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92)
신마의선-92화(92/500)
신마의선 (92)
한설화의 일행이라면 그들 역시 화산의 손님.
이대로 그냥 넘길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그 의원이라는 분들께서 수리비는 넉넉하게 주고 가셨습니다. 다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당분간은 장사를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객잔 주인의 말에 진명진인이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기분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싸늘한 눈빛으로 차가운 한기를 풀풀 흘리는 한설화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진명진인이 쓰게 웃었다.
그만큼 실망이 컸던 것이리라.
그래도 어디 자신만 하겠는가.
모처럼 추억을 벗 삼아 또 다른 추억을 만들어 갈 기회를 놓친 그는 어느 때보다 큰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번 일에 대해서는 제가 직접 무림맹에 따져 묻겠습니다.”
진명진인이 오해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지만 한설화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단악선의 손을 잡고 돌아섰다.
“이렇게 가시는 겁니까?”
당황해 묻는 진명진인을 향해 한설화가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는 다음으로 미루지.”
단악선이 재빨리 진명진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음?”
“연판장이요.”
진명진인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화답했다.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화산은 단 소협의 뜻을 지지하네. 부디 원시천존의 가호가 함께하길 빌겠네.”
“저도요.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라도 달려올게요.”
멀어지는 두 사람을 못내 아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진명진인이 그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온화하던 그의 눈빛은 어느새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객잔 옆에 자리한 만두 노점상이었다.
“무림맹이 정녕 선을 넘는구나.”
노점상으로 위장해 있던 사내가 움찔했다.
서로의 거리가 상당했는데도 진명진인의 음성은 바로 옆에서 들려온 것처럼 뚜렷했다.
불안한 표정으로 진명진인의 시선을 피하던 무림맹의 세작이 이내 좌판을 걷고 허겁지겁 자리를 떴다.
* * *
한설화와 나란히 걷던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그래도 아저씨들이 많이 좋아지신 것 같아요.”
“……?”
의아해하던 한설화는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먼저 공격을 당했는데 죽이지 않고 끝냈다잖아요.”
“정말 그럴까?”
“아닌가요?”
“그건…….”
설명을 이어 가려던 한설화가 이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곧 알게 되겠지.”
그렇게 두 사람은 초악량과 범계위가 은신해 있던 숲에 들어섰다.
“어? 왔어? 일찍 끝났네?”
유난히 반색하며 두 사람을 맞는 범계위의 모습에 한설화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신색이 가증스럽기만 했다.
초악량 역시 마찬가지.
“일은 잘되었느냐?”
“네!”
단악선이 환하게 웃으며 진명진인의 수결이 적힌 연판장을 들어 보였다.
한설화가 두 사람을 향해 물었다.
“계속 여기 있었어?”
“그럼!”
범계위가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대답했다.
“사고 친 건 없고?”
“당연하지!”
상황이 이쯤 되니 기가 막힌 건 오히려 한설화였다.
이미 모든 정황을 알고 있는데도 이렇게 대놓고 사기를 치다니!
“뭐야? 그 눈빛은? 설마 우리 못 믿어? 우리 정말 여기에만 있었다니까. 안 그렇수? 초 형.”
“어? 어……. 그렇지.”
범계위와 달리 초악량은 심상치 않은 한설화의 눈빛에 말끝을 흐렸다.
그 모습에 단악선이 나직한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범계위가 의아한 얼굴로 단악선에게 물었다.
“왜 그래? 단 의원. 어디 불편해?”
“그게 아니라요.”
단악선이 곤혹스런 웃음을 떠올렸다. 어느새 한설화의 전신에서 냉기가 풀풀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저희……, 야래향에서 오는 길이에요.”
흠칫한 초악량과 범계위가 시선을 마주했다.
그 순간.
범계위가 순식간에 몸을 돌리더니 하나의 점으로 화해 사라졌다.
그의 뒷모습에 내심 어이없어하던 찰나.
“전부 다 저놈이 저지른 짓이다.”
한설화의 시선이 초악량에게 향했다.
“오히려 내가 말려서 그 정도로 끝난 거야.”
모든 잘못을 범계위에게 떠넘긴 초악량이 당당하게 외쳤다.
한설화는 내심 실소했다. 그런 것치곤 자신의 공격이 닿지 않는 거리까지 물러선 모습이 설득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설화가 말없이 자신을 응시하자 초악량이 헛기침을 터트렸다.
“크흠. 내가 당장 저놈을 잡아 오지.”
그 말과 함께 초악량이 신형을 날렸다. 그런데 범계위가 사라진 곳과 완전히 반대 방향이었다.
처음부터 범계위는 핑계였을 뿐이다.
한설화의 시선이 혼자 남아 벌벌 떠는 가두달에게 향했다.
가두달이 애처롭게 외쳤다.
“전 죄도 없고 힘도 없습니다!”
사력을 다한 처절한 그의 변명에 한설화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곤 단악선을 향해 말했다.
“봤느냐? 이런 인간들이다.”
* * *
천이단의 단주 제갈연은 한껏 아미를 찡그렸다.
연이어 도착하는 보고들이 하나같이 예상을 엇나갔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짜증 가득한 그녀의 눈빛에 부복해 있던 수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화산파로부터 항의 서한도 도착했습니다.”
“…….”
“장문인인 진명진인이 직접 작성한 서신입니다. 이번 실책을 주도한 책임자에 대한 무림맹의 정식적인 문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실책?”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사내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제갈연의 눈치를 살피며 사내가 다시 입을 연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추적은 어떻게 할까요?”
“계속해라.”
“그럼 이번에는 좀 수준 높은 애들로…….”
“아니. 하던 대로.”
상관의 불편한 심기에 더 이상 의견을 내지 못하고 사내가 물러갔다.
제갈연이 식어 버린 지 오래인 한 잔의 차로 심란한 마음을 다스리고 있던 그때 한 사람이 그녀를 방문했다.
“화산파에서 사람을 보내왔다는 것이 사실이오?”
불쾌한 표정을 감추려 하지도 않는 노단양의 태도에 제갈연의 눈빛 위로 살짝 짜증 섞인 감정이 떠올랐다.
“무슨 일 처리를 이따위로 하는 것이오?”
노단양의 질책에 제갈연의 아미가 꿈틀했다.
“마치 천녀가 파사단주님의 수하인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잠시 제갈연을 노려보던 노단양이 우려를 드러냈다.
“이번 일로 인해 자칫 맹주의 입지가 곤란해질 수도 있소.”
“그럴 수도 있겠죠.”
모호한 그녀의 대답에 노단양은 미간을 찌푸렸다. 자칫 큰 오해를 살 수도 있는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화산파가 계속해서 이번 일을 물고 늘어진다면…….”
제갈연이 노단양의 말을 자르며 입을 열었다.
“그것도 나름 괜찮지 않을까요?”
“……?”
“그렇게 난리를 치다가, 놈들이 진짜 초악량과 범계위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어찌 될까요?”
노단양의 눈빛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그리되면 오히려 화산파의 입장이 곤란해지겠구려.”
결과적으로 십대악인을 비호하게 된 셈이니 그 여파가 적지 않을 터.
“맹주에게 보고하는 게 좋지 않소?”
“해야겠죠.”
제갈연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좀 더 상황을 지켜보려 했지만 이리된 이상 어쩔 수가 없게 되었군요.”
이미 머릿속에서 모든 계산을 마친 상태였다.
초악량과 범계위, 거기에 한설화와 신의의 아들. 저들의 행보를 통해 다른 문파들을 한데 엮을 수만 있다면 무림맹에 가해지는 압박을 한 번에 해결할 수도 있다.
정마대전 이후 존립의 가치를 위협받던 무림맹 입장에서는 오히려 더할 나위 없는 기회인 셈이다.
“그 전에 맹주가 자리에서 물러서게 될 수도 있소.”
이미 개방을 필두로 조심스럽게 무림맹 무용론과 맹주의 퇴진이 언급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점차 그 여론에 힘이 실리는 중이었다.
“두려우신가 봐요?”
“…….”
노단양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비로소 제갈연의 태도에서 무언가 심상찮은 기류를 읽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몇 번인가 이상한 기분은 들었지만 최근 들어 맹주를 언급할 때마다 보이는 그녀의 언행은 노골적이다 싶을 만큼 수상했다.
제갈연이 이해한다는 듯 조용히 웃었다.
“하긴. 그럴 만도 하죠. 파사단의 힘도 결국엔 맹주의 권위에 기대고 있으니까요.”
노단양은 침묵했다.
그 말대로였다.
남궁백이 몰락하면 그 역시 끈 떨어진 연이 될 신세라는 건 불 보듯 뻔했다.
침묵이 길어지려 할 무렵 한 사람이 실내로 들어섰다.
맹주를 호위하는 창천단 소속의 무인이었다.
두 사람에게 예의를 갖춘 뒤 그가 제갈연을 향해 입을 열었다.
“맹주님께서 찾으십니다.”
제갈연이 빙그레 웃었다.
“그렇다는군요.”
자리에서 일어나 제갈연이 노단양을 향해 고개를 까닥였다.
“그럼 전 맹주님을 뵈어야 해서 이만…….”
혼란스러운 눈빛의 노단양을 뒤로한 채 제갈연은 곧장 맹주의 집무실로 향했다.
“천이단주 제갈연이 맹주님을 뵙습니다.”
제갈연은 목덜미에 날아와 박히는 예리한 시선을 느꼈다.
천천히 고개를 든 제갈연은 불길이 이글거리는 듯한 남궁백의 눈빛을 마주해야 했다.
“어찌 된 연유인지 말하라.”
시선이 마주치자 남궁백이 손에 든 서한을 놓았다.
그대로 허공에 뜬 서한은 천천히 제갈연을 향해 느리게 움직였다.
뒤늦게 그것이 화산파에서 보낸 항의 서한이라는 것을 알아본 제갈연이 조용히 웃었다.
“잊으셨습니까? 과정이 아닌 결과를 가져오라 하신 분은 맹주님이십니다.”
분노한 남궁백의 눈빛을 마주하고도 제갈연은 태연했다.
“그랬지. 한데 그 결과가 너무 실망스럽군.”
남궁백이 제갈연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내가 천이단의 실력을 너무 높게 본 것인가?”
침묵하던 제갈연이 가볍게 한숨을 흘렸다.
그리고 눈을 들어 태사의에 앉아 있는 남궁백을 올려다보았다.
“악공과 악일. 그 두 사람이 초악량과 범계위라면 어찌하시겠습니까?”
“이미 말했을 텐데. 그들이 혈수존자와 망산초자라면 내가 알아보지 못했을 리 없다.”
“어찌 그리 확신하시는지 감히 여쭙습니다.”
남궁백의 눈썹이 꿈틀했다.
하나 무림맹의 군사 격인 그녀가 대놓고 의문을 제기한 이상 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이 향이를 치료하던 날. 처소에서 흘러나온 서기를 느꼈던 사람은 비단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집무실 한편에 서 있던 창천단주, 양불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그가 느낀 기운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절로 마음이 편해지는 따듯함을 지니고 있었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힘을 지닌 진기의 운무(雲霧)는 그 어떤 사특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본가의 창궁대연신공은 파사에 특화된 내공심법.”
만약 그것이 방문좌도의 사특한 심법이었다면 누구보다 그가 먼저 알아차렸을 것이다.
제갈연이 희미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세상에는 간혹 설명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기도 하는 법이죠.”
제갈연이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악공과 악일. 저는 그 두 사람이 혈수존자와 망산초자라고 생각합니다.”
남궁백의 검미가 꿈틀했다.
그러나 그녀가 이토록 당당히 반박하는 데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말해 보라.”
제갈연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저는 비록 맹주님과 같은 사자의 심장을 지니지는 못했으나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하는 여우의 머리는 지니고 있습니다.”
제갈연은 악공과 악일이 초악량과 범계위로 짐작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무위를 중심으로 벌어진 일련의 사건과 감찰 사자였던 백운휘의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 특히 당시의 의심스러운 정황과 우연이라 치부할 수 없는 사건들을 연관 지어 열거했다.
남궁백이 단호하게 대꾸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정황이나 심증 따위가 아닌, 확실한 증거다.”
남궁백의 질책에도 제갈연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말에 비로소 남궁백도 표정을 달리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