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 Wicked Woman RAW novel - Chapter 184
184화
“무슨 말이요? 딱히 한 거 없는데?”
“…….”
‘바보!! 바보 공작님!!!’
아리아는 제 머리를 굴리며 속으로 아라한을 욕하고 있었다. 이렇게 귀여운 세화에게 제대로 된 프러포즈도 안 하고 데리고 갈 거면 ‘나는 이 결혼 반댈세!!’를 외치려 했다. 그리고 정말로 그럴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에 아리아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쉬었다.
‘신이시여. 제발 바보 공작님께서 부디 프러포즈를 성공하시길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아리아의 소원을 들어주려는 것인지 뭔지는 몰라도 베르뎀 후작가의 집사가 헐레벌떡 티 파티 장소로 뛰어와 실비아를 향해 무어라 귓속말을 하고 사라졌다.
“어머…!”
집사와 이야기를 끝낸 실비아는 ‘잠시 일이 있어서 저택에 들렀다가 올게요~’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저택으로 뛰어갔다. 주최자가 없어진 티타임의 이목은 세화에게 쏠렸다. 하필 세화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끊긴 대화라 더더욱 그러리라.
“정말이지, 공작님께서 세기의 로맨티시스트라고 하시던데….”
“부러워요~ 저도 정략결혼 말고 연애결혼을 밀고 나갈까 봐요~.”
‘아니, 그렇게 세기의 로맨티시스트라시는 분께서 왜 아직도 프러포즈를 성공을 못 했냐고!’
아리아의 발악이 들릴 일이 없던 영애들은 서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기 바빴고 세화의 표정 역시도 점점 더 어두워져 갔다.
“…세화…? 괜찮아요?”
“응? 뭐가요?”
“표정이 어두워서요….”
“뭐……. 결혼하자는 말도 딱히 안 했던 거라 생각이 없….”
“……???? 뭐라고요?! 결혼하자는 말도 안 했다고요?!”
나의 말에 아리아는 놀란 듯 제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아니!! 지금…!!”
“…?”
“결혼 이야기도 안 오갔는데…!!”
아리아가 왜 갑자기 성질을 내는지는 모르겠다만 정말 그러했다. 직접적으로 ‘결혼’ 이야기는 나온 적이 없었다. 약혼식 이후에 아라한은 바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고. 그저 언젠가는 막연하게 결혼을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잊고 있었을 뿐. 내가 눈을 끔뻑이자 아리아는 제 가슴을 치며 답답해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잠시 자리를 비운 실비아가 후다닥 티타임 장소로 돌아왔고 날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하하…. 잠시 손님이 오셔서….”
“이런, 그럼 저희가 방해되는 것이….”
“…어….”
나의 말에 실비아는 눈을 굴리기 시작했고 그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나는 ‘무슨 일이에요?’라고 물으려고 했지만, 실비아의 뒤로 걸어오는 사내에 입을 벌린 채 사고 회로가 정지된 나였다.
“…라트…?!”
분명 실비아의 뒤로 걸어오는 자는 아라한이었다. 그런 나의 말에 고개를 돌려 실비아의 뒤를 바라보던 영애들이 곱게 차려입은 아라한의 모습에 황홀하다는 듯 손으로 입을 가리고선 놀라워했다. 정갈하게 차려입어 제법 태가 나는 아라한의 슈트빨에 순간 얼굴이 달아오른 나였다.
“세화.”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온 아라한이었다. 갑자기 티타임의 장소에 나타난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하기도 전에 그는 나와 함께 차를 마시던 영애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 약혼녀가 너무 보고 싶은 바람에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온 점, 양해 바랍니다.”
“어머머…! 제 약혼녀라니…!!”
“저희야말로 너무…! 아아….”
아리아를 제외한 영애들은 갑자기 나타난 아라한의 모습을 보며 놀라워하기도 하고 그의 눈부심에 손을 가리며 주저앉기도 하였다.
‘…그 정도야…?’
주저앉는 영애들과 아라한을 번갈아 보던 나는 어느새 날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 아라한을 향해 입을 열었다.
“라트가 여긴 어쩐 일이에요…?”
“말했잖아요. 보고 싶어서 왔다고.”
“…아…?”
아니, 그렇다고 이렇게 무턱대고 오면…!
‘설마 실비아가 말한 손님이 라트는 아니겠지.’
그러나 실비아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녀가 말한 ‘손님’이 아라한임을 직감한 나는 고개를 휘저었다.
“실비아가 곤란해할 거예요.”
“미리 양해를 구했습니다.”
“…??”
아라한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저앉아 있던 영애들과 실비아는 아까의 놀라움과 경악을 지우고선 나와 아라한을 바라보았다. 사태 파악이 끝난 듯한 아리아 역시 한숨을 쉬며 나와 아라한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세화….”
나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부르던 아라한은 한 발을 뒤로 물리더니 이내 그대로 반무릎 자세를 취하고선 작은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그리고 상자 안에는 튤립의 모양을 한 목걸이가 반짝이고 있었다.
“저와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용기 있고 박력 있게 무릎을 꿇은 것과 별개로 조심스러운 아라한의 말투가 퍽 웃겼다. 다짜고짜 티타임 장소에 와서는 무릎을 꿇고 프러포즈라니. 생각했던 프러포즈는 아니었지만 어색해하고 부끄러워하는 아라한의 표정이 너무 귀여우니 참는다!
“…세화…?”
내가 목걸이를 받아 주지 않자 아리아가 옆에서 거들기 시작했다.
“세화~ 공작님께서 이 프러포즈만 지금 3번째 실패시래요~!”
“엥…?!”
“아타샨 영애…!”
아리아를 향해 쏘아붙이던 아라한은 다시금 날 바라보며 애처롭게 쳐다보았다. 마치 장화 신은 고양이의 고양이를 보는 듯한 저 처량함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3번이나 실패했다고요?”
“…….”
“설마, 어제 광장에 가서 분수를 보여 준 것도…?”
“…….”
‘맙소사!’
아라한의 침묵에 나는 고개를 휘저었다. 그렇게 시그널을 보냈었는데 내가 몰랐구나. 그것보다 어제 광장에서 프러포즈할 생각이었다니.
‘끔찍하군.’
차라리 몇 없는 이 티 파티에서 프러포즈하는 걸 다행으로 여긴 나는 새침하게 입을 열었다.
“이런 건 라트가 직접 걸어 줘야죠.”
“…! 당연히…!”
나의 말에 허겁지겁 몸을 일으켜 목걸이를 빼고선 나의 목에 걸어 주는 그였다. 그런 아라한의 모습에 영애들은 손뼉을 치기 시작했고 어디서 준비되었는지는 모르겠다만 어느새 베르뎀 후작가의 집사와 하녀들이 나와서 꽃가루를 뿌리고 있었다.
나름대로 준비를 철저하게 한 것 같은데 뭔가 밍밍한 것도 나름의 매력이 있는 듯 보였다. 무엇보다 영애들이 부러워하는 표정도 사실 한몫했지만.
“이쁩니다.”
“그럼요~ 누구 아내가 될 사람인데 이뻐야죠.”
“…!! 그런 뜻이 아니라…. 아니, 그것도 맞는데…!”
긴장해서 제대로 말을 못 하는 아라한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짓던 나는 이내 손을 뻗어 그의 뺨을 붙잡고선 그대로 입을 맞췄다.
‘쪼오오옥.’
아, 귀여워라. 역시 연하는 골리는 맛이 있구나. 소설 밖의 세계와 이곳 세계의 시간 개념은 매우 달랐다. 사실상 난 엘리자벳의 동생이었지만 나이 많은 동생이 되어 버린 꼴이니까. 뭐, 그건 상관없지. 어차피 이곳에서 살면 엘리자벳의 동생이자 이세화인 건 변함없으니까.
“으읍…!”
갑작스러운 나의 키스에 당황한 듯한 아라한이었지만 이내 자신이 리드를 해 가며 입을 맞추는 그였다. 그리고 그 모습에 영애들은 ‘어머머…!’를 연발하며 행복하게 나와 라트를 아라한을 바라보았다. 나는 입술을 떼고선 입술을 삐죽 내밀고선 아라한에게 투정 부리듯 입을 열었다.
“누가 그렇게 귀여우래요!”
“…네?”
“누가 막! 그렇게 이쁘고 귀엽게 프러포즈하랬어요!”
“…….”
“정말이지…. 만약 어제처럼 사람 많은 곳에서 프러포즈했으면 부끄러워서 도망쳤을 거예요!”
“…!! 그건…!”
아라한은 눈을 힐끔거리며 아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아라한이 그녀에게 조언을 구한 것임을 인지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아까~!”
“아니, 세화! 저는 정말 공작님이 결혼하자는 소리도 없이 프러포즈를 준비하는 줄 몰랐다니까요?”
“흐응~ 알겠어요. 덕분에 뭐, 기분은 좋네요.”
나는 아라한이 준 목걸이의 튤립을 만지작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약혼식이 곧 프러포즈일 것이라 생각했건만, 날 위해 준비한 아라한의 정성을 봐서라도 길이길이 기억해야지.
“정말 너무 잘 어울리셔요!”
“맞아요! 정말이지 너무 선남선녀인걸요!”
“아라한 공작님은 정말 좋으시겠어요~ 아내 될 분이 너무 예쁘셔서~.”
“불안하실 거 같은데요?”
“하긴 공녀님께서는 제국 유일의 공녀이시자 제국의 성녀시니까요~.”
모두가 나의 편이었다. 시간을 돌리기 전, 아무도 그녀의 편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모두가 나의 편이라는 사실이 다 그녀 덕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늘 고마운 사람. 늘 보고 싶은 사람. 그녀를 떠올리자 지금, 이 순간을 더 만끽하고 싶은 나였다.
“들었죠? 저 행복하게 안 해 주면 이제 언니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라트 혼낼 것 같은데~?”
“행복하게 해 드릴 겁니다. 정말로.”
“어떻게요?”
“세화가 이곳에 남길 잘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제가 노력하고 또 사랑할 겁니다.”
“…아….”
그래, 아라한은 이런 사내였다. 맹목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 오즈번을 사랑했던 그였다. 지금은 여자 주인공이 바뀐 소설의 남자 주인공인 아라한이었다. 그리고 바뀐 소설의 여자 주인공은 나였다.
“약속해요.”
“당신을 위해서라면 몇 번이나.”
아라한은 내 손등에 짧게 입을 맞추고선 한 번 더 나를 향해 키스했다. 달콤하게 전해져 오는 그의 사랑이 결국 이곳에 남게 했다는 걸 그는 모르고 있는 걸까. 처음으로 이곳에서 욕심을 부렸던 것은 그의 사랑이었다. ‘반했다’라고 말하는 당신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싫어서. 죽어야 하는 운명에서 욕심을 부리게 한 당신이니까.
‘그러니까, 당신이 책임져.’
진득하게 그의 품에 안겨 키스를 퍼붓는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