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98)
신마의선-98화(98/500)
신마의선 (98)
단악선의 마혈을 풀어 준 가두달이 훌쩍 물러섰다.
“찰나의 순간에 생사가 나뉘는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평정심이다.”
나름 진지한 얼굴로 가두달이 말을 이어 갔다.
“고작 이 정도 도발에도 마음이 흔들린다면 진짜 생사결에서는 목숨이 열 개라도 부족할 것이다.”
잠시 멍한 얼굴로 누워 있던 단악선이 이윽고 천천히 일어났다.
단악선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왜? 할 말이 있느냐?”
말없이 가두달을 노려보던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 아저씨는 정말 비겁해요.”
“최고의 칭찬이군.”
“그리고…….”
“……?”
“초 아저씨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날 선 단악선의 목소리에 가두달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어쩐다?’
입맛이 몹시 썼다.
환심을 얻기도 전에 미움부터 사게 된 것이다.
가두달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대로 두 번만 더 이기면 애초에 약속했던 열 번의 비무를 모두 채우게 된다.
그리되면 더 이상 단악선 곁에 머물 명분이 없었다.
반대로 단악선에게 일부러 져 준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곤란한 상황.
쓸모없다고 판단되면 범계위가 곧장 자신을 쫓아낼 게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형국이다.
열심히 머리를 굴리던 가두달이 결국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해.’
그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가두달은 문득 등 뒤에 날아와 박히는 눈빛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크큭.”
시선이 마주치자 범계위가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어. 계속 그렇게만 해.”
자신을 대신해 초악량을 실컷 욕한 가두달이 내심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반면 한설화는 지그시 가두달을 쏘아봤다.
“왜 그러시는……지?”
조심스러운 가두달의 물음에 한설화가 차가운 눈빛을 흘렸다.
“앞으로 내가 없는 곳에서는 비무 금지다.”
“예?”
가두달의 반문에 한설화의 눈빛이 더욱 싸늘해졌다.
뒤늦게 그 이유를 깨달은 가두달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선자님 욕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제야 한설화의 눈빛이 누그러졌다.
범계위가 의미 모를 웃음을 흘린 것도 그때였다.
“흐흐. 고생문을 열었구나.”
“고생문이라니요?”
가두달이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지만 범계위는 그저 묘한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곧 알게 될 것이다.
삐진 단악선의 뒤끝이 얼마나 긴지.
* * *
정자 기둥에 등을 기댄 채 느긋하게 앉아 있던 초악량이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볐다.
“왜 이렇게 간지러워?”
누가 자신의 욕이라도 하나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때 정자 맞은편에 위치한 공방의 문이 열렸다.
꼬박 이틀을 그 안에서 밤샘을 한 염사인이 퀭한 눈을 한 채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팔자 좋군.”
정자에 늘어진 초악량을 발견하곤 염사인이 괜히 핀잔을 던졌다.
“누구는 몇 날 밤을 꼬박 새워서 죽을 맛인데 말이야.”
초악량이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좋은 친구를 뒀거든.”
“……?”
“아무것도 하지 말고, 신경 쓰지도 말고 그냥 푹 쉬다가 가라는 친구.”
며칠 전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받은 염사인이 피식 웃었다.
초악량이 물었다.
“하던 일은 마무리했나?”
공방 안에서 걸어 나온 장삼이 대신 대답했다.
“아슬아슬하게 겨우요.”
염사인이 인상을 구기며 빽 소리쳤다.
“오늘부터 주문받지 마! 난 이제 은퇴할 거니까!”
장삼이 빙그레 웃었다.
“저녁에 보약을 달여 올리겠습니다.”
“일없네. 그거 먹고 얼마나 더 혹사당하라고?”
그렇게 한참을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보던 초악량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들어가 쉬게. 둘 다 몹시 피곤해 보이는군.”
염사인이 지친 얼굴로 한숨을 흘렸다.
“이젠 이 짓도 못 해 먹겠어. 몸이 따라 주질 않아.”
비틀거리며 처소로 걸어가던 염사인이 초악량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난번처럼 소리 소문 없이 떠나면 알아서 해. 두 번 다시 얼굴 안 볼 테니까.”
초악량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두 사람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초악량이 천천히 신형을 일으켰다.
“나도 슬슬 움직여 볼까.”
초악량의 눈빛은 어느 순간 차갑게 식어 있었다.
* * *
그날 밤.
짙은 야음을 틈타 장원에 접근하는 인영들이 있었다.
얼굴을 가린 복면은 말할 것도 없었고 온몸에 새카만 야행의를 걸친 열 명의 사내들이었다.
그중 선두에 선 자는 애꾸였는데, 하는 양이 두목으로 보였다.
애꾸가 뒤따르는 자들에게 나직이 물었다.
“염 대야의 처소는 확인했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수하들의 모습에 암룡방의 정예를 모조리 이끌고 나온 애꾸가 흡족한 눈빛을 흘렸다.
“너, 그리고 너는 퇴로를 차단한다. 그리고 나와 거기 두 사람이 염 대야를 확보할 테니, 나머지는 대기. 오늘 밤은 매우 바쁠 테니 신속히 움직여야 한다. 염 대야의 신병을 확보한 뒤 나머지 인원은 민가로 향해 아이 다섯만 챙겨 와. 무슨 말인지 알지?”
이미 사전에 충분히 모의를 했음에도 그렇게 다시 한 번 계획을 확인하는 부방주였다.
그때였다.
“여기 있는 열 명이 전부더냐?”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음성에 암룡방의 무인들이 화들짝 놀랐다.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온 것도 그때였다.
‘고수!’
애꾸의 하나뿐인 눈이 지진을 일으켰다.
그와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수준의 고수였다.
암룡방의 무인들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상대는 그저 가만히 선 채로 서늘한 눈빛을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었다.
“우두머리에게 안내해라.”
그 말을 던진 초악량이 밤 산책을 나선 것처럼 태연하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자신들 사이를 가로질러 유유히 걷는 초악량의 모습에 흑의인들의 시선이 복잡하게 얽혔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소리 없이 뽑혀 나온 몇 자루 비수가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커헉!”
“끄윽!”
동시에 답답한 신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닥에 널브러져 거품을 문 채 바르르 떠는 수하들의 모습에 애꾸는 소름이 쭉 끼쳤다. 바로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었는데도 상대가 대체 어떤 방법으로 수하들을 쓰러트렸는지 알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초악량이 말없이 애꾸를 보았다.
“……!”
그 순간 애꾸는 머릿속에서 벼락이 쳤다.
칼날처럼 예리한 눈빛이 그대로 눈을 파고들어 뇌리를 휘젓는 기분이었다.
“말귀가 어두운 건가?”
“아, 안내하겠습니다!”
유부의 사자처럼 음산한 음성.
그 안에 담겨 있는 압도적인 존재감 앞에서는 그 어떤 의지도 소용이 없었다.
초악량의 눈치를 살피던 애꾸가 앞서 걷기 시작했다.
암룡방의 무인들 역시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죽은 동료들의 시체를 짊어지고 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
잠시 후.
암룡방의 방주 곽언은 어이가 없었다.
노대야와 아이들을 납치하러 보냈던 수하들이 엉뚱한 인물을 안내해 왔기 때문이다.
“저분이 저희 방주님이십니다.”
곽언이 황당한 눈으로 애꾸를 노려보았다.
대체 저자가 누구이기에 방주인 자신을 앞에 두고 깍듯하게 군단 말인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애꾸를 쏘아본 곽언이 눈앞의 초로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안 좋다.’
상대의 눈빛을 마주하기 무섭게 곧바로 든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이 달라졌다.
‘뭐지?’
갑자기 소금 가마꾼으로 시작해 암룡방의 방주가 된 지금까지의 일생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쳤다.
지금껏 온갖 흉험한 일을 감내하고 헤쳐 온 그였다.
그러나 단언컨대 지금 이 순간이 그 어느 때보다 죽음과 가장 가깝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때였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지.”
갑자기 손을 뻗어 오는 상대의 모습에 곽언이 황급히 몸을 틀어 피하려 했다. 그러나 초악량의 손은 피하려 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턱.
순식간에 곽언의 손목을 낚아채 맥문을 움켜쥔 초악량이 훌쩍 신형을 날렸다.
맥없이 끌려간 곽언은 마을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높다란 나무 위에서 정신을 차렸다.
“보이나?”
“예? 뭐가 말입니까?”
얼빠진 곽언의 표정에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너희들이 은신처로 사용하는 사당. 그 정방 모서리 방향에 은신해 있는 자들 말이다.”
그래도 여전히 영문을 몰라 하는 곽언의 모습에 초악량이 한숨을 내쉬었다.
초악량의 신형이 가볍게 흔들렸다.
뒤늦게 자신이 사당 옆에 위치한 골목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은 곽언이 놀란 얼굴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눈 한번 감았다 떴을 뿐인데 십 장이 넘는 거리가 그냥 지워져 버린 것이다.
그 가공할 신법에 기막혀 하고 있을 때였다.
―그렇게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
갑자기 날아든 전음에 곽언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 순간.
“……!”
곽언이 눈을 부릅떴다.
그림자와 그림자가 겹치는 으슥한 골목.
그 구석에서 차가운 검광이 번뜩이나 싶더니 갑자기 튀어나온 한 자루 검이 가슴을 향해 날아들었다.
본능적으로 상체를 젖혀 검을 피한 곽언이 손을 휘둘러 소맷자락으로 검을 휘감았다. 그리고 그대로 상대의 검을 떨궈 낸 뒤 곧장 일권을 내질렀다.
우드득!
소름 끼치는 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털썩.
암습을 가해 곽언을 공격했던 사내가 바닥에 쓰러졌다.
가슴을 움켜쥔 채 피를 게워 내는 사내를 확인한 곽언이 눈살을 찌푸렸다.
“청성제일관? 이놈들이 왜 여기에?”
눈을 깜빡이며 상황을 파악하던 곽언이 이내 으스러져라 이를 악물었다.
“이 개새끼들이?”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처음부터 저놈들 손에 놀아난 것이다.”
“……!”
“일부러 소문을 흘려 너희가 움직이기를 기다린 것이지.”
초악량의 말을 듣고 나니 곽언은 의문이 풀렸다.
암습하는 놈들이 이처럼 대놓고 신분을 드러내는 복장을 한 점이 내심 이상했던 것이다.
“너희들이 암습을 하면, 이놈들을 만났을 것이다. 마을을 지켜 준 대가로 염 대야의 마음을 얻었을 것이고.”
자욱한 살기를 흘리는 곽언을 향해 초악량이 조용히 웃었다.
“너희는 운이 좋다.”
“……?”
“나는 청성파 놈들을 아주 싫어하거든.”
“그럼 혹시…….”
“착각하지 마라. 너 같은 놈들을 도와줄 생각은 없으니까.”
곽언은 온몸의 피가 싸늘히 식는 기분이었다.
“그럼…….”
곽언이 초악량을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희를 막으실 생각은 없으신…… 겁니까?”
초악량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곽언이 살기 어린 웃음을 말아 올렸다.
우드득.
곽언이 발을 들어 바닥에 쓰러져 신음을 흘리던 사내의 목을 밟아 버렸다.
숨이 끊어진 상대를 확인한 곽언이 허공을 향해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밤하늘을 흔들었다.
그게 신호가 되었던 것일까.
잠시 후 마을 곳곳에서 일단의 무리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크아악!”
“컥!”
“사, 살려…… 으아악!”
곳곳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온통 피 칠갑을 한 사내들이 시체들을 질질 끌고 와 곽언 앞에 도열했다.
이미 죽은 청성제일관 소속의 문하들을 노려보던 곽언이 불쑥 입을 열었다.
“가자, 얘들아.”
수하들을 돌아보며 곽언이 히죽 웃었다.
“소금 팔러 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