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83)
신마의선-83화(83/500)
신마의선 (83)
“뭐? 그놈을 살려 줬다고?”
단악선으로부터 소림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듣던 범계위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쩝. 천하오절이 천하사절이 될 수 있었는데……. 아깝네.”
범계위가 초악량을 힐끔거리다 고개를 갸웃했다.
“아닌가? 초 형이 저 모양이니 천하삼절인가?”
“뭐, 인마?”
발끈하는 초악량을 향해 범계위가 히죽 웃었다.
“솔직히 말해 보슈.”
“……?”
“초 형도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잖수.”
범계위가 약 올리듯 말을 이어 갔다.
“법료 그놈이 골골거리는 동안은 소림을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니까.”
“내가 왜 소림을 무서워한단 말이냐?”
“에이. 사실 그때 초 형을 공격한 놈이 나한당주가 아니라 법료 그놈이었으면 초 형이 이렇게 살아 있을 수 있었겠수?”
초악량이 움찔했다.
당시의 흉험했던 싸움을 떠올리니 절로 머리칼이 쭈뼛했다.
만약 그 당시, 그 자리에 료범을 대신해 법료가 있었다면……?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지만 법료는 소림 최고의 고수다.
료범보다는 적어도 반 수.
아니, 한 수 이상의 고수였다.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다.”
애초에 죽기를 각오하고 임한 싸움이었다.
그 자리에 법료가 아닌 법료 할아비가 있었다 해도 마찬가지.
상대가 누구라도 저승길 동무로 삼을 자신이 있었다.
“뭐, 그렇다 칩시다.”
범계위의 성의 없는 반응에 초악량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범계위가 단악선을 향해 물었다.
“갔던 일은 잘된 거야?”
단악선이 환하게 웃었다.
“연판장에 수결을 받았어요.”
“역시 우리 단 의원! 다 잘될 줄 알았어.”
너무나 태연하게 거짓말을 늘어놓는 범계위의 모습에 초악량은 어이가 없었다.
분명 무슨 사달이 났다며 무작정 소림으로 향하려던 모습이 불과 몇 시진 전이다.
“고생했어, 단 의원. 우리 이제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범계위가 단악선을 자신의 어깨에 올렸다.
“이제 저도 경공 쓸 수 있어요.”
“나 배고파. 괜히 초 형이 그 난리를 쳐서 절밥도 못 얻어먹었거든.”
“그게 내 탓이라고?”
초악량은 기가 막혔다.
따지고 보면 처음부터 대초자곤을 제대로 관리 못 한 범계위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범계위와 초악량이 갑자기 오한을 느꼈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린 두 사람이 한설화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러고 보니…….”
무시무시한 눈빛을 흘리며 한설화가 두 사람을 노려봤다.
“나한테 할 말이 있지 않아?”
“…….”
“…….”
초악량과 범계위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범계위가 신형을 날렸다.
“거기 서.”
“안 들려!”
그대로 내뺀 범계위는 어느새 하나의 점이 되어 사라졌다.
한설화가 한눈판 사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초악량 역시 신형을 날렸다.
아니, 날리려 했다.
턱.
한설화에게 손목이 붙들린 초악량이 단호하게 말했다.
“전부 다 저놈 때문이다.”
초악량이 손목을 비틀어 한설화의 손을 빠져나갔다.
특기인 금나수를 십분 발휘한 비장의 절초 중 하나였다.
그리곤 그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잠시 멍한 눈으로 서 있던 한설화의 눈에 이내 살기가 일렁였다.
“이것들이…….”
한설화가 두 사람을 사납게 추격했다.
* * *
콰득!
흑철목으로 만들어진 단단한 의자의 팔걸이가 그대로 으스러졌다.
폭풍처럼 휘도는 기파에 휩쓸려 사방으로 나부끼는 목피.
그 사이로 음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시 말해 봐라.”
노단양이 뿜어내는 살기에 시립해 있던 파사단원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만큼 노단양은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놈들이 이미 떠났다고 합니다.”
“언제? 어디로?”
“그건 저희도 잘……, 컥!”
쩔쩔매며 보고를 하던 파사단원 한 명이 허공에 매달려 버둥댔다.
그의 멱살을 움켜쥔 노단양의 눈 위로 섬뜩한 안광이 쏟아져 내렸다.
그 노기를 정면에서 마주한 파사단원의 눈이 새빨갛게 변했다.
온몸을 찍어 누르는 압력에 실핏줄이 터진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놈들의 행방을 알아내.”
노단양이 험악한 얼굴로 으르렁댔다.
“훼방을 놓은 개방 놈들을 족치든, 흑점에 선을 대든…….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 놈들의 위치를 파악하란 말이다.”
“보, 복명!”
노단양의 수하들이 급히 부복했다.
충분히 선을 넘은 명령이었지만 감히 토를 달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털썩.
노단양이 손을 풀자 축 늘어진 파사단원이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마지막 기회다. 한 번 더 이런 추태를 보인다면…….”
“……!”
피부를 에이는 가공할 기파에 노출된 파사단원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더 듣지 않아도 이어질 말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두 눈 가득 자욱한 살기를 흘리는 노단양의 눈빛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꺼져라.”
황급히 부복하고 실내를 빠져나가는 수하들을 향해 노단양의 음산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빈손으로 돌아올 생각 마라. 하다못해 네놈들의 머리라도 올려서 가져와.”
홀로 남은 노단양은 팔걸이가 부서진 의자에 다시 몸을 묻었다.
“하…….”
생각하면 할수록 기가 막혔다.
졸지에 닭 쫓던 개가 된 셈이다.
이때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죄 없는 수하들에게 역정을 낸들 결과가 달라지나요?”
태연자약한 모습으로 말을 건네 오는 여인.
천이단주 제갈연이었다.
“무능이 바로 죄요.”
“어느새 맹주님과 닮아 가시네요.”
제갈연이 묘한 미소를 말아 올렸다.
“맹주님도 얼마 전에 그런 말씀을 하시던데요.”
모호한 말투였지만 그것이 자신을 놀리는 말이라는 걸 모를 만큼 노단양은 눈치가 없지 않았다.
노단양의 숨소리가 거칠어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제갈연이 딴청을 피웠다.
“쫓길수록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죠. 다그치기만 해서 될 일이었다면 진작…….”
“무슨 일로 온 거요?”
“제가 반갑지 않으신 모양이군요.”
“용건만.”
싸늘한 노단양의 태도에 제갈연이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뭐, 좋아요. 주인은 반기지 않더라도 모처럼 가져온 선물은 드리고 가야겠어요.”
“선물?”
제갈연이 노단양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그들이 소림사에 다녀갔다고 하더군요.”
노단양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녀가 언급한 그들이 누굴 말하는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확실한 거요?”
제갈연이 살짝 아미를 찡그렸다.
“본 단의 정보가 미덥지 않으신가 보군요? 뭐, 그러시다면야…….”
자리를 뜨려는 제갈연을 노단양이 만류했다.
“실례했소. 수하들의 실책에 예민해진 모양이오.”
제갈연이 마지못해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못내 불편한 기색으로 찻잔에 손가락을 찍어 탁자에 찻물을 튕기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행동이 노단양은 내심 언짢았다. 하지만 겉으론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지금 상황에서 기댈 곳이라곤 그나마 그녀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의미한 행동을 이어 가길 잠시.
제갈연이 불쑥 입을 열었다.
“생각지 못한 기회로군요.”
노단양이 눈살을 찌푸렸다.
기회? 대체 무엇이?
하나 이어진 그녀의 말에 깨닫는 것이 있었다.
“그들이 무위를 떠나 강호를 떠도는 중이라면 이보다 좋은 상황이 어디 있겠어요?”
노단양의 눈 위로 기광이 번뜩였다.
듣고 보니 확실히 그랬다.
인적 드문 호젓한 산길이나 야음을 이용한다면 다른 이의 이목을 신경 쓸 필요 없이 목적을 달성하기 훨씬 쉬워지는 것이다.
“혹시 그들의 목적지를 알고 있소?”
“글쎄요…….”
제갈연이 말끝을 흐리자 노단양은 그녀가 쥐고 있는 정보가 더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부탁드리겠소.”
잠시 뜸을 들이던 제갈연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좋아요. 이왕 가져온 선물이니 크게 인심을 쓰죠.”
제갈연이 검지로 탁자 한 곳을 짚었다.
“……!”
노단양의 눈빛이 달라졌다.
찻물이 만들어 낸 탁자의 얼룩이 중원의 지도와 겹쳐 보였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짚은 곳도 공교로웠다.
“섬서?”
노단양의 반문에 제갈연이 빙그레 웃더니 손바닥으로 탁자 위의 찻물을 쓸어 버렸다.
그리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딴청을 피웠다.
노단양은 새삼 눈앞의 여인을 쉽게 판단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무의미하다 여겼던 행동이 모두 의도된 것이었다니.
“고맙소.”
노단양이 벌떡 일어서자 제갈연이 의아한 눈빛을 던졌다.
“직접 움직이실 생각인가요?”
“달리 방법이 없지 않소?”
그 말에 제갈연이 모호한 미소를 던졌다.
“위험하지 않겠어요?”
“그게 무슨 뜻이오?”
“말 그대로 단주님을 걱정하는 거예요.”
“걱정? 나를?”
내심 불쾌해 코웃음을 치던 노단양이 이어진 제갈연의 말에 얼굴이 굳어졌다.
“범계위, 초악량, 한설화. 이 셋 중 한 명이라도 온전히 감당하실 수 있나요?”
“…….”
노단양은 대답하지 못했다.
파사단 모두를 갈아 넣고, 거기에 자신이 손을 보탠다면 한 명 정도는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러나 셋을 모두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그들이 초악량과 범계위라고 확신하고 있구려.”
노단양의 물음에 제갈연이 빙그레 웃었다.
“사건의 흐름을 몇 번이나 되짚어 봐도 나오는 결론은 한결같으니까요. 그들이 함께 움직인다는 전제 아래 일련의 사건들과 모든 인과가 정확히 맞물려요.”
“맹주님께는 언제 보고할 거요?”
“글쎄요. 아직 교차 검증이 끝나지 않아서요.”
노단양이 피식 실소했다.
그놈의 교차 검증.
아무리 봐도 시간을 끌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
“현장에서 명확한 증거를 확보해 주신다면 조금은 보고가 수월해질 텐데요.”
그런데도 오히려 뻔뻔하게 한술 더 떠 능청스레 책임을 자신에게 떠넘기는 그녀였다.
“노력해 보겠소.”
그렇게 대꾸한 노단양이 집무실을 나섰다.
당장은 뚜렷한 계획이 없었지만 언제까지 미적거리고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
지금까지의 경험상 꾸준히 틈을 찾다 보면 기회는 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노단양이 흠칫하며 멈춰 섰다.
“그런데 왜 그렇게 돌아가려고만 하시나요?”
“……?”
“원하는 걸 얻기 위한 방법이 비단 한 가지만은 아닐 텐데요.”
노단양은 갑자기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신기제갈의 피를 이은 데다 지낭리라 불리는 무림맹의 군사.
자신과 남궁백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다는 사실은 짐작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다만 문제는 어디까지 알고 있느냐는 점이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요?”
“그건 파사단주님 본인께서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을까요?”
모호한 미소로 대답을 흐린 제갈연이 능청스러운 눈빛을 던졌다.
“그냥…….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에요.”
문득 노단양은 그녀의 미소에서 협죽도(夾竹桃)를 떠올렸다.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더없이 위험한 맹독을 품은 꽃.
그녀가 베푼 지금까지의 호의가 더 이상 달갑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 * *
“원을 그리며 나선형으로 비트는 동작. 이 움직임을 통해 얻는 힘을 전사(纏絲)라 한다.”
단악선은 집중력을 발휘해 초악량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여기서 얻어지는 힘을 이용한 경력이 바로 전사경(纏絲勁)이다.”
그 말과 함께 초악량의 발이 바닥을 굴렀다.
그 힘이 발목을 타고 올라오는 순간, 초악량의 몸이 나선을 그리며 움직였다.
다리와 허리를 거쳐 회전력이 더해진 경력이 고스란히 그의 손으로 전달되었다.
초악량의 장심이 눈앞의 거목에 닿았다.
퍽.
처음에는 솜이불에 돌을 던진 것 같은 가벼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이어진 결과는 가볍지 않았다.
쩌저적!
어른 둘이 껴안을 정도로 두꺼운 거목.
그 중간 부분이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뒤틀리나 싶더니 굉음과 함께 폭발해 버린 것이다.
비처럼 쏟아지는 목피는 하나같이 잘게 찢어진 상태였다.
“와!”
감탄하는 단악선을 돌아보며 초악량이 질문을 던졌다.
“이 힘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으냐?”
한참을 고심하던 단악선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발에서 시작하는 회전력인가요?”
초악량의 눈에 언뜻 놀라움이 떠올랐다.
이렇게 단번에 단악선이 정답을 맞힐 줄은 예상치 못한 것이다.
“움직임은 기억했느냐?”
“대충은요.”
“그럼 한번 시전해 보아라.”
“지금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