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79)
신마의선-79화(79/500)
신마의선 (79)
점심 공양을 마치자 사미들이 발우를 거두어 갔다. 그리고 잠시 후 차를 내왔다.
소림의 유명한 명차인 연화 차였다.
그윽한 다향을 음미하며 혜공 선사의 대답을 기다리던 중 법연이 다시 이들을 찾아왔다. 반갑게 맞아 주는 단악선의 모습에 법연이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한설화가 아미를 찡그렸다.
“중이라는 작자가 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는 것 아닌가?”
한설화의 힐난에 법연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스스로 생각해도 지금의 상황이 더없이 민망하고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한설화를 만류하며 단악선이 물었다.
“어떤 부탁이요?”
한숨을 내쉰 법연이 단악선과 시선을 마주했다.
“어느 순간 잠에 빠져 깨어나지 못하는 병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느냐?”
“기면증(嗜眠症) 말인가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갑작스럽게 잠에 빠져드는 희귀한 병.
그러나 법연은 고개를 저었다.
“수시로 갑자기 찾아오는 증상이 아닌, 한번 잠이 들어 계속 깨어나지 못하는 경우란다.”
“일어나지 못한 게 며칠째인데요?”
그리고 돌아온 대답에 단악선이 깜짝 놀랐다.
“정확히 닷새 후면 일 년을 채우게 되지.”
“일 년이요?”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단악선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요. 그런 경우는 저도 처음이라…….”
“그렇구나.”
애써 태연하려 했지만 그럼에도 법연은 절로 새어 나오는 한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래도 신의의 진전을 이은 단악선이라면 뭔가 아는 바가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환자의 상태를 직접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우울함으로 한없이 깊게 가라앉아 있던 법연의 눈빛에 한 줄기 희망이 드리웠다.
그런 법연을 보며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아무래도 그 환자분이 방장 스님이 지닌 심화의 원인인 것 같네요.”
법연이 다시 한 번 놀랐다.
“그걸 어찌 알았느냐?”
“눈 아래가 떨리셨거든요.”
“……?”
“심장에 화기가 쌓이기 시작할 때 보이는 전형적인 증상 중 하나예요.”
그의 병인(病因)인 심화가 방금 언급한 환자 때문이라는 걸 짐작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단악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내하세요.”
그 모습에 한설화가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애써 치료한 방장 스님의 병이 재발하면 안 되잖아요.”
단악선이 그럴듯한 이유를 댔다.
심화의 원인이 되는 불상의 환자만 치료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셈.
잠시 후.
법연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약왕전 구석의 가장 끝 방이었다.
그 안에 들어서자 침상에 한 사람이 누워 있었다.
훤칠한 키에 반듯한 얼굴.
강인한 눈썹만큼 호쾌한 기상이 느껴지는 승려였다.
그런데 안쓰러울 만큼 피골이 상접한 데다 가느다란 숨결과 희미한 가슴의 기복이 아니었다면 목내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잠시 그를 진맥한 단악선이 미간을 찡그렸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지금 상황이 딱 그랬다.
눈앞의 승려는 숨이 붙어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아니, 지금 이 순간도 생명의 불이 꺼져 가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무공 수련 중 의식을 잃었는데, 일 년째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법연의 설명에 한설화가 물었다.
“심마에 빠진 건가?”
“약왕전 상좌의 말에 따르면 깊은 잠에 빠진 상태라더군요.”
무언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는지 단악선이 다시 한 번 진맥을 했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 봤어요.”
단악선이 눈을 들어 법연을 올려다보았다.
“육신의 기력은 쇠약해지는 반면 내력은 웅혼해요. 내공만으로 따진다면 가히 천하제일이라 할 수 있을 정도고요.”
물론 한설화는 예외였다.
그때 한설화가 침상에 누워 있는 승려를 지그시 응시했다.
단악선의 말을 통해 환자에 대한 단서를 얻은 것이다.
“법료.”
단악선이 놀라 반문했다.
“천하오절 중 한 분이라는 그분이요?”
초악량과 나란히 천하오절에 이름을 올린 절대 고수.
불과 약관의 나이에 소림의 칠십이절예 중 절반 이상을 완벽히 익혀 낸 무학의 천재가 바로 그였다. 걸어 다니는 장경각이라는 의미로 보장경(步藏經)이라 불리는 그가 이처럼 초췌한 몰골로 누워 있다니!
법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바로 계율원주다.”
소림 내에 가장 강력한 무력 집단인 나한당.
이를 넘어선 무공을 지닌 곳은 계율원이 유일했다. 죄를 지은 승려를 추포하고 징죄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단악선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계율원주인 법료는 방장과 같은 법 자 배분이다. 그런데 굉장히 젊어 보였다. 아무리 높게 쳐도 서른 중반? 실제로 그 아래 배분인 나한당주 료공보다 열 살 이상 어려 보였다.
단악선의 표정을 읽었던 것일까.
“법료는 혜공 사숙께서 늘그막에 거두신 제자다. 따라서 승적에 이름을 올린 시기는 료 자 배보다 늦지만 한 배분 높은 법 자 배의 법명을 쓰지.”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배분이나 그의 배경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보다 환자가 깨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알아내는 게 먼저였다.
“어느 날 법료가 폐관 수련을 자처했다. 큰 깨달음을 앞두고 있다며…….”
법연이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폐관에 든 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 연공실의 물을 채우던 사미가 저 상태의 법료를 발견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고.”
“깨달음이요?”
단악선의 눈이 반짝였다.
선앙침을 꺼낸 단악선이 법료의 눈썹과 눈썹 사이, 미심혈에 침을 꽂아 넣었다.
신중하게 침을 주시하던 단악선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희미했지만 가늘게 떠는 침을 확인한 것이다.
“의식이 있네요.”
법연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의식이 있다고? 한데 어찌 눈을 뜨지 못하는 것인가?”
“무아지경(無我之境) 상태예요.”
“……!”
“이분의 의식은 지금 삼매(三昧) 속을 떠도는 중이죠.”
소위 심일경성(心一境性)이라 하여 마음을 하나로 집중해 심신이 고요해지는 선정(禪定)의 상태가 바로 삼매다.
즉, 불가에서 가장 이상적인 수행의 경지인 셈이다.
“무념무상의 상태가 일 년이나 지속될 수 있단 말인가?”
“실제로 이분은 시간의 흐름도 인지하지 못하고 계실 거예요. 그 모든 제약에서 벗어나 완벽하게 자유로운 상태인 거죠.”
그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육신과 정신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지기 전에 손을 써야 했다.
“방법이 있겠는가?”
오랜 수행이 무색하게 간절함마저 느껴지는 노승의 눈빛에 단악선이 고민을 거듭했다.
답답한 침묵 속에서 긴 시간이 지난 후에 단악선의 입이 열렸다.
“딱 하나. 방법이 있어요.”
“……!”
“강한 자극으로 육체의 감각과 신경을 일제히 깨우는 거예요. 약해진 연결을 강제로 결속하는 거죠. 제가 아는 방법은 그게 유일해요. 하지만…….”
말끝을 흐린 단악선이 우려를 담아 법연을 올려다보았다.
“방장 스님께서 놀라실 수도 있어요.”
“그 어떤 방법이라도 상관없네. 법료, 이 아이를 구해 주게!”
고개를 끄덕인 단악선이 품속에서 침이 든 목갑을 꺼냈다.
“이걸로 사혈을 찔러 육체에 충격을 가할 거예요.”
단악선의 손에 쥐어진 침.
악귀상이 새겨진 칠흑처럼 새까만 침을 발견한 순간 법연이 화들짝 놀라 물었다.
“마령침? 그건 생사마의의 신물 아니더냐?”
“네. 우리 어머니세요.”
“……!”
눈을 부릅뜬 법연은 일순 넋이 나간 듯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신의가……, 악인을 그토록 증오하던 그가 혼인을 했다고?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마의와?”
“저희 어머니는 악인이 아니니까요.”
그 말에 법연이 드물게 당황했다.
“물론 생사마의는 악인이 아니지. 다만…….”
문득 오래전 과거를 떠올린 법연이 긴 한숨을 터트렸다.
쓰러트렸다 생각한 사파의 고수가 며칠 후 멀쩡히 다시 나타나 얼마나 곤혹스러웠던가.
게다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뒤늦게 그 이유가 생사마의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 정파가 느낀 당혹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정파 쪽의 부상자는 신의가, 사파 쪽의 부상자는 마의가.
목숨만 붙어 있다면 어떻게든 살려 내니 오히려 싸움이 길어졌다. 종국에는 상대 쪽 의원을 원망하는 푸념을 늘어놓는 자도 생길 정도였다.
두 사람의 명성이 강호 전체에 알려진 것도 그 무렵이었다.
“철천지원수 같았던 두 사람이 혼인을, 그것도 아이까지 남겼을 줄이야…….”
게다가.
‘그 두 사람의 아이가 내 생명을 구하다니.’
또한 법료를 살려 낼 유일한 희망이기도 했다.
이윽고 법연이 단악선의 눈을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하네.”
“그럼 모두 나가 주세요. 조금이라도 집중이 흐트러지면 돌이킬 수 없게 될 테니까요.”
법연의 눈 위로 갈등의 빛이 떠올랐다.
단악선이 자칫 실수라도 한다면 소림은 최고 고수를 잃게 된다. 그러나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단호한 단악선의 눈빛을 믿기로 한 것이다.
“부탁하네.”
그 말을 끝으로 법연이 단악선과 법료를 남겨 둔 채 방을 나왔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덧 유시에 이르렀다.
어느새 해는 떨어졌고 경내에는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저녁 공양도 거른 법연이 초조한 눈빛으로 약왕전 앞을 서성이고 있을 때였다.
“무엇이 그리 방장 사질을 괴롭히는가.”
“아! 사숙!”
뒤늦게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노승을 발견한 법연이 공손하게 반장을 취했다.
“제자 법연이 대주 큰스님을 뵙습니다.”
긴 눈썹을 흩날리며 걸어온 혜공 선사 역시 한 손을 가슴 앞에 들어 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소림 제자 혜공이 방장 스님을 뵈오.”
그렇게 인사를 나눈 뒤 법연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사숙의 깊은 안거를 방해해 죄송합니다.”
“괜찮소, 방장.”
고개를 저은 혜공이 고개를 돌려 약왕전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정신은 이미 자유로운데 육신이 자꾸 발목을 붙들어 이상하다 싶었는데, 저 안의 아이를 만나려 그랬나 보오.”
그리곤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떠날 때 떠나더라도 묵은 빚은 털고 가란 뜻이겠지.”
“생각 같아선 안에 전갈을 하고 싶으나…….”
혜공이 고개를 저어 법연의 말을 잘랐다.
“사람을 살리는 것보다 중한 게 어디 있겠소. 이왕 늦은 것 조금 더 기다리리다.”
혜공이 눈을 돌려 한설화를 보았다.
“오랜만입니다, 선자. 변함없는 모습이 여전히 보기 좋습니다그려.”
혜공이 건넨 인사에도 한설화는 시선을 계속 약왕전에 둔 채 그저 한 차례 고개만 까닥였을 뿐이었다.
그 오만한 모습에 법연은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에 혜공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다. 저분은 원래부터 사람을 살갑게 대하는 법을 모르는 분이니까.”
법연은 기분이 이상해졌다.
눈앞의 사숙은 상수(上壽)를 넘어 천수(天壽)를 바라보는 나이다. 그 혜공이 젊은 모습의 한설화를 저분이라 칭하는 상황이 더없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대체 진짜 나이가 몇 살이길래?’
그런 의문을 뒤로한 채 법연은 혜공과 함께 언제 나올지 모르는 단악선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런 두 사람의 어깨 위로 어느새 밤이슬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 * *
이른 새벽.
불안한 표정으로 나무 둥치를 서성이던 범계위가 초악량을 향해 불쑥 물었다.
“초 형, 뭔가 잘못된 거 같지 않수?”
초악량이 와락 얼굴을 구겼다.
이미 몇 시진 전부터 시도 때도 없는 범계위의 채근에 질릴 대로 질려 버렸기 때문이다.
“아니, 초 형도 생각을 해 보슈. 거기 가서 할 일이라곤 사람 하나 만나고 오는 것뿐이잖수. 그게 이렇게까지 늦을 일이냐고.”
“진정해라.”
“아니, 못하겠소. 이건 분명 무슨 사달이 난 거유.”
금방이라도 신형을 날릴 듯 범계위가 진기를 끌어 올렸다.
“내가 후딱 가서 살펴보고 오리다.”
“한 누이가 따라갔지 않느냐. 별일 없을 것이다.”
“초 형,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
이어진 범계위의 말에 초악량의 눈빛이 흔들렸다.
“마녀를 믿수?”
초악량은 갑자기 불안해졌다.
‘그러고 보니…….’
범계위나 한설화나.
그 나물에 그 밥. 오십보백보다.
대책 없이 사고 치는 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간들이었던 것이다.
‘확인해야 하나?’
한번 의심이 들기 시작하자 급격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초 형. 저기!”
고민하던 초악량은 범계위가 소리치며 가리키는 방향을 보았다.
범계위가 가리킨 손끝에는 소림사로 향하는 향화객 무리가 있었다.
“저들에 섞여 가면 되잖수.”
“그럼…… 확인만 하고 올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범계위가 향화객을 향해 신형을 날리자 초악량도 고민을 던지고 그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