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0
10
영미권 최대의 출판사 사이먼하퍼에는 독특한 전통이 있다.
보통 인턴들이 들어오면 하루에 2시간씩 투고 이메일을 검토했다.
워낙 유명한 출판사이다보니 투고 이메일이 하루에도 수십 통은 왔다. 인턴 선에서 거르고 답신을 보내도록 하는 건 어디나 비슷하다.
어차피 투고 이메일은 쓰레기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
하지만 사이먼하퍼만의 차별점은 바로 인턴들의 의욕을 증진시키기 위해 작지 않은 상품을 걸었다는 것이다.
– 인턴 기간 동안 투고 이메일 중 딱 한 작품을 담당 에디터에게 추천할 수 있다. 그 작품은 무조건 에디터가 검토할 것이고, 만약 디벨롭하기로 결정을 내린다면 인턴도 함께 작업에 들어간다.
한 마디로 모래알 속에서 운이 좋게 진주를 찾아낸다면 바로 정규직 전환이 된다는 뜻.
그러니 아무리 지루하고 기계적인 일이라도 인턴들은 희망을 품고 열심히 임했다.
[Untitled 7(미제 7)]‘이 작품이 그렇게 좋았단 말이지?’
보통 인턴들은 각자 다른 작품을 발굴해 에디터에게 올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 기수는 네 명 전부가 [미제 7]이라는 진부한 제목의 원고를 추천했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실제로 [미제 7]이 괜찮다는 판단이 서면 네 명 중 한 명만 정규직 전환이 될 텐데도 그들은 자신들의 추천서를 아끼지 않았다.
– 이성적으로는 당연히 다른 인턴들이랑 겹쳐서 추천을 하는 게 안 좋다고 생각은 하는데…이 작품을 읽은 이후 다른 작품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요…
인턴 모두가 입을 모아 칭찬하니, 이 사태에 대해 흥미를 느낀 치프 에디터가 직접 이번 원고를 검토하기로 한 것이다.
‘어디 한 번 읽어볼까?’
그녀는 천천히 한 장 한 장 넘기기 시작했다.
‘신인의 글이군.’
금방 흥미가 떨어졌다. 문체가 투박하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있지만, 원래 신인들의 글이 다 그랬다.
치프 에디터의 눈높이에서 봤을 땐 출판할 가치는 있어도, 사이먼하퍼의 엄격한 기준에는 못 미친다.
열정 있는 에디터가 붙어서 작가와 함께 몇 개월 수정을 한다면 모를까, 이대로는 영 성에 차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
이상한 점은 치프 에디터가 좀처럼 원고를 내려놓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왜지?’
그녀쯤 되면 소설이 정말 재밌다기보다는 자신만의 공식에 모든 요소들을 대입해보게 된다. 몰입도, 소재의 참신함, 구성의 치밀함, 캐릭터성, 영상화 가능성 등. 굳이 노력을 하지 않고 그냥 읽기만 해도 각 항목에 대한 점수가 나왔다.
일종의 직업병이라 할 수 있겠다. 첫 챕터를 마저 읽은 그녀의 소감은 대충 이랬다.
[Untitled 7] – 챕터 1몰입도: 7/10
소재: 7/10
구성: 7/10
캐릭터: 6.5/10
OSMU: 7.5/10
신인의 글치고 나쁘지 않지만, 그렇다고 뾰족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아직 20페이지 밖에 안 읽었지만, 그 정도만 읽어도 글의 전체적인 수준이 가늠됐다.
이후의 스토리 흐름도 유추할 수 있었다. 나쁘지 않은 시도이지만, 애초에 이 정도의 재료로 그 이상의 결과물을 뽑아내기란 쉽지가 않다.
평소라면 이대로 덮었을 것이다. 쌓인 업무가 너무 많아서, 최소 6시간의 수면을 취하려면 얼른 본업에 집중해야 한다.
“……”
하지만 그녀는 놀랍게도 아무 생각 없이 챕터2로 넘어갔다.
[어느 날 갑자기 도착한 정체 모를 소포. 그 소포를 열어본 그 순간, 나는 뇌의 한 부분이 간지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포 안에는 반지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딱 집어 든 순간, 나도 모르게 반지를 왼쪽 약지에 꼈다. 딱 맞았다. 동시에 나는 ‘아내’에 대한 기억을 되찾았다.] [미제 7]의 장르는 미스테리, 스릴러.챕터 1은 스스로 자기 방에 갇혀서 사는 고독한 남자의 일상을 그렸다. 요즘 점점 늘어나는 은둔형 외톨이 남성의 모습을 건조하게 담아 읽기 불편한 감정을 전했다.
주인공의 고독함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그렇기도 하고, 그의 삶 속 군데군데 녹아있는 짙은 공허함이 숨 막혀서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챕터 2는 정체불명의 소포가 도착하면서 막을 연다. 지금까지 혼자만이 존재하던 세상을 순식간에 반전시킨다.
‘반지를 매개로 까맣게 잊고 있던 아내의 존재를 기억해낸다.’
너무나 행복했던 결혼 생활. 그의 부족함을 채워주었던 완벽한 반쪽. 반지를 끼면서 그 모든 기억이 되돌아왔다.
그러면서 왜 남자가 지금까지 원인 모를 공허감에 시달렸는지, 어째서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가야만 했는지 정당성을 부여했다.
마치 누가 인위적으로 데이터를 지운 것처럼, 아내의 흔적이 모두 사라졌으니까. 인생의 일부가 뜯겨져 나간 주인공은 정확한 이유를 몰랐지만, 그 후유증에 시달렸던 것이다.
[나는 대인기피증을 가까스로 억눌러 한 때 친구들이라고 불렀던 존재들을 찾아갔다. 내 아내를 기억하냐고 물었다. 그들은 내가 결혼한 적이 없으며, 항상 혼자였다고 확인시켜주었다. 어렵게 찾은 장인장모도 마찬가지였다. 자기들에게는 딸이 없었다며 나에게 화를 내기까지 했다. 내가 드디어 제대로 미쳐버린 걸까? …아니다. 절대 아니었다. 나는 몇 날 며칠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은 끝에 아내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치프 에디터는 자신의 의무를 잊고, 소설의 내용 자체에 빠져들었다. 항상 무의식처럼 펼쳐진 평가지는 사라진지 오래다. 다음 장, 다음 장의 내용이 궁금했다.
챕터 2, 챕터 3… 그리고 마지막 챕터까지 그녀는 단숨에 읽었다.
“……”
그녀는 한참 동안 그 여운을 만끽했다. 얼마만에 느껴지는 정신적 포만감인지 모르겠다.
*
후보생 팀이 총 22명 이유가 있었다.
“자, 후보생 쪽부터 공격을 시작하니, 오펜스(Offense:공격) 팀은 준비해라. 디펜스(Defense: 수비) 팀은 대기하고 있고.”
미식축구는 보통 전문화된 포지션 하나만을 맡는다.
그래서 공격팀 11명, 수비팀 11명이 따로 구성된다. 공수를 완전히 다른 두 팀이 번갈아서 경기를 치르는 셈이다.
– 와아아아아!
– 신입생들을 박살내버려!!
– 올해는 40점 이상 내보자고!!
후보생 팀과 주전 팀이 입장하니, 관중석에서 난리가 났다.
대부분이 후보생 팀이 크게 대패하기를 기대하는 분위기.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지만, 관중들의 열렬한 환호에 주전 팀은 여유롭게 손을 흔들었고, 후보생 팀은 최대한 시선을 피했다.
‘시작부터 지고 들어가는 셈이네.’
어쨌든 드디어 모두가 기다리던 메인 이벤트의 시작이었다.
나는 천여 명이 우리에게 야유를 할수록 어째서인지 의욕이 넘쳤다.
‘…설마, 또 로한 너니??’
누구 한 명을 박살내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눌러야 했다.
“자, 내가 알려준 몇 개의 전술을 달달 외우도록 해. 지금은 이해할 때가 아니야. 상황 파악할 것도 없이, 쿼터백이 전술 번호를 말하면 바로 이행해. 알겠니?”
““옙!””
우리는 준비 시간을 알차게 이용해 딱 필요한 몇 개의 전술을 익혔다. 다들 처음으로 손발을 맞춰보기에 간단한 전술을 위주로 배웠지만, 그것만으로도 효과적인 경기 진행이 가능할 것 같았다.
‘우리는 코치진이 붙어서 경기 내내 지시를 해주지만, 주전 팀은 선수들끼리 알아서 한다고 했지?’
생각보다 작지 않은 핸디캡이었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도 주전들에게선 아무런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후보생 팀에 비해 다들 2~3살이 많다보니 신체적인 차이도 컸고, 무엇보다 고교 리그를 2년 정도 겪었다는 경험의 차이를 무시할 수 없겠지.
‘그냥 마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세에 억눌리는구나.’
마치 어웨이 게임을 펼치듯 관중의 날선 야유도 모자라 주전 선수들의 기세에 주눅 든 후보생 몇몇 보였다.
어쩌면 가장 겁을 먹어야 하는 것은 나인지도 모르겠다.
주전팀 몇몇이 나를 지나치며 살벌한 눈빛으로 욕을 했다.
“너 이 새끼, 안 그래도 벼르고 있었는데 아주 잘 왔어. 뭐? 너무 못해서 장애인 팀인 줄 알았다고 했었지?”
“나한테는 뒤룩뒤룩 살만 쪄서 무거운 주제에 그걸 재능이라고 착각한다고 비웃었어.”
“아냐, 너희가 오해하는 거야. 로한이 얼마나 감수성 풍부한 아이라고. 내 인생 최대 업적이 고교 미식축구라고, 우리 부모님이 불쌍하다고 눈물 흘려줬잖아.”
인정할 건 인정하자. 로한은 아주 대~단한 아이였다.
‘…학교 얼마 나오지 않았다면서, 아주 부지런하게 원수를 만들고 다녔구나.’
…근데 나도 참 이상한 게. 오히려 이런 상황이라서 더욱 피가 끓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분위기를 반전 시킬 필요가 있겠어. 질 땐 지더라도, 재밌는 경기가 되어야지.’
“자자, 입으로 경기를 치를 생각이냐! 모두 위치로!”
헤드 코치의 지시와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후보생 팀과 주전 팀은 경기장의 양쪽 끝에 서서 대기했다.
주전 팀이 터치다운 존에서 최대한 멀리 공을 차면, 그것을 받으면서 후보생 팀의 공격권이 시작되는 것이다.
“오오.”
주전 팀의 키커가 공을 찼다.
나는 공의 궤적에 따라 미리 자리를 잡았다.
– 어지간하면 웨이드가 공을 받고 시작하면 좋겠지만, 혹시 로한 네 쪽으로 공이 온다면 받아서 바로 한쪽 무릎을 꿇어야 한다.
킥오프된 공을 웨이드가 받으면 돌파를 노려볼 수 있지만, 쿼터백 포지션을 부여받은 나는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서 바로 공을 다운시키기로 계획했다.
“……!”
공은 거의 엔드 존까지 다 도달해서 떨어졌고, 나는 그것을 순식간에 낚아챘다.
그러자 모든 팀원은 코치의 지시에 따라 다음 공격을 준비하기 위해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이대로 공을 ‘다운’시키면 25야드 선에서 우리의 공격이 시작되는 것이다.
“…저 새끼 뭐해!”
팀원들이 눈에 띄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눈치를 챈 주전팀 11명이 나를 향해 우르르 달려들었다.
그랬다. 나는 그냥 공을 받자마자 거의 무조건 반사적으로 돌진했다.
“그래!! 나의 라이벌이라면 이 정도 배짱은 있어야지!!”
웨이드만 신이 나서 내 앞에 포지션을 잡으며 함께 뛰었다. 내 앞길을 터주는 선봉과 같은 역할.
‘주체할 수가 없었어.’
나는 무척 이성적인 사람인데, 갑자기 팔팔한 육체가 생겨서 그런가? 폭발하는 감정을 도저히 컨트롤할 수 없었다.
나는 그냥 뛰었다.
머릿속에서 모든 주전 선수들의 움직임을 담았다.
그들의 경로, 나와 부딪힐 지점을 저절로 계산했다.
충돌이 예상되는 부분이 있다면 회피할 방법을 찾았다.
“이 새끼가 우릴 물로 보는 거지??”
주전 중에서도 굉장히 날렵한 몇몇이 달려들었지만, 웨이드 선에서 차단.
“크아아아! 내가 바로 웨이드 존스다!!”
하지만 웨이드는 세 명째에 나가떨어졌고, 이제 최전선에는 나밖에 남지 않았다. 후보생 팀은 모두 멍하니 나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벌써 40야드는 왔는데, 이대로 공을 다운시킬까?’
엔드 존까지의 총 길이는 100야드. 그 중 혼자서 40야드를 왔으니 할 만큼 했다. 할만큼 했는데… 멈추고 싶지 않았다.
트라이아웃 종목 중 하나였던 ‘40야드 대쉬’에서는 전력을 다해보기도 전에 끝이 나버렸다.
‘더 빨리 뛸 수 있었는데…’
그때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나는 마지막 힘까지 짜내어 뛰었다.
나에게 태클을 거는 주전팀을 어떻게 피했는지 모르겠다. 다만,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이미 엔드 존에 도착해 있었다.
[후보생 팀 6 : 주전 팀 0]“……”
운동장이 뒤집혔다.
– 우와아아아아!!!!
– 미쳤다!!! 킥오프 리턴 터치다운!!!
– 푸하하하 주전팀 표정 봐… 특히 주장 얼굴이 가관이네.
카메라가 벤치에 앉아 있던 대런 로저스의 얼굴을 담자, 관중석에서 폭소가 터졌다.
– 야, 포커페이스가 경기 시작 30초만에 깨지냐.
– 내가 대런 로저스 경기는 중학교 때부터 챙겨봤는데, 저렇게 당황한 거 처음 봐.
– 이거… 후보생팀이 이기면 미식축구부 역사상 처음 있는 일 아니냐? 오늘 큰 거 오나??
이후 우리 팀은 필드골까지 성공시키고 점수는 [7:0].
공수가 전환되어 나는 벤치로 돌아왔는데, 주전팀의 분위기가 싹 바뀐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워우. 누구 한 명 죽이겠다는 눈빛인데?”
어느새 내 옆에 앉은 웨이드가 내 감탄사에 의문을 표했다.
“누구? 누구가 아니라 너겠지. 다들 널 보면서 이를 갈고 있다. 내가 우리 후보생 팀의 빌런이 되어 주전들의 경각심을 일으킬 생각이었는데, 네가 한 수 위였군.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주전 11명 모두를 30초 만에 바보로 만들다니. 그것도 전교생 앞에서. 과연 우리 학교 최고의 문제아답다.”
“……”
‘칭찬인가? 욕인가? 둘 다인가??’
*
경기의 양상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저게… 쿼터백이 할 플레이인가?”
모두 한 선수의 영향이었다.
미국 피지컬 천재 11