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88)
신마의선-88화(88/500)
신마의선 (88)
세 사람은 조금 미심쩍은 마음이었지만, 단악선이 좋아하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한 마디씩 던지는 건 잊지 않았다.
“허튼짓 하지 마라.”
“무슨 생각을 하든 그냥 생각으로 끝내.”
“…….”
세 사람이 돌아서자 표정을 관리하던 가두달의 눈빛이 달라졌다.
방울을 이리저리 굴려 보며 신기해하는 단악선.
그 모습을 주시하는 가두달의 눈이 감출 수 없는 기이한 열기로 일렁이기 시작했다.
‘물건만 훔치란 법은 없지.’
투도(偸盜)의 궁극적인 목표는 결국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것.
가두달이 멀어지는 세 사람을 힐끔거렸다.
여전히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렸다.
‘그래도 저 아이라면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
단악선은 완벽한 신투가 될 자질을 지니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저 괴물들의 제자를 훔친다?’
가두달이 새어 나오는 웃음을 애써 삼켰다.
‘내 생애 가장 큰 업적이 되겠어.’
생각만으로도 짜릿한 쾌감이 등줄기를 훑었다.
* * *
“드디어 화산이네요.”
저 멀리 드높이 솟은 봉우리를 보며 단악선이 탄성을 터트렸다.
오악(五岳) 중 서악(西岳)으로 꼽히는 도교의 영산.
무당과 더불어 도가의 양대 산맥이자, 중원 검파의 종주인 화산파가 자리를 잡은 곳이기도 했다.
“매영홍림(梅影紅林) 검정중원(劍征中原)이라.”
신비로운 분위기를 지닌 안개가 감싸고 있는 화산을 눈에 담은 가두달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그 말에 초악량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검정중원은 무슨.”
범계위도 한마디 덧붙였다.
“원래부터 오만하기로는 천하제일 아니유.”
가두달은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감상에 취해 괜히 한마디 했다가 덤터기만 쓴 꼴.
사실 끌려오지 않았다면 이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섶을 지고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도 아니고, 뭐 좋은 꼴 보겠다고 화산까지 온단 말인가.
화산파의 위치는 그만큼 독보적이다.
한족의 다른 이름인 화하족의 화(華)는 화산을 의미한다.
그 정도로 자부심이 높은 게 화산파이며, 중화 무공의 근원으로서의 위치도 한몫 거들었다.
초악량과 범계위와는 달리 한설화는 묘한 감흥을 담은 눈빛으로 화산을 응시하고 있었다.
괜히 무안해진 가두달이 단악선을 보며 화제를 돌렸다.
“화산에는 도교 사원만 존재한다는 것을 아느냐?”
“이 크고 넓은 산에 사찰이 하나도 없다고요?”
가두달이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희이선생(希夷先生)이라 불리던 유명한 도사 진단이 이곳에서 송태조 조광윤과 내기 바둑을 두었지. 그 내기에서 승리한 대가로 송태조는 화산의 도관에 한해 세금을 걷지 않기로 했다.”
이후 수많은 도사들이 기를 쓰고 화산에 몰려들었고 지금과 같은 성세를 구가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돈 때문이지.”
“원래부터 고고한 척 속 시커먼 놈들 아니유. 그 뿌리가 어디 가겠수?”
뭐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지 여전히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초악량과 범계위였다.
그에 비해 단악선은 어딘가 한결 가벼운 표정이었다.
가두달과 비무를 병행하며 이곳으로 향한 지 보름.
그동안 겪은 고생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더 이상 모래 뿌리기와 철질려를 까는 수법에 당하지 않자 가두달은 더욱 본격적으로 온갖 비열하고 야비한 수법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일부러 허점을 드러내 공격을 유도하는 건 애교 수준.
낭심을 걷어차거나 눈 할퀴기는 예사였다.
밀린다 싶으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나려타곤(懶驢打滾)의 수법을 사용하기도 했고, 비무 도중 말을 걸어 정신을 빼놓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단악선을 가장 괴롭힌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경공이었다.
귀영신투라는 명호에 걸맞게 가두달은 자신이 지닌 장점을 최대한 응용해 본격적으로 단악선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가두달은 곳곳에 함정을 파 놓고 단악선을 유인했다.
분명 그가 딛고 있던 곳을 디뎠는데도 바닥이 움푹 꺼지며 신형이 주저앉기도 했고, 그가 지나간 진흙탕을 밟고 미끄러진 적도 있었다.
가두달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러다 그마저도 쉽게 통하지 않자 가두달은 아예 정면에서 싸우는 것을 거부했다. 멀찍이 거리를 둔 채 단악선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암기를 던지는 방법으로 전환한 것이다.
돌멩이나 나무토막.
심지어 뱀이나 독충까지…….
가두달은 닥치는 대로 집어 던졌다. 그리고 한순간이라도 위기다 싶으면 경공을 전개해 높은 나무로 올라가 버렸다.
결국 단악선은 닭 쫓던 개가 지붕만 올려다보는 것처럼 매번 낭패를 당해야만 했다.
그래도 이제 화산에 도착했으니 한동안은 숨을 돌릴 수 있지 않겠는가.
“화산파의 연판장은 내가 받아 오마.”
모두의 시선이 모아지자 한설화가 말을 이어 갔다.
“여기 장문인과 인연이 있다.”
단악선이 웃으며 한설화에게 다가갔다.
“그래도 제가 해야 하는 일인걸요. 같이 가요.”
범계위와 초악량이 단악선을 만류했다.
“단 의원, 꼭 같이 갈 필요 없어.”
“그래. 한 누이를 믿어 보자.”
“알아서 하겠다잖아. 우리랑 여기서 맛있는 거나 먹으러 다니자고.”
한설화가 가만히 두 사람을 응시했다.
꼬집어 설명하기 어려웠지만 왜인지 모르게 수상쩍었다. 저들이 언제 이렇게 순순히 자신의 말을 따른 적이 있었던가.
무언가 다른 목적이 있지 않고서야 이 상황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한설화가 손을 뻗어 단악선의 손을 잡았다.
“그래. 같이 가자.”
범계위가 버럭 했다.
“야! 마녀! 한 입으로 두말할래? 혼자 갔다 온다며?”
초악량도 거들고 나섰다.
“그래, 한 누이. 단 의원은 여기 두고…….”
한설화의 싸늘한 목소리가 초악량의 말을 잘랐다.
“또 무슨 사고를 치려고?”
움찔하는 초악량과 범계위를 향해 한설화가 엄포를 놓았다.
“조용히 기다리고 있어. 저번처럼 사고 치지 말고.”
“그때는…….”
“닥쳐.”
그 한마디에 변명을 늘어놓으려던 범계위가 입을 다물었다.
“아무것도 하지 마.”
한설화가 스산한 눈빛으로 진심을 담아 말을 이어 갔다.
“한 번만 더 사고 치면 마혈을 짚어 끌고 다닐 거야.”
“…….”
“…….”
평소라면 바로 발끈했을 테지만 지은 죄가 있어 쓴 입맛만 다시는 두 사람이었다.
그렇게 한설화가 단악선을 데리고 떠났다.
아쉬운 듯 한숨만 내쉬는 두 사람을 향해 가두달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단 의원 말입니다…….”
초악량과 범계위의 시선에 한 차례 움찔한 가두달이 잔뜩 움츠러든 얼굴로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두 분께서는 단 의원에게 어떤 치료를 받고 계신 겁니까?”
“그게 왜 궁금한데?”
대뜸 날아든 범계위의 날 선 음성에 안 그래도 소심한 가두달이 잔뜩 겁먹은 얼굴로 말을 잇지 못했다.
“여기서 보고 듣는 것 모두 잊어라. 그리고 단 의원에 대한 관심도 거두고.”
그나마 약간은 부드러운 초악량의 말에 가두달이 용기를 냈다.
“옆에서 듣고 보니 대충 어느 정도 상황은 짐작됩니다만…….”
“그럼 그렇게 대충 짐작만 하고 있어.”
“넵.”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초악량의 눈빛에 가두달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었다.
그저 단악선이 사라진 것뿐인데도 두 사람은 이상하게도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그러게 왜 괜히 말을 꺼내 가지고.”
초악량의 핀잔에 범계위의 눈썹이 역팔자를 그렸다.
“그러는 초 형은? 초 형도 거들었잖수.”
“뭐, 인마?”
“초 형만 안 나섰어도 단 의원은 내가 충분히 설득할 수 있었수.”
“네가? 무슨 수로?”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말은 듣지. 우리 중 단 의원이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나니까.”
“웃기고 있네.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네가 소림에 올라가자는 말만 안 했어도 한 누이가 저러지는 않았을 거다.”
“내가 불상 부쉈소? 사고는 초 형이 쳐 놓고 왜 남 탓이오?”
으르렁대며 서로를 향해 살기를 드높이는 두 사람의 모습에 괜히 중간에 낀 가두달만 죽을 맛이었다.
그야말로 좌불안석.
상황이 이러니 가두달은 벌써부터 단악선이 보고 싶어졌다.
단악선이 있을 때는 이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일은 없었는데.
“그나저나…….”
가두달을 향해 초악량과 범계위의 시선이 모아졌다.
“꼬리는 일부러 달고 다니시는 겁니까?”
초악량이 한 차례 주위를 훑어보고는 피식 웃었다.
“피라미들 떨구어 내려고 움직이는 게 내키지 않았을 뿐이다.”
치지직.
지척에서 들려온 소리에 가두달이 고개를 돌렸다.
화기를 일으켜 선인장 같던 수염을 태워 버린 범계위가 봇짐에서 가발과 영웅건을 꺼내 변장을 하기 시작했다.
“뭐 하냐? 너.”
초악량의 물음에 범계위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피라미라도 계속 쫓아오니 기분이 더러워져서.”
“……?”
“어떤 놈들인지 확인은 해 봐야 할 것 아니오. 어차피 여기서 할 일도 없고.”
“한 누이 말을 잊었느냐?”
범계위가 실소했다.
“언제부터 초 형이 마녀 말을 잘 들었다고.”
“하긴.”
멋쩍게 고개를 끄덕인 초악량이 인피면구를 꺼내 얼굴에 썼다.
“마을로 가실 생각입니까?”
“떡밥을 노리고 모여들었다면 적당한 미끼도 던져 줘야지.”
뜻 모를 말이었지만 어차피 결정은 가두달의 몫이 아니었다.
한설화의 경고가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결국 마지못해 두 사람을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 * *
청석판이 깔린 연무장.
한 자루 검을 든 청년이 홀로 검무를 펼치고 있었다.
푸른 잔영을 남기며 허공을 가르던 청강검이 일순 변화를 일으켰다.
검 끝에 흐릿하게 일렁이던 자색 서기가 폭발하듯 짙어지나 싶더니, 안개처럼 일어난 붉은 그림자가 연무장을 가득 메웠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색 안개 사이로 선명한 홍광(紅光)이 번뜩였다.
흔들리는 검을 따라 붉은빛을 머금은 매화가 환상처럼 피어난 것도 그때였다.
화산의 절기,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순식간에 다섯 개로 늘어난 홍매화.
오매쟁속(五梅爭速)이라는 초식명에 부족함이 없는 선명한 자색 검화(劍花)가 검로를 따라 유려한 자태를 뽐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설매창연(雪梅蒼然)에 이은 매인설한(梅忍雪寒), 그리고 매향성류(梅香成流)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뚜렷해진 홍매화는 매화검법의 절초인 낙매성우(落梅成雨)에 이르러 그 자체로 가공할 검기의 구름이 되어 연무장을 가득 메웠다.
연이어 매화검법의 절초를 쏟아 내던 검은 어느 한순간 허공에 우뚝 멈춰 섰다.
“하아…….”
무거운 탄식이 청년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닦지도 않고, 거친 호흡을 가다듬지도 않은 채 청년은 멍하니 한참을 서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검 끝이 어지럽구나.”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청년, 명검이 고개를 돌렸다.
“제자 명검이 사부님을 뵙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선 풍현자가 조용히 웃었다.
말없이 물끄러미 시선을 던지는 사부의 모습에 명검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죄송합니다.”
“뭐가 말이냐?”
“제자가 못난 꼴을 보였습니다.”
“무슨 못난 꼴? 아주 훌륭한 매화검법이었다.”
풍현자가 빙그레 웃으며 명검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흔들리는 것은 검일까, 아니면 그것을 쥔 마음일까.”
“……!”
멈칫하는 제자를 향해 풍현자가 말을 이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