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8)
신마의선-8화(8/500)
신마의선 (8)
단악선은 늦게까지 방에 불을 밝히고 있었다.
“단 의원, 있는가?”
절구에 약초를 빻고 있던 단악선이 갑작스런 초악량의 방문에 놀라 일어섰다.
“어? 이 시간에 웬일이세요?”
“그러는 단 의원이야말로 이 시간까지 무얼 그리 열심히 하는 겐가?”
“단약을 만들까 해서요.”
“하수오값을 마련하느라?”
“그냥 약재보다는 단약이 값을 더 쳐주거든요.”
한눈에 봐도 단악선은 몹시 피곤해 보였다. 그럼에도 그늘 한 점 없이 밝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에 초악량이 결심을 굳혔다.
“돈이라면 걱정 마라. 앞으로는 내가 마련해 보마.”
“네? 어떻게요?”
“방법이 있다. 그러니 단 의원도 그만 눈 좀 붙여.”
전각을 나선 초악량이 곧장 범계위를 찾아갔다.
“통나무 하나 구해 와라. 질 좋은 놈으로.”
범계위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 밤중에 찾아와서 갑자기? 통나무는 어디다 쓰시게?”
“돈 벌어야지. 단 의원이 잠도 못 자고 저러면 안 되니까.”
“나무 내다 팔아 봐야 얼마 되지도 않을 텐데…….”
“비싸게 만들어 팔면 될 거 아니냐.”
“어떻게……, 아!”
반문하던 범계위가 뒤늦게 이유를 깨닫고 탄성을 터트렸다.
“초 형에게 비상한 재주가 있었지!”
무공만큼 초악량을 유명하게 만든 재능.
바로 놀라운 경지에 도달한 조각 실력이었다. 당금 강호에 초악량의 악명을 드높이는 데 크게 일조한 취미기도 했다.
초악량은 자신이 죽인 정파 명숙의 모습을 직접 깎아 모으곤 했다.
당연히 정파에서는 치를 떨 수밖에.
하나 그런 평판과는 별개로 조예 실력 자체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잠시 후.
초악량과 범계위가 단악선의 전각을 찾아왔다.
“이걸로 생활비는 벌 수 있을 게다.”
턱.
초악량이 가지고 온 물건을 탁자 위에 올렸다.
한 자 높이 정도 되는 관우상이었다.
“와!”
단악선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살아 있는 것 같은 표정과 역동적인 동작. 거기에 금방이라도 전장을 누빌 것 같은 생생함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표현된 목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단악선의 반응에 초악량이 어깨를 으쓱했다.
“내공만 회복되면 돌도 깎을 수 있다.”
진기만 제대로 운용할 수 있다면 소재의 제약 자체가 사라진다.
옥이나 대리석, 심지어 무쇠로도 가능했다.
“이걸 직접 만드신 거예요? 이 정도면 줄을 서서 사겠는데요?”
초악량과 범계위가 서로를 보며 흡족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런데 관우상 말고 다른 것도 가능하신가요?”
“물론이지. 그런데 왜?”
“생각해 보니 도처에 관제묘가 널려서 관우상은 잘 안 팔릴 것 같아서요.”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던 것이다. 웅장한 관우상을 두고 굳이 작은 관우상을 찾을 이유가 없잖은가.
“기왕이면 사람들이 많이 살 만한 걸로 만들어 주세요.”
“문제없다.”
초악량이 의기양양하게 밖으로 나섰다.
범계위 역시 신나서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다시 일각 후.
다시 전각으로 돌아온 초악량이 다섯 개의 목상을 탁자 위에 올렸다.
이번엔 불상이었다.
“와……! 응?”
탄성을 흘리던 단악선이 물끄러미 불상을 응시했다.
그러기를 잠시.
“이거 불상 맞죠?”
단악선의 물음에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인기 많은 녀석들로 골라 만들었다. 왼쪽에서부터 각각 미륵불(彌勒佛), 약사여래(藥師如來),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문수보살(文殊菩薩), 보현보살(普賢菩薩)이다.”
“제가 알던 불상이 아닌데요?”
일단 형태는 완벽했다.
문제는 그 어디에서도 대자대비, 광명정대한 느낌은 찾아볼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하나같이 인상은 살벌하기 짝이 없었다.
평생 전장을 누벼 왔던 관우상이라면 모를까, 자비 정신에 입각해 이타행(利他行)을 추구하는 불가의 정신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그럴 리가? 완벽히 재현했는데?”
“너무 무서워서 이 불상은 사고 싶지 않을 거예요.”
심각해진 초악량의 모습에 단악선이 미소를 건넸다.
“아기나 동자상처럼 귀여운 것도 조각할 수 있나요?”
“잠시만 기다려라.”
또다시 전각을 나선 초악량은 정확히 일각 후 돌아왔다. 그가 내려놓은 목상을 지그시 바라보던 단악선이 한숨을 흘렸다.
“어떻게 아기에게서 살기가 느껴지죠?”
“왜? 완벽한데?”
“내가 보기에도 완벽해!”
돌아가는 상황이 불안했던지 범계위도 초악량을 거들었다. 그러나 단악선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건 사람들에게 팔 수 없어요.”
보는 것만으로도 수명이 깎여 나가는 기분이었다.
저렇게 불길한 물건을 어떻게 집에 들인단 말인가.
“어쩔 수 없네요.”
불만 가득한 두 사람의 눈빛에 단악선이 마지못해 탁자를 물렸다.
“두 분 거기 앉아 눈을 감아 보세요.”
의아한 표정을 짓는 두 사람을 향해 단악선이 조용히 웃었다.
“육신의 병만 아니라 마음의 병도 치료하는 것이 의원의 역할이니까요.”
그 말에 초악량과 범계위가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지금부터 제 말에 집중하세요.”
두 눈을 감은 채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이 앉아 있는 곳은 바람이 잔잔히 부는 초원이에요.”
초악량과 범계위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단악선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졌던 것이다.
“드넓은 초지 곳곳에는 아름다운 꽃이 가득하네요.”
“…….”
“…….”
“어디선가 날아온 나비가 잠시 어깨에 앉았어요.”
탁! 탁!
초악량과 범계위가 동시에 자신의 어깨를 내리쳤다.
“……나비 죽이지 마세요.”
“…….”
“…….”
“다시 할게요.”
이번에는 분위기를 바꾸어 보았다.
“이른 새벽이에요. 청량한 공기가 더없이 기분 좋게 느껴지네요. 어디선가 시원한 냇물 소리가 들리고요.”
두 사람의 표정이 한결 느긋해졌다.
“두 분은 산책하듯 천천히 산을 오르고 있어요. 그런데 저기 멀리 한적한 암자가 보이네요.”
“…….”
“…….”
“조용한 암자 안에는 아무도 없어요. 오직 인자하게 웃는 스님 한 분만 오롯이 단상에 앉아 계시죠. 두 분 눈에도 보이나요?”
“우, 웃고 있어!”
“맞아! 내 눈에도 보여!”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성공한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순간.
“저 자식이 우릴 비웃고 있어! 이 빌어먹을 땡초 자식! 이래서 난 머리털 없는 놈들이 싫어!”
“그 눈깔을 뽑아서 내 세 번째 불알로…….”
단악선이 한숨을 터트렸다.
“그만!”
눈을 뜬 두 사람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 자식 어디 갔어?”
“그러게? 그새 튀었나?”
단악선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차라리 용이나 호랑이상을 만드세요. 부처상은 안 되겠어요.”
“지금 우리 치료를 포기하는 건가?”
초악량의 물음에 단악선이 쓰게 웃었다.
“포기한 게 아니고……, 심리 치료는 원래 시간이 필요한 법이에요.”
두 사람 모르게 흔들리는 의지를 다잡는 단악선이었다.
다음 날 아침.
우거진 숲속, 우뚝 솟은 나무들 꼭대기 위로 한 대의 수레가 날고 있었다.
“우와!”
탄성을 흘리는 단악선의 모습에 범계위가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 좋으냐?”
“네! 하늘을 나는 것 같아요!”
범계위가 뿌듯함을 만끽했다.
초상비 따위 익혀 어디 쓰나 싶었는데, 배워 두길 잘했다 싶었다.
아이와 놀아 주기에 이만한 무공이 없는 것이다.
“내가 이 정도다!”
“멋져요! 아저씨 최고!”
단악선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수레에는 단악선 말고도 초악량이 깎은 목상이 잔뜩 실려 있었는데, 범계위는 한 손으로 가볍게 수레를 들고 있었다. 순식간에 산을 내려온 범계위가 마을 입구에서 수레를 내려놓았다.
“대단해요, 아저씨. 저 혼자 수레를 끌고 왔으면 반나절은 걸렸을 거예요.”
“이 정도야 일각이면 충분하지.”
범계위가 수레 안에서 영웅건을 꺼내 머리에 둘렀다.
“우와! 딴 사람 같아요.”
연이은 칭찬에 범계위가 씨익 웃었다.
“그럼 가 볼까?”
범계위가 웃으며 마을로 들어섰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팔 거냐?”
“제게 생각이 있어요.”
빙그레 웃던 단악선이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저 앞에 세워 주세요.”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가구를 비롯해 다양한 장식품을 파는 목공예점이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단악선이 수레에서 용 목상 하나를 집어 품에 감추었다.
그리고 곧장 상점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옵…….”
어린 단악선의 모습에 환대하던 공예점 주인의 목소리에서 힘이 빠졌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무슨 일이냐?”
시큰둥한 주인의 대답에 단악선이 웃으며 대답했다.
“목각상을 사고 싶어서요.”
단악선을 위아래로 훑어보던 주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한눈에 봐도 옷차림이 허름해 보였기 때문이다.
단악선은 그의 시선을 무시한 채 가계 안쪽으로 들어갔다.
“비싼 물건들이니 함부로 만지면 안 된다.”
단악선이 대답 대신 목상 하나를 가리켰다.
“이런 건 얼마나 하죠?”
“은자 다섯 냥이다.”
단악선이 깜짝 놀랐다.
“그렇게 비싸요?”
주인장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네 꼴을 보니, 네 냥까지는 해 줘도 되겠다.”
아무리 세상 물정 모르는 단악선이었지만 어떻게 봐도 이건 후려치는 기색이 역력했다.
“세 냥은 안 되나요?”
“어차피 안 살 거, 그냥 가라. 괜히 사람 귀찮게 하지 말고.”
“정말 산다면요? 세 냥에 주시겠어요?”
“오냐, 그래. 세 냥에 주마. 돈은 있고?”
단악선은 돈 대신 용 목상을 꺼내 보였다.
“이걸 판 돈으로 구입할게요. 이건 얼마나 쳐주시겠어요?”
눈을 부릅뜬 주인이 벌떡 일어났다. 한눈에 봐도 예사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이건 대체 어디서 난 거냐?”
“오십 개 있어요.”
목공예점 주인의 눈이 더없이 크게 떠졌다.
“밖의 수레에 오십 개가 실려 있고, 구입할 의향이 있으시다면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 드릴 수 있어요.”
“사마! 전부 다!”
“얼마에요?”
“…….”
주인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에도 단악선은 그의 눈 위로 떠올랐다 사라지는 탐욕의 빛을 놓치지 않았다.
“은자 한 냥!”
“겨우 한 냥이요?”
“겨우라니! 그것도 우리 가게 정도나 되니 쳐주는 가격이야. 어디 가도 이 가격은 못 받는다.”
단악선이 빙그레 웃더니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단악선이 다시 목상을 품에 넣자 주인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안 팔 거야?”
“네. 너무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셔서요. 이걸 만든 사람에게 미안해서라도 그 가격에는 못 팔겠어요.”
“자, 잠깐!”
주인이 허둥지둥하는 사이 단악선이 가게를 벗어났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른 목공예점으로 향했다. 처음 들렀던 가게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깔끔하고 정리가 잘된 곳이었다.
주인의 인상 역시 좋아 보였다.
“어서 오너라.”
게다가 처음 보는 단악선에게 친근하게 인사까지 건넸다.
단악선이 첫 번째 가게에서 본 것과 같은 물건을 가리켰다.
“이런 건 얼마나 해요?”
“그건 좀 비싸단다. 은자 두 냥은 받아야 하거든.”
같은 물건인데 처음 들렸던 가게와는 금액 차이가 매우 컸다.
“깎아 주실 순 없나요?”
주인이 난색을 표했다.
“크게 이문을 남기고 파는 게 아니라서…….”
그가 다른 목상을 가리켰다.
“저런 물건은 어떠냐? 금액이 조금 저렴하지만 질은 크게 떨어지지 않는단다.”
빙그레 웃은 단악선이 용 목상을 내보였다.
“이런 건 얼마 정도 할까요?”
“허……!”
목상을 살피던 주인이 나직하게 탄성을 흘렸다. 그리곤 목상을 꼼꼼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못해도 은자 다섯 냥은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제가 판다면요?”
“나도 이문을 남겨야 하니 세 냥에 매입할 수 있겠구나.”
첫 번째 가게에 비해 훨씬 좋은 조건이었다.
물론 더 돌아본다면 더 좋은 가격에 팔 수 있는 가게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 주인에게 신뢰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