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96)
신마의선-96화(96/500)
신마의선 (96)
초악량과 염사인이 과거를 회상하며 감상에 빠져 있던 그때.
강가에서 작업을 하던 마을 사람들 쪽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그들은 낯선 사내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염사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놈들이 왜?”
“아는 자들인가?”
초악량의 질문에 염사인이 마뜩잖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청성제일관. 아까 말했던 청성파의 속가 무관 놈들일세.”
“청성제일관?”
초악량이 피식 웃었다.
듣기에 따라서는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가 보지.”
“굳이 그럴 필요까진…….”
우려를 담은 친구의 눈빛에 초악량이 웃으며 안심시켰다.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없을 테니 걱정 말게. 어차피 저런 애송이들은 내 얼굴도 모를 거야.”
내심 안도한 염사인이 초악량과 함께 언덕을 내려갔다.
그렇게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부탁드립니다. 이번에 특별한 일이 있어서 그럽니다.”
청성 속가 무관에서 나온 세 사람 중 유독 다부진 체구를 지닌 사내가 사정하듯 입을 열었다.
“도대체 왜 주문을 받아 주지 않는 겁니까?”
마을 사람들을 대표해 구칠이 나섰다.
“일이 너무 밀려 별도의 주문을 받을 여력이 없소이다.”
“그럼 더도 말고 열 벌! 열 벌의 도포를 만들 수 있을 정도만 부탁드립니다.”
구칠이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주문을 받는 최소 수량이 정해져 있기에 그것은 더욱 어렵소.”
초악량과 염사인은 대화를 통해 저간의 사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도 꼭 부탁드립니다. 그 도포를 입게 되실 분은 다름 아닌 우리 청성파의 장문인이십니다.”
청성 무관의 다른 사내들도 한 마디씩을 보탰다.
“하늘빛에 가까운 푸른색을 뽑아낼 수 있는 곳은 여기가 유일하다 들었소.”
“본 파의 장문인께서 이곳에서 만들어진 도포를 입는다면 그 또한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겠소?”
멀찍이 서서 대화를 듣던 염사인이 피식 웃었다.
“이번에 청성파의 장문인이 새로 취임한단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지간히 그에게 잘 보이고 싶은 모양이군.”
새로운 장문인에게 선물을 바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나 이건 경우가 아니었다.
실제로 마을 사람들이 전부 매달려도 밀려 있는 주문을 쳐 내기가 벅찬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아, 글쎄. 안 된다고 했잖소.”
결국 구칠이 정색하며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무관에서 나온 사내들도 태도를 달리했다.
“이렇게 간곡히 부탁하는데도 안 된단 말이오?”
“너무하는군. 우리가 누군지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결국 돈 벌려 하는 일 아닌가? 도대체 왜 안 된다는 건데? 값은 충분히 치른다 하지 않았나?”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큰 건장한 사내들이 역정을 내자 구칠이 움찔했다.
그러나 결코 뜻을 꺾지 않았다.
“돈 때문이 아닙니다. 기존 거래처와의 신용 문제라고 몇 번을 말씀드려야 합니까.”
보다 못해 염사인이 나섰다.
“거기까지.”
염사인을 알아본 무관 사내들이 멈칫했다.
비록 염직업에 종사하고 있다곤 하나 지역 내에서 지닌 염사인의 영향력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뭇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관부와도 줄이 닿아 있다 알려진 유명 인사였다.
“청성제일관 무공사범 이겸이 송백지조(松柏之操) 염 대인을 뵙습니다.”
스스로 이겸이라 밝힌 사내가 공손히 포권했다.
“명성 자자하신 대인을 이렇게 뵙게 되니 삼생의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구칠을 윽박지르던 그가 이처럼 곧바로 태도를 달리하는 모습이 달가울 리 없는 염사인이었다.
“돌아가게.”
난데없는 축객령에 이겸과 일행이 당혹감을 드러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염사인이 말했다.
“방금 자네들이 협박한 사람이 이곳의 일꾼들을 관리 감독하는 사람일세. 그가 안 된다면 안 되는 거야.”
“협박이라뇨? 오해십니다.”
“오해?”
염사인이 차가운 눈으로 이겸을 응시했다.
“내 눈이 옹이구멍으로 보이는가?”
“그, 그게…….”
당황한 이겸이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그를 따르던 다른 사내가 입을 열었다.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하신다면 저희 사부님의 실망이 매우 크실 것입니다.”
“자네들 사부? 청성제일관의 관주 말인가?”
염사인의 반문에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청성 속가 제자 중 유일하게 능풍검법과 대라검법을 장문인께 직접 사사하신 청성유룡(靑城遊龍) 반여해. 그분이 바로 저희 사부님 되십니다.”
사부의 위명을 통해 은근히 압박을 가해 오는 모습이 염사인은 가소롭기만 했다.
바로 자신 옆에 서 있는 초악량만 해도 무림에서 가장 강하다는 천하오절 중 한 명이 아니던가.
그런 그를 바로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저들의 눈이야말로 옹이구멍과 다름없었다.
“자네들 사부가 실망하면 실망하는 거지, 그걸 내가 알아야 할 이유가 있나?”
단호한 염사인의 태도에 이겸이 한숨을 내쉬었다.
“굳이 저희들과 척을 져 좋을 일이 뭐가 있습니까?”
염사인이 코웃음을 쳤다.
“칼 쓰는 놈들과 가까이해서 얻을 득이 없다는 건 알고 있지.”
그 말에 한 차례 얼굴을 붉힌 이겸이 재차 입을 열었다.
“최근 백사회(白沙會)가 이곳을 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놈들입니다. 하나 본 파가 이곳을 보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청성의 보호를 받으라?”
이겸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을 계기로 상부상조하며 이 마을을 키워 보시는 건…….”
“일없네.”
일언지하에 제안을 거절한 염사인이 재차 축객령을 내렸다.
“배웅은 않겠네. 살펴 돌아가시게들.”
이겸을 필두로 한 무관의 사내들이 콧바람을 내뿜었다.
하나같이 불쾌함이 역력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고집스런 염사인의 눈빛에 결국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멀어지자 초악량이 쓰게 웃었다.
“귀찮은 놈들과 엮였군.”
“흥! 그래 봐야 저들이 당장 어쩌지는 못할 게야. 그래도 나름 정파의 이름을 업고 있는 이상 관부를 함부로 적대하진 못할 테니까.”
“청성파 말고.”
“……?”
“백사회 말일세.”
소금은 조정이 거두어들이는 세금의 큰 부분을 담당한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거래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흑점마저 소금 거래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그건 조정과 관부에게 대놓고 죽여 달라 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백사회는 밀염(密鹽)을 거래하는 염효(鹽梟) 집단이었다.
“흥! 그딴 염적(鹽賊) 놈들 따위.”
“우습게 볼 놈들이 아니야. 목숨 던져 놓고 당장만 사는 족속들이니.”
독종 중의 독종이라는 사천당가마저 독기에선 한 수 접어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백사회의 독기와 집요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특히나 놈들이 뿌려 대는 독 소금은 무림에서 금기시된 금용독(禁用毒)인 당가의 부시독(腐屍毒)만큼이나 지독하기로 유명했다.
“백사회가 어쩌다 이 마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거지?”
초악량의 물음에 염사인이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그 손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염직물이 가득 실려 있는 수레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가.”
상황을 짐작한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이 노리는 건 은밀하게 밀염을 옮기기 위한 수레였다.
정확히는 검문을 수월하게 통과하기 위해 염화촌의 신용이 필요한 것이다.
초악량이 고개를 돌려 이겸이란 자가 사라진 방향을 응시했다.
“저놈들도 쉽사리 포기할 눈치가 아니던데.”
염사인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우리가 만든 염직물이 유명해진 건 꽤 오래되었네. 지금은 주문량을 소화해 내지 못할 정도니까. 마을을 같이 키우자는 놈들이 한둘이 아니야. 최근에는 나름 유명한 대형 상단들도 투자 운운하며 접근해 오고 있지.”
“돈이야 많이 벌면 좋은 거 아닌가?”
초악량의 말에 염사인이 고개를 저었다.
“누구 좋으라고.”
“……?”
“결국 뜯어 가려는 놈들만 더 많아질 거야. 그중에는 분명 칼 든 놈들도 있을 테고.”
염사인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마을 사내들을 눈에 담았다.
“나는 저들이 위험해지는 걸 원치 않네. 내가 보호할 수 있는 건, 딱 이 정도뿐이야.”
“쉬운 길을 마다하고 매번 고집스레 돌아가는군. 자네도 참 피곤하게 살아.”
“어디 자네만 할까.”
돌아온 핀잔에 초악량이 피식 웃었다. 그를 향해 염사인이 말했다.
“자네는 아무것도 하지 마. 신경 쓰지도 말고. 그냥 푹 쉬다가 가게.”
“그럴 생각이야.”
초악량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태연한 모습에 염사인은 그 웃음 너머로 웅크리고 있는 끔찍한 무언가를 놓치고 말았다.
‘청성이라…….’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살심을 애써 감추며 초악량이 무언가를 다짐했다.
‘도대체가 이 악연은 끝이 나질 않는군.’
* * *
“청성파가 염화촌을 노리고 있다고?”
야심한 밤.
도강언 인근 마을 외곽에 위치한 허름한 사당 한편에서 짜증스런 음성이 터져 나왔다.
“네. 청성파의 속가 무관 놈들이 염 대야와 접촉해 자신들의 보호를 받으라 말했다고 합니다.”
백사회에 속해 있는 암룡방의 방주 곽언이 가뜩이나 험악한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하……. 그 새끼들은 왜 갑자기 지랄인데?”
극에 달한 곽언의 짜증에 부방주 격인 애꾸눈 사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장문인이 바뀐 것과 관련이 있지 싶습니다.”
눈살을 찌푸리는 방주의 모습에 애꾸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머지않아 청성파 장문인의 취임식이 있잖습니까.”
“그래서?”
“새로운 장문인이 취임했으니 다른 문파에서도 축하 사절을 보낼 게 아닙니까? 선물도 가져올 테고요.”
“그게 염화촌이랑 무슨 상관인데?”
“최근 그 마을에서 생산되는 염직물의 인기가 엄청나답니다. 돈이 있어도 구하지 못할 정도라더군요. 도사들이 도포에 좀 집착합니까? 나중에 가서도 생색내기 좋으니 답례품으로는 그만한 게 없죠.”
“……?”
“생각해 보십시오. 구대문파 중에 소림과 아미, 점창을 제외하면 죄다 도가 문파 아닙니까. 화산, 무당, 종남, 곤륜, 공동…….”
곽언이 손을 내저어 수하의 말을 잘랐다.
생각하면 할수록 부아가 치밀었던 것이다.
“제기랄. 기껏 열심히 침 발라 놨더니 딴 놈이 채 가게 생겼군.”
아무리 막 나가는 그들이라도 청성파의 이름은 부담스러웠다.
이때 애꾸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놈들보다 한발 앞서 선수를 치면 되지 않겠습니까?”
“응?”
“결국 그 마을의 모든 행사는 염 대야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그자만 확실히 포섭하면 됩니다. 이미 쌀이 익어 밥이 되었는데 청성파 놈들이라 해서 별수 있겠습니까?”
“무슨 수로? 지금껏 그 인간을 몇 번이나 회유하려고 했지만 전부 실패했잖아. 그 꼬장꼬장한 늙은이는 돈이나 협박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야.”
“목숨으로 거래를 해 보시죠.”
“아서라. 차라리 죽이라며 목을 들이밀 인간이다.”
“당사자의 목숨 말고요.”
부방주가 하나뿐인 눈을 빛내며 섬뜩하게 웃었다.
“듣자니 그 늙은이가 동네 아이들을 그리 아낀다더군요.”
“그래?”
곽언의 얼굴이 처음으로 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