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91)
신마의선-91화(91/500)
신마의선 (91)
“뭐, 인마?”
범계위가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혼자 중얼거린 말이었는데 이 정도로 귀가 밝을 줄 몰랐던 가두달이 화들짝 놀라 황급히 말을 돌렸다.
“좀 이상해서 그렇죠. 두 분을 확인하는데 저렇게 근접해서 감시한다고요? 그것도 이렇게 어설픈 애들로? 인원도 적고 좀 이상하잖습니까.”
가두달이 고개를 갸웃했다.
“다른 건 몰라도 쫓겨 본 경험만큼은 제가 천하제일입니다. 이 방면으로 저만큼 전문가가 어디 있겠습니까!”
말을 해 놓고서도 가두달은 아차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번 핀잔이 날아들었다.
“자랑이다. 대단한 전문가 납셨군.”
가두달의 눈빛이 반짝였다.
핀잔과는 달리 두 사람이 이어질 자신의 설명을 기대하는 눈치였기 때문이다.
눈치를 살피던 가두달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원래 위험한 인물일수록 숫자는 줄이고 실력자를 보내는 법입니다. 그런데 저놈들은 그냥 오합지졸이지 않습니까.”
초악량과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 확실히 이상하긴 했다.
“이런 경우를 몇 번 봤는데…….”
가두달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하나는 경시할 경우, 다른 하나는 던지기입니다. 저쪽에서 이쪽 상황을 모르진 않을 테니 전자는 아닐 테고, 그러면 던지기라고 보는 게 합당하겠지요.”
“던지기?”
“네. 희생양이요.”
초악량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무공을 쓰게 만들어 정체가 드러나게 하겠다는 거군.”
가두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과정에서 희생자가 나온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애초에 저들의 목적은 은원으로 두 분을 옭아맬 생각일 테니까요.”
이곳은 화산파의 앞마당.
함정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었다.
자신들의 영역에서 무림맹의 무인들이 죽는다면 화산파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범계위가 섬뜩한 웃음을 흘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냥 싹 다 죽여 버리면 되겠네. 증거고 뭐고 하나도 남지 않도록.”
살기등등한 범계위의 눈빛에 가두달이 흠칫했다.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영원히 단 의원 안 보고 싶냐?”
“……!”
“우리가 왜 연판장을 받으러 다니는지 잊은 거야?”
“쳇!”
범계위가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동시에 맹렬하던 살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가두달은 단악선의 존재가 범계위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초악량이 희미한 웃음을 떠올렸다.
“놈들의 뜻대로 움직여 줄 수는 없지.”
“그럼 조용히 이 불어 터진 면만 먹고 가자는 거요?”
툴툴대는 범계위의 말에 초악량의 얼굴에 맺혀 있던 웃음이 짙어졌다.
“그래서야 수지 타산이 맞지 않지.”
초악량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 갔다.
“받은 만큼은 돌려줘야 하지 않겠어? 화산 놈들도 무림맹에 좋은 감정은 아닌 것 같으니, 명분 하나 만들어 주면 그것도 나름대로 재미있는 일이 될 것 같은데?”
“아!”
그 말을 이해한 가두달이 탄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범계위는 영문을 몰라 미간을 찡그렸다.
“그게 무슨 말이유? 말을 좀 간단하게 하슈!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네.”
초악량이 가만히 웃었다.
“넌 그냥 평소대로 하면 된다. 죽이지만 말고.”
말을 마친 초악량이 자리에서 일어나 멀찍이 떨어진 식탁을 향해 다가섰다.
손님으로 위장한 무림맹 무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초악량이 맞은편 의자에 앉더니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건네 왔기 때문이다.
“고생이 많군. 윗사람 잘못 둬서 말이야.”
“……!”
상대가 놀라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초악량이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딸을 구해 준 사람들에게 감시를 붙이다니.”
행상으로 위장하고 있던 무림맹의 무인.
천이단 소속의 하급 세작인 중년인이 움찔했다.
가만히 응시하는 초악량의 서늘한 눈빛을 마주하자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저……, 사람을 잘못 보신 게 아닌지…….”
초악량이 조용히 웃었다.
지금의 상황에서도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 상대의 모습도 이쯤 되니 오히려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가서 맹주에게 전해라.”
초악량이 말을 이어 가려던 찰나 언제 다가왔는지 범계위가 불쑥 입을 열었다.
“불알이 아까운 놈.”
“……!”
두 눈을 부릅뜬 세작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범계위가 남궁백을 잘근잘근 씹어 댔다.
“사내라면 한 입으로 두말하면 안 되지. 이게 너네 맹주가 은혜를 갚는 방식이냐?”
말을 한 뒤 범계위가 초악량을 힐끗 바라봤다.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범계위가 히죽 웃었다.
“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끝까지 부인하는 사내의 모습에 범계위가 눈을 부라렸다.
“뒈질래?”
“……!”
화들짝 놀란 사내가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이미 사전에 자신들의 감시 대상이 초악량과 범계위일지도 모른다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이다.
초악량의 얼굴 위로 한 줄기 냉소가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요즘 행상은 그런 무기들도 소지하고 다니나 봐?”
뒤늦게 자신의 모습을 깨달은 사내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범계위가 뿜어낸 살기에 놀라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허리띠에 숨겨 둔 연검을 움켜쥔 것이다.
살짝 모습을 드러낸 연검을 확인한 범계위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와! 무림맹 무섭네. 몇 마디 했다고 바로 칼을 뽑아?”
“그건 당신들이 먼저 비난을 했기에…….”
초악량이 피식 웃으며 그 말을 받아쳤다.
“우리가 언제 자넬 비난했나? 무림맹주를 비난했지.”
“……!”
할 말이 없어진 사내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다른 일행은 열심히 그를 외면할 뿐이었다.
그때였다.
‘어?’
사내가 당황해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연검이 천천히 뽑혀 나오고 있었다.
아무리 힘을 주어 검을 밀어 넣으려 해도 요지부동.
오히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연검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챠앙!
차가운 쇳소리와 함께 낭창대는 연검.
사내의 눈빛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호오! 살인멸구라도 하겠다는 건가?”
격공섭물로 사내의 손을 움직인 범계위가 기다렸다는 듯 소리쳤다.
초악량이 즉시 그 말을 받았다.
“정체가 드러났다고 바로 상대를 죽이려 하다니! 이것이 정녕 무림맹의 방식인가!”
평소엔 그렇게 서로 으르렁대다가도 이럴 때만큼은 죽이 잘 맞는 두 사람이었다.
“아니 이건……, 헙.”
변명하기 위해 황급히 입을 열던 사내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갑자기 손에 들린 연검이 허공을 갈랐기 때문이다.
“어이쿠!”
범계위가 과장되게 뒤로 물러나며 식탁과 의자를 요란스레 밀어냈다.
“피!”
범계위의 목에는 어느새 실낱처럼 그어진 상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자기가 직접 손톱으로 낸 상처였지만 얼핏 보아서는 아슬아슬하게 검날이 스치고 지나간 상처 같았다.
“너네 맹주가 시키더냐? 자신의 딸을 구해 준 의원의 목을 가져오라고?”
객잔에 잠입해 있던 무림맹의 세작들은 지금 상황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자신들의 동료가 감시 대상과 몇 마디를 주고받나 싶더니 갑자기 검을 뽑아 두 사람을 공격한 것이다.
―상승 무공은 쓰지 마라.
―이놈들 상대로 무공은 무슨.
우당탕!
콰직!
“크악!”
“아악!”
온갖 집기들이 박살 나며 곳곳에서 비명이 속출했다.
범계위가 사내들을 잡아 그냥 우직스럽게 여기저기로 던져 버린 것이다.
―초 형, 질문 있수.
닥치는 대로 무림맹 무인들을 집어 던지던 와중에 범계위가 전음을 날렸다.
―부러졌을 때 제일 아픈 뼈가 어디유?
―대퇴골. 그다음이 늑골이다.
부목을 대기 어려운 데다 쉽게 아물지도 않는 부위다. 히죽 웃은 범계위가 하나같이 가장 고통스러운 부위를 잡아 부러트리며 다시 한 번 던져 버렸다.
이때 객잔 밖을 살피던 가두달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단의 무리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화산파의 인물들인 것 같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초악량이 범계위를 향해 말했다.
“적당히 하고 가자.”
“벌써?”
범계위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오래간만에 만끽하는 손맛을 포기하는 게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미 객잔은 난장판이었다.
부서진 집기들은 말할 것도 없었고, 벽 곳곳에는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거기에 여기저기 구겨져 신음을 흘리는 무림맹의 세작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초악량이 가두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객잔 주인에게 수리비를 치러라.”
“제가요?”
“이것도 같이.”
초악량이 무림맹 무인의 품속에 있던 신분 패를 건넸다.
가두달이 내심 투덜거리며 계산대 쪽으로 걸어갔다.
이미 객잔 주인은 달아난 지 오래였다.
계산대 위에 은자와 무림맹의 신분 패를 올려놓은 가두달이 이미 사라진 두 사람을 따라 신형을 날렸다.
엉망이 된 객잔 안은 곳곳에서 앓는 소리만이 간간이 새어 나올 뿐이었다.
* * *
한설화와 단악선은 진명진인의 안내를 받아 객잔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곳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설화의 물음에 진명진인이 조용히 웃었다.
그에게는 한설화와 함께했던, 몇 안 되는 추억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주인은 바뀌었지만, 그것 빼고는 모든 게 그대로입니다.”
한설화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야래향(夜來香)이라는 이름의 객잔을 처음 방문한 것은 꽤 오래전이었다.
젊은 시절의 진명진인이 인근에서 가장 손꼽히는 면 요리를 맛보게 해 주겠다며 안내했던 객잔.
그러나 이내 실망을 금치 못했다.
그 훌륭하다던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이미 그 무렵부터 표정과 미각, 후각이 마비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나마 유일하게 느낄 수 있었던 건 코끝을 간질이는 한 줄기 향기뿐.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것은 야래향이라는 꽃나무의 향기였다.
객잔 주변에는 곳곳에 꽃나무가 심어져 있었는데, 야래향이라는 객잔 이름도 거기서 유래한 것이었다.
꽃은 그리 크지 않고 눈에 띌 정도로 화려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이름처럼 낮에는 꽃봉오리를 오므렸다가 밤이 되면 한껏 펼쳐 진하고 달콤한 향기로 밤새 주위를 가득 채웠다.
감각을 잃어 가던 한설화에게 그 향기는 더없이 큰 위로가 되어 주었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린 한설화가 희미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러나 이내 어이없는 상황과 맞닥뜨렸다.
“모든 게 그대로라고?”
한설화의 말에 진명진인의 얼굴에 감출 수 없는 당혹감이 떠올랐다.
세월이 묻어나는 고풍스런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곳곳이 박살 나고 기울어진 객잔의 모습 때문이었다.
“오셨습니까?”
이때 멀리서 누군가가 다가와 진명진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진명진인의 물음에 야래향을 운영하던 객잔 주인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객잔 주인은 방금 전 자신이 보고 들은 것들을 가감 없이 설명했다.
자초지종을 파악한 진명진인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무림맹 소속의 무인이 먼저 살수를 펼쳤다 했나?”
“네. 듣자니 그 상대는 무림맹주의 딸을 살려 준 의원들이라 하더군요.”
주인에게 무림맹 명패까지 받아 확인한 진명진인의 눈 위로 은은한 노기가 떠올랐다.
반면 한설화는 내심 어이가 없었다.
분명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 했거늘, 그새를 못 참고 사고를 치고 다니는 얼간이들 때문이었다.
“선자의 일행분들이신지?”
진명진인의 물음에 한설화가 복잡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명진인이 무거운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을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얼마 전에 화산 문하들이 단악선과 한설화가 포함된 의원 일행을 호위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화산의 귀한 손님에게 살수를 펼쳤단 말인가? 그것도 화산을 목전에 둔 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