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81)
신마의선-81화(81/500)
신마의선 (81)
해우소에 도착한 초악량은 안내했던 지객승이 돌아가자 그림자로 몸을 숨겼다.
소림의 분위기가 흉흉한 만큼 소림 승려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서 지객승이 기다릴 이유는 없었다.
“범계위라면…….”
초악량은 범계위를 떠올리며 해우소를 떠났다.
그렇게 해우소를 끼고 아래쪽으로 이동하자 가파른 비탈 아래 넓게 펼쳐진 채마밭이 나타났다.
이곳을 가로질러 다시 경내로 잠입했다.
최대한 기척을 감추고 은신해 있기를 잠시.
초악량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저게 좋겠군.”
향화객들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소림의 불탑이었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나, 소림에 들어온 자가 가장 먼저 보게 되는 석탑이라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목표를 정한 초악량의 주먹에 웅혼한 내력이 모일 때였다.
“이게 그 망산초자의 성명병기라고?”
멀리서 익숙한 별호를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한 스님들의 선장도 무겁지만 이건 비교도 되지 않는군. 대체 이걸 어떻게 휘두른다는 거야?”
“불길한 물건이니 관심 끄게. 그게 다 피를 먹여 키운 명성이야. 이 흉악한 물건 아래 스러진 생명이 몇인데.”
초악량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 계획을 바꿨다.
‘이게 더 범계위답겠군.’
목소리를 좇자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무언가를 옮기는 승려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천에 쌓여 있었지만 길이며 무게가 딱 봐도 범계위의 대초자곤이 분명했다.
“정말 그자가 이곳에 나타난 걸까?”
“우리야 알 바 아니지. 그저 시키신 대로 창고에 가져다 놓으면 될 뿐.”
창고에 들어갔다 나온 승려들이 사라지자 초악량이 움직였다.
창고에 잠입해 범계위의 대초자곤을 확인한 초악량이 이를 들고 나왔다.
주위를 둘러보며 방향을 가늠하길 잠시.
초악량이 신형을 뽑아 올렸다.
눈 깜빡할 사이에 백 장 가까이 도약한 초악량의 눈에 전각 하나가 들어왔다.
대가람(大伽藍) 정중앙.
소림사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대웅보전이었다.
초악량의 눈빛이 한순간 섬뜩하게 번뜩였다.
동시에 범계위의 대초자곤은 이미 한 줄기 빛살이 되어 있었다.
초악량의 손을 벗어난 대초자곤이 그대로 대웅보전으로 쇄도했다.
꽈앙!
지축을 흔드는 굉음과 함께 대초자곤이 벽을 뚫고 사라졌다.
‘날 건드린 빚에 대한 이자다.’
대웅보전을 향해 달려가는 인영들이 눈에 들어온 것도 그때였다.
쾌속한 신법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나한들이 분명했다.
당장 저들에게 달려들어 원금까지 받아 내고 싶은 생각이 불쑥 솟구쳤다.
하나 그리하면 단악선의 목적도 수포로 돌아갈 터.
‘지금은 이걸로 넘어가 주지.’
끓어오르는 살기를 애써 삭이며 초악량이 바닥에 착지했다.
‘이 정도면 의심을 벗을 수 있겠지?’
지금쯤 좌불안석하고 있을 범계위를 떠올린 초악량이 조용히 웃었다.
대부분의 중들은 범계위가 대초자곤을 던졌으리라 생각할 터. 그러나 정작 범계위는 지객승들의 감시 아래 향화객들과 함께 머물고 있었다.
관심을 돌려 의심을 벗어나는, 이른바 성동격서(聲東擊西)의 이치를 응용한 방법이었다.
초악량은 왔던 길을 되짚어 해우소로 되돌아간 뒤, 표정을 바꾸고 여유롭게 향화객이 있는 전각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곳의 분위기는 개미굴을 들쑤신 것처럼 온통 뒤숭숭했다.
대웅보전을 향해 달려간 지객당주를 대신해 지객승들이 불안해하는 향화객들을 달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이때 초악량에게 다가온 범계위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요?”
“네 흉내를 좀 내고 왔다.”
“내 흉내?”
“그래. 이제 저들은 널 의심하지 않을 게다.”
초악량의 설명을 들은 범계위가 버럭 화를 냈다.
―흥! 그래서 혼자만 재미 보고 오셨다고?
―이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느냐?
대답이 궁해진 범계위가 괜히 머쓱해하며 대웅보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괜찮겠지?”
“뭐가 말이냐?”
“단 의원 말이오. 혹시나 방금 전의 소동으로 여기 온 일이 틀어지거나 하진 않을까 싶어서 말이오.”
초악량이 움찔했다.
심각한 얼굴로 한참 동안 생각을 이어 가던 초악량이 불쑥 입을 열었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
“이 모든 사단이 너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
“뭐요?”
초악량이 범계위의 시선을 회피했다.
“난 죄 없다.”
“이런 치사한!”
범계위가 역정을 내자 향화객과 승려 몇 명이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범계위는 별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
초악량 역시 마찬가지.
비수처럼 예리하게 날아드는 범계위의 눈빛을 최선을 다해 외면했다.
지객당 한쪽에 마련된 승방.
원래는 딱딱했어야 할 침상 위에 푹신한 보료가 깔려 있었다.
은인에 대한 소림의 배려였다.
한설화는 침대 옆에 앉아 잠들어 있는 단악선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얼마나 지쳤는지 단악선은 미동도 없이 잠들어 있었다.
그런 단악선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한설화가 가만히 손을 뻗었다. 그리곤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은 단악선의 머리칼을 쓸어 넘겨 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
한설화의 시선이 한순간 천장 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단악선을 보호하기 위해 십방에 그물 같은 기감을 펼쳐 놓은 상태였다.
‘대체 무슨 짓을?’
까마득한 높이의 허공.
그곳에서 휘몰아치는 강맹한 기류는 분명 초악량의 것이었다.
그 순간.
꽈앙!
굉음과 함께 들이닥친 충격파가 지객당의 전각을 흔들었다.
한설화의 눈빛이 한순간 차가워졌다.
잠들어 있던 단악선이 그 충격에 눈을 뜬 것이다.
이때 방문이 열리고 지객승 한 명이 들어섰다.
“괜찮으십니까?”
“무슨 일이지?”
한설화의 물음에 지객승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범계위란 자가 대웅전을 습격했습니다. 그래서 혹시 몰라 확인하러 온 것입니다.”
“뭐?”
한설화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녀의 기감에 포착된 사람은 초악량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나한들과 함께 방장 스님께서 직접 나섰으니 곧 상황이 수습될 것입니다. 그러니 그때까지 이곳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워낙 흉포하다고 알려진 자이니 부디 조심하시길.”
지객승이 공손히 예를 갖춘 뒤 물러갔다.
그때 단악선이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한설화가 이를 제지하며 입을 열었다.
“너는 더 쉬어야 한다.”
“방금 범 아저씨 이름을 들은 것 같은데요?”
“별일 아니니 걱정 마라. 일어나면 설명해 주마. 그러니 안심하고 더 자거라.”
충혈된 눈을 깜빡이던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이내 다시 잠에 빠졌다.
“이 얼간이들이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한설화가 기감을 뻗어 초악량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거짓말처럼 존재감이 지워져 있었다.
한설화가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차라리 마혈을 찍어 버리고 올 것 그랬나?’
애초에 그들이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었던 어리석음을 탓했다.
그러나 당장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저 그들이 더 이상의 큰 사고를 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같은 시각.
“아미타불…….”
법연의 입에서 창노한 불호가 터져 나왔다.
불제자가 된 이래 쌓아 왔던 수십 성상의 수행.
제자인 료범의 죽음. 그리고 사제인 법료의 와병에도 유지했던 일말의 평정심이 이 순간 송두리째 무너지고 있었다.
난데없이 들이닥친 재앙의 번뇌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아무리 애를 써도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았다.
눈앞에 펼쳐진 참사가 그만큼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북위 효문제 시절에 천축에서 건너온 발타선사(跋陀禪師).
그에 의해 소림사가 창건된 이래 천 년 넘는 세월 동안 대웅전 중앙의 연좌대를 지켜 온 불상의 머리가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본존불로 모셔진 석가모니 목상이었다.
송두리째 산산조각 난 목 부위에는 한눈에 봐도 육중해 보이는 무식한 철봉이 박혀 있었다.
천 년을 이어 온 소림 역사상 전례가 없는 불상사였다.
분노 이전에 당혹감을 넘어선 혼란에 법연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만큼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충격으로 말을 잇지 못하는 법연을 향해 한 사람이 고개를 조아렸다.
휘하 나한들을 이끌고 앞서 달려온 나한당주, 료공이었다.
“죄송합니다.”
“자네 잘못이 아니네.”
“아닙니다. 저것이 망산초자의 병기라는 것을 알고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제 불찰입니다.”
침음하던 법연의 눈빛이 분노로 일렁였다.
“그자……. 범계위는 찾았나?”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하나 주변을 샅샅이 수색 중이니 곧 흔적이 발견될 것입니다.”
“우리와 큰 은원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찌 이런 짓을…….”
“무림맹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최근에도 그가 무림맹 산하의 백검문에 출몰해 큰 피해를 입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허.”
탄식을 터트린 법연의 눈에 감출 수 없는 회한의 감정이 떠올랐다.
“우리가 남궁가에 진 빚이 이다지도 크구나.”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은 료공의 얼굴이 무거워졌다.
정마대전 당시.
마교의 파상 공세에 맞서 홀로 분전했던 남궁세가의 전대 가주의 죽음에 소림도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초악량 토벌에 소림의 고수를 내어 달라는 남궁백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사형인 료범을 앗아 간 과거의 혈채(血債)가 이처럼 돌고 돌아 또 다른 재앙을 가져온 것이다.
땅이 꺼져라 한숨 짓던 법연이 다시 한 번 불호를 읊었다.
그런 그를 일깨운 것은 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땅이 꺼졌나? 아니면 하늘이 무너졌어? 왜 멀쩡한 다리로 나락을 향해 걸어가?”
“사숙…….”
어느새 법연 옆에 다가온 혜공이 질책의 눈빛을 던졌다.
“쯧쯧. 눈썹 위로 허연 서리가 내려앉았는데, 아직도 그 마음은 송곳 하나 꽂을 곳 없이 가난하구나. 대체 네 세월은 어디다 흘려 버린 것이냐?”
“……!”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 갈 길은 먼데 날은 벌써 저무는구나! 어느 세월에 이 늙은이의 가사와 바리때를 넘겨줄꼬.”
법연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의 말대로였다.
지금껏 그가 의발의 전수를 미룬 이유를 그라 해서 어찌 모를까.
과거 마조 조사께서 그러했듯, 보리심이 무르익어 ‘천하를 짓밟는 천리마’로 깨어나길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한숨을 흘린 법연이 주위를 향해 지시를 내렸다.
“불체(佛體)를 수습해라.”
그 말에 혜공이 벼락같이 일갈했다.
“불체는 무슨! 저기 굴러다니는 나무토막 어디에 불성이 깃들어 있단 말이냐!”
그 호통에 승려들이 움찔했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사이.
혜공이 성큼 앞으로 나섰다.
동시에 들고 있던 선장을 휘둘렀다.
꽈앙!
그나마 목 아래로 형체를 유지하고 있던 목불이 그 일격에 산산조각 나 흩어졌다.
경악에 눈을 부릅뜬 장내의 인물들을 향해 추상같은 음성이 쏟아졌다.
“살불살조(殺佛殺祖)!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도 죽이라 이르셨거늘!”
그 말에 법연을 비롯한 승려들이 깊이 고개를 숙였다.
위대한 조사들 가운데 한 명인 임제 의현의 가르침이 이 순간 더없이 아프게 가슴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관념에 대한 집착을 경계하기 위한 위대한 갈(喝)!
차라리 오무간업을 짓더라도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造五無間業 方得解脫)는 그의 외침이 수백 년의 시공을 넘어 소림사를 흔들었다.
그 순간.
“어?”
장내의 누군가가 당혹성을 터트렸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자 젊은 승려 한 명이 당황한 얼굴로 한 곳을 가리켰다.
“저건 혹시 사리(舍利)……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