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9)
신마의선-9화(9/500)
신마의선 (9)
“그런데 개수가 좀 많은데 괜찮을까요?”
수레에 실려 있는 갖가지 형상의 목상을 확인한 주인이 크게 놀랐다.
“당장 이걸 다 팔 수 있을지 걱정이구나. 은자 다섯 냥짜리 물건이 그렇게 자주 팔리는 게 아니라서.”
“그럼 조금만 가져올까요?”
“아니다. 다 매입하마. 정 못 팔면 다른 마을로 가져가서 팔면 되니까.”
그때 누군가 수레 쪽으로 다가왔다.
처음 단악선이 들렀던 목공예점의 주인이었다.
“이게 무슨 짓이야! 내가 다 사겠다고 했잖아!”
마음이 급했기 때문일까. 허겁지겁 달려오던 그가 누군가와 부딪쳤다.
“길 한복판에서 재수 없게…….”
한바탕 욕을 퍼부으려던 주인이 급히 말을 삼켰다. 범계위의 거대한 체구에 일순 기가 질린 것이다.
그런 그를 범계위가 지그시 노려봤다.
그와 단악선이 나눈 대화는 이미 다 들어 알고 있었다.
“앞으로 이 가게에 접근 금지.”
“하지만 여기는 상가 골목인데…….”
“반대쪽으로 돌아가. 대가리 깨지기 싫으면.”
범계위가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더니 그대로 움켜쥐었다.
퍼석.
순식간에 돌맹이가 먼지가 되어 으스러졌다.
“……!”
따지러 왔던 주인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지금껏 장사를 해 오며 온갖 군상들을 상대해 왔지만, 눈앞의 거한은 차원이 달랐다.
깊이를 짐작할 수도 없는 아득한 나락.
그 심연의 어둠이 자신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은 상대의 모습에 범계위가 혀를 찼다.
“다 큰 어른이 오줌이나 지리고 말이야.”
범계위가 단악선을 보며 조용히 웃었다.
거래를 성사한 단악선이 전표를 받아 들었다. 무려 백오십 냥에 달하는 은자였다.
단악선은 곧장 약재상으로 향했다.
“아저씨! 저 왔어요!”
“어, 그래. 왔느……!”
단악선 뒤로 나타난 범계위를 발견한 약재상 주인이 화들짝 놀랐다.
살다 살다 이렇게 덩치가 큰 사람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단악선이 범계위를 향해 작게 속삭였다.
“좋은 분이니 잘 대해 주세요.”
고개를 끄덕인 범계위가 약재상 주인을 향해 씨익 웃었다.
약재상 주인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갑자기 엄습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오한 때문이었다.
그에게 단악선이 전표를 내밀었다.
“어제 갚기로 한 외상값이에요.”
“어? 어, 그래.”
“전에 구해 주시기로 했던 약재는 아직인가요?”
“그렇지 않아도 언제 올까 싶어 기다리고 있었다.”
약재상 주인이 탁자 밑에서 상자 하나를 꺼냈다. 상자를 열자 코를 찌르는 지독한 냄새가 실내를 가득 채웠다.
범계위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딴 걸 돈 주고 산다고?”
단악선이 웃으며 대답했다.
“막힌 혈을 뚫고 순환을 돕는 약재거든요.”
단악선이 약재상 주인을 바라봤다.
“얼마죠?”
“거스름 돈 대신 가져 가거라.”
“네? 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싸다고…….”
“우리 가게의 귀한 단골이니까.”
단악선은 이상함을 느꼈다.
아무리 단골이라 해도 그 역시 상인이다.
이렇게까지 손해를 감수하는 데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단악선이 망설이자 약재상 주인이 떠밀다시피 상자를 건넸다.
“자, 일단 내 손을 떠났으니 이제 그건 네 물건이다.”
“어? 네……. 잘 쓸게요.”
분명 미심쩍었지만 그렇다고 내칠 수도 없었다.
어쨌거나 두 사람의 치료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약재였기 때문이다.
“흠흠. 그럼 난 볼일이 있어서.”
범계위의 눈치를 살피던 약재상 주인이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에 단악선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느냐? 싸게 샀으면 좋은 거 아냐?”
범계위의 물음에 단악선이 약재상 주인이 사라진 쪽을 바라봤다.
“생각해 보니 이런 일이 몇 번 있어서…….”
“좋은 사람이라며?”
“분명 좋은 분이긴 한데……. 흐음…….”
여전히 무언가가 걸리는 단악선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 단악선은 평소와 다름없이 일찍 일어났다.
“하아…….”
단악선이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라면 이 층 전각의 창문을 열고 신마곡의 풍경을 감상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을 터.
단조로운 일상에서 몇 안 되는 기쁨 중 하나였는데, 최근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크게 달라진 신마곡의 모습 때문이었다.
전각을 나선 단악선이 주위를 둘러봤다.
그런데 역시나…….
꽃들이 가득 피어 있던 초지는 곳곳이 어지럽게 파헤쳐져 있었다.
게다가 나무와 나무 사이를 잇는 빨랫줄에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누더기들이 잔뜩 널려 있었다.
초악량과 범계위가 애쓴 결과였다.
단악선은 이전의 운치 있던 신마곡이 그리웠다.
그렇다고 대놓고 그만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름 성의를 다하는 그들의 호의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악선이 세수를 하기 위해 연못으로 향했다.
“어?”
수면 위에 둥둥 떠 있는 물고기 한 마리를 발견한 것도 그때였다.
손을 뻗어 물고기를 건져 냈다.
그런데 죽어 있는 물고기 입에서 자잘한 헝겊 조각이 나왔다.
물 위에 떠 있는 천 조각을 먹이로 착각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연못 곳곳에 물고기 사체들이 둥둥 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첨벙.
단악선이 결연한 얼굴로 연못으로 뛰어들었다.
운기행공을 하기 위해 초악량이 한참 애쓰고 있을 때.
툭툭.
누군가 그의 무릎을 건드렸다.
“초 형, 일어나 보슈.”
범계위였다.
초악량이 눈을 떠 범계위를 노려봤다.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자 범계위가 손을 들어 모옥 밖을 가리켰다.
“단 의원이 이상해.”
“단 의원이?”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연못에 뛰어들더니 뭔가를 하고 있소. 아까부터 계속 기침을 하면서도 좀처럼 나오지 않더라니까?”
“갑자기 왜?”
“그걸 알면 내가 초 형을 찾아왔겠소?”
초악량이 모옥 밖으로 나섰다.
범계위의 말대로였다. 단악선이 연못을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건져 내고 있었다.
“콜록, 콜록.”
그것도 파랗게 질린 얼굴로 기침까지 해 가며.
그뿐만이 아니었다.
연못에서 나와 대충 젖은 옷의 물기를 짜나 싶더니, 곧바로 청소를 시작했다.
초악량이 단악선에게 다가갔다.
“청소는 우리가 한다니까?”
단악선이 애써 웃었다.
“괜찮아요. 그냥 제가 할게요. 그러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초악량이 쓴 입맛을 다셨다.
그라 해서 왜 모르겠는가.
범계위와 자신은 허드렛일에 재능이 없었다. 다만 단악선이 별말 하지 않아 꾸준히 해 왔을 뿐이다.
초악량이 돌아오자 범계위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냥 돌아와? 설득해야지.”
“설득하면? 어차피 우리가 계속해 봐야 민폐일 뿐이야.”
“그게 뭔 소리요?”
“우리 청소와 빨래 실력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게다.”
“왜? 초 형도 나도 열심히 했잖수?”
“그래, 그게 문제지.”
초악량이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안 되는 애들은 열심히 해도 안 되는 법이다.”
초악량의 탄식에 범계위도 덩달아 시무룩해졌다.
“이깟 허드렛일이 무공 수련보다 어렵다니.”
그러기를 잠시.
범계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단악선 쪽을 바라봤다.
“그럼 저대로 두자는 거요? 저렇게 기침하면서 침이나 제대로 놓겠냐고.”
“아무래도 전문가를 초빙해야겠어.”
“기다리쇼. 내 금방 잡아 오리다.”
신형을 날리려는 범계위를 초악량이 붙들었다.
“납치가 아니라 초빙!”
초악량이 설명을 이어 갔다.
“명분이 필요해. 단 의원이 납득할 만한.”
“그러니까 어떻게?”
“우리처럼 치료가 필요한 놈을 데려와야지. 청소를 잘할 만한 녀석으로.”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범계위가 한 사람을 떠올렸다.
“그놈은 어떻소?”
“누구?”
“왜 그 있잖수, 스스로 신투(神偸)라며 제 얼굴에 금칠하는 놈.”
“귀영마자(鬼影魔子)?”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놈 경공이면 청소도 순식간에 끝내겠지. 한데 그놈 아픈 데가 있나?”
“젠장! 쓸모없이 건강한 놈 같으니라고!”
범계위가 다른 사람을 언급했다.
“그럼 고목노괴 그자는? 그 인간도 한쪽 손이 날아갔잖수.”
“아무리 신의라도 없는 손을 자라게 할 수는 없겠지?”
범계위가 버럭했다.
“왜 못해! 신의라면 없는 손도 자라나게 해야지!”
“그 문제는 둘째 치고 그가 오란다고 순순히 오겠냐?”
“……?”
“그놈이 자기 손목을 날린 사람 말을 듣겠냐고.”
“그게……, 나였어?”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네놈은 어떻게 네놈이 한 짓도 기억을 못 할 수가 있냐?”
범계위가 답답한 듯 소리쳤다.
“빌어먹을! 그럼 대체 어쩌잔 말이오!”
“사실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기는 한데…….”
“있기는 한데?”
“그게 참…….”
고민하던 초악량이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정말 딱이긴 한데…….”
결국 범계위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다.
“누구냐고 대체! 말만 해! 내가 당장 잡아 오려니까!”
“빙옥선자(氷玉仙子).”
범계위가 움찔했다.
“누구?”
“한설화.”
“정파고 사파고 할 것 없이 전부 치를 떠는 그 여자?”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정신이슈?”
범계위가 언성을 높였다.
“어디 사람이 없어 그런 미친년을 이곳에 들인단 말이오?”
“네가 할 말이냐?”
“다르지! 난 가끔 정신이 나가지만 그 여잔 가끔 정신이 돌아오잖소!”
범계위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난 못 해! 아니, 안 해! 정 데리고 오고 싶으면 초 형이 직접 가쇼. 그것까진 말리지 않을 테니까.”
“난 이곳에서 할 일이 있다.”
“무슨 할 일?”
“돈 벌어야지.”
범계위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도저히 빠져나갈 길이 없는 외통수였다.
* * *
청소를 마친 단악선은 곧바로 나머지 일과를 이어 갔다.
커다란 소쿠리를 이고 신마곡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군락을 이뤄 자생하는 약초를 채집하기 위해서였다.
차가운 연못에 오래 있어서인지 안색이 창백하고 이따금 기침도 했다.
그런데도 손을 쉬지 않았다.
그렇게 절반쯤 소쿠리를 채웠을 때 인기척을 느낀 단악선이 고개를 돌렸다.
성큼성큼 다가서는 범계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좀처럼 쉬질 않는구나.”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열심히 움직이면 몸이 따듯해지잖아요.”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럽게 느껴졌다. 미안했다. 괜히 자신들 때문에 단악선이 더 고생하는 것 같았다.
“그것도 약재냐?”
범계위가 단악선의 손에 들린 붉은 꽃을 가리켰다.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능라화(綾羅花)라고 해요. 통증과 열을 다스리는 데 이만한 게 없거든요.”
“몸에 좋은 거야?”
손을 뻗어 꽃을 움켜쥐는 범계위를 단악선이 제지했다.
“먹으면 안 돼요!”
“왜?”
“약으로 쓰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법제(法製)를 거쳐야 해요.”
“그게 뭔데?”
“독을 제거하는 과정이요.”
“독초였어?”
“네. 그래서 염라화(閻邏花)라고도 불리죠.”
단악선이 범계위를 향해 물었다.
“하실 말씀이 있으세요?”
“아, 그렇지.”
고개를 끄덕인 범계위가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흑룡강성에 좀 다녀올까 한다.”
“거긴 왜요?”
“환자가 하나 있거든. 그런데 미친 것도 치료할 수 있는 거냐?”
“상황에 따라 다르죠. 증상이 어떤데요?”
“음……. 성격이 지랄맞고, 하는 짓은 더 지랄 같지.”
“크게 어렵진 않을 거 같아요. 이젠 상당히 익숙해져서요.”
“흐흐. 하긴 초 형이 좀 지랄맞긴 하지?”
단악선이 모호하게 웃었다. 굳이 당사자를 앞에 두고 사실을 지적할 필요는 없었다.
“흑룡강성까지 다녀오시려면 오래 걸리겠네요?”
“길어야 한 달 정도? 찾기만 한다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그럼 제게 며칠만 시간을 주세요.”
“왜?”
“범 아저씨가 드실 약을 준비해 드릴게요. 분명히 도움이 될 거예요.”
범계위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그 전에 초 형이 쓸 나무나 잔뜩 베어 놔야겠군.”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범계위가 계곡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에게 단악선이 주의를 줬다.
“오가는 길에 저건 절대 건드리지 마세요.”
단악선이 가리킨 돌무더기를 바라본 범계위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저게 뭔데?”
“이곳에 설치해 놓은 진법이에요.”
“진법?”
“네. 지금은 해제한 상태인데, 가장 높은 곳에 올려놓은 돌을 치우면 곧바로 진법이 발동돼요. 만약 진법이 발동하면…….”
범계위가 피식 웃었다.
“흥, 그깟 진법 따위쯤이야 때려 부수면 그만 아니냐?”
단악선이 쓰게 웃었다.
“단순히 이목을 흐리는 정도의 평범한 진법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설사 가능하다 해도 그러지 마세요.”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범계위가 움찔했다.
“부모님께서 저를 위해 남겨 주신 거니까요. 가능하면 저대로 보존하고 싶어요.”
“알았다. 절대 건드리지 않으마.”
범계위는 일부러 돌무더기를 한참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