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80)
신마의선-80화(80/500)
신마의선 (80)
소림사로 향하는 길.
줄지어 산을 오르는 기다란 향화객 행렬 가장 뒤쪽에 범계위가 있었다.
어깨에는 잔뜩 짐을 짊어진 상태였다.
향화객들에게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위해 짐꾼을 자처한 것이다.
가뜩이나 남다른 범계위의 체구에 향화객들의 짐이 더해지니, 마치 작은 산 하나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저마다 들떠 신나게 떠드는 향화객들을 힐끔거리던 범계위가 저 멀리 앞서가는 초악량을 발견했다.
―초 형,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요?
범계위의 전음에 초악량이 고개를 돌렸다.
―덕분에 이들 틈에 섞이지 않았느냐?
이때 문득 초악량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범계위가 짊어진 물건들 속에서 비죽 튀어나온 기다란 철봉이었다.
성명병기인 대초자곤.
―아예 대놓고 범계위가 왔다고 떠들지 그러냐?
아무리 소림의 땡추들이 세상 물정 모르는 얼간이들이라고 해도 저 덩치와 대초자곤을 보고도 범계위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아, 이거?
범계위가 대초자곤을 쑥 뽑아 들더니 숲 쪽으로 던졌다.
얼핏 보기에는 대충 던진 것 같았지만 허공을 가른 대초자곤은 정확히 아름드리나무 위에 안착했다.
―나중에 찾아가지 뭐.
그렇게 혹시 모를 의혹의 단서를 마무리한 뒤 두 사람은 향화객에 섞여 소림사 앞에 이르렀다.
사전에 미리 이야기가 되었던 듯 마중 온 지객승의 안내에 따라 두 사람은 태연하게 소림의 산문을 넘었다.
* * *
덜컹.
방문이 열리고 치료를 끝낸 단악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밤샘 치료에 상당한 체력을 소진한 듯 안색은 창백했고, 온몸에는 땀이 흥건했다.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는 단악선을 향해 한설화가 재빨리 달려갔다.
단악선을 부축하는 그녀의 눈빛에는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그 모습을 본 혜공 선사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천하의 빙옥선자가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안단 말인가.”
그제야 법연은 혜공 선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원래부터 사람을 살갑게 대하는 법을 모른다 했던가? 그러나 단악선을 대하는 그녀의 얼굴은 그 쌀쌀맞던 빙옥선자가 맞나 싶을 만큼 부드럽고 온화했다.
소매를 들어 자신의 얼굴에 맺힌 땀을 닦아 주는 한설화를 향해 단악선이 환하게 웃었다.
“성공했어요.”
“그러리라 믿었다.”
일말의 의심도 느껴지지 않는 확고한 대답에 단악선이 다시 한 번 웃었다.
“저…….”
이때 약왕전의 수좌승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계율원주의 상태는 어떠한지……?”
“들어가 보셔도 돼요. 의식을 회복하셨어요.”
놀란 표정을 짓던 수좌승이 약왕전의 의승들을 이끌고 방 안에 들어섰다.
“아미타불!”
좌정을 한 채 희미하게 눈을 뜬 법료를 마주한 약왕전의 승려들의 입에서 절로 불호가 터져 나왔다.
일 년 가까이 온갖 방법을 시도해 왔지만 그 어떤 차도도 보이지 않았던 그였다. 그런 그가 불과 하루 만에 이처럼 눈을 뜨다니!
부처님의 가호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약왕전의 이름은 모든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소멸시킨다는 약사여래(藥師如來)의 보살행에서 유래한 것. 그들에게 단악선은 부처님이 보내 주신 약사여래의 현신처럼 느껴졌다.
“아직은 혼란스러우실 거예요. 천천히 현재 상황을 인지하고 몸이 회복될 때까지 최대한 안정을 취하게 도와주세요.”
“그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단 시주.”
단악선에게 진정으로 감복한 약왕전의 수좌, 법성이 극진한 태도로 고개를 숙였다.
단악선에게 다가온 법연 역시 환한 얼굴로 손을 마주 잡았다.
“고맙네, 단 시주. 덕분에 심마를 털어 낼 수 있게 되었네.”
“아직 부모님을 따라가려면 멀었어요.”
겸양의 말로 예를 갖춘 단악선이 고개를 돌려 한 사람을 눈에 담았다.
“안녕하세요. 혹시 할아버지가 혜공 스님이신가요?”
혜공이 인자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제멋대로 부처님께 귀의하려던 딱한 제자를 다시 빈승 곁으로 데려다주어 감사하오.”
지극히 공손한 경어에 단악선은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긴장이 풀리기 무섭게 잠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자꾸만 감기려는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리고 있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어요. 제가 사실 부탁드릴 것이 있는데…….”
이때 단악선의 말을 자르며 한설화가 끼어들었다.
“일단 쉬는 게 먼저일 것 같구나.”
“네? 하지만…….”
한설화가 고개를 돌려 혜공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이에 혜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시지요. 이번에는 제가 기다리겠습니다.”
그제야 안심이 되었는지 단악선이 피곤한 얼굴로 웃었다. 그리고 이내 고개가 푹 떨어졌다.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단악선을 한설화가 안아 들었다.
“고생했다.”
땀에 젖은 단악선의 머리칼을 쓸어 넘긴 한설화가 고개를 돌려 법연을 바라봤다. 따스한 온기를 품고 있던 눈빛이 언제 그랬냐는 듯 얼음장처럼 서늘하기만 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방장인 법연의 안내를 받아 한설화는 두 사람을 위해 마련된 처소로 향했다.
* * *
“어? 어어?”
눈에 띄게 당황해 이상한 소리를 내는 범계위의 모습에 초악량이 의아한 눈빛을 던졌다.
―쉿! 갑자기 무슨 짓이야?
초악량의 전음에 범계위가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범계위의 손을 따라 고개를 돌린 초악량이 흠칫하며 그 자리에서 굳어졌다.
저 멀리, 이동하는 한 무리의 승려들 사이로 한설화의 모습이 보였다.
“이 땡중 새끼들이 결국……!”
한설화의 품에 안겨 축 늘어진 단악선을 발견한 범계위가 험악한 얼굴로 으르렁댔다.
범계위가 막 신형을 날리려던 찰나 한설화와 눈이 마주쳤다.
―여긴 왜 왔어?
한설화의 전음에 초악량과 범계위가 마주 전음을 날렸다.
―무슨 일이야? 단 의원 왜 저래?
―누구야? 누가 우리 단 의원을 저렇게 만든 거야?
금방이라도 길길이 날뛸 것 같은 두 사람의 모습에 한설화가 아미를 찡그렸다.
―그냥 잠든 것뿐이야.
―진짜?
―그래.
몇 번이고 확답을 받은 뒤 비로소 안도하는 두 사람이었다.
문득 한설화가 날리는 비수 같은 눈빛을 느낀 초악량이 머쓱하게 웃었다.
―일은 잘 진행되고 있고?
―멍청이들이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냉랭한 태도로 시선을 거두었다.
―그러니까 꺼져.
“저게……?”
범계위가 발끈했지만 이내 치솟는 울화를 억눌렀다. 단악선을 위해서라도 소란을 일으켜 좋을 게 없었다.
“단 의원이 무사한 것을 확인했으니 이만 돌아가자.”
초악량의 말에 범계위 역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강호에는 들어갈 땐 쉬워도 나갈 때는 아닌 곳이 존재했다.
그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소림이었다.
* * *
이각 전.
소림사를 둘러싼 숲속에서는 치열한 영역 다툼이 한창이었다.
외부에서 스며든 떠돌이의 침범을 순순히 허락할 만큼 자연의 율법은 녹록지 않은 것이다.
찌지직!
터줏대감의 텃세에 호되게 당한 다람쥐 한 마리가 나뭇가지 위를 달려 달아났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발이 미끄러졌다.
거친 나무껍질이 아닌 매끈한 철봉을 잘못 디딘 것이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철봉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다람쥐가 다시 몸을 끌어 올리기 위해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철봉이 살짝 휘청였다.
다람쥐가 애를 쓰면 애쓸수록 위아래로 흔들리는 철봉의 진폭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눈이 녹은 물기에 미끄러진 철봉이 바닥에 추락했다.
쿠웅!
육중한 충격음이 숲속을 뒤흔들었다.
근처를 오가던 동자승 한 명이 나타난 것도 거의 동시였다.
“어? 이게 뭐지?”
생긴 걸로 봐서는 도리깨 같은데 머리 부분에 달린 비죽비죽한 가시는 곡식을 터는 용도로 적합해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사람 머리를 깨고 살점을 발라내기 위한 망산초자의 성명병기라는 것을 알았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을 것이다. 그러나 강호 경험이 전무한 어린 동자승이 이를 알아볼 리 없었다.
“주인을 찾아 줘야겠다.”
무게 때문에 혼자서는 도저히 옮길 수 없었던 동자승은 가까이 있던 동기를 불렀다. 그리고 함께 힘을 모아 낑낑거리며 대초자곤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동자승이 대초자곤과 함께 소림사 안으로 사라졌다.
* * *
향화객들이 향을 사르고 꽃을 바치며 불상에 절을 올렸다.
부처의 자비에 기대어 팍팍한 세상살이가 좀 더 나아지길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담은 예불이었다.
이때 공 자 배의 젊은 승려 한 명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창백한 얼굴 위로 쏟아지는 땀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젊은 승려는 곧장 향화객을 안내하던 료 자 배 승려를 향해 다가섰다. 그리곤 무언가를 속삭였다.
‘무슨 일이지?’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갑자기 화들짝 놀라는 승려의 모습에 초악량과 범계위는 무언가 변고가 생겼다는 걸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곧장 나한당에 가서 이를 보고하라!”
젊은 승려에게 지시를 내린 지객당주 료운이 향화객들을 향해 말했다.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으니 예불은 뒤로 미루시지요. 소승이 시주님들을 안전한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스님?”
누군가의 질문에 료운이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초청하지 않은 위험한 손님이 본사를 방문한 것 같습니다.”
“그게 누군데 이리 표정이 안 좋으십니까?”
료운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망산초자라 불리는 강호의 무뢰배 같습니다.”
그 말에 향화객 무리 곳곳에서 헛바람이 터져 나왔다.
“걱정 마십시오. 이곳은 중원 무림의 성지인 소림입니다. 여러분의 안전은 저희가 책임질 것입니다.”
초악량과 범계위가 시선을 마주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지?
범계위의 전음에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짓을 한 거야?
―나? 초 형이랑 계속 같이 있었잖수.
두 사람 모두 저들이 눈치챌 만한 특이한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
어쨌거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두 사람은 지객당주의 안내를 말없이 따랐다. 그렇게 별도로 마련된 소림사 내부 별관에 도착했다.
“혹시 이상한 점이 있거나 범계위를 닮은 자를 발견하면 바로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지객당주의 말에 향화객 중 한 명이 외쳤다.
“그런데 우린 소문만 들었지 그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릅니다.”
고개를 끄덕인 료운이 범계위의 인상착의를 설명했다.
“키는 칠 척에 달하고 눈은 호랑이처럼 부리부리합니다. 덩치는 철탑을 연상케 하니 알아보기가 쉬울…….”
료운이 말끝을 흐리며 한 사람을 주시했다.
향화객들 가운데 유독 눈에 뜨이는 한 사람.
그의 모습이 지금까지 말한 범계위의 인상착의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향화객들의 시선도 일제히 범계위에게 모였다.
―초 형 어쩌지? 나 아무래도 의심 받는 거 같은데?
―너 같은 외모가 흔치는 않으니까.
범계위의 눈이 차갑게 번뜩였다.
―어쩔 수 없지.
―어쩌려고?
―이왕 이렇게 된 거, 한바탕 제대로 놀아나 보고 가야겠수.
―여기 소림사다.
―소림사 중들은 뭐, 대가리가 동피철골로 만들어졌대? 박살 내면 죽는 건 매한가지 아니유?
―신중해라. 단 의원이 이곳에 있으니까.
단악선이 언급되자 범계위도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못했다.
그때 료운의 뒤를 따르던 지객승 한 명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저분은 가시 같은 수염이 없습니다. 대머리도 아니고요.”
그 말에 료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안도한 향화객들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순진한 불자들이라 그런지 의심을 거두는 것도 빨랐다. 하지만 보호를 위해 들어온 소림의 승려 몇몇은 범계위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하필 이럴 때에 비슷한 덩치의 인물이 들어온 것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초 형. 나 곧 걸릴 거 같은데?
초악량은 고민을 거듭하다 결단을 내렸다.
―내가 방법을 찾아볼 테니, 여기서 꼼짝 말고 있어라.
―응? 어쩌려고?
초악량은 대답하지 않고 승려들 앞으로 나섰다.
“스님, 여기 해우소가 어딥니까?”
지객승의 안내를 받아 초악량이 사라졌다.
홀로 남은 범계위는 자신에게 모아진 시선들이 못내 불편하기만 했다.
‘참자. 단 의원을 위해서.’
범계위는 그저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