았다. 이를 본 이립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서, 선배님!”
“……?”
“그래도 제가 명색이 개방의 방주입니다.”
“그래서?”
“체면이라는 게 요만큼은 생겼다는 거죠.”
한설화가 피식 웃었다.
“세월 참 빠르구나. 잔뜩 얻어터져 퉁퉁 부은 눈으로 울며불며 매달리던 그 애송이가…….”
“선배님, 제발…….”
간절한 이립의 애원에 한설화가 마지못해 입을 다물었다.
단악선은 그 내용이 무척 궁금했지만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만큼 이립과 홍적문의 표정이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상황이 일단락되자 네 사람은 식탁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식사가 마무리되어 갈 때 즈음 이립이 한설화의 눈치를 살피다가 물었다.
“그런데 우리를 이렇게 후하게 대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지금까지 감사했다는 뜻이에요.”
단악선이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는 저를 위해 여기에 계실 필요가 없거든요.”
“응? 그게 무슨 뜻인가?”
이립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자신들의 호의를 거절하는 이유가 자못 궁금해진 것이다.
하나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표정이 진지해졌다.
“우린 여행을 갈 거예요.”
“우리?”
이립의 반문에 단악선이 말했다.
“네. 저와 여기 한 아주머니요. 절 도와주시는 다른 분들도 함께 가요.”
“흐음.”
이립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그러니까…….”
말없이 단악선을 주시하던 이립이 입을 연 것은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소문을 내 달라?”
개방의 방주답게 눈치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립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눈치가 빗나갔다.
“네? 무슨 말씀이세요?”
“응? 소문을 내 달라고 찾아온 게 아닌가?”
“전 그냥 괜히 헛수고를 하실까 봐 알려 드리려고 온 건데요.”
그 어떤 의도도 담기지 않은 순수한 호의에 이립은 오히려 당황하고 말았다.
“이거 미안하게 됐네. 괜한 오해를 했군.”
어색하게 웃는 이립을 보며 단악선도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그 웃음마저 너무나 순수해서 이립은 진심으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우리는 한동안 이곳에 없을 거예요. 중원을 두루 여행할 거니까요.”
자신이 무위에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이곳으로 무인들이 몰릴 이유가 없다.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이립이 한설화의 눈치를 살피며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우리가 나선 것만으로도 어지간한 놈들은 감히 분탕질을 치지 못할 걸세. 혹 그들을 피해 여행을 떠나는 거라면…….”
“그런 게 아니라, 할 일이 있어요.”
“할 일?”
강호에서 가장 높은 배분을 지닌 한설화와 당금 강호에서 가장 뜨거운 소문의 당사자인 단악선. 두 사람이 여행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몹시 궁금했다.
“그건 말씀드릴 수 없어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실 테니 지금은 이해해 주세요.”
“뭐, 그리 말하면 알았네. 너무 신경 쓰지 말게. 이게 직업병이라. 하하.”
그래도 미련이 남았던 이립은 끝내 입맛만 다셨다.
“그래, 그렇다니 우리는 그리 알고 있겠네. 여행을 통해 얻고자 하는 바를 모두 이루길 기원하지.”
“고맙습니다. 이번 도움은 잊지 않을게요.”
“도움은 무슨. 신경 쓰지 말게. 이미 이렇게 근사하게 대접을 받지 않았는가? 더구나 신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이 정도 발품 파는 거야 일도 아닐세.”
그렇게 그들은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신마곡으로 돌아오며 한설화가 물었다.
“언제 출발할 생각이냐?”
“여유를 좀 두고 가야죠. 떠나기 전 풍 아저씨와도 인사를 나눠야 하니까요.”
한설화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신마곡에 돌아오자 사무심과 능소밀이 여행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생각보다 짐이 단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같이 가지 않으신다고요?”
단악선의 물음에 사무심이 웃으며 대답했다.
“누군가는 이곳을 지키고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사람의 손을 타지 않으면 집이 폐가가 되는 것도 순식간입니다.”
“하지만…….”
능소밀이 초악량과 범계위 쪽을 힐끔거리며 속삭이듯 말했다.
“저분들과 여행하느니 차라리 똥물을 마시겠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시달렸는지 능소밀은 눈 밑이 퀭한 상태였다.
거기에 사무심이 덧붙였다.
“홀가분하게 떠나기엔 그동안 벌여 놓은 일들이 많습니다.”
파사국과의 교역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이다.
결과를 확인하고 향후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결정을 내릴 책임자가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했다.
“돌아오실 때까지 저희가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두 사람의 확고한 뜻에 단악선도 이내 수긍했다.
그때 사무심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이곳의 약재들을 이용해 보양환을 대량으로 제조해도 되겠습니까?”
“네, 물론이죠. 제가 제조법을 알려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간단한 허락에 사무심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때, 기다리던 사람이 신마곡으로 들어섰다. 소식을 듣고 곧바로 달려온 풍진성이었다.
“여행을 떠나신다고요?”
“네.”
단악선은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를 시간을 들여 설명했다.
풍진성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쉽지 않은 여행이 되겠군요.”
“그래도 시도는 해 봐야죠. 여행 중에 무공 수련도 할 것이니 설사 실패한다고 해도 의미 있는 여행이 될 거예요.”
굳은 의지가 느껴지는 단악선의 눈빛에 풍진성이 조용히 웃었다.
“삼 년이라……면, 꽤 긴 시간이군요.”
풍진성은 한숨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단악선이 신마곡을 떠나 세상으로 나아가는 건, 풍진성 자신이 가장 원했던 일이다. 그럼에도 그 이유를 들으니 너무 힘든 길을 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말릴 수가 없구나.’
단악선의 인생이 걸린 문제다.
풍진성은 복잡한 눈빛으로 단악선을 보았다.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마냥 어린애 같았는데, 지금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세상에 몸을 던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부디 많이 보고, 듣고 경험하며 배우고 오십시오. 제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요.”
* * *
그로부터 나흘 뒤 준비를 마친 단악선 일행이 신마곡을 나섰다.
“그럼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풍진성이 초악량과 범계위, 한설화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곡주님을 잘 부탁드립니다.”
“염려 말게.”
범계위도 가슴을 두드리며 호기롭게 외쳤다.
“나만 믿어라! 단 의원 손가락엔 피 한 방울 묻게 하지 않을 거니까.”
한설화는 평소처럼 오연한 눈빛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렇게 차례대로 인사를 나눈 뒤 단악선과 일행이 신마곡을 벗어났다.
아쉬운 표정으로 배웅하던 세 사람은 단악선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럼 저는 우선 약재 창고부터 확인해야겠군요.”
성수신단보다 제조가 수월하다 뿐이지, 보양환 자체도 몹시 손이 많이 가는 단약이다. 그래서 풍진성이 직접 제조 방법을 알려 주기로 했다.
풍진성이 멀어지고 둘만 남게 되자 능소밀이 시원섭섭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전 아직 나쁜 놈인가 봅니다.”
“왜 그런 말을 하나?”
“뭔가 서운하고 아쉽긴 한데…….”
“한데?”
“기쁜 마음이 더 큽니다.”
“허허. 내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하네. 그간 자네가 참 고생이 많았지.”
“그래도 제 마음을 알아주시는 건 형님뿐이군요.”
사무심이 웃으며 능소밀을 격려했다.
“그럼 힘내서 이곳을 바꾸어 보세. 저분들이 돌아오셨을 때 놀라는 얼굴이 보고 싶군.”
“생각만 해도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군요.”
그렇게 의기투합한 두 사람이 밝게 웃었다.
* * *
한 달 후.
남존무당(南尊武當)과 더불어 정도 무림을 떠받치는 두 개의 명문 정파, 북숭소림(北崇少林).
그 소림사가 자리 잡은 곳이 이곳 숭산이다.
소림사로 향하는 오솔길에서 계획을 점검하던 중, 단악선이 초악량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저씨, 정말 괜찮으신 거죠?”
초악량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할 것 없다. 이번만큼은 참아 보도록 하마.”
사실 초악량은 이곳으로 오는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
무림맹이 투입한 세 명의 고수에 의해 목숨을 잃을 뻔했던 그날의 기억 때문이었다.
특히나 나한당의 당주인 료범은 잊을 수가 없었다.
호신강기를 전문적으로 파괴하는 사자모니인에 의해 사경을 헤맸던 게 엊그제처럼 선명했다.
‘흥!’
숨이 끊어지기 직전, 사과의 말을 건네던 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도 중이랍시고, 그들 중 유일하게 양심이란 게 남아 있었던 모양.
소위 명숙이라 불리던 그들이 명예를 저버리고 합공한 것이 내내 부끄러웠단다.
“난 신경 쓰지 말고 조심해서 다녀오거라.”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고마워요. 그럼 다녀올게요.”
한설화와 함께 멀어지는 단악선의 모습을 지켜보던 범계위가 초악량을 힐끔거렸다.
“왜?”
“초 형, 정말 괜찮은 거요?”
“걱정 마라. 이미 말하지 않았느냐? 단 의원의 뜻을 따르겠다고.”
“그럼……?”
“개인적인 원한은 잠시 미뤄야지.”
“쳇.”
“……?”
“난 또. 초 형이 화를 못 이기고 뛰쳐나가길 기대했지.”
“뛰쳐나가면?”
“초 형.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수. 단 의원이 도착하기 전에 쳐들어가 소림을 엎어 버리는 거요. 무공이 약해졌다고 쫄 것 없수. 초 형 뒤에 내가 있을 테니까.”
“단 의원은 어쩌고?”
“사실 이 모든 것이 단 의원을 위한 거요.”
범계위가 씨익 웃었다.
“원래 아픈 놈들이 의원 말을 더 잘 듣는 법 아니오? 우리처럼.”
초악량은 더 이상 범계위를 상대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어진 그의 질문 때문이었다.
“그런데 단 의원 말대로 되겠수?”
“으음…….”
초악량은 한 달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 * *
한 달 전 단악선이 방법을 찾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여행 가요!”
이때만 해도 초악량은 그리 큰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방법이라는 게 여행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구나,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범계위와 한설화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갑자기?”
그러자 단악선은 이렇게 말했다.
“네. 우리가 당당하게 함께 지낼 방법이 있어요. 제 계획대로만 된다면 아저씨들도 더 이상 정체를 숨길 필요가 없어질 거고요.”
그러면서 단악선이 한 권의 두툼한 책자를 꺼내 들었다.
“아버지의 진료 기록이에요.”
“그걸 어찌 쓰려고?”
“여기 적힌 분들을 찾아갈 거예요.”
여전히 영문을 몰라 의아해하는 일행에게 단악선이 설명했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치료비를 받은 적이 없으세요.”
“그런데?”
“그분들이 언젠가 치르겠다 약조한 치료비를 받을 때가 된 것 같아요.”
“돈이라면…….”
초악량의 말을 자르며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
“치료비는 돈이 아닌 다른 것으로 받을 거예요.”
단악선이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그 설명이 모두 끝나자 일행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게 가능하겠느냐?”
반신반의하는 초악량을 향해 단악선이 책자를 펼쳐 몇몇 사람의 이름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를 확인한 초악량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가능할지도…….”
범계위와 한설화도 이내 수긍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여기 이 사람들을 다 찾아가려고?”
범계위의 질문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서 긴 여행이 될 것 같지만……, 그래도 해야겠어요. 방법이 그것뿐이잖아요.”
그리고 조심스레 물었다.
“함께 가 주시겠어요?”
세 사람은 당연히 찬성했다.
그들로선 반대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이 오늘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