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85)
신마의선-85화(85/500)
신마의선 (85)
“누구 말이오?”
범계위의 반문에 초악량이 피식 웃었다.
“네 눈에 석회 가루 뿌리고 달아난 놈.”
범계위의 얼굴이 대번에 일그러졌다.
“아! 그 개자식! 생각하니 또 열 받네!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사지를 찢어 죽여…….”
범계위의 말을 자르며 초악량이 말했다.
“놈이라면 단 의원의 비무 상대로 부족함이 없을 게다.”
곰곰이 생각하던 범계위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그렇네.”
단악선은 궁금해졌다.
“그 사람이 누군데요?”
“귀영마자(鬼影魔子)라는 녀석이다.”
초악량이 그에 대한 설명을 이어 갔다.
“섬서 일대를 중심으로 중원 곳곳을 누비는 도둑이다. 스스로 신투(神偸)라며 제 얼굴에 금칠하길 좋아하는 놈이지.”
“도둑이요?”
“그래. 그 인간에게 이를 가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
오죽하면 정사 불문하고 무림 최고 공적 중 한 명이 되었을까.
그런데도 지금까지 목숨이 붙어 있는 걸 보면 난 놈은 난 놈이었다.
“무공 자체는 변변치 않지만 경공만큼은 우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뛰어나다. 게다가 온갖 잡기에도 능하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야비함까지 갖추고 있고.”
“초 아저씨에게 인정을 받을 정도면 대단한 분인가 봐요.”
“뭐, 그리 대단한 놈은 아니지만…….”
말끝을 흐리던 초악량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네게는 분명히 도움은 될 것이다.”
그렇게 섬서에서의 첫 목적지가 정해졌다.
귀영마자 가두달을 찾기 위해 일행은 곧장 남쪽으로 향했다.
사흘 후, 태백산.
오악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태백산은 화산, 종남산과 더불어 섬서를 대표하는 산이었다.
사계절 기후가 변화 다단할뿐더러,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내는 정상의 만년설은 수많은 시인과 화가들이 이곳을 찾게 만들었다.
하나 단악선 일행은 태백산의 뛰어난 풍광을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이 자식 참 깊이도 숨어 있네.”
깊은 골짜기를 누비던 범계위가 나직이 툴툴댔다.
미시에서 신시로 접어드는 시각인데도 벌써부터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계곡을 뒤졌을까.
초악량의 눈에 이채가 떠올렸다.
“저기다!”
계곡 사이에 자리 잡은 널따란 바위로 초악량이 신형을 날렸다.
한눈에 봐도 인위적인 손길을 거친 장소가 분명했다.
어지럽게 쌓아 올린 돌무더기가 눈에 들어온 것도 그때였다.
돌무더기를 헤치자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작은 향로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범계위가 향로로 다가가 진기를 끌어 올렸다.
화악.
화염이 맺힌 손가락을 향로 안에 집어넣자 금세 불이 붙었다.
잠시 후 한 줄기 푸른색 연기가 하늘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연기가 특이했다.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연기가 흔들렸지만 끊어지거나 흩어지지 않았다.
무언가 특수한 처리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곧 놈이 나타날 게다.”
초악량의 말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은 이곳에서 야영을 해야겠네요.”
그때였다.
후두둑.
갑자기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산의 날씨는 변덕스럽다.
특히나 태백산은 변화무쌍한 날씨로 유명했다.
단악선이 곤란한 얼굴로 비를 피할 곳을 찾기 시작했다.
이때 한설화가 단악선 곁으로 슬쩍 다가섰다.
“어?”
단악선이 의아한 눈으로 한설화를 올려다보았다.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그녀는 여전히 태연해 보였기 때문이다.
“아!”
단악선의 입에서 나직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퍼부어 대는 빗줄기 속에서도 한설화와 자신의 옷깃에는 물기 한 점 묻어 있지 않았다.
떨어진 빗방울이 한설화의 지척에 이르자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그대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자연스레 발현된 호신강기 때문이었다.
“대단해요.”
단악선이 감탄하며 초악량과 범계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찬가지로 두 사람 모두 호신강기를 운용해 비를 피하고 있었다.
“너도 언젠가는 가능할 것이다.”
초악량의 말에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가 뭐 대수라고.”
범계위가 한껏 으스댔다.
“호신강기가 아니더라도 비를 피하는 방법이야 많지.”
“정말요?”
단악선의 반문에 범계위가 씨익 웃었다.
“보여 줄까?”
그런 범계위를 향해 초악량과 한설화가 한심하다는 눈빛을 던졌다.
“얼마나 자랑할 게 없으면…….”
초악량의 핀잔에 범계위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 모습에 단악선이 서둘러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자신 때문에 괜히 범계위가 민망해지는 것 같아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려 한 것이다.
“그럼 우리 내기를 해 보는 게 어때요?”
“내기?”
의아한 얼굴로 되묻던 범계위를 향해 단악선이 말을 이어 갔다.
“비를 먼저 맞는 분이 저와 함께 저녁 준비를 하는 거예요. 물론 호신강기를 쓰지 않고요.”
다소 내키지 않아 하는 초악량의 눈빛에 단악선이 애써 그를 설득했다.
“앞으로도 먼 길을 가야 하는데 약간의 여흥도 필요할 것 같아서요.”
단악선의 부탁에 초악량이 피식 웃었다.
“어렵지 않지.”
그 말과 함께 초악량이 근처에 굴러다니는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들었다.
“굳이 호신강기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그 말과 함께 초악량이 호신강기를 거두었다.
동시에 나뭇가지를 휘둘러 떨어지는 빗방울을 정확하게 쳐 내기 시작했다.
아니, 쳐 낸다기보다는 교묘하게 건드려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와!”
단악선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울 만큼 정밀한 솜씨였다.
비록 나뭇가지를 이용했지만 그 안에 전사경을 응용한 사량발천근의 수법이 가미되어 있다는 것을 단악선은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감탄을 연발하는 단악선의 모습에 초악량이 슬쩍 웃음을 말아 올렸다.
그러나 그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애쓴다, 애써.”
옆에서 들려온 범계위의 음성에 고개를 돌린 초악량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치익.
범계위 근처로 떨어진 빗방울이 그대로 기화해 뿌연 수증기로 흩어지고 있었다.
혹시나 싶어 한설화 쪽을 봤지만 그쪽도 상황은 비슷했다.
그녀의 지척에 이른 빗방울이 어느 순간 작은 얼음 알갱이로 변해 우수수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초악량과 눈이 마주친 한설화가 슬쩍 웃음을 말아 올렸다.
“비만 맞지 않으면 되는 거잖아?”
“……!”
초악량은 내심 억울했다.
두 사람 모두 호신강기를 쓰지 않는 것은 분명했다.
하나 이게 호신강기와 다를 게 무어란 말인가.
더구나…….
‘빌어먹을!’
아직까지 여유가 있는 두 사람과 달리 초악량은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다급해졌다.
점차 힘이 달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패배는 확정된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초악량의 눈이 번뜩였다.
초악량이 나뭇가지를 휘둘러 빗방울을 한설화 쪽으로 날리기 시작했다.
파파팟!
날아든 빗방울에 부딪친 우박이 방향을 꺾어 범계위 쪽으로 날아갔다.
“무슨 짓이야?”
범계위가 버럭 하며 한설화를 노려봤다.
한설화는 한설화대로 눈을 치켜뜨며 초악량을 노려봤다.
이에 초악량이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기의 조건을 다시 떠올려 봤다.”
“……?”
“서로 방해하지 않는다는 사항은 없었잖아.”
그 말에 범계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이대로라면 한설화와의 승부가 얼마나 길어질지 장담할 수 없었다.
게다가 두 사람을 제치고 단독으로 승리를 거머쥔다면 한동안은 초악량과 한설화도 자신을 무시하지 못할 터.
범계위가 한설화 쪽으로 슬쩍 다가섰다.
그 순간 범계위가 내뿜는 열기에 한설화의 냉기가 흔들렸다.
얼음 알갱이 하나가 녹아 물방울이 되어 그녀의 어깨 위로 떨어지려 했다.
“……!”
깜짝 놀란 한설화가 재빨리 걸음을 옮겨 빗방울을 피했다.
“이게?”
범계위의 도발에 한설화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진기를 잔뜩 끌어 올린 한설화가 범계위를 향해 소매를 휘저었다.
그러자 범계위를 에워싸고 있던 수증기가 한순간에 응결되어 비처럼 후드득 쏟아져 내렸다.
“어엇!”
당황한 범계위가 황급히 허공을 향해 장력을 쳐 냈다.
퍼엉!
그 충격에 물방울이 그대로 잘게 부서져 희뿌연 증기로 화했다.
“해보자는 거냐!”
범계위가 분노해 고함을 지르자 한설화가 짧게 코웃음을 쳤다.
“그 실력으로?”
한설화의 조소에 범계위가 발끈해 권풍을 날렸다.
한설화 역시 지지 않고 소매를 휘둘러 연신 냉기를 날렸다.
퍼퍼퍼펑.
두 사람 사이에서 연달아 폭음이 터져 나오며 사방으로 물방울이 튀기 시작했다.
덕분에 초악량의 손은 더욱 바빠졌다.
위에서 쏟아지는 빗방울을 걷어 내기도 급급한 상황에서 옆에도 물방울이 들이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당히 해! 이것들아!”
참다못한 초악량의 일갈에 범계위와 한설화가 홱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봤다.
“저 인간이 원흉이었어!”
한설화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범계위가 초악량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초악량이 깜짝 놀라 물러서려 했으나 범계위가 조금 더 빨랐다.
순식간에 범계위와 한설화의 권역에 갇힌 초악량의 얼굴에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그래! 같이 망하자! 이것들아!”
초악량의 눈에서 독기가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냉기와 화기가 한데 뒤엉켰다.
그리고 거기에 초악량의 전사경이 더해지니 장내는 이내 혼돈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몰아치는 경력과 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잘게 쪼개진 물방울들이 이내 희뿌연 물안개로 변해 장내를 휘감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단악선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미 자신은 안중에도 없는 듯 서로 죽어라 뒤엉켜 싸우는 세 사람의 모습은 광란 그 자체였다.
덕분에 단악선은 온몸이 후줄근하게 젖어 있었다.
사방에서 들이치는 비바람을 피할 방법이 전무했던 까닭이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단악선은 내심 지금 상황을 반성했다.
싸우는 걸 말리기 위해 제안한 내기가 오히려 싸움을 부추긴 꼴이 되고 말았다.
고작 내기 따위에 저들이 이렇게 죽자 살자 싸울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목숨만큼이나 자존심을 중요하게 여기는 고수들의 생리를 미리 알지 못한 대가였다.
하나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이제 내기는 하지 말자.’
차라리 비를 맞는 게 나을 정도로 흠뻑 젖은 자신을 내려다보며 단악선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결심했다.
‘절대로! 두 번 다시는!’
그날 밤.
계곡의 어둠 속에 녹아든 채 은밀하게 접근하는 인영이 있었다.
오십 대 초반 정도 되었을까.
쥐를 연상케 하는 작은 눈과 염소처럼 가느다란 수염을 지닌 왜소한 체구의 사내였다.
그가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조심스럽게 향로 쪽으로 접근했다.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한차례 태풍이 휘몰아친 것처럼 계곡 전체가 엉망이었다.
깨진 돌조각과 흙더미가 사방에 즐비했고, 곳곳에는 그을음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온통 흙탕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오직 향로만 멀쩡했다.
그게 더 기괴하게 느껴졌다.
‘좋지 않다!’
오랜 세월 무림을 종횡해 온 그의 직감이 경고를 보내왔다.
아무리 좋은 건수라도 수상한 상황은 피하는 게 상책.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가두달이 왔던 길을 되짚어 천천히 물러섰다.
그 어떤 인기척도 내지 않는 극도로 조심스러운 움직임이었다.
그런데…….
턱.
몇 걸음 채 옮기기도 전에 무언가에 부딪쳤다.
무심코 고개를 돌려 뒤를 봤다.
어슴푸레한 어둠 속.
가늘게 휘어져 빛나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뒤늦게 그것이 웃고 있는 누군가의 눈빛이라는 것을 깨달은 가두달은 온몸에 소름이 쭉 끼쳤다.
그 순간 결코 잊을 수 없는 목소리가 뇌리를 흔들었다.
“오랜만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